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46화 (246/254)

246화-의미를 찾아서(6)

"지금의 널, 지금의 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지...?"

찾아 온 이브의 질문을 받은 순간, 내 몸은 흠칫해서 굳어버렸다.

머릿속에서는 이브를 속이고 전황을 조작시키던 일들이 빠르게 스쳤다. 설마 눈치를 챈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이브의 성격에 이렇게 침착하게 반응할리가 없는데.

"생각을 해봤지. 나는 분명 급격히 성장했고, 가치관 역시 많이 바뀌었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등등. 그 과정에서 한 가지 깨달아버린거야. 내가 잊어버린 그것을."

"그게...뭐지?"

나는 슬금슬금 다가오는 이브의 모습에 당황해서 뒷걸음질쳤다. 완숙한 하나의 인격체가 된 이브가 스스로 성찰한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사실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상태였다.

"우리 둘의 관계 말이야."

이브가 등 뒤가 벽에 막힌 내게 얼굴을 들이대었다.

밀어낼 수는 없었다. 어쨌든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던, 핵심을 꿰뚫는 말이었으니까.

"내 잘못이 아니야. 인간의 감정은 지금의 나조차 완전히 알지 못해. 그래서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 왜 나를 흔들지 못하지? 왜 나를 미치게 만들지 못하느냔 말이야."

이브가 나를 코앞에서 올려다 보았다. 나는 그 눈을 직시했다. 번득이던 붉은 핏빛의 눈은 지금 이 순간 흔들리고 있었다.

이브의 눈이 흔들리는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그건 나도 정확히 모르지."

그만큼 진심임을 깨닫고 쓰게 웃은 내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사이의 감정이 변한 이유라.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이브의 성장이었다. 과거 성녀 이자벨이 말했듯, 나에 비하면 이브의 존재감은 거대했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먹고 묻히게 만드는 거대한 존재. 그 시기, 나는 더 이상 이브보다 우위에 설 수 없었고 주도권을 놓쳐버렸다.

"나는 그때 네가 두려웠어. 내 휴대폰 속 작은 군단이었던 네가 하나의 세상을 집어삼킨 거대한 괴수가 되었을때. 네가 나조차, 내 주변 모든 것을 집어 삼킬까봐."

"...맞아.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지. 나도 그때 즈음부터, 관성만 남은 것 같았어. 세상을 알고,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을때. 너에 대한 집착은 과거와는 달리 껍데기만 남았었던 것이고 그건표현할 줄 몰랐던 내 고집이었지."

그냥 솔직하게 무서웠다고 본심을 말했다. 정확히는 이브가 불러 올 미래가 무서웠던 것이지만 어쨌든.

이브는 내 말을 듣더니 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감정에 대한 이브의 생각을 듣는건 처음이었다. 이브가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을 했고, 지금은 어떤지. 모두 처음 듣는 것들이었다.

"나에 대해 집착하는게 좋은건 아니야. 아이가 성장하여 부모에게서 벗어나듯, 너도 마찬가지인거니까."

"글쎄. 그건 착각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타일렀지만 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이 순간, 이 괴리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감이 잡혔다.

"우리의 '전성기'를 생각해봐. 나도, 너도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을때. 내가 처음으로 미궁을 벗어나고, 네가 나를 소환권을 써서 불렀을때. 그때의 나는 뜨거웠어. 타오르는 불길이었고, 오직 그것만을 위해 모든 것을 태워버렸지."

"...넌 그때 어렸어."

"바로 그 '어림'이 지금보다 옳았던거야."

이브의 눈에 짙은 후회가 스치는게 보였다. 가끔은 나도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내가 이브와의 줄다리기를 더 유지했더라면, 차라리 이브를 계속해서 내 휴대폰 속의 군단으로 남겼더라면.

물론 지금의 내 선택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아슬아슬하다 하더라도, 이브라는 거대한 존재와 함께 하고 있다.

이브는 내 자식이었다. 당연히 나보다 커져야 했다.

하지만, 이브는 자신을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브는 지금 나를 자신의 반쪽이자 연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그건 그 누구도 모르지."

이브의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폭주하고 미쳐 날뛰는 이브를 계속해서 밀어주었다면.

어쩌면 그렇게 하더라도 내가 이브라는 초생물을 통제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나 강신우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색무취하게 묻혀버리지는 않지 않았을까.

"되찾고 싶어. 그때의 그 강렬하고 원초적인 욕망과, 타오르는 감정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쩔건데."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먹어치울거야. 우리를 제외하고 전부 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희미하게 웃은 이브가 붉은 혀로 살며시 자기 입술을 핥았다.

실로 무서운 선언이었다. 그동안의 내 노력과 결실을 지금 짓밟아 없애겠다고 선언한 셈이니까.

