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흐름의 변화(2)
"당장 지금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할건데,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내가 막을거야."
"...그렇게 해."
얼굴을 마주한 강도연은 내가 말을 전하자마자 각오가 느껴지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의 정리는 끝났어. 그때는 살짝 놀라서 그런 것 뿐이야. 그러니까 이제 절대 망설이지 않아."
"알아."
막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우리 모두에게 선택지는 없다. 끝까지 들이받을 뿐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움직이실 생각이신지. 받은 정보에 따르면, 이곳도 굉장히 복잡한 상황이던데."
"...이미 둥지의 확장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으니 슬슬 정면으로 치고 나가야지."
나는 레이나의 말에 미리 계획해 두었던 조금 과격한 계획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지금까지는, 예상대로 지구연합군은 우리에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리가 모두를 공격하면서도 해당 지역 마물들을 더 많이 죽이고 몰아내니, 그들에겐 이 마계에 주둔할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우리가 굳이 주둔지를 공격해서 땅을 빼앗더라도 그들은 퇴각해서 다시 주둔지를 되찾기 위해 돌아오지는 않았다.
"비록 쫓겨나는 모양새지만 어쨌든 마물들이 모두 죽는다면 지구인들이 굳이 게이트를 열고 다시 돌아와서 굳이 우리와 싸울리는 없어.
설령 전장에 우리가 갑자기 난입한다 해도 그렇게 판단하겠지. 알아서 물러날 가능성이 커. 서로 싸우느라 시간은 잘 끌어줬으니 이젠 본격적으로 이 땅의 주인들을 몰아낸다."
나는 머릿속에 펼쳐진 지도를 응시했다. 목적지는 마계의 중앙부. 그곳에 자리한 마계연합의 본진.
내가 가장 까다로운 적으로 여기는 현지의 고위마족들이 본거지로 삼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유닛들은 그 무엇보다 생존을 우선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유닛이 아닌 현지인들은 어떨까. 과연 끝까지 이 땅에 남아 싸우려 할까."
이제 슬슬 이 기나긴 악연을 끝내고 이곳에서도 끝을 보고 싶었다. 일단은 이곳을 안정시키고 나서야 이브가 신경을 쏟고 있는 우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으니까.
"전부 움직이자. 전방위적 총공세다."
나는 하이브마인드로서 군단에 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힘을 비축하며 숫자를 늘려나간 어마무시한 규모의 군단병들이 둥지에서 깨어나 일제히 북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봐."
강도연이 가면을 쓰더니 단번에 날아올랐다. 레이나 역시 몸을 띄워, 부유체인 서플라이 위에 올라탔다.
"가치를 잃고, 한계에 부딪힌 서브마인드를 다시 거두어주신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너무 신경쓰진 마.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만 다를 뿐, 나도 이브와 같은 것 뿐이니까."
아직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던 레이나는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극복, 성장, 진화. 그것들이 내 휘하에 있는 서브마인드들과 상위종들의 기본적인 상징들이었다.
이브의 군단과는 다르게 전원 자신만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아닌 그들의 가능성을 믿었다.
"마치 파도와 같이 넓게 펼쳐진 군단의 병력이 황무지를 가로지른다. 가장 먼저 이 파도에 휩쓸리는 놈들은, 너희가 마두귀라고 부르는 마물들이다."
나는 리하르트의 곁에서 지금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들을 보고 판단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적들이 당황하는게 보였다. 소의 머리를 가진 마물 우두귀와는 달리 말의 머리를 가진 마물 마두귀.
부락단위로 모여 사는 놈들은 나름 규모 있는 세력이지만 조금의 틈도 없이 몰아치는 군단병들이 놈들을 그대로 쓸어버렸다.
거기서 나는 머릿속에 있는 지도정보를 대조해가며 더 넓게 바라보았다.
이대로 가면 군단병들은 2개의 연합군 주둔지와 3개의 마족 세력을 쓸어버리게 된다.
"결국 마물들은 끝까지 결집하지 않는군."
나는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무참하게 쓸려나가는 적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조금 의아한 부분들도 있었다. 가령 그들이 왜 하나로 뭉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하긴, 그들은 절대 뭉치지 않을 이들이지."
게다가 다차원연합이라는 숨구멍겸 비상구도 있으니 이미 유닛으로서 많은 충돌을 일으킨 마물들끼리의 단결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놈이 나타났다."
"...드디어. 어디지?"
그러던 와중,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가 내심 기다리고 있던 유독 강력한 적에 대한 소식이었다.
