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08화 (208/254)

208화-검은 번개(2)

"오오!"

"헌터들이 오셨다! 이제 살았다!"

적들의 접근을 힘겹게 방어하고 있던 전장에 우리가 뛰어들었다. 고작 두명으로 어떻게 전황을 바꾸느냐 하겠지만 실제로 그게 가능한게 최근 급변한 전장의 흐름이었다.

이브는 성격답게 자신을 보며 열광하는 이들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달려들던 적 전사의 몸을 검으로 베었다.

나도 놈들 중 하나를 맡아서 싸우며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차지연의 위치를 찾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늘 푸른 번개를 두르고 있었으니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심판의 벼락. 그 강력함,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분명 사람들을 결집시킬만한 힘이 있었다.

"지, 지금 기사로 보이는 놈 두마리가 차지연씨를 저격하기 위해 합동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폭음을 뚫고 통신으로 전해져 온 다급한 소리가 명분이 되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놈들을 다 처리한 나는 땅을 박차고 차지연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

'야! 넌 왜 가는거야?! 차지연은 내거라니까?!'

'그래. 나도 알아.'

당연히 이브도 같이 뛰었다. 이브는 기겁을 하며 내게 왜 차지연을 탐내냐며 소리질렀다.

'난 그냥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고, 그녀를 달랠 생각이야. 너한텐 오히려 좋은 일이지. 나 역시 그녀를 설득해서 군단에 합류하게 만들거니까.'

'네, 네가? 왜?'

'...그래도 인연이니까.'

이브의 반응에 코웃음이 나왔다. 역시 아직도 우리 사이를 의심을 하고 있는건지 무슨 수를 써서든 내가 그녀와 엮이는걸 막고 싶은 모양이었다.

'의심이 아니라고. 너희 둘다 서로 가까이 있으면, 특히 차지연은 육체의 미묘한 호르몬 수치까지 다 변한단 말이야! 마, 마치 교미 직전의 암수마냥!'

'정말 중대한 오해야.'

하지만 이브는 날 막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함께 차지연이 싸우고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놈들의 포격이 거셉니다. 지금 당장의 화력으로는 대응하는게 한계라, 놈들의 지상군을 전부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막을 수 있으니 걱정 마시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건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전방의 하늘을 바라보니, 연맹의 함대와 맞서고 있는 거대하고 독특한 함선에서 수많은 함재기가 튀어나와 연맹의 공군과 전투를 벌이고, 강습한 지상군은 우직하게 이곳으로 포격을 날리며 전진하고 있었다.

"대체 뭘 어쩔 생각인데?"

이브가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에선 허공에 몸을 띄운 차지연이, 전격을 뿜어내며 적들의 지상군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그녀와 대화할 시간이 필요해."

"그럴거면 지금 이 상황부터 넘겨야 하는데."

이브의 헛웃음에 나도 전방을 바라보았다. 시도때도 없이 터지는 폭발과 총성. 바닥에 즐비한건 손상된 장비와 양측의 시신뿐이었다.

게다가 아직도 적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언젠가는 충돌할 적들에 대해 미리 붙어 보고 분석한다는 핑계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 우리 둘다 지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지속된 전쟁으로 인한 피로감에, 이브는 더 이상 얻을게 없는 전투로 인한 비효율에.

"어쩔 수 없잖아. 가서 싸워야지."

"하."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 이런 활동들이 더 필요하다.

차지연의 플레이어가 기획하고 있는 얄팍한 기만전술.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렇게 직접 몸으로 구르며 하고 있었다. 결국 그놈도 우리에게 뒤통수 한번 거하게 맞을 것이다.

"일단 차지연부터 지켜. 애초에 저놈들에게 당할리도 없겠지만."

우리는 동시에 땅을 박찼다. 뭘 모르는 남들이 보기엔 우리가 스스럼 없이 치열한 전장에 뛰어드는 영웅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 각자의 음흉한 꿍꿍이가 있었다.

*

'점점 돌아온다.'

문득 정신을 차린 그녀가 눈을 번쩍떴다. 정신을 차린 곳은 전장 한가운데. 영혼공진의 효과가 다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다음엔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속으로 자신의 이름이며 출신 같은 기억을 되짚어 본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까지는 아직 기억 대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흐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너희는 또다시 승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주역에는 굳건히 버티고 서서 길목을 지킨 창천의 뇌제가 있겠지]

근처 건물에 착지한 그녀는 머리에 울리는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짜고치는 고스톱이다. 플레이어 라스는 그녀가 가는 곳마다 고의로 병력을 패퇴시키도록 지시하며, 그녀의 이름값을 연맹 내에서 더더욱 올려갔다.

이는 차지연 뿐만이 아닌 연맹에 파견된 자신 휘하 다른 유닛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이다. 마침 조연으로 써먹을 놈들도 도착했으니, 기사 둘을 상대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두는 것 정도면 좋겠군]

"큿..."

그녀는 저 멀리서 자신에게 달려오는 한쌍의 젊은 남녀를 보고 움찔했다.

제발 오지 않기를 바랬다. 차라리 자신과 아예 엮이지 않기를. 그들이 잔혹하고 비열한 자신의 플레이어의 눈에 들지 않기 바랬다.

