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흐름의 변화(7)
'그동안 쌓인 데이터로 판단했을때, 마계의 전력은 절대 약하지 않아.'
이브는 마계에 대해서 후하게 평가했다. 적어도 행성 하나의 전력만 봤을때는 지금까지 군단이 침략했던 그 어떤 곳보다 강할지도 모른다고.
나 역시 동의했다. 단신으로 수많은 언데드 군단을 불러 일으키던 놈도 있었고, 플레이어들을 통해 각종 문물을 얻으며 동시에 지구연합군과의 끊이질 않는 전투로 계속해서 경험을 쌓은 마족들은 성장을 지속했다.
'그럼 우리가 질 것 같아?'
'글쎄 난 철저히 습득한 데이터에 입각해서 분석했을뿐, 데이터가 전부가 아니라는건 옛적부터 알고 있었어. 언제나 일치단결하는 우리야 행동과 움직임에 변수가 거의 없지만 저놈들은 다르지.'
다만 놈들을 고평가한 이브도 그 이상의 평가는 내리지 않았다. 그 말대로 서로의 생존을 건 전쟁은 그깟 데이터로 치루는 것이 아니니까.
어떤 변수가 터져나올지 모른다. 상대가 스스로 자멸할 수도 있고, 단결과 시너지로 우리를 이겨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조금의 방심도 없이, 철저하게 찍어 누르자. 다행히 놈들의 상황을 볼때 좋은 쪽으로의 변수가 터질 것 같지는 않네.'
나는 리하르트는 물론 각자 지휘권과 자율권을 가지고 활동할 개체들에게 당부했다.
당장 서로 경쟁하던 유닛들이 뭉쳤다는 점과, 지금까지 보여주던 우왕좌왕으로 놈들의 단결력이 그리 높지 않다는건 확인했으니 우리가 그대로 밀고나가면 변수가 없을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시 놈들에게 아무 생각도 없는건 아니었던 모양이군.'
'...둥지를 직접 타격하려는 건가?'
다만 그런걸 감안하더라도 만만치 않은건 확실했다. 리하르트가 보여준 자료에 정찰병이 관측한 무언가가 보였다.
그들이 가진 게이트 기술을 이용한, 후방지역을 타격하려는 별동대의 존재가. 역시 저놈들이 대놓고 정면에서 싸우려 들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 예상이 맞은 것이다.
'숫자가 적진 않아. 아무렴 대충 보내진 않았겠지.'
'저긴 그럼 내가 가야겠네 뭐.'
지금 당장 기용 가능한 전력을 전방으로 다 보내버린 탓에 후방인 이곳엔 전력이 부족하다. 혹시 몰라서 내 육신을 그냥 여기 둔 것이 행운이었다.
"지금 바로 가지."
나는 곧 육체를 일으켰다. 이브와 다름 없는 군단의 몸. 수련과 노력으로 쌓아야하는 인간의 몸과는 다른 짜릿하고 폭발적인 강인한 힘이 몸에 넘쳐흐른다.
"어쩌면 이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
"추가 무장?"
리하르트가 떠나려는 내게 무언가를 권했다.
가장 값싼 돌격병인 1번대 중형 군단병, 비틀의 몸에 짊어지듯 딸려 온 것은 인간의 형태에 맞춘 몇가지 파츠들이었다.
"너, 나를 시험체로 쓰려는 것 같은데."
"무투기 외골수인 강도연과는 달리 다양한 몸으로 참전한 경험이 있지않나?"
뻔히 드러나는 의도에 내가 헛웃음을 흘렸지만 연구 앞에 상관도 없는 리하르트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그의 말도 사실이었다. 당장 나는 이브가 마련해준 상위종의 몸으로도 전투를 치룬 경험이 있으니까.
지금 이 육체를 추가로 개조한다고 적응 이슈로 전투력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일단 갖고 가지."
결국 가면을 쓴 나는 비틀이 운반하는 이 추가 무장들을 챙겼다.
목적지는 게이트를 통해 감히 내 둥지를 선공하려는 건방진 마족들의 별동대. 그 규모는 수천에 달하니, 이쪽은 그 열배 이상으로 맞이해 주기로 했다.
'병력 구성은 오크와 트롤로 구성된 혼종부대. 놈들의 덩치에 맞게 대형종들을 파견하겠다. 전방의 둥지들에 방어시설들이 없는건 아니니 시간은 충분하지.'
동시에 리하르트는 대기시켜 두었던 병력들을 수비로 돌렸다.
*
"포격...포격이다!"
게이트 마법의 최초 전수자인 코볼트들이 차원문 타입이 아닌 공간도약진 타입으로 전수한 탓에, 도약 거리에도 한계가 있었다.
최대한 잡아 늘린 게이트의 끝사거리에서 튀어나온 오크군은 특유의 피지컬을 바탕으로 정면에 펼쳐진 거대한 둥지를 향해 전력으로 돌격했다.
둥지 내부에 여는게 베스트지만 만약 그랬다면 결국은 접근 전에 군단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막아라!"
그러나 군단은 유전자를 수집하고 육체를 개조하는 것 이상으로 성장한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마도포격은 둥지 내부에 자체적으로 생성한 커다란 탑과 같은 생체 포탑이 날리는 것.
마법사들과의 전쟁으로 마법을 배웠고, 연합군과의 지속된 전투로 여러가지 둥지 방어 시스템을 꾸준하게 발달시켜왔다.
오크군은 짧은 거리를 주파하기 위해 비오듯이 쏟아지는 포탄을 맞아가며 필사적으로 전진했다.
