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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06화 (206/254)

206화-카테고리 Z(10)

"...이건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지?"

[개입할 생각인가?]

"아직 잘 몰라."

메시지는 뜻밖이라는 듯한 티가 드러났다. 다만 나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화면으로 보고 듣는 것만 해도 차지연이 겪을 고통이 무엇인지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미 한번 마음먹은 이브를 말릴 수도 없다. 일종의 딜레마였다. 우리가 추측한 가설이 맞다면, 지금 차지연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건 이브 뿐이었다.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차지연을 죽이고, 플레이어와의 연결을 끊을거야. 하지만 그녀는 정말로 죽지 않아. 숨이 끊어지기 직전 내가 다시 이어 붙여줄 거니까. 그렇게 되면 그녀는 이제 내 것이 되는거지.'

이브는 한번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투자를 망설이지 않았다. 일개 하급 마법사였던 레이나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사령관 리암도 가능성을 보고 받아들여 자신의 투자로 그만한 강자로 만든 것이다.

"이 문제, 결국 선택은 그녀가 해야겠지."

나는 섣불리 끼어들 수 없음을 깨닫고 혀를찼다.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굴며 차지연의 멘탈을 건드리고 있는 이브가 심한 짓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건 엄연히 차지연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순간이기도 했다.

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군단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종류의 자유를 찾을 건인지, 아니면 이용당하는대로 흘러가는대로 살다가 끝내 죽을 것인지.

한가지 확실한건 이브는 그녀가 결국 싸움을 원한다면 지금껏 누려보지 못했던 강력한 지원을 내어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자신을 도구로 쓴 플레이어에 대한 복수라는, 강력한 명분 역시 함께.

"급한 호출입니다!"

그리고 결국 밤을 꼴딱 넘겨버린 다음 날 이른 새벽. 사령부가 대기하던 우리를 호출했다.

"지난 며칠간 너무나 잘 싸워주었고. 고생했지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소."

"하지만 저희는 아직 휴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도착한 임시 사령부에는 이미 연맹군 중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미친놈들이 용병이라니까 정말 쉴틈없이 굴리려는건지, 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또 싸워야 한다는 소리였다.

"잘 알고 있소. 하지만...이미 전 세력으로 번져버린 전쟁이라 손이 부족하오."

어처구니 없다는 내 말을 들은 사령관은 순순히 인정하더니 모자를 벗어 반질반질한 대머리를 보여주었다. 조명에 비친 빛에 눈을 찌푸린 사이 그가 고개를 숙였다.

"가히 인류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소. 아니 이제 인류가 아닌 이들의 위기라고 해야겠지. 부디 도와주시오."

"고개 드세요. 항의하려는건 아니었습니다."

살짝 당황한 나는 손사래를 쳤다. 카사라스는 연맹 내부의 복잡한 세력구도나 정치 따위는 모른다는 듯 정말 공정하게, 연맹의 전 세력을 가감 없이 일정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사령관씩 되는 인물이 이럴 정도면 상황이 정말로 안좋은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행성이 있소. 그곳 역시 격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주시오."

내려진 임무는 당연히 쳐들어온 적들과 싸우라는 건. 나는 순간적으로 차지연의 눈치를 봤다. 그녀의 플레이어는 차지연을 정보원으로 착실히 써먹고 있을 테니, 지금 이 상황도 다 보고 있다는거겠지.

"가야죠 뭐."

"지금 즉시 함선을 마련하겠소."

일처리는 신속했다. 굳이 이곳에서 벗어날 필요도 없이 함선으로 우리를 실어나를 비행히 한대가 주둔지에 착륙했다.

"후, 정말 정신 없이 싸우기만 하네."

"..."

"지금 우리가 가는 곳,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휘말려서 죽고 있다는데. 그 푸르딩딩한 외계인들이, 갑자기 돌변해서 민간인이고 뭐고 다 공격하고 있다지 뭐야."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좌석에 앉은 이브가 정면에 앉은 차지연을 보며 먼저 입을 떼었다.

어제 밤부터 시작된 멘탈공격이 또 시작된 것이다. 이브 입장에서는 감정이 담겼다기 보다는 단지 그녀를 자극해서, 마지막 선택에서 군단을 선택하도로 유도하는 작업이긴 했다.

"...그래."

"오만하고 거만하던 놈들의 태도가 갑작스럽게 변한 것. 어쩌면 놈들 중에~좀 깨어 있는 놈이 있는걸까?"

이브는 멈추지 않았다. 차지연은 노골적으로 플레이어를 암시하는 이브의 말을 듣고도 굳은 얼굴로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거기 가서도, 여기서랑 똑같겠지? 사람들의 영웅이 되어서 적들을 태워버려."

"나 조금만 쉴게 이브."

