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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21화 (221/254)

221화-흐름의 변화(10)

"승산이 보이지 않는바, 우리는 새로운 땅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 간다 해서 저 괴물들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강행할텐가?"

"지금 그런게 중요한가?! 다 죽게 생겼는데!"

"당장 문을!"

칼타스의 말에 마족들, 정확히는 그들 뒤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아우성을 쳤다. 단순히 세력기반이나 고향을 잃으니 마니 하는 일 정도가 아니었다.

이미 여러번의 전투에서 연달아 패했다. 군단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사실 소모전은 군단의 주특기였다.

그들에게는 모든걸 다 잃고 재시작 한들, 일단 목숨이라도 건지는게 중요했으니까.

"그렇다면 문을 넘어라. 이 땅은 이제 끝났으니."

한숨을 쉰 칼타스는 마족들에게 후퇴를 허가했다. 당연히 마족들은 모든 병력을 이끌고 허겁지겁 게이트를 넘어 도주하기 시작했다.

연합이 제공한, 이브가 가지고 있는 게이트 기술보다 더 우수한 기술인덕에 방해요소가 산재한 마계의 환경에서도 좌표를 얻는데 성공한 것이다.

총통 미하일이 제공한 땅은 척박한 개척지 중 하나지만 마계에서도 생존해온 이들에게 환경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대는, 역시 가지 않을 것인가?"

"나보다 당신이 더 의외로군. 당신은 남을 줄 알았는데. 역시 목숨이 더 중요한가?"

허겁지겁 대피하는 마족들을 보던 칼타스는 이번에는 라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라몬은 그에게 역으로 질문을 날렸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하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살아서 저 괴물들을 죽이고 싶다. 연합의 힘을 빌려서라도 저 괴물들을 죽일 것이다. 오직 그 생각 뿐이다."

"..."

칼타스는 순순히 인정했다. 전대 마왕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땅을 떠나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 진심을 알아본 라몬은 더 이상 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난 가지 않는다. 이 땅의 마지막이 나의 마지막이며, 나의 투쟁이 끝나는 날이 내가 죽는 순간이니까. 어차피 이미 한번 죽었던 목숨, 이정도면 훌륭하게 불태웠다."

라몬은 떠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말했다. 어떻게든 목숨을 구해야 하는 유닛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저 머저리들에게 이것만은 전해라. 어차피 내 백성이 아니니 신경쓰지 않는다만, 고향마저 버리고 도망간 대가는 반드시 치룰 것이라고."

"마치 내게 하는 말 같군."

"그렇게 들어도 상관 없다."

칼타스를 향해 히죽 웃은 라몬이 다시 한번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키우는 맛이 있다. 마치 그시절의 용사처럼!'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 뿐이었다. 자신의 새로운 대적자.

검은 날개를 가진 인간형 괴물.

그 괴물의 성장 속도는 미쳤다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는 예상치 못한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신체를 강화하고, 경험과 실력 역시 빠르게 쌓아갔다.

과거, 자신과 대등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용사를 보는 것 같은 모습에 그의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이걸로 우리는 벌써 67번째 싸운다. 오늘은 부디 결착을 낼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는 달빛 가득한 밤하늘을 가로지른지 얼마 되지 않아 한무리의 적들과 마주쳤다. 그 선두에 있는건 마치 자신을 찾기라도 한듯 보이는 검은 날개.

"내 말, 못알아듣겠지. 딱히 상관은 없다."

히죽 웃은 그가 검을 뽑아들었다. 강도연 역시, 능숙하게 자신의 몸과 무장을 움직이며 68번째 전투를 준비했다.

"무식하게 달려들던 처음과 비교하면 굉장한 성장이다."

라몬은 그녀의 공격을 피하며 피식 웃었다. 둘은 벌써 수십번 이상 서로 싸웠다.

강도연 역시 전쟁보다 그와의 전투에 더 신경쓸 정도로 과몰입한 상태였다. 가면을 뚫고 나오는 그 진심에 만족한 라몬은 슬슬 전력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패턴도 이미 여러번 겪어 본 강도연은 당황하지 않고 베리어의 출력을 끌어올렸다.

"너도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투쟁의 기쁨. 우리는 싸움을 통해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서로가 충돌할 때마다 일대의 대기를 울리는 거대한 마력이 요동치고 뿜어지는 광선과 참격은 근처의 땅을 터뜨리고 박살내며 지형을 바꿀 정도였다.

그녀가 군단병들의 정찰을 통해, 마족들이 주요 거점을 모두 버리고 어딘가로 떠났다는걸 알아차린게 그때였다.

"머지 않았다. 너와 내가 결착을 지을 때가."

당황한 그녀의 사정을 알기라도 한듯, 라몬의 한마디가 마음을 꿰뚫었다. 이제 마족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아니야.'

"큭..."

강도연은 순간 출력을 가속시켜, 그의 몸을 향해 몸을 발사시켰다.

큰 충격파와 함께 충돌한 두 존재가 한데 엉켜 지상으로 추락했다. 곧 더욱 큰 충격과 함께 땅에 쳐박힌 그 순간에서도, 강도연은 라몬의 목을 조르며 가면 속 붉은 안광을 불태웠다.

