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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12화 (212/254)

212화-흐름의 변화(1)

"어쨌든 일이 더 커진거잖아."

"시작은 그놈들이 먼저 끊었어. 이미 모두가 달리기 시작했고, 결국 누가 먼저 속도를 더 올릴 수 있느냐에 대한 차이지."

가까스로 난 여유시간. 휴식을 취하던 나는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브의 새로운 침략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곧 이곳에도 소식이 들려 올 것이다.

맞은편에 앉은 이브는 늘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대공방어를 위해 고민을 많이 했거든. 이번에 적용해보려고."

"...확실히 거저먹는 느낌이 있긴 하네."

이브는 이미 점령지를 어떻게 점령하고 관리할지에 대한 계획도 다 세워 둔 상태였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행성의 방어 시설이 이미 카사라스와의 전쟁으로 박살난 상태에서 점령군인 카사라스 조차 군단병들과 제대로 된 싸움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녀석들...경험이 없어보이는데 그건 내 착각인가?"

나는 그들의 움직임에서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화력도 기술도 철저히 신분과 직책이 구분되어 있는 개개인의 강함과 조직력도 모든면이 연맹의 인류에 비해 우위이면서 정작 우리와 싸울때는 아무리 정보가 부족하다 한들 그 움직임이 둔했다.

군단이 워낙 특이한 존재라 첫 전투에서 상대가 당황하는 경우야 이제 지겹게 봐왔지만 설마 저들마저 그럴줄은 몰랐다.

"착각이 아니야."

"내가 보기에 진짜 못싸우는 것 같아. 역시 정보 부족 때문인가?"

"그것도 있겠지만, 저정도 수준의 적들에게 그건 별로 의미 없을걸. 어쩌면 단순하게 우리 눈이 너무 올라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특히 다차원 연합군 때문에."

이브는 코웃음을 쳤다. 나는 설명을 듣고서야 무슨 소리인지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군단을 상대로 제대로 된 대규모 전쟁을 벌이던건 연맹의 일부에서 떨어져나간 반군들과 그들과 연합한 일부 세상 뿐이었다.

데이터를 쌓고 충분한 저항 의식을 키운 그들은 이제 군단을 상대하는데 도가 텄다. 우리를 상대로 잘 싸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 게임 시스템에 한발 걸치고 있던 저 시퍼런 외계인들도 우리 존재를 진지하게 인식하고 대응하겠지. 전쟁은 지금보다 더 격화될거야. 그러니 너도 어서 마무리하는게 좋을걸."

"마무리 하라고?"

"마계에서 키우는 네 군단. 아직 덜 자랐어?"

"아아."

나는 작게 탄식했다. 그동안 눈앞의 일들에 집중하느라 잠시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많이 부족해. 하지만 끝을 봐야지."

나는 화면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마계라고 부르는 척박한 행성, 어느새 굉장히 넓어진 군단의 둥지는 흡수한 행성 에너지를 이용해 계속해서 군단병들을 생산하며 그 세력을 늘려나가고 있었다.

일단은 저 땅을 온전히 먹는게 내 첫번째 목표였다. 이브가 차지연을 서브마인드로 만들어 과제를 하나 해결한 것 처럼, 이제 슬슬 벌려놓은 일들을 하나하나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 육체가 움직이는건 오랜만이군. 그곳 일은 잘 끝난건가?"

"갑작스레 생긴 변수로 인해 지금 새롭게 작전을 짜는 사이, 틈이 생겼으니까."

그래서 나는 여유가 생겼을 때 아예 의식을 통째로 이곳으로 옮겼다. 가면을 벗고 내 육체가 들어있던 둥지 점막을 찢고 나오니 거대한 뇌에 자신의 뇌를 연결하고 있던 리하르트가 히죽거렸다.

"1차 목표치는 금방 달성했지만 그 이후로는 속도를 조금 줄였다. 지구연합군도, 마계의 마족들도 이제 우리를 경계한다. 우리가 그 어느쪽도 가리지 않고 공격할 수 있다는걸 알게 되었으니까."

"나쁘지 않군."

사실상 이 지역의 두뇌 역할을 하고 있는 리하르트는 내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보고했다. 이미 주기적으로 들은 내용이긴 하지만, 까먹은것도 있었으니.

"예상치 못한 외계문명까지 등장하고 이브가 그놈들을 선공하기까지 했지. 흐름이 갈수록 격해지는 가운데, 우리도 언제까지 싸우고만 있을 수는 없어. 하루빨리 힘을 늘려야 해."

"그렇다면 그동안 고의적으로 자제하고 있던 '확장'을 다시 시작하겠다."

"그렇게 해."

리하르트는 기다렸다는 듯 준비한 작전계획을 실행했다. 애초에 그가 미리 짜두었다는 계획만 수십가지가 넘어갔다.

