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물고 물리는 싸움(5)
"..."
"...나참."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곳의 분위기도 전장 못지 않았다.
살벌하고 차갑다. 사실 당연했다. 지금 서로 마주보고 있는 이들은 거진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서로 원수로 여기고 대립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지금 해묵은 감정 따위를 해소할 기회도 없이 억지로 뭉쳐야만 했다.
"후, 어차피 이렇게 보게 되었는데 그냥 빠르게 진행하지. 그게 맞는 것 아닌가."
"...그렇다. 차라리 서두르는게 좋겠군."
연합의 대표로 나선 미하일은 정면을 바라보며 이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전방에 떠오른 홀로그램 화면 속. 정확히는 저 앞에 주둔하고 있는 함선에 타고 있는 연맹의 대표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했지만 저쪽도 마찬가진가.'
'이번 일만 아니었다면...'
물론 이런 원만한 합의에도 서로의 속마음은 여전했다. 미하일도, 연맹의 대표단도 서로 대동한 이들을 빠르게 살폈다.
미하일은 이번 회동에 엘던의 요정들이나 칼타스를 비롯 연합에 참가한 다른 세상의 이종족들을 고의로 함께 대동했다.
그리고 그건 연맹도 마찬가지였다. 이 묘한 기싸움은 끝이 없었고 서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신경전은 계속되었다.
"사실 그리 어렵게 나눌 이야기도 아니지. 고대의 외계문명이, 그리고 끔찍한 괴생물 군단이 활동하기 시작하며 우리 인류를 비롯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세상과도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그놈들은 타협과 협력따윈 모른다. 어느 한쪽이 멸망할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하일은 담담하게 현실을 이야기했다.
한때 지금 이 사태를 자신의 야망을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던 미하일은 물론, 군단을 통제하고 역으로 이용해볼까 고려했던 연맹측도 자신들이 직접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들 역시, 지금 상황이 물고 물리는 삼파전이라는 것을 인지했고 연맹과 연합은 각기 떨어져서 활동하기엔 카사라스나 군단에 비해 작고 약하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시적인 동맹일 뿐이오. 우린 역사를 잊지 않았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과거의 앙금을 풀려면 우선 오늘을 살아남아야지."
결국 연합과 연맹은 그자리에서 손을 잡을 것을 재확인했다.
"서로 힘을 합치기로 결정했지만, 우리는 우선 공격 받고 있는 곳들에 대한 반격을 계속할 것이오."
"지금 상황은 우리도 알고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결정했고."
군단과 카사라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확대되고 있었다.
미하일은 이미 군단의 본거지로 알려진 행성 에덴에 카사라스 함선이 나타나 그곳을 포격했고, 분노한 이브가 모든 함대를 동원해 그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정보까지 입수한 상태였다.
"최선의 방어는 곧 공격. 우리도 놈들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내부의 혼란을 다스린다고 시간이 끌려봤자, 군단의 행성 침식은 멈추지 않을테니까.
차라리 군대를 파견해서 지금 타 행성 방어병력까지 빼서 카사라스와 싸우고 있는 군단을 먼저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자신있소?"
연맹측 대표는 그 계획을 듣고 눈을 꿈벅였다. 아직은 군단과의 제대로된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태생부터 군단과 죽일듯 싸워 온 연합의 저력을 모르고 있었다.
"아직 모르시나본데, 놈들을 상대할 때는 자신이 있고 없고 따위가 중요한게 아니오. 그냥, 그냥 싸우는 것 뿐이지. 설령 죽더라도 그냥. 살육 기계인 그놈들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방심도 없소."
"크음..."
미하일은 연맹 인사들의 무지를 비웃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지겹도록 싸우며 겪어 온 군단과의 전쟁은, 자신들이 월등한게 사실이었으니까.
'믿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잘 알고 있으니까 그대로 꼴아박는 어리석은 짓도 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압도적인 물량을 뿜어내는 군단에 대항해 교환비를 최소화 시키고자 연합의 모든 정수를 조합해 만든 병기를, 이번 전투에 시험할 생각이었다.
"정말 준비가 끝난 것이오?"
"조합식은 완벽하다. 죽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강철로 된 군단이 만들어졌다."
회담을 끝낸 연합은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미하일은 칼타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준비한 그들의 한수는, 말그대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만들어졌으니.
"...분명 좋은 기회를 잡았지. 하지만 과연 이번 기회로 놈들의 숨통을 완전히 끊을 수 있을까."
이미 물은 엎질러 졌지만 그는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겪어봤기에 안다. 군단이 얼마나 끈질기며 강한 이들인지.
이번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우주급 세력을 가진 이들을 단번에 끝장낼 수 있을거라 확신하진 못했다.
