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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48화 (248/254)

248화-의미를 찾아서(8)

'무언가 변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브의 성장과 변화를 빠르게 눈치챌 수 있던건 지금 당장 군단병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이들이고, 지창현은 그중 하나였다.

그는 곧바로 의아함을 알아차렸다. 군단은 비록 그와 싸울때면 근접전을 피하고 원거리 포격만 계속 이어나갔지만 애초에 군단병들은 이브와 같은 존재.

이브의 생각이 달라진 결과로 그 기세 자체가 달라졌으니까. 타오르는 분노와 같던 군단병들의 기세는 어느 순간 능글맞은 뱀과도 같이 변해 아군을 능욕하고 복잡하게 변했다.

"지부장님. 놈들이 물러갑니다."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습니까."

"어...이번엔 좀 쉽게 물러가는 것 같습니다만. 악착 같이 죽이려던 놈들이, 지금은 조금 덜한 것 같습니다."

그는 다가 온 동료에게 물었다. 동료 역시 이 이질감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렸다.

다만 그는 이 문제를 그 이상 파고들 수 없었다. 이브의 마인드가 바뀌었다 한들 결국 전쟁은 끝도 없이 벌어지고 있고, 그의 힘이 필요한 곳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본성에 복귀해야 겠습니다."

"보, 본성에 말입니까?"

"지금까지 미뤘지만 역시 훗날을 대비한 전력의 증강이 꼭 필요합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잠시 고민하던 지창현은 다른 전장으로 가기 전에 복귀를 결정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니, 혹시 모를 일이 생기기 전 자신의 힘을 꼭 전수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직 본성에 있다고 합니다. 둘 다."

"그렇다면 바로 갑니다."

지창현은 이브와 신우의 위치를 확인하고 곧바로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정체를 꿈에도 모르고 있는 그는 그 두 사람에게 자신의 힘을 전수하여 뒤를 이을 영웅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가르쳐 주신다면 잘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신우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에게 제 힘이 큰 효과를 보고 있으니, 부디 잘 익혀 주십시오. 두 사람이 곧 인류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인류의 희망이라..."

이브는 지창현의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처음 지창현이 자신에게 기술을 전수하겠다고 말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웃음이었다.

그당시에는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그를 향한 순수한 비웃음이었지만, 지금은 비웃으려는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맞는 말이지. 내가 아니면 누가 인간들을 구하겠어."

오히려 히죽 웃으며 좋아했다.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지금의 이브는 분명 인간들을 절멸시킬 생각은 없었다. 이브는 하이브마인드이자 군단 그 자체.

행성급 둥지 여러개를 동시에 관장하며 마음만 먹으면 이 우주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존재지만 스스로의 맹점도 잘 알고 있었다.

이브는 모방하고 복제하며 습득하는 존재였다.

지금까지 엄청난 진화와 초월을 밥먹듯 해왔으면서도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존재는 아니었다.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다양성과 창의성이란 결국 수 많은 지성과 자아가 모여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니까.

모든것을 먹어치우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그것은 신우를 자극하기 위한 말이었을 뿐, 설령 먹어치운다 하더라도 이제 이브는 단순히 씹어 삼키고 분해하고 분석하는게 전부가 아님을 안다.

진정한 성장과 진화가 무엇인지 깨달은 지금의 이브는 이 우주에 홀로 남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인간들을 포함, 자기 자신을 대신해 성장하고 발전할 이들이 반드시 남아줘야 했다. 그것들을 모방하고 습득하는게 자신의 먹이었고, 자신의 진정한 성장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브는 단순히 '봐준다'의 개념을 넘어 그들과 죽일듯 싸우면서도 그들을 '지켜야'한다는 모순적인 개념까지 도달했다.

"...그렇다면 시작하겠습니다."

물론 지창현은 이런 속사정을 전혀 모른다. 그러니 그의 앞엔 뜬금 없는 자아도취에 빠진 애송이만 있을 뿐.

상황을 눈치 챈 신우가 한껏 콧대가 올라간 이브의 옆구리를 쿡 찔렀지만 그래도 지창현은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한 가지만 묻죠."

"..무엇을?"

"만약 제가 죽는다 치면, 당신은 정말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지."

기술 전수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마치 군단의 특성을 가져온 듯한, 두 하이브마인드가 익힌 공명법의 특성상 타인의 기술의 모방과 재현에 특출난 강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단지 필요한건 격렬한 전투였을 뿐이다.

지창현은 자기 목에 들이밀어진 신우의 검은 무시하고 밑에 깔린 이브의 목에 검을 들이밀고서, 한 없이 가벼운듯 하면서도 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붉은 눈을 내려다 보았다.

'어리지만 어리지 않아. 진심을 듣고 싶다.'

