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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17화 (217/254)

217화-흐름의 변화(6)

단결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당연히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허공에서 현 마왕 라몬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지상에서 버텨야 할 마족들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도망쳐라. 세력을 최대한 온존해라]

[이 멍청한 놈들이 기어코...]

애초에 그들의 의지는 온전히 그들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유닛들의 생존에 자기 목숨이 걸려있는 플레이어들은 서둘러 자기 유닛들을 도주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목숨 바쳐 앞에 서 적들을 막아줄 이들이 있을리가 없다. 진형은 단숨에 와해되고, 군단병들은 그렇게 조금의 방해 없이 요새의 성벽을 타넘고 마족들을 학살했다.

[제길! 애초에 저 괴물들에 맞서는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당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플레이어 중 하나가 분통을 터뜨리며 씩씩거렸다. 마계 연합은 결국 적의 적은 동지라는 명분으로 뭉친 근본적인 문제로 한계가 명확했다.

군단이 지구연합군과 마계의 싸움에 끼어들어 힘을 키우고 지구연합군이 발을 빼기 시작하자 결코 하나의 큰 덩어리는 될 수 없었던 마계 연합은 치밀한 연계가 특장점인, 덩어리 그 자체인 군단에게 체급에서부터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이시여...! 그렇다면 저희는 대체 어찌 해야 합니까!"

도주중이던 웨어울프 대족장이 플레이어를 부르짖으며 소리쳤다. 한때 플레이어와 함께 마계에서 손꼽힐 강자가 될 수 있을거라 여겼던 꿈 같은 상황도 잠시, 이제 그들은 급격하게 쪼그라든 무리를 이끌고 살아남을 걱정을 해야 했다.

[너희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내가 그 꼴을 보고 있을거 같나! 최대한 많이 살려서 마계의 중앙, 마왕성으로 가라! 그곳에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플레이어는 거칠게 신경질을 내면서도 자신의 유닛들을 잘 챙겼다. 유닛들이 죽으면 자신도 죽으니까.

"멍청한 놈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오히려 잘 된거지. 우리의 싸움을 이대로 끝내기에는 너도 참 아쉽지 않느냐."

라몬은 버티는 것도 못하고 단숨에 와해되는 지상군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정작 그를 노려보는 강도연은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군. 어차피 너희가 진군을 멈추지 않는 이상 또 만나게 될 테니까."

지상의 균형이 붕괴하자 라몬은 곧바로 싸움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레이나가 그 뒤통수에도 포격을 날리려 했지만, 이번에는 강도연이 거부했다.

'저놈이 하는 말. 대충 무슨 뜻인지 알 거 같아.'

강도연도 라몬의 의중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발을 피하지 않았다. 오늘은 비록 레이나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싸웠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분명히 지금의 자신보다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그와의 반복되는 전투는 그녀의 경험에 큰 영향을 주었고 동시에 승부욕을 자극했다.

'내가 이겨. 그리고 내가 벨거야.'

강도연의 가슴이 쿵쿵거렸다. 다른건 몰라도, 그만큼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이기고 싶었다.

'일기토는 그렇다 치고, 어쨌든 상당히 수월하게 승리했다. 놈들의 움직임이 좀 이상하긴 해. 저항 의사는 거의 없이 그저 살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유닛들이니까, 당연하겠죠.'

리하르트의 말에 현역 플레이어 출신인 오윤아가 냉소했다. 단결하지 못하고 끝까지 서로를 의심하는 듯한 마족들의 행보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지만 같은 플레이어로서는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결국 또 달라진 건 없었군. 둥지는 계속해서 넓어지고, 병력은 진격하는 수밖에. 내 예측이 맞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이 땅 전체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둥지의 면적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강해지는 군단의 특성과 좀처럼 뭉치지 못하는 마족들의 성질이 맞물렸다. 군단의 입장에서는 굳이 진격을 늦출 이유가 없었으니, 계속해서 앞으로 진격할 뿐이었다.

*

"...놈들이 또다시 움직인다. 놈들은 쉬지 않는다. 만족할줄도 모른다. 놈들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탐욕 그 자체다."

"밑에 것들이 아주 생 난리를 치고 있더군. 내 생각에, 당신은 그에 대한 대비도 해놨을 것 같은데."

"너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가?"

어둑한 밖을 내려다 보던 칼타스는 라몬의 말에 역으로 질문을 날렸다. 밖은 지금 한창 소란스러웠다. 군단의 점령지에서 밀려나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마족들이 지금 당장 피해야 한다며 아우성이었다.

"항전하지 못하고, 이 마계를 통째로 저 괴물들에게 넘겨 줄 생각인가? 너는 이 땅의 주인이다."

