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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05화 (205/254)

205화-카테고리 Z(9)

"대체 뭘 하려고?"

"그런게 있어. 그보다 너도 이제 조심해야할걸? 마계에 있는 네 군단은, 아직 마계를 점령하지 못했잖아."

"...이쪽은 좀 복잡하니까."

무슨 꿍꿍이가 있어보이지만 내게 알려주질 않는 이브가, 오히려 내게 마계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찔린건 사실이었다. 이브가 새로운 전략과 시스템을 만들어 대놓고 들이친 결과, 결국 이브는 이든을 점령하고 연합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도시가 빼곡하고 기본 수억~수십억의 인구가 살아가던 반군연합 소속의 행성이 아닌걸 감안해도 엄청나게 빠르고 파괴적인 행보였다.

연합이, 더 강해지고 과격해진 이브의 행동을 견제하지 않을리 없고 그렇게 되면 내 군단이 있는 마계도 애매하다.

"그래도 질거라고 생각은 안해. 네가 지원해 주겠다는 것도 있으니까."

"읏..."

나는 씩 웃으며 받아쳤다. 내 휘하에 있는 서브마인드 리하르트의 성과를 고스란히 가져간 대가로 이브는 내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겠다고 큰소리를 빵빵쳤으니, 나는 당연히 받아낼 생각이었다.

"대체 뭘 달라고 할 셈이야?"

"직전까지는 병력을 생산할 에너지를 달라고 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변했어. 너, 이제 레이나를 쓰지 않을 생각이지?"

볼을 부풀린 이브에게 태연히 레이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이브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의 예기를 잃어버린 무기를, 내가 왜 써야 하지? 성장하지 않는다면 결국 조금 과투자한 상위종과 다를바 없는데. 다시 그 힘을 찾을 때까지 쓰지 않을거야."

"그럴줄 알았어. 그럼 