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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45화 (245/254)

245화-의미를 찾아서(5)

"대체...대체 이 행동의 의미가 뭐지? 네놈들이 진심으로 원하는게 뭐냔 말이다!"

그녀, 슈리아가 악에 받혀 소리쳤다. 함께 싸우던 기오랑족의 태전사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의미라.'

정작 또 한 번의 전투에서 승리한 라몬과 강도연 두 듀오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상태였다.

상대에게 공포와 절망을 주는 검은 날개와 검은 뿔이 되어 싸우기 시작한 이후, 딱히 전투를 치루는데 의미를 두지는 않았으니까.

"죽여라. 이번에야 말로."

부러진 활을 들고 이를 악문 슈리아가 눈을 번득였다. 하지만, 라몬과 강도연이 그녀를 죽일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분노하고, 상처 받고, 절망할 수록 더 강해지는 존재임을 이미 확인했으니까.

'마음 같아선 말해주고 싶군. 우리가 이러는게 사실은 우리를 포함 이 우주 모두를 위한 것이란걸.'

'그건 불가능해.'

'알고 있다. 단지 이 요정 계집이 이토록 의미를 부르짖으니 그렇게 생각한 것 뿐이다.'

그녀를 내려다 보던 라몬이 코웃음을 치자 강도연이 말렸다. 물론 그가 명령을 어기는 일은 없었지만, 그의 말에는 강도연도 반박하지 않았다.

'우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인간과 다르지.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존재들이 결국 살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으면, 다 같이 살기 위한 불합리한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 와중에 약해서 도태되면 결국 죽는거고.'

조금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신우의 의도를 알고 있는 라몬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 모든 행동의 의미는 처음부터 하나였다. 수많은 장애물을 딛고 어떻게든 최대한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저러다 자살이라도 하면 어쩌지?'

'그럴 정도로 유약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지. 설마 아직도 누군가의 증오와 원망을 받는게 힘든가? 어차피 우리는 악당일 수밖에 없다.'

그대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강도연은 바닥에 주저 앉은 채 눈물이 고인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들을 노려보는 슈리아를 보았다.

정작 라몬은 강도연의 한 마디를 듣고 코웃음을 쳤다.

'연합의 행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금 카사라스의 함대가 그들의 세력을 습격했으니까.'

"거대한 세력들이 뜻대로 움직여주는군. 대단하긴 해."

라몬과 강도연은 우주공간에 있는 요새로 복귀했다. 다른 곳의 상황을 알려주는 리하르트의 말에, 가면을 벗은 라몬이 혀를 내둘렀다.

곁에 있던 강도연도 가면을 벗었다. 최근들어 복잡한 감정을 내려놓고 한 가지에 집중하기 시작한 그녀의 얼굴은 무감정했다.

"만약 모든 진상을 알게 되었을때.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과연 또 다른 하이브마인드이자 진정한 군단인 이브는 어떻게 반응할까."

"...솔직히 나는 아직 이브의 생각을 잘 모르겠어."

라몬의 말에 강도연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순간 리하르트도, 라몬도 그 말에 공감했다.

'하는 행동을 보면 이것저것 다 해보는 어린아이와 같다. 실제로도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진짜 어린애는 아니니까. 분명 내면에 품고 있는 진짜 속내가 있을텐데.'

"이브가 우리 뜻에 협력한다면 이렇게 돌아서 다닐 이유도 없지. 군단 전체가 작정하고 나선다면 장담하는데 강력한 무게추이자 균형자가 될 수 있다."

리하르트의 분석에 라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이 이러고 있는 것도 결국 조금의 합의와 타협도 없는 이브와 다른 세력들 사이의 줄다리기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었다.

서브마인드들이 군단에 바라는 각자의 바램은 조금씩 다르지만, 어쨌든 안정된 기반은 있어야 하기에.

"하지만 이브가 성장과 팽창을 포기하는건 말이 안 되는데."

가장 오래 이브를 봐 오고 한때는 동생처럼 키웠던 강도연은 그럴리 없다고 단언했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지지부진한 전투도 이제 그 덩치가 커질대로 커진 이브에겐 성장을 위한 자극을 스스로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그만큼, 이브가 자신의 근본이자 전부인 성장과 탐식을 포기할리가 없었다.

"...결국 본인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단거군. 하지만 글쎄, 사실 난 정해진 운명이나 본능 따위는 믿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지금 군단의 일부가 되어 이러고 있는게 그 증거지."