"이제 의미 없지. 저놈들 말마따나, 내게 남은 것도 없다. 내게 충성하지 않고 자기들 살 궁리나 하는 놈들은 나도 필요 없으니까. 결국 어차피 우리는 그날 용사의 자폭으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오크가 익혔다는 이세계의 정령술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깨어날 확률은 없었을테니까."

라몬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히려 후련하나는 듯 답했다. 맞는 말이라고 판단해서 칼타스는 반박하지 않았다.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고...나는 마지막 항전을 결정했다. 그러나, 끝까지 싸우다 죽는다는 멍청한 선택도 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가능성이 없다면 곧바로 후퇴한다. 다른 녀석들에게도 그렇게 통보할 것이다."

"무슨 방법이 있나?"

"연합의 총통에게 우리가 피난할 수 있는 땅을 빌려달라 했다. 그 대가로, 나는 물론 마족 전체가 연합에 속해 저 괴물들과 또 다른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징글징글하군."

라몬이 탄식했다. 칼타스는 별다른 반응 없이, 자신의 계획을 설파하기 위해 현존하는 모든 마족 세력의 대표들을 긁어모았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이 유닛이었다.

"이건 요청이 아닌 통보다. 우리는 지금 남부 전체를 갉아먹고 이곳으로 올라오고 있는 괴물군단과 마지막 총력전에 들어간다. 거부권은 없다. 이 땅을 살릴 마지막 기회다."

"우, 우린 아직 인간들과 싸우고 있다! 불가하다!"

"그딴건 없다. 어차피 인간놈들이 자기네 주둔지를 만들고 병력을 배치하는데는 한세월이 걸린다. 하지만 저 괴물들이 땅을 파먹고 모든 생물을 절멸시키는건 한순간일 뿐이다."

당연히 어떻게든 손해보지 않으려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각을 재는 이들도 있었다. 칼타스는 그런 이들에게는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우, 우리 플레이어께서 동의할 수 없다 하시오."

"그렇다면, 너희는 굳이 여기 있을 필요가 없는데. 내가 플레이어에게 전하니, 네 유닛들이 아군의 손에 전멸당해 죽고싶은게 아니라면 지금은 주제를 좀 파악하라고 하고 싶군."

끝까지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칼타스는 이제 중재자의 포지션은 가져다 버렸다.

총통 미하일과의 은밀한 협상은 극비. 즉 다른 이들도 지금이 마지막 기회임은 알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전대 마왕이자 마족들을 이끄는 입장에서 협박에 가까운 말로 반발하는 이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경고하는데 각자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놈들은 그만큼 많고, 강하고, 빠르게 성장하니까."

결국 결정이 났다. 마족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결하게 되었다.

"마족들의 움직임이 급변했다."

"결국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결단을 내린건가."

허겁지겁 뭉치는 갑작스러운 마족들의 움직임은 전역에 정찰병을 뿌려 놓은 군단의 시야에도 관측되었다.

리하르트는 그 행동들을 흥미롭게 관찰하며, 미리 세워 둔 여러가지 가정들을 폐기하고 수정했다.

'내 제안은, 그냥 이대로 한번 들이 받아 보자는 것이다. 아군 선발대의 규모는 천만단위. 하지만 적들의 규모는 소환물을 다 합쳐도 백만을 겨우 넘긴다.'

'놈들은 우리에 대해 잘 알고 있어. 과연 단순히 싸워줄까 싶지만, 시험해 보는건 나쁘지 않지. 선발대의 돌격을 허락할게.'

하이브마인드 신우가 리하르트의 작전을 허락했다. 그리고 그 즉시 거대한 덩어리로 뭉쳐있던 대군세가 목적지를 향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뭉치긴 했지만 과연 단단할까? 내가 생각하기엔 아니다. 급히 뭉친 놈들의 결속은 그리 끈끈하지 않고, 그 결속을 망칠 수 있는건 압도적인 힘과 공포다.'

리하르트는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대군세를 대놓고 천천히 행군시키면서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모든 것을 짓밟고 부쉈다.

간간히 적진에서 강력한 마도포격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쪽에는 그에 상응하는 포격을 날릴 수도 있는 강력한 대공방어체계도 이미 갖추고 있었다.

'지구연합군도 이루지 못한, 마계의 토벌.'

신우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앞두고 있는 이 전투는 남매에게 결코 가볍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원수를 갚는 것이며, 지구연합군이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는 것이다.

동시에 하이브마인드로서는 그 불완전함과 부족한 경험에도 끝내 이브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한 세상을 정복하는데 성공하는 것이기도 했다.

[과연 업적이라고 할만 하다. 이것이...우리의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시스템도 인정했다. 지금 이 순간이 시스템에 기록되는 것을 보며 그는 군단에 최종 돌격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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