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33화 (233/254)

233화-미묘한 균형(3)

'요격 성공.'

쏘아진 모리스의 검들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방어 시설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하늘을 가로지른 검들은 소리를 찢는 속도로 목표물을 향해 정확히 날아가, 미처 미사일을 쏘지도 못한 전투기들을 요격했다.

덕분에 수십 km상공에서 터진 핵폭탄이 거대한 화염과 함께 일대를 뒤덮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지상도 만만찮은 피해를 보겠지만, 군단의 둥지에 저정도는 타격조차 아니었다.

'이번에는 이쪽에서 공격한다.'

모리스는 자신이 지휘하게 된 병력을 움직였다.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지만, 복구 작업도 못끝낸 상대도 지금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님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사이 둥지는 확장을 계속했다. 둥지가 성장하는 동안 먼저 공격하여 상대가 감히 둥지를 공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군단의 오래된, 그리고 정석적인 전술이었다.

'분명 처절하게 발버둥치겠지. 하지만 우리도 마찬가지야. 그중 하나라도 건지면 그것은 군단 전체의 이득이다.'

이브는 전체적인 상황을 지켜보며 앞으로의 계획에 중히 쓰일 자신의 '실험'을 예측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직접 시험하는 이 실험은 꽤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실험.

지금까지는 이브의 성장이 곧 군단의 성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단 하나의 자아로 거대한 군단을 통제하는 하이브마인드가, 일개 군단병들에 집중하여 스스로를 한계로 내몬다.

그 과정에서 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 확인한다. 만약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이브는 이제 '하나의 존재'로는 감히 적수가 없는 이 우주에서 또다시 피튀기는 직접 경쟁을 통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뜻이었다.

"비, 비상!! 비상!"

"지원군을 보내라고 해. 지금 당장!!"

피난민들이 모여있던 도시. 이곳은 극도의 패닉에 빠지게 되었다. 전투기들이 발진한 이유가 결국 퍼졌기 때문이었다.

안그래도 지쳐있던 사람들은, 소문으로나 들었던 우주괴물들의 침략 소식에 경악했다.

"사령관님. 이대로라면 채 이틀이 가기 전에 놈들이 이곳까지 도달할 겁니다."

"사람들 통제해. 지원은 반드시 온다. 어차피 여기가 뚫리면 다른곳도 마찬가지야. 문제는, 그 지원이 임시정부 수준이면 망했다는거고."

계엄령과 함께 임시로 해당 지역을 지휘하고 있던 군부의 사령관은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 역시 도망치고 싶었지만, 어차피 지금 죽나 나중에 죽나 차이였다.

"지금 당장,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방어 준비해. 놈들의 규모는?!"

"다, 다행히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관은 그에게 관측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지금의 군단은 마치 그들과 수준을 맞추겠다는 듯, 함대전력도 비행종도 그 수가 적었다. 땅을 가로질러 오는 숫자도 많기는 하지만 하나의 물결을, 해일을 이룬다는 평가와는 달리 현실적이었다.

"...싸울 수 있는 누구든, 무엇이든 징발해."

사령관은 괴로운 느낌에 얼굴이 일그러지듯 웃었다.

차라리 군단의 전력이 척 봐도 압도적이었다면 애초부터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군단은 마치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는 그들의 심정을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 최소한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쳐들어 오고 있었다.

"지원이 올때까지 버티는걸 목적으로 한다. 서둘러!"

곧 수백만의 피난민들이 모여있던 도시 전체가 쉴틈 없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싸울 힘이 없는 이들은 최대한 후방으로, 다른 지역으로 피난시켰다.

"전 싸울 수 있어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야."

시설에서 일하는 노약자와 어린이들을 피난 차량에 태우던 군인이, 아직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앳된 여자 아이의 손을 잡아 끌며 강제로 태우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그것을 거절했다.

"진짜로 싸울 수 있어요."

"...대체 어떻게."

그녀는 단순한 치기가 아니라는 듯 자신의 힘을 보여주었다. 갈색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순간 몸에서 타오른 붉은 기운이, 손을 타고 뻗어나가 곁에 있던 울타리를 날려버렸다.

군인은 그걸 보고 얼어버렸다.

[...살아남기만 하라]

그리고 얼어붙은건 그만 그런게 아니었다. 머리에 울리는 음성을 들은 그녀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플레이어에가 그녀에게 기회를 준 이유는 간단했다.

[저 끔찍한 괴물들을 죽여, 황녀님의 원수를 갚아라]

지금 몰려오는 군단에게 원한을 가진건 플레이어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것도 지금 기준으로는 꽤 오래 된 원한이었다.

"정말 안 가?"

"걱정하지 마."

결국 갈 길이 바빴던 군인들은 그녀를 포기했다. 찰나의 순간, 그녀는 떠나보내는 자신의 동생들에게 인사했다.

