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07화 (207/254)

207화-검은 번개(1)

"정말로 승전하고 있군...어떻게 이런."

"흔들리지 말게. 설령 승리한다 해도 그딴 긍지도 명예도 다 가져다 버린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나!"

본성, 카사라스의 지배계층인 카르코스 둘이 투닥거리며 누군가를 찾아가고 있었다.

강력한 불만 사항을 가진 것 같은 그들이 괜히 이곳을 찾아 온 것은 아니다. 그들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새롭게 바꾼 동족의 스탠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디 그들은 명예와 긍지를 아주 높은 가치로 쳐주던 종족이었다. 비록 그 긍지가 선민의식과 오만함으로 변질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에겐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은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 이외의 지성체들을 밑으로 얕잡아보며 전쟁에서도 최소한의 자비와 정도를 지켰다. 그것이 우수한 종족이 긍지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라스. 자네 안에 있소?"

하지만 그런 전통은 이번 기회에 전부 박살났다. 새롭게 발견된 세상과의 연계로 연맹이 발휘한 예상외의 저력에 그들의 군대가 예상외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자, 당황한 그들 내부에서 급부상하며 새롭게 주도권을 잡은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세력은 기존의 전통을 부정하고, 명예와 긍지가 아닌 승리를 위한 전쟁을 천명했다.

"들어오시오. 무슨 일로 왔는지는 이미 들었소."

지켜보던 화면에서 시선을 뗀 라스는 피식 웃으며 동료들을 맞이해 주었다.

오랜 시간 조금의 변화도 없던 그들 내부에서 변화의 바람을 불러온건 당연히 게임을 통해 다른 세상의 일들을 보고 들은 라스였다.

그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처절하고 치열한 전장을 보며 자신의 종족을 바꾸겠다고 결단 내렸다.

"그리 급한 일은 아니오. 우리는 단지, 지금 시행되고 있는 명예 없는 전쟁을 그만두라 말하기 위해 왔소."

"명예? 긍지? 하지만, 전통적인 방법으로 인간놈들과 전쟁을 벌이자 아군이 밀리지 않았소."

"그, 그건 그렇지만 그건 따로 보완해서., ."

"지금은 시대가 변했소 동지들. 우리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측만 하고 있던 사이에."

차분히 받아치던 라스는 당황한 동료를 향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적들은 계속해서 강해지지. 더 이상 우리가 그들을 찍어누를 수 없게 된 마당에, 마음마저 안일하게 먹으면 이길 수 없소. 내가 최근들어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결국 가장 중요한건 승리하고 살아남는 것이란 것이오."

라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카사라스들은 생존 경쟁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태초부터 강력한 지배종이었으며, 경쟁상대가 될 적수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승리가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라스는 달랐다. 비록 대리전의 형태였지만 살아남고, 승리하는데 수많은 수를 쓰고 경쟁해야 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생존경쟁은 그의 가치관을 뒤흔들었다.

이제 그의 가치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오직 승리. 그것만을 위해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

"탐욕스러우며 미개하고...마치 인간 같은 사상이오! 우리의 명예는 고결한 승리에서 만들어 지거늘!"

"당신들은 모르오. 이 우주는 때로는 너무나 미개하다는걸."

기겁한 동료들의 모습에 쓰게 웃은 라스가 손을 튕겼다. 동료들은 화들짝 놀라 움찔거렸다. 모습을 감추고 있던 또 다른 카사라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 타나스님...!"

"그대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한들 어쩔 수 없네. 우리는 이제 변해야만 해."

그들은 가장 앞에 있던 원로 타나스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이미 라스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장막 너머 진실을 알아내는 것, 우리의 사명과도 관련된 중요한 일이지. 명분은 충분하네."

"하지만...!"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네."

타나스를 비롯한 이들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넘실거렸다. 여차하면 무력을 쓰겠다는 경고에 기겁한 그들은 어쩔 줄 모르고 뒷걸음질 쳤다.

"무엇이 진정 우리를 위한 것인지 알아주길 바라오. 우리만 챙기는 명예와 긍지는 아무 쓸모도 없소."

라스가 쓰게 웃으며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그를 중심으로 뭉친 세력이 카르코스 사이에서 세력을 늘려가며 점차 종족회의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장악해나가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권한을 행사하는데 있어서는 철저한 개인주의던 카르코스들은 그동안 특정 계파 정치를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무리정치를 그대로 가져와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데 써먹는 라스의 수법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이걸로 이제 더 이상 방해는 없겠군."