"역시, 보통 괴물은 아니었나."

밑에 깔린 라몬은 한쪽 팔로는 자신의 목을 조르는 강도연의 팔을 잡고 나머지 손으로는 반쯤 깨져 드러난 가면 속, 이글거리는 그녀의 눈을 매만졌다.

[싸워. 끝까지]

"드디어 목소리까지 들려주는가."

강도연은 금기를 어기고 자신의 강렬한 의지를 전했고, 히죽 웃은 라몬은 그녀를 힘으로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나는 너희가 이 땅 전부를 먹어치운다 해도 끝까지 싸운다. 그러니 더, 더 성장해 봐. 지금 당장이라도 성장할 수 있다."

곧 주먹을 사용한 육박전이 벌어졌다. 초월적인 강자들의 싸움이라기엔 다소 어색한 모양새였지만 그들은 주먹으로도 땅을 부수고 대기를 찢을 수 있는 이들이었다.

큼직한 주먹이 베리어를 부수고 배에 꽂혔다. 그러나 몸에 두른 갑각이 부숴지고 체액을 흘리면서도 강도연은 계속해서 덤벼들었다.

'이거야.'

그녀는 지속되는 라몬과의 싸움에서 투쟁의 즐거움에 눈떴다. 싸움을 즐기다보면 강해질 기회는 저절로 따라왔다.

그때그때 부족한 점을 피드백 해서 몸을 개조하고, 전투방법을 수정하면서.

이렇게 싸움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록 마음을 짓누르던 압박감도 모조리 날려버릴 수 있었다.

"마음은 완전히 먹은건가?"

라몬은 적당히 물러서던 전과는 달리 오히려 앞으로 다가오며 끝끝내 자신의 몸을 크게 베어내는 날개를 보고 피식 웃었다.

물론 그의 검도 강도연의 한쪽 팔을 베어버렸으나, 그녀는 이제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것 정도는 눈 하나 깜짝 안했다.

서로가 만신창이가 된 그 상태에서, 강도연은 비틀거리는 라몬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었다. 그녀의 뇌파와 연동된 수많은 송곳들이 저 높은 하늘 위에서 검붉게 타오르며 그에게 쇄도했다.

'결착.'

그는 마지막을 직감했다. 그러나 동요하진 않았다. 어차피 이미 알고 있었고 원하던 일이었으며, 무엇보다 더 강한 도전자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는 것이 마계의 룰이었다.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강도연과, 혹은 더 강한 이들과 더 싸우지 못한다는 것 뿐.

곧 라몬이 있던 일대 전체를 폭격하듯 쏟아진 송곳들은, 쇄도함과 동시에 폭발하며 수km에 달하는 일대 전체를 한번에 날려버렸다.

*

"..."

땅이 변해간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떠나기 전, 칼타스는 마계라 불리던 행성의 성질이 바뀌었음을 직감했다.

그것이 이 땅에 걸린 주문이었으니까. 자신이 라몬에게 마왕위를 넘겨주었을 때처럼, 이제 이 버려진 땅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버려진 것도 아니로군. 그 괴물들은 행성의 티끌 하나까지 빨아먹을 테니까."

"오랜만, 아니 처음 뵙겠소."

그때 혀를 차며 게이트를 넘은 칼타스를 맞이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야기는 많이 나누었지만 둘은 사실 서로의 얼굴을 보는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고향땅을 잃은건 안타깝지만, 말했듯 아직 끝난건 아니지. 우리의 계획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맞는 말이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미하일과 칼타스는 본능적으로 서로를 경계했다. 하지만 미하일 쪽이 먼저 경계심을 거두고, 그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칼타스는 게이트를 통한 연합의 지원을 거절했다. 고대부터 걸린 주문덕에 특수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마계라는 땅에서는, 단순히 병력을 쏟아붇는다고 이미 충분한 확장을 마친 적들을 몰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수집한 데이터로 규정한바, 놈들이 한개 행성을 침식하는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침식지 면적은 단 5%. 외부의 지원 없이, 세계수 같이 행성 내부 에너지를 컨트롤 할 방법 없이 놈들을 막으려면 놈들의 둥지가 5% 이내일때 한번에 몰아쳐 방어해야 하오."

"그렇다면 100%는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그걸 위해 준비한게 많지 않나."

미하일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 시대에 한번 구르기 시작한 스노우볼은 끝을 모르고 커졌다. 과거 칼타스가 내렸던 작은 결단 하나로 미하일은 연합의 결속을 더 단단히 만들었고, 그 결속은 군단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더더욱 커질 수 있었다.

"아무리 빠르게 태어나 빠르게 자라는 그놈들도 결국 살아있는 생물. 둥지로부터 양분을 보급 받고 다치면 회복해야 하는 놈들이오. 하지만 현재 우리 연합에는 그를 상회하는 여러 기술들이 있지."

칼타스가 두개골만 남은 아스랄드를 괜히 넘겨준 것이 아니다. 미하일을 비롯한 연합은 군단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군단을 연구하고 창조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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