"미리 세운 계획대로, 지구연합군의 주둔지를 철거하고 지역을 점거한 마족들을 몰살한다."

"착실히 진행되는것 같네. 지구와 마계의 단절."

우리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짜로 적인줄 아는 지구 세력을 이 땅에서 축출하는 것이다.

어차피 지구연합군은 마족들과 싸우기 위해 이곳으로 넘어 온 것. 마족들과 싸울 이유가 없다면 이곳으로 오지도 않을테니, 나는 하루빨리 그들이 우리 스탠스를 알아주길 바랬다.

"다만 최근 벌어진 몇몇 사건들로 인해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변수? 그게 뭐지?"

나는 변수라는 단어에 조금 민감하게 반응했다.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와 이브의 목숨을 노리는 날카로운 비수이기도 한 단어였으니까.

"내 계산과는 달리, 상위종 이상의 개체에 대한 중요성이 급격히 상승했다."

"...상위종의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갑자기? 상위종 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군세로 찍어누른다는게 우리 전략 아니었나?"

"내가 저장한 영상을 하나 보여주지. 그리 중요한 영상은 아니다. 우리와는 관련 없는 영상이니까."

리하르트가 군체의식을 통해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기억의 일부로, 시선을 보아하니 정찰용으로 풀어놓은 비행종의 시선이 분명했다.

그 시야속에서 두 집단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에리시움의 성기사들이다. 북미지역의 지구연합군인가?"

나는 그들 중 한쪽 진영을 알아보았다. 전방에서 번쩍이는 은갑을 입고 황금색 빛이 타오르는 검을 휘두르고 있는 기사는 성녀 이자벨과 같은 출신인 라텔교의 성기사들.

지구에 오게 된 또다른 세상의 주민들이자 유닛이다. 나 역시 한때 그들과 같이 싸운 적도 있었다.

"그 상대는 평범한 오크군 같은데."

반대편에서 그들과 싸우고 있는건 무장한 오크들이었다. 마계 내부에서도 상당히 강성한 종족이 된 오크들은 가장 경계해야 할 놈들 중 하나였다.

"별일 없잖아."

"오크들이 밀리기 시작하지. 그때 변수가 나타난다."

리하르트는 이 기억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머지않아, 지구연합군의 공중지원과 포격지원이 오크들의 방어를 뚫고 먹히기 시작하며 성기사들이 앞으로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놈은."

그리고 그 순간 놈이 나타났다. 은갑을 입은 보라색 피부에, 피막에 덮인 거대한 날개에, 큼직한 뿔까지. 분명 한번 봤던 녀석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척살권을 쓰게 만든 그 녀석.

"여느 마족들과 그 강함의 궤가 다른 녀석이다."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땅에 내려앉은 놈은 영상 속에서, 성기사들을 상대로 단신으로 무쌍을 찍기 시작했다.

전멸이다. 마지막 장면은 그곳에서 몰아닥친 흙폭풍이 시야를 잔뜩 가리면서 끝. 나는 왜 리하르트가 상위종을 강조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양산형 군단병들의 위력을 강조하긴 했지만 어쨌든 중요한건 균형이다. 단신으로 고기동의 게릴라를 펼치며 그 화력도 어지간한 함선급인 존재들이 판치는 이상 균형을 잃으면 밀린다."

"그건 나도 동의해."

내 생각이 깊어졌다. 지금 우리 진영에서 저놈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몇 없다. 상위종 수준이 아니라 더 강한 이들이 나서야 했다.

하지만...나는 동생이 저놈을 상대로 우위를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저런 놈들이 더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그애는 지금 어디 있지?"

결국 나는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버려졌다고 생각하는거에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죠."

신우가 이곳에 도착한 직후. 강도연은 레이나와 이야기 하고 있었다. 최근 이곳에 오게 된 그녀는 어딘가 공허한 느낌이었고, 강도연은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때라니요?"

"한계와 성장에 대해서 진지하게 부딪혀야 하는 때죠. 저는, 일개 연구마법사에 불과했습니다. 재능도 출신도 변변찮아 변두리를 전전하던 사람이었죠. 그런 사람에게 기회를 주셨으나 저는 그 이상의 성장으로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레이나는 조금 울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도연 역시 얼굴이 굳었다. 성장, 그리고 한계. 그것들에 대해서는 자기자신도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강도연이 군단에 합류했을 때와 지금의 군단은 하늘과 땅차이였다. 그만큼 성장이라는 단어를 생물로 옮겨놓은듯한 이브의 성장은 가팔랐다.

물론 강도연도 강해지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계속해서 넓어지고 변화하는 세상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금은 미궁에서 아등바등 기어올라가던 때와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

"군단병들의 개량과 개조는 이미 한계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거기 맞춰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할 수 있어요."

레이나의 말에 강도연은 이를 악물었다. 스스로 체감하고 있는 만큼, 본인도 성장에 대해 여전히 갈증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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