결국 차지연은 듣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물론 끝이 아니었다. 이브는 일단 입을 다물었지만, 눈은 휘어 있었다.

분명 저렇게 몰아가는게 필요에 의해서긴 한데 나는 어째 이브의 성향이 점차 저런 쪽으로 굳어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안그래도 맞는것보다는 때리는게 훨씬 좋다며 스스로 입증한 상태인데.

'그런데 너무 몰아가는건 누워서 침뱉기 아니야? 사람들이 영웅으로 보는건 그녀뿐만이 아닌데.'

나는 그때쯤 이브가 잊고 있는 것 같은 한가지 사실을 군체의식을 통해 알려주었다. 놀랐는지 살짝 흠칫하는게 보였다.

'몇번이나 말하지만, 인간들은 나 보다는 플레이어의 명령대로 대놓고 활약하는 차지연에 더 열광할 수밖에 없어.'

애써 답을 찾았는지 흔들리는 눈을 가라앉히고 근거를 들어 부정했다. 다만 나는 그 근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전쟁통인 피난민, 희생자 입장에서는 상대가 어떤 존재든 상관 없다. 영웅은 많을 수록 좋으니까.

"곧 도착합니다!"

그사이 함선에 거의 다 도착했다. 함선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비행기를 내부에 착륙시키고 곧바로 워프가 가능한 우주권으로 날아올랐다.

*

[아직 부족하다. 더, 더 전공을 쌓아라. 네 추종자들이 생기고 그들이 숫자를 불려갈 정도로 압도적인 영웅이 되어라]

"시, 싫어...아아악!"

[넌 도구다. 네게 거부권 따위는 없다. 그것이 너도 동의한, 엄중한 '계약'의 일부다]

새로운 전장에 투입되기 직전, 화장실 한켠에서 짜릿한 고통에 몸을 떤 차지연의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에 든 것은 약병이었다. 이것을 마시면, 속한 모든 유닛의 영혼이 하나의 줄기가 되어 공진한다.

그렇게 증폭된 힘으로 그녀는 카사라스의 전사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그것이 준비된 계획이었다.

'이걸로 8번째.'

과출력을 유지하느라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 약물로 강제로 각성해왔다. 최근 그녀의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감정의 기복이 격해지며, 결국 끝에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어난건 전장의 휴유증이 아니라 이 영혼공진의 부작용이었다.

'지금은, 지금은 안되는데...'

그녀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이미 옛적에 힘을 대가로 몸의 통제권을 넘긴 대가는 잔혹했다. 결국 그녀는 약물을 모두 먹어버렸다. 이렇게 점차 스스로를 잃어가는 것,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으나 이제는 싫었다.

완전히 텅 빈 인형이 되어버린 자신의 몸을, 플레이어가 어떻게 이용할지 잘 알고 있으니까. 자신의 마지막 남은 신념마저 짓밟는 잔혹한 처사였다.

"지금 가셔야 합니다!"

밖에서 다급히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척거리며 몸을 돌린 그녀의 멍한 눈에서 전격이 번쩍였다.

"저, 저기! 저길 봐!"

달려오던 근육질의 거한, 카사라스 돌격전사를 향해 이를 악물고 총탄을 난사하던 한 군인이 하늘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필사적으로 싸우던 주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하늘에서 내리 꽂는 강력한 한줄기 섬광. 곧 일대를 덮는 충격파와 함께 엄청난 전격이 터져나오며, 그 강인한 방어력에도 불구하고 몸이 반쯤 타들어간 돌격전사는 그녀의 발 밑에서 꿈틀거렸다.

"헌터! 헌터다!"

"나 저 여자 누군지 알아!"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군인들이 그녀를 보며 환호했다. 차지연은 S급에 준하는 자신의 힘을 마음껏 폭발시키며 몰려드는 카사라스의 전사들을 향해 강렬한 전격을 폭사했다.

[잡것들 몇 마리 쯤이야 상관 없겠지]

지금 상부의 명령으로 마구잡이로 덤벼들다 그녀의 손에 타죽는 전사들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꼭두각시일 뿐.

카사라스 플레이어 라스는 과거의 동족들은 감히 상상도 못할 차갑고 비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권한을 착실히 이용하여 원하던 승리를 위한 단계를 차근히 이루어 나가고 있었다.

"이길 수 있어!"

"우리는 살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군인들은 그저 그녀의 압도적인 무력을 보고, 감탄하며 열렬하게 환호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은 직전의 행성에서도 그랬듯 모두 촬영되어 모든 곳에 뿌려지고 있었다. 목적은 당연히 전쟁을 위한 사기 고취용.

그덕에 그녀는 이 우주에 지금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주목도를 올려가고 있었다.

"..."

영웅의 등장에 흥분한 연맹군이 그녀가 뚫어놓은 길을 통해 다시 진격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소리소문 없이 흐른 한줄기 눈물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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