*
"급, 급보입니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서 지원을 보내지 않는다면 위험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소식을 들고 온 전령의 말에, 칼타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곁에 그 혼자가 아니었다.
"느낄 수 있다. 지금 무언가 거대한 것이 이 마계를 갉아먹고 있다."
"그러니 그걸 막으라고 한 것이다 라몬."
칼타스는 라몬이라고 부른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답해주었다.
마왕은 마계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주인. 역시 현직 마왕은 전대 마왕인 칼타스보다도 마계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카테고리 Z, 그 괴물들의 짓이다. 놈들은 행성을 통째로 갉아먹어 자신들의 힘으로 바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손 놀고 있을 수 없는데."
그가 칼타스를 재촉했다. 칼타스는 순순히 좌표와 적들의 규모를 알려주었다. 지금 적은 엄청난 양의 병력으로 한번에 몰아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은 인간 놈들도, 유닛 놈들도 상대를 신경쓰느라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어차피 상관 없지. 진정한 적이 어느쪽인지 그놈들도 알게 될테니까. 너는 일단 가서 가장 강한 상대를 막아라."
"가장 강한 상대."
"연합에서 놈들을 보다 자세히 구분한 것에 따르면 특수종 코드 001번. 이명은 검은 날개."
칼타스가 수정구에 모습을 비춰주었다. 그곳에 보이고 있는 존재는 라몬, 그도 이미 한번 봤었던 존재였다.
단지 그때는 직접 싸워보기도 전에 상황이 끝나버려서 그렇지.
"저것에는 흥미가 가는군. 좋다. 한번 가보지."
라몬이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칼타스는 물끄러미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현 마왕 라몬. 젊고 그 누구보다 강한 저 마족의 오만함과 호전성은 칼타스도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그래서 믿을 수 없다."
[...어, 지금 내게 말한 것인가?]
"저 외계 괴물 군단이 가진 힘. 라몬이 느끼기엔 굉장히 매력적인 힘일 것이다. 그는 타고나길 그런 존재니까. 가차 없이 파괴해 버릴 수도 있지만 자신의 흥미를 끈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이야길 왜 내게?]
옆에 조용히 놓여져 있던 아스랄드의 해골이 당황해서 중얼거렸지만, 칼타스는 이미 듣고있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세상을 먹어치운 저 괴물들과 서로의 생사를 결고 제대로 맞서려면 보다 확실하고, 강력한 방법이 필요하다."
칼타스는 곧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방금 전 앉은 자리에서 도로 천천히 일어났다.
'보다 즐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칼타스가 다른 고민에 빠진 사이.
마왕 라몬은 오직 한가지에 집중하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봉인에서 풀린 이후 간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동안 그가 상대했던 지구인들, 혹은 에리시움의 성기사들은 그다지 흥미를 끄는 적들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등판하자마자, 오크군을 몰아붙이던 이들은 단숨에 몰살당했다.
'확실하다. 더 강하다.'
그는 그때 상대했던 성기사나 지구의 헌터들보다 지금 만나러 가는 존재가 훨씬 더 강하다고 판단했다. 마계의 모두를 지휘하고 지배해야 하는 마왕답지 않게, 늘 피튀기는 투쟁을 좋아하다 못해 진리로 여기는 그의 성격상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너희들은 저리 꺼져라!"
그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자신에게 덤벼드는 빼곡한 군단의 비행종들을 향해 강력한 마력을 폭사했다.
스팅레이등 중형 이상의 비행종들 모두 어지간한 이륜차나 자동차 사이즈지만, 일격에 수십 수백이 터지고 베여 땅으로 떨어져내렸다.
군단병들이 하늘만큼이나 빼곡한 지상에서는 공격당한 마두귀들이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라몬의 안중에는, 더 이상 자신의 백성도 아니게 된 허접한 마물들의 목숨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다시 만났군. 그 눈, 그 결의. 너도 나와의 싸움을 기다리고 있었나."
그러다가 허공에 멈춰 선 그는 전방을 보며 히죽 웃었다. 어느새 비행종들이 거리를 두며 물러나고, 자리에는 4장의 날개를 펼친 존재가 가면 속에서 안광을 빛내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놈을 잡고, 나는 증명해낸다.'
'감정 없는 벌레라고? 헛소리. 짓밟을 가치가 있는 투사다.'
한순간 마주친 눈에서 서로의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그 순간, 강도연도 라몬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힘을 폭사하며 정면으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