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의미를 찾아서(2)
"이거...상황이 좀 웃기네."
"그러게."
통화를 끊은 이브가 웃었다. 분명 지창현은 우리를 막아설 수 있는 크나큰 장애물이었지만, 저 웃음을 보니 그가 살짝 안타까워졌다.
하필 골라도 이쪽을 고르다니.
"그래서. 그를 어쩌려고?"
"일단 한번 배워봐야겠어."
"배운다? 우리를, 우리의 거대한 군체의식을 단숨에 태워버릴 수 있는 존재의 성명절기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지. 그리고 내 약점에 대해서 나 스스로가 연마하고 배운다면 자연스럽게 그걸 막을 방법도 떠오를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이 우주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놈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렇군."
이브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지금의 이브는 모르고 있겠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장막 너머의 적, 시스템이 적대하는 적들에 대해 떠올렸다.
이전 회차들의 이브는 그들을 이겼다고 했으나 지금의 이브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나 마찬가지다.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하지 못하는때에 새로운 힘을 배운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한가지 더 물어보자. 그에게 그 기술을 배우고, 언젠가...그 사람을 처리해버린다고 치면. 그럼 그때 너는 어떻게 되는거지? '인간 헌터 이브'는 결국 크나큰 인류의 배신자가 되는건가?"
"...그걸 잘 모르겠어."
주제를 살짝 바꾼 내 질문에 이브가 미간을 찌푸렸다. 철저한 인간 코스프레로 이득을 많이 본 이브는 이제 이 생활에 진심이었다.
비록 버릇없고 틱틱대는건 여전해도 이제는 정말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관으로 행동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이브에 의해서든 다른 이유가 있든 만약 지창현 같은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면.
이브는 그 순간에도 인류를 위한 검이 되어 싸울 것인가.
"이 모습으로만 이룰 수 있는 성장이 있어. 난 그것을 원해. 지금처럼."
"만약 너와 너가 나뉘어 싸우게 될지도 몰라 이와 브가 되어서 싸울 자신 있어? 끝까지 인간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냐고."
"무슨 문제야? 이렇게 연기 하는건 아무 문제 없잖아. 연기...맞아 전부 연기일 뿐이지."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이브가 피식 웃었다.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린 결론은 결국 연기였다. 나는 굳이 거기서 더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생물종의 극의에 다다른 군단의 성장은 사실 계속되고 있다. 이제 육체를 개조하는걸 넘어서 정신적인 부분까지 조합하고 발달시키는 중이었다.
이브라는 존재가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나조차도 예상할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의 승전입니다. 심지어 엄청난 전공이죠."
"역사에 남을 순간입니다. 비록 영웅의 등장이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 모두가 있기에 가능한 승전입니다."
화면 속. 들뜬 현장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다.
연맹은 얼결에 거둔 이 승리를 거하게 축하했다.
군단을 상대로 거둔 가장 큰 전공이었고 그들이 보여준 저항 정신에 대한 보상이었으니까.
이제 그들은 이것을 계기로 더 뭉칠 것이다.
"오랜만이에요."
"성녀님이 어떻게 여기에."
멍하니 홀에 앉아있던 내게 누군가 다가왔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자 여기 있는게 놀라운 사람이었다. 성녀 이자벨, 내가 하이브마인드가 될 수 있게 도움을 준 이후로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멍청이들의 고집이 너무 세서, 저도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어쨌든 동족인데."
"...그러고보니 교단의 성기사들도 유닛이었죠."
따지고보면 지구처럼 연맹에 새로 가입한 세력 중 하나일 뿐이다. 마족들이 다 사라진 탓인지 설마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
"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고민을 가지고 있군요. 이곳에서의 명성은 둘 다 대단하던데."
히죽 웃은 이자벨이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일종의 사진 모음이었다. 그리고 사진 속 인물들은 대부분 한명이고 가끔 두명이었다.
가장 앞장에, 검을 들고 있는 이브의 측면 사진이 찍혀 있다. 처음 인간의 모습을 취했을 때부터 쭉 입고다니는 이 하얀색 교복은 이제 이브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글쎄요. 이것만 보면 제가 여전히 이브에게 눌려있는건가 하고."
"솔직히 말하면 당신은 스타성이 없죠. 매력도, 주목도도 모두 이브에 비하면 낮으니까."
이브가 주역인 사진들을 보며 피식 웃자 이자벨이 뼈에 팩트를 꽂아넣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솔직히 나 대신 저 길가에 있는 아무나 붙잡아 넣어놔도 다를게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 그렇게 헤맬때 보다는 지금이 나은 것 같은데요."
"그건 모르죠."
그녀의 말에 쓰게 웃었다. 중간에 갈팡질팡하며 절망한 것도 사실이지만 급하게 땜빵한다고 일을 서두른 지금을 전보다 낫다고 확실하게 말하기는 힘들었다.