다시 가면을 쓴 라몬이 히죽거렸다. 곧 요새는 군단의 세력권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

"카사라스가 연합을? 걔들이 왜? 이해가 안 되는데."

"나도 파란외계인들의 사고방식은 데이터가 없어서."

"웃기네."

저 먼 우주 어딘가에서 다른 소속인 서브마인드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소식을 전해들은 이브가 코웃음을 쳤다.

"지창현은 또 전공을 세웠어. 물론 이번에는 대응이 빨라서 그저 한 부대의 병력을 잃었을 뿐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곳의 전투는 계속되지. 그 혼자서는 절대 수습 못해."

그 상태로 다른 곳의 전황을 살피던 이브는 지창현이 도착한 행성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지창현의 힘은 변수중의 변수지만 피해를 최소화 할만큼 익숙해진 이상 파훼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쉬고 있어. 난 잠시 볼일이 있어서."

카사라스쪽을 비롯, 지금 당장 살필 곳이 늘어난 신우는 그대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

혼자 남게 된 이브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형 아바타를 놀리는 시간이 없어졌다.

굳이 인간인 상태에서 할 일이 없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군단은 군댄대로 움직이며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뇌를 활성화했다.

'흠, 이상한가?'

본인 스스로도 이를 느낄 정도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점은 없었다.

이렇게 활동한다 해도 본인이 생각하기에 딱히 영향이 가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본인은 인간도 될 수 있고, 군단도 될 수 있으니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정작 이브는 그것마저 인간이 가진 특성 중 하나인 다양성임을 알아차리진 못했다.

"이게 뭐지?"

"행성의 단체 중 하나가 이곳에 머물고 계신 영웅들께 기념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요즘 가만 있지를 않는 이브가 이렇게 혼자 있을때면 하던 평소의 버릇대로, 머물던 호텔을 여기저기 거닐고 있을때.

도저히 신우를 찾을 수 없었던 직원 중 하나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왔다. 상황 자체는 흔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힘들고 지칠수록 신시대의 영웅들에게 열광하고 그들을 응원했으니까.

직원의 불길한 망상과는 달리 이브는 별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았다.

"내건가? 내 이름이 각인되어 있어."

"그, 그렇습니다."

이브가 받아든 것은 이름이 각인된 반지였다. 반지를 받아본건 처음이기에, 이브는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손가락에 끼웠다.

"이건 그의 것인가?"

"예. 커플링이죠."

"커플?"

이브는 바로 옆에 있던 또다른 반지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신우의 이름이 각인된 자신과 똑같은 반지였다.

세간 사람들이 이미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브는 커플이라는 단어에 흥미를 보였다.

"맞지 않습니까?"

"뭐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는 늘 함께하니까. 그런데 정작 교미 같은건 아직 못해봤어."

"푸흡..."

적나라한 표현에 직원이 뿜든 말든 이브는 신우의 반지를 손에 쥐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는 내게 뭐지? 그는...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한때는 이 세상에 오직 그만 있는 것 같아서, 그가 이 세상의 전부였던 것 같아서 그에게 미쳐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와 하나가 되는 것에 집착하고, 육체적인 교접을 갈구하던 때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성장을 거듭하며 일개 인간이 품을 수 없던 이브의 세계는 끝없이 넓어졌다.

분명 지금과 그때는 상황이 달랐다.

'내 감정은 뭐지?'

그에 따라 급격하게 뒤틀린 감정선은 어딘가 애매해졌다. 이제 이브에게 그는 이 세상의 전부도 아니고, 가지기 위해 질투와 시기로 미쳐 날뛰었던 집착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에게 닿기 위해 성장에 집착하던 때와 지금 원하고 있는 성장은 분명 달랐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여유롭고, 어딘가 의미 없이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브는 입술을 깨물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당연하지."

한 마디 남긴 이브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건 내 잘못이 아냐.'

걸으면서도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의 감정과 관계가 변한건 자기 탓이 아니었다.

이브는 진정한 합일 이후 또다른 하이브마인드가 된 신우가 자신에게 주는 관심에 변화가 생긴 탓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단순히 전쟁과 싸움만으로 성취를 이루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미쳐있었고, 그만큼 파격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그때.

한층 성숙해진 이브는 이번엔 그때의 감정을 되찾아 보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를 찾는데 도움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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