단순히 플레이어의 원한으로 싸우는가? 그건 절대 아니었다. 이건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었다.

"이름이 뭐지? 상부에 보고하겠다."

"...세나."

"좋아 세나. 요즘 같은 세상에 많은거 묻지 않겠다. 우리는 결국 같이 싸우는 거니까."

차량은 그대로 출발했다. 이제 정말로 남은 것은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 뿐. 피난과 전투 준비로 시간을 다 보내는 사이 어느새 두번의 밤이 지나가 버렸다.

*

"쏴!"

귀를 때리는 폭음. 영혼까지 긁어 모은 포병 전력이 최선을 다해 포격을 쏟아부었다.

하늘을 가로지른 포격이 몰려오는 군단병들을 향해 떨어질 때.

'요격.'

지룡의 형태를 띄고 있는 2번대 포격형 군단병들이 정확한 각도로 광선포를 뿜어내 포탄들을 요격했다.

밀집되어 쏟아지는 포탄의 숫자가 더 많아서 피해를 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소형의 군단병들에게만 타격이 있을 뿐.

하늘에서 이따금 날아오는 미사일을 직접 요격하며 초대형종과 대형종을 방패 삼아 앞세운 모리스는 인간들의 포격을 뚫어가며 마침내 도시 인근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전부, 돌격.'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애초에 원거리 화력전은 군단의 주특기가 아니었다. 돌진하여, 발톱과 이빨로 전부 짓이겨 버리는게 군단의 상징이자 진정한 전투법이었으니까.

"으아아!"

"폭약 터트려!"

인간들도 최대한 저항했다.

수십톤의 무게를 지닌 초대형종들이 방벽을 향해 돌진해오자, 미리 매설한 폭약을 터트려 바닥을 다 부숴버렸다. 하지만 뒤따르던 군단병들은 초대형종이 넘어지든 말든 멈추지 않고 그대로 돌진할 뿐.

결국 미친듯이 쏟아붇는 화망을 뚫은 군단병들이 기갑부대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본격적인 전투가 개시되었다.

"다들 희망을 가집시다. 단 하루. 하루만 버티면 지원이 온다고 했으니까!"

"..."

전투가 시작되었음은 최전선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에서도 알 수 있다. 세나는 징집된 사람들을 격려하는 지휘관의 말을 들으며 멍하니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폭격으로 인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그곳을.

[게임은 지속되는 싸움을 바라고 있다. 거기서 우리의 목적은, 저 괴물들에게서 살아남는 것이고. 그렇다면 반대는 무엇이겠느냐. 저 괴물들은, 우리 모두를 죽이려는 것이다]

그녀의 뇌리에 플레이어의 진중한 말이 울리고 있었다.

[명심해라.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번 전투 역시 끝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현 세태를 관통하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압도적인 규모의 군대가 서로 맞붙는 것도 아니다. 전체적인 역사에는 그저 많고 많은 전쟁의 일부로 기억될, 어쩌면 사소한 순간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정체를 숨기고 활동해 온 세나 본인도 지금 시대에 넘쳐나는 수많은 능력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어쨌든 그녀를 비롯한 지금 이곳의 모두가 새롭게 접어든 이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는 것.

[살아남아라]

플레이어는 세나에게 많은 것을 주문하지 않았다. 그녀도 많은걸 바라는건 아니었다. 살아남고 주변을 지키는 것, 그것으로 족했다.

그녀는 흔치 않은, 인화한 사진 하나를 꺼내들었다.

"비행종이다!"

거의 동시에, 어쩌면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던 이곳에 날개를 펄럭이며 접근하는 검은 형체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사람들은 서둘러 기관포를 쏘며 저항했다. 이 기관포가 지금 그들이 가진 최대 화력이었다.

"이, 이곳으로 온다!"

편대를 이루던 4번대의 중형 비행종 스팅레이들은 비행종 특유의 약한 방어력으로, 기관포의 화력에 모두 격추당해 떨어졌다.

하지만 가운데에 있던 대형 비행종은 달랐다. 날개를 펴면 어지간한 전차 크기의 덩치로, 날카로운 턱을 딱딱거리며 무기로 든 독침과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6개의 다리를 뻗으며 그들을 덮쳐들었다.

'이제 때가 된거야.'

사람들이 기겁하며 도주하려 할때. 사진을 다시 집어 넣은 세나가 이를 악물고 정면을 향해 뛰어들었다.

지금 이 순간은 영웅이 되려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단지 살기 위한 발버둥일 뿐.

셔츠 안에 넣은 사진이 팔랑거렸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흑발을 휘날리고 붉은 눈을 번득이며, 검을 휘둘러 적을 베는, 그녀가 동경하던 신시대의 영웅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