'만약 실패한다면. 이 전쟁은 대체 얼마나 더 길어질 것인가. 애초에 끝은 있는가?'
계속해서 드는 불안하고 아찔한 느낌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미 명령은 하달되었고, 또다시 지독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
"휴면 상태로 우주권에 대기하던 놈들의 함선체들이 대량으로 워프. 그덕에 놈들의 공중은 텅텅 비어있다."
워프를 시작한 연합의 함선들이 빠른 속도로 발진하며 접근했다. 목표는 한때 그들의 땅이었던 행성 센젤. 지금은 둥지화 100%로 완전한 군단의 영역이 된 곳이었다.
"우리에겐 카사라스 외계인 놈들처럼 격렬히 저항하는 행성 표면 절반을 단숨에 태워버리는 무기 따위는 없다. 그러니 보다 길고, 질척한 싸움이 될 확률이 크다."
기함에 탑승한 칼타스는 자신이 직접 작전에 참여하고, 지휘까지 맡았다. 특유의 두뇌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연합의 정보를 흡수하듯 받아들인 그의 지휘와 전술은 닳고 닳은 사령관들도 인정하고 한발 물러설 정도였다.
"미리 정한 15개의 지점에 동시 강습을 진행. 해당 지역들 정화를 시작한다. 가장 강력한 화력을 지닌 핵전력은 아끼고 아끼다 중요한 순간에 투하한다."
"이런! 놈들의 방어 체계가 공격을 시도합니다!"
당연히 이곳 센젤의 둥지도 방어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지상에서 쏘아진 수많은 포탄이 대기권을 뚫고 행성 내부로 진입하려는 함대를 향해 빗발쳤다.
"놈들은 현재 함대전력이 부족함을 깨닫고, 대공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할 것이다. 우리는 그 허를 찔러 함대는 미끼로 쓰고 주력을 지상으로 보낸다."
"그, 그렇게 유기적인 전술을 저 괴물들이 시도하겠습니까?"
"한마리 한마리에 집중하면 그럴수도 있지. 하지만 놈들은 덩어리로 봐야한다. 군집으로 봤을때 보여주는 치밀하고 빈틈 없는 움직임은 절대 단순한 괴물들이 아니다."
칼타스는 절대 방심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과할정도로 신중했다.
'분명 있지 않느냐.'
군단의 둥지를 내려다 보는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양산형과 상위종, 특수종을 포함한 지금까지 등장했던 모든 타입의 군단병을 총지휘 하는 진정한 우두머리의 존재를.
이브의 존재에 한발자국 다가선 셈이지만 단지 하이브마인드의 개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
그리고 전의를 다지는건 칼타스를 비롯한 연합만 그런게 아니었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쏟아지는 포격과 강습하는 지상군을 보며 안그래도 열이 끝까지 뻗쳐 있던 이브는 둥지의 생산력을 최대한도로 뿜어냄과 동시에 전 병력을 동원하여 지상에 내려앉는 적들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이제 이놈들 상대하는 것도 지겨워. 그냥 짓밟고 끝내야겠어.'
동시에 이브는 명령어를 이용한 매크로가 아닌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아바타 하나를 더 꺼내들었다.
단지 이 아바타는 그동안 이브가 고집했던 인간형 아바타가 아니었다.
군단의 정수, 세포가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생물이라는 존재가 이룰 수 있는 진정한 진화와 성장의 극의.
번득이는 검은 갑각을 두른 거대한 거신병이 땅을 뚫고 튀어나왔다.
수많은 자원과 유전자 조합 기술을 때려박은 이 아바타는 크기만 거대한 빌딩 사이즈에, 억센 6개의 다리로 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곧추세운 허리와 4개의 팔에는 수송기도 단번에 절단낼 수 있는 칼날 4개가 달려 있었고, 등에 달린 거대한 날개를 펴면 비행도 가능했다.
'죽어버려.'
미친듯이 돌진하던 이브가 휘두른 4개의 칼날을 교차했다.
때려박은 동력기관의 사이즈는 함선체 급이다. 그 정도 출력으로 시전되는 이브만의 무술인 공명법의 힘이 칼날들을 타고 전방에 뿌려졌다.
"으아악!"
"이건 말도..."
그 끝이 땅과 하늘에 닿는 거대한 참격이 연합군을 덮쳤다. 일격에 함대 하나와 수많은 병력들이 갈려나갔다.
어지간한 포격은 맨몸으로도 견디며, 짓밟는 것 만으로 수백을 죽일 수 있는 거신병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젠장! 나는 왜 매번 이딴 곳에 걸리는거냐?!]
그러나 2차로 휘둘러진 그 거대한 검은, 검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누군가에 의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