이건 일종의 직감이었다. 그걸 알아챈 이브가 희미하게 웃었다.

"난 인간들을 지켜. 전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그들의 소중함을 잘 알게 되었으니까. 이 우주에 완벽한 존재는 없지. 혼자서...성장할 수 있는 존재는 없어."

"...믿겠습니다."

지창현은 이브의 말을 진심이라 판단했다. 왜냐하면 진심이 맞았으니까. 천천히 일어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브는 조용히 입맛을 다셨다.

'서브마인드로 만드려고? 그건 불가능할걸.'

'나도 알아. 내가 본 그 어떤 인간들 중 가장 단단해.'

이브를 일으켜 준 신우가 군체의식을 통해 말했고 이브 역시 그에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브마인드로 만들 필요도 딱히 없어. 결국 내가 그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오히려 생각을 다르게 먹었다.

*

"보여? 이게 우리 아이들이야."

"...인간형이네."

"그게 우리 둘의 교차점이라고 생각했어."

군단이 처음 등장했던 행성 에덴. 그곳의 지하에는 당연히 군단의 둥지가 있었다.

그러나 여느 평범한 둥지와는 분명 다른 이곳을 이브는 내게 자랑스럽다는 듯 보여주었다.

"그래서 인간의 아이들처럼 키웠지."

이브가 마치 인간의 자궁과 비슷한 작은 둥지를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정작 내 기분은 묘했다.

지금 자라고 있는 이들은 일반종도, 상위종도 특수종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새로운 타입의 유닛. 그 목적은 나와 같이, 자신만의 군단을 만들어 성장하는 것이다.

"장막 너머에 어떤 놈들이 있을까. 분명 먹을게 많겠지. 이 아이들은 그때를 위한 안배야. 온 우주에 흩뿌려서,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어 퍼져나가. 그러면 장막 너머도 우리의 먹이가 될 테니까."

하이브마인드 까지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정해진 명령어로 군단을 조종하는 지휘개체인 리하르트와 비슷했다.

"이 애들이 활동을 시작할 시기는?"

"장막이 걷힐 때. 그 전까지는 아직 우리의 시대야."

그녀는 굳이 일을 서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멈추지도 않았다. 연합이 카사라스와 싸우느라 잠시 비어버린 시간에, 이브는 전력증강을 위해 다른 곳에 하나 둘 자신의 둥지를 늘려나갔다.

과거엔 비효율적이라며 굳이 하지 않았던 개척 행위였다. 만약 과거의 이브였다면 애초에 지금 타이밍에 어느 한 쪽을 먼저 공격했을 것이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하기 싫더라도.

성숙해진 이브는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인내의 끝은 결국 폭발적인 힘으로 돌아올 것이다.

"내가 이길까봐 두려워 보이네. 그럼 너도 확장해."

"내 주력을 다 묶어놨으면서?

어처구니가 없어서 코웃음이 나왔다. 물론 파견한 레이나가 최근 행성 하나를 완전히 점령하고 오윤아와 그 유닛인 청산족의 원수를 완전히 갚았지만, 내 확장력은 이브와는 차이가 크다.

"그러면 안 되지. 날 못 막잖아. 져버리면...넌 완전히 내게 먹혀버릴걸."

"전처럼 순수한 섬뜩함은 좀 덜하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은 그녀가 달라 붙었다. 지금은 서로 괴물의 몸, 딱딱한 갑각끼리 부딪혔다.

'카사라스와 연합의 싸움은 끝나야겠어. 이제는 무의미해.'

'거 참 왔다갔다가 너무 심하군.'

'어쩔 수 없지. 상황이 계속 변하니까.'

리하르트의 한숨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카사라스를 움직여 연합을 공격하게 만든건 전쟁을 난장판 삼파전으로 만들어 이브의 실험을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소한 계기로 성장하게 된 이브가 마음을 바꾸어 전력을 다해 싸우려 하니,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간 다 당한다.

'레이나. 네가 바로 움직여야겠다. 카사라스 본대를 회군시키기 위해 놈들의 본성을 공격하자.'

나는 레이나를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놈들의 본성에 대한 정보는 나도 이미 가지고 있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침공할 수 있다.

"대체 언제 열리는거지? 그 장막이라는거."

[말할 수 없지만, 너희는 충분히 잘 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긴다 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명령을 내린 후.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 온 나는 대놓고 푸념했다. 정작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는 별로 도움이 안 되었지만.

"그럼...너희는 어떻게 되는거지? 더 이상 이 일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면."

문득 생각이 들어 넌지시 물어보았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게임의 엔딩이다. 시스템이 더 이상 필요할까. 이제 과거의 망령들은 사라지고, 너희가 새로운 질서가 된다. 그것이 순리다]

그러나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또 다른 나인 존재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살짝 움찔했지만 순리라는 말에 반박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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