"둥지를 파괴하면...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투구를 눌러 쓴 오크군 지휘관이 이를 갈며 부하들을 독촉했다. 군단의 핵심이 둥지인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다른 건 필요 업히 양분공급의 핵심인 군단의 신목을 파괴하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크으...저기 놈들의 수비 병력입니다."
"예상하지 않았나. 하지만 검은 날개도, 검은 마도사도! 놈들의 주력은 전부 저 앞에 있다! 단숨에 부수고 임무를 완수한다!"
그들은 곧이어 등장하는 둥지 수비 병력에도 당황하지 않고 속도를 더 끌어올렸다. 어차피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오크들보다도 덩치 큰 트롤들이 앞장서기 시작했다. 오크들도 마찬가지고, 트롤들도 전과는 다르게 전신을 강철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다.
플레이어와의 접촉을 바탕으로 지성과 지식을 얻게 된 이후 그들이 일개 짐승무리에서 이 마계의 주축 중 하나로 급격히 성장한 증거였다.
지금까지 그들에게 신세계를 보여 준 이 상호작용을, 오크들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
"모두 날 따르라. 반드시 이 끔찍한 괴물 놈들의 둥지를 부순다!"
오크 대장은 계속해서 달림과 동시에 들고 있던 창을 들어, 달려가던 그 힘 그대로 쏘아냈다.
그와 계약한 바람의 정령들이 달려들어 그 위력을 배 이상으로 강화한 투창이 푸른색 마력을 머금고는 소리를 찢으며 둥지 한복판을 향해 날아갔다.
거리가 살짝 멀어서 파괴력이 떨이졌을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대로 터지면 근방 수십미터는 뒤집어 버릴 수도 있는 위력이었다.
"...저놈은 뭐지."
그러나 그 위력적인 기선제압은, 등장한 단 하나의 개체에 막혀버렸다.
검은 가면을 쓴 누군가가 우뚝 서서 그가 쏘아낸 창을 거대한 충격파를 감수하고 잡아챘다. 그리고 그 창을 단숨에 부러뜨렸다.
오크 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힘의 차이가 명확했다.
'어쨌든 이 기회에 시험해 보지.'
창을 잡고 버리자마자, 신우는 전투 준비를 서둘렀다. 이미 달려오는 놈들이 근방까지 몰려 온 가운데, 그는 자신을 따르던 비틀이 운반한 자신의 파츠들을 시험 삼아 몸에 장착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트롤과 오크들의 전열이 마주 달린 군단의 선봉대와 큰 충격을 터트리며 부딪혔다. 그들의 기세가 나쁘지 않아 군단병들이 한순간 뒤로 밀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번 찰나의 시간동안 신우는 모든 장비의 착용을 맞췄다. 전혀 모르던 신체 기관도 마치 원래 알던 것 처럼 단숨에 적응시키는 군단 세포의 능력에 그는 이제 4개로 늘어난 팔과 길게 늘어진 꼬리를 꿈틀거렸다.
흉갑을 비롯 전체적인 갑각의 방어력을 끌어올려 마치 중장갑 외골격을 겉에 하나 더 입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이것은 오직 근접 난투를 상정하고 개발 된 새로운 육체. 그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앞으로 나섰다.
"으아아!"
'저놈이 대장인가.'
곧 완전히 무장을 마쳤을 때. 그는 땅을 박차고는 고함을 지르며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오크 두목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자기 자신을 향하는 그의 눈길과 시선을 알았는지 두목 역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어딜 덤비느...큭!"
호통 친 오크의 도끼가 내리쳐지는 순간. 그는 4개의 팔 모두를 사용해 그 묵직한 일격을 받아내었다.
하지만 단순히 막는데서 끝난게 아니다. 오크 대장은 그틈을 노리고 가까스로 자신의 턱을 노린 꼬리를 피하는데 성공했다.
'진작에 이렇게 나왔어야지.'
당황한 오크대장을 비웃은 그가 꼬리를 회수하더니 턴을 넘겨받았다는 듯 4개의 팔을 휘둘렀다.
그리고 단순히 팔이 늘어나는게 추가무장의 전부가 아니었다.
몸에 추가로 장착한 모든 파츠에 최소 1개씩 붙어 있는 동력기관이 화력을 보조했다. 그 여파로 단숨에 불타오르는 마력이 거센 참격의 형태로 뿜어져 나갔다.
땅도 바람도 가르는 그 일격이 무려 4방향.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오크 대장은 한껏 방어력을 끌어올렸으나 허망하다는 얼굴로 자신의 몸이 토막나 땅에 나뒹구는 장면까지 볼 수밖에 없었다.
'이거 이 추가 무장이 없었다면 저 오크는 살짝 힘들었을텐데.'
구심점이 사라진 이상 이 별동대가 임무를 성공할 가능성은 현격히 적었다. 신우는 더 많은 숫자의 군단병에 서서히 밀려서 몰아세워지기 시작한 적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거대한 트롤도 그에 맞먹는 덩치를 지닌 대형종 크롤러의 주먹에 맞아 피를 뿌리며 쓰러진다.
비록 서로 은밀하게 벌인 가벼운 국지전이지만 적들의 노림수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는데 성공했고, 리하르트의 새로운 시스템이 가진 효용성까지 확인한 전투였다.
"상위종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만 줬다던 나에 비하면, 자기 전용 무장까지 만든 레이나는 얼마나 강한건데."
'상상도 못할텐데. 거기 쓰인 에너지가 군단병 수천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했다.'
"하."
직접 나서진 않고 병사들을 이용해 전장을 마무리 지은 신우는 리하르트의 대답에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