"뭘 멍하니 서 있지? 어서 싸워."

그러나 그들은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이브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살짝 웃으며 그 옆을 지나쳤다. 상대는 가장 거슬리는 적으로 꼽히고 있는 카사라스의 기사들. 그들은 특유의 힘인 강력한 염동력을 이용해 그들이 딛고 있던 건물의 절반 가까이를 뜯어 부수며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지켜보는 이들이 본다면 경악할만한 파괴적인 전투.

[크게 부상당한 동료를 구해주는 그림도 나쁘지 않겠는데]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철저하게 기획되고 고의로 만들어진 거짓된 전투였을 뿐.

차지연은 어서 도망치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 내가, 이딴 놈 손에서 놀아날 것 같아."

공중에 들려져 쩍쩍 갈라지고 깨져나가는 건물덕에 발 디딜 틈이 점차 사라지는 곳에서, 이브는 모든 감각을 최대로 강화해서 갈라지고 떨어지는 잔해들을 밟으며 공중제비를 돌듯 뛰어다녔다.

뼈가 뒤틀리다 못해 부러지고 온 관절의 인대가 충격을 견디지 못해 끊어지는 격한 움직임이다. 초재생 능력을 가진 만능세포로 된 육체가 아니라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행위였다.

"이브, 뛰어!"

곁에 있던 신우가 자신의 몸마저 발판으로 내주었다. 이브는 그의 몸까지 발로 밟아 도약하며 몸을 비틀더니 크게 당황한 카사라스 기사의 몸을 불타오르는 검으로 갈라버렸다.

날카롭게 뿜어진 참격의 크기는 그 뒤에 있던 빌딩 하나마저 통째로 베어낼 크기.

[...]

차지연의 플레이어 라스가 당황하고 잠시 말을 잃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결국 차지연의 손에 마지막으로 남은 적도 쓰러지고, 그들은 폐허가 된 바닥으로 다 같이 착지했다.

"어쨌든 이번에도 승리? 당연한건가?"

이브가 멍하니 서 있던 차지연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이브 너는 잠시 있어."

그러나 이브가 더 입을 열기 전에, 연맹의 군인들이 허겁지겁 달려오기 전에, 그가 차지연의 손을 잡아챘다.

"저...두 분은 어디로 가신 겁니까?"

"..."

결국 뒤늦게 도착한 연맹의 군인들만이, 차갑게 얼어붙은 이브의 앞에서 눈치를 보며 입도 벙긋 못하고 대기해야 했다.

"왜, 왜 그래? 문제 있어?"

"문제 있죠. 문제 있다고 얼굴에 다 써놓고 다니니까."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는 플레이어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걸 어떻게?'

카사라스의 군대는 예상과 같이 슬쩍 물러났다. 마치 그녀가 적들의 우두머리를 제압한 덕에 퇴각하는 것 처럼 철저하게.

우리가 있는 곳은 인근에 있던, 양측의 포격을 맞아 폐허가 된 건물 안. 나는 차지연을 앞에 세우고 잠시 말을 잃었다. 밖에서는 지금도 고성 소리나 장비 소리등 시끄러운 소음이 자꾸 들리지만, 지금 우리 사이만큼은 굉장히 조용한 것 같았다.

"나는 문제 없어..."

"평범한 대학생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느낀게 있죠."

지령이라도 받았는지,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자기 상태를 부정했다. 그러나 나는 강행했다.

"...약육강식?"

"아니, 성장하는 방법."

흔들리는 그녀의 눈을 보며 허탈하게 내뱉었다. 폐인 직전인 그녀의 눈은 처음 만났을 당시의 현기는 온데 간데 없이 탁하다. 하지만 나도 한때 그랬다.

이브의 통제 방법을 고민하고 끝내 판정패해 휘둘리며 무기력하게 지켜보고 바라기만 할 때.

내가 그당시 느꼈던 무력함과 공허함을,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비벼서 결국 스스로 무언가 해보는 때에 이른 그 과정을 그녀에게 전한다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결국 그당시의 나는 이브라는 거대한 초생물에게, 그녀는 플레이어라는 거부 불가능한 강자에게 짓눌려 무력함을 느끼는 것이니.

"네게 그런 때가 있었다고? 믿을 수...아니 그보다 그럼 그걸 어떻게 이겨냈지?"

"혼자서는 불가능하죠."

나는 이세계의 성녀 이자벨에게 뜻밖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 아니 제가 도울 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그녀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관건은 그녀가 내 말을 믿어주고,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는지.

"...이미 충분히 도와주고 있고, 그 말만으로 지금도 큰 도움이 되었어."

내 의도대로 플레이어가 딱히 관심을 가지진 않았는지 차지연의 눈에 안도감이 퍼지더니 이내 약간의 생기를 되찾았다. 살짝 당황했다. 아직 본론은 시작도 안했으니까.

"그래서 덕분에 욕심이 생겼어. 조금만 더 도와줘."

"그, 그럼요. 장담하는데, 끝까지 도와줄 수 있..."

나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단숨에 달려든 그녀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이브에겐 미안하네. 하지만,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상관 없겠지."

입술을 뗀 그녀가 완전히 생기를 되찾은 눈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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