그걸 알고서, 지금 나를 도발하는 것이다.

"나는 너와 동일한 서열을 가진 하이브마인드고, 휘하 세력은 네 3할에 달하지. 미안하지만 이제 더 이상 네 독단으로는 움직일 수 없어."

"바로 그거야."

히죽 웃은 이브가 내 몸에 닿은 자기 가슴이 뭉개지는 것도 상관 않고 내게 몸을 찰싹 기울였다.

"그 당시에도, 나와 너 사이에 큰 벽이 있었어. 유닛과 플레이어, 게임 시스템이라는 큰 벽이. 그것들마저 무시할 수 있는 지금 그 당시를 재현하려면 벽이 필요해. 감히 나조차 쉽게 부술 수 없는 벽이. 보니까...지금 상대하고 있는 이 우주의 잡것들과 네 휘하 군단이면 충분해 보여."

"그게 결국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은 네가 찾은 진정한 의미인가?"

애지중지 키운 녀석의 최종진화가 집착얀데레라는 사실에 현타가 왔지만 사실 이상할건 없었다.

어쨌든 결과는 비슷하지만 이브는 타고난 본성 따위가 아닌, 스스로 정신적 성장을 거쳐 돌고 돌고 또 돌아서 이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내가 넣어주고 주입시킨 표본, 지식, 사상과는 관련 없이. 포식하고 조합한 유전지식 없이 이브라는 존재 스스로가.

[...이것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새로운 사상의 탄생이니]

수많은 이브와 수많은 나를 봐왔을 관조자가 이를 인증하였다.

더 거리낄게 있는가. 나는 반사적으로 이브의 허리에 손을 올렸지만, 이내 등을 잡고 앞으로 끌어당겼다.

'리하르트. 지금 당장, 전 병력을 움직여.'

이브는 손으로 내 얼굴을 끌어당겼고 나는 동시에 군체의식을 통해 휘하의 군단에 명령을 내렸다.

'이브의 군단을 공격해. 그리고 윤아 너는 카사라스들 곁을 벗어나 연맹으로 가.'

'빠르네. 하지만 그렇게 나와야지.'

서로 잡아먹을 듯이 입을 맞추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향해 적개심에 가까울 정도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었다.

하긴 애초에 우리는 처음부터 이런 관계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브를 두려워하고, 이브는 폭주한다. 이번엔 내가 게임 시스템의 힘을 빌리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점만 다를뿐.

"하아...이걸로 끝낼거야?"

드물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치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입이 살짝 떨어진 순간, 흐트러진 머리칼을 늘어뜨린 이브가 내 손을 잡아 끌더니 상기된 얼굴로 방쪽을 흘끔거렸다.

*

"..."

"이건...대체...결국 서로 싸우겠다는 것 아닌가? 그런 케이스가 없던건 아니었는데."

"틀렸어. 자네 눈엔 저게 싸움으로 보이나."

"아니, 물론 겉으로 보면 인간끼리의 격정적인 교미로 보이긴 하지만 그게..."

가면 너머, 당황한 동료가 연신 헛기침을 내뱉었다. 정작 화면을 등진 그의 눈은 가면 속에서 차분했다.

다만 화면의 소리는 최대한으로 낮췄다. 단 한번도 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장면이기에 타격이 없지는 않았다.

"저건 놀이다. 지금 서로 싸우려 드는 군단의 전쟁도, 놀이가 되겠지. 앞으로 벌어지는 우주의 모든 전쟁도 그들의 놀이가 될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사자들을 제외, 그 누구보다 둘에 대해 잘 아는 존재였다. 게다가 지금껏 수많은 이브와 신우를 봐 왔으다.

그런 그가, 지금 진심으로 전율하고 있었다.

"이브가 결국 타고난 본성을 찍어 누르고, 더 우선시 했던 것은 그에 대해 집착하고 집착하고 그의 애정을 갈구하던 그 순간이 유일했다. 비록 그 방법이 성장과 포식이라는 본성과 겹쳐 티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그리고 지금, 이브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고 있다."

이브는 성장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회차의 이브보다 정신적으로 성장했다.

지금 인간의 육체로 얻고 있는 쾌락이, 군단병들이 전쟁을 벌이며 적을 죽이고 먹어치우는 것보다 더 크다고 생각할 정도로 성장했다.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본능을 찍어누르는 새로운 감정을 얻는데 성공했다.

'성공이다. 이번에는 성공한다. 이브라는 가장 큰 산을 이대로 넘는다면 우리는 아마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는 비틀거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뒤에 펼쳐진 수백개의 화면 중 가장 큰 화면에서는, 서로 얽힌 살색들이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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