"인간연맹의 저항을 짓밟은 이후에, 그들이 수집한 정보까지 취합하여 다른 곳들로 눈돌리면 됩니다."

회의가 파하고, 단번에 종족의 거물로 급부상한 라스는 남들은 볼 수 없는 화면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지구 안에 갇혀 혼자 끙끙거렸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격세지감이다. 종족 전체를 자기 입맛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게 이렇게 짜릿하고 기분 좋은 것인지 그동안은 미처 몰랐었다.

"그렇게 되면 장막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겠지. 대체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분명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타나스의 말에 라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판단의 근거는 다름아닌 지금도 계속되는 게임이었다.

라스는 바보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힘마저도 뛰어넣는 이 게임이라는 시스템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도 역시.

'1위의 공격에서 살아남는게 목표의 전부라고? 그럼 그렇게 1위를 강력하게 성장시켜서, 이 시스템이 얻는 것은 뭐지?'

본인이 그 트리거인걸 모르고 있는 그 역시 현재 최종장인 챕터 10을 진행하고 있었다.

챕터 내용은 굉장히 노골적이었다. 지금까지 그랬듯 계속해서 싸움 붙이고 서로를 강하게 만드는 것. 그렇게 해서 탄생한 진정한 강자에게 대체 시스템을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라스는 적어도 평화적인 것은 절대 아니라고 확신했다.

'감히 이 내가 질 것 같은가.'

그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 남의 성장을 위한 발판이나 제물 따위로 희생될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아직 정체를 모를 1위까지 완전히 제압하고 자신의 종족과 함께 승리자가 될 생각이었다.

*

"노, 놈들의 공세가 더 거세진다!"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 한복판. 기본적인 전술 자체를 다 뜯어 고친 카사라스는 본격적으로 공세를 퍼부었다.

라스의 명령으로 그들은 군사시설이나 행성 발전시설 등 주요 시설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연맹군 무력화. 굳이 바글바글한 인간들을 하나하나 죽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행성 최대규모 메인 발전소로, 파괴되면 끝장입니다!"

"알겠으니 진정하세요."

차량을 타고 전장을 가로질러 달리던 신우는 정신줄을 놓은 듯 다급한 지휘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이 가고 있는 곳은 적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행성 내 주요시설 중 하나인 메인 발전시설.

우주에서 포격하려는걸 가로막은 함대덕에 시간을 번 연맹은 적의 지상군이 집중되고 있는 그곳에 현재 이 행성에서 가장 강력한 이들을 파견했다.

"단신으로 전황을 바꾸지는 못해.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가능하지. 차지연은 어디 있지?"

"제, 제가 알기론 이미 현장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이브의 관심은 오직 차지연 뿐이었다. 그녀가 먼저 가서 싸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언제 터트릴까. 아마 꽤 오래 가겠지. 놈들의 목적은 연맹의 무력화, 그리고 새롭게 드러낸 세상들. 전쟁이 질질 끌릴수록 그녀의 가치가 올라가니까.'

이브는 차지연의 플레이어 라스의 의도를 어느 정도 분석했다. 이미 다른 곳에 문의해서, 라스가 차지연과 함께 연맹에 파견한 에볼루션 소속의 헌터들에게도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음을 알아내었다.

이브에겐 시간이 없었다. 영혼공진의 부작용으로 차지연의 자아가 사라지면, 이브가 원했던 그녀의 허무와 분노, 복수심이 싹 사라지는 것이니까.

그러니 최대한 빨리 그녀의 고통과 원망, 그에 따른 복수심이 최대치에 달했을 때 그녀를 서브마인드로 만들어야 했다.

'이번 전투라면 어떨까.'

더 이상 끌기 위험하다 판단한 이브는 그 타이밍을 이번 전투로 정했다. 이번 전투에서, 이브는 차지연을 죽여 게임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그리고 다시 되살려, 자신의 일부로 만들 생각이었다.

"..."

그런 이브를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신우의 눈이 복잡했다. 이브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기에 더더욱.

[차지연을 도우면, 이브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될텐데]

'잘 생각해 봐야지. 적어도 쓸데 없는 짐만큼은 덜어주고 싶으니까.'

한숨을 내쉰 그가 미친듯이 덜컹거리는 의자에 기대었다. 최고속도로 달리는 장갑차의 승차감은 최악이었으나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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