가지고 있던 장점은 다 사라진지 오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직 많이 남았는데.
"저는 이미 틀렸습니다. 물론 결국 제 책임이니, 후회는 없습니다. 방법이 없는거지만."
"후회는 누구나 하죠. 이브가 가진 가능성이 그래도 올바르게 터진 것 같아 다행이네요. 모두의 영웅이 되었으니까."
통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성녀도 이브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다. 하긴 알아채는게 더 이상하다 지금 연기하는 이브는 인간 그 자체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녀의 말을 부정할수도 없었다. 어쨌든 인간 이브는 지금 영웅이었고 내 직감상 앞으로도 영웅일 것 같았다.
"승전을 거두긴 했지만 지금까지 입은 피해에 비하면 작은 승리...아마 멈추지 않을걸요."
"당연합니다."
우리는 함께 차후의 전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승리의 맛을 본 연맹이 여기서 만족할리가 없다. 자신들의 전공을 믿고 선제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었다.
"혼자가 아닌 전 결코 죽어선 안되지만, 그래도 참전하는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렇게 제대로 된 전장이 또 생기게 된다면 이자벨과 그곳에서 만날 가능성이 컸다.
*
'예상치 못한 타격에 의한 피해는 모두 복구했다. 애초에 우리와는 거리가 꽤 있었나보군.'
이자벨과 만난 나는 그녀와 소통하면서도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내 명령으로 연합의 행성을 공격하고 있던 라몬과 강도연의 병력이 있는곳. 우주 저 너머인 그곳은 지금 이곳과는 달리 여전히 전투가 한창이었다.
다행히 그 끔찍한 불길에게서 우리는 조금 당황했을 뿐 큰 타격은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한계인 것은 마찬가지다. 복귀해야해. 자원 낭비다. 비효율적이야.'
그때 리하르트가 당연히 더 싸우려는 아군을 말렸다. 게릴라 수준의 병력으로 적 전체를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강도현과 라몬,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파괴전차처럼 돌진하는 둘이서 적들의 방어를 그대로 갈아버리는 것을 봤다.
소수의 병력만 보냈는데도 아직까지 성과를 내고 있는건 순전히 둘의 강함 덕분이었다.
'솔직히 이곳보다는 본성이 문제 아닌가?'
'그곳은 이브가 막을테니까. 하지만 혹시 몰라. 둘 다 대비는 해둬.'
물론 고작해야 게릴라인 이곳보다 더 중요한 곳도 있었다.
한번 패퇴한 이후, 렐의 승전 소식을 듣자마자 다시 쳐들어 오는 연합군의 별동대. 지창현이 이브가 쓰러트려야 할 개인적인 대적자가 되었다면, 대적세력은 연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쓰러트려야만하는 존재들끼리의 싸움이었다.
'칼타스. 그는 유능하고 똑똑하다. 책략에 자신있다는 그 손아귀에 마군보다 강한 군대가 쥐어졌다면 나도 그 능력의 한계를 모른다."
라몬은 연합중에서도 조심해야 할 사람들을 골라내었다. 그 와중에 칼타스라는 이름은 어딘가 익숙했다. 마계에서 우리를 그렇게 괴롭혔던 전대 마왕이었다.
'이브는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르지.'
물론 이브는 자신이 반드시 쓰러트려야 할 적들이 늘어났다면 좋아하겠지만.
내가 볼때 어차피 끝은 정해져 있다. 중요한건 나도, 이브도 연맹도 연합도 그 속에 속한 수많은 이들 모두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찾느냐다.
언젠가는 찾아 올 마지막 적들을 향해 우리는 어떤 형태로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지.
'아. 이런, 또 찾아왔군. 철수하더라도 저녀석의 성장은 끝을 보고 싶은데.'
그때 라몬이 뒤로 빠져서 대기하라는 내 명령에 다른 제안을 건넸다. 나는 그의 관심을 끈 존재를 확인했다.
'과거 라몬이 처음 서브마인드로 활약했던 방어전에서 맞서 싸웠던 요정족이다.'
리하르트가 데이터를 뒤져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제서야 나도 기억해냈다.
라몬이 강도연을 상대할 때처럼, 고의로 살려서 보내 준 존재였다.
'안돼 안돼. 후퇴해라. 더 이상 싸움을 지속했다가 요새를 잃으면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냐. 자원의 효율성이...'
'양산형들이나 통제하시지. 네가 내 행동을 강제할 권리는 없어. 하이브마인드의 판단에 맡긴다.'
전투를 끝내려는 리하르트와 더 싸우고픈 라몬이 충돌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끝낼 수 있을걸요.'
거기다 강도연이 한 숟갈 올리기 까지. 혀를 찬 리하르트는 결국 둘을 이기지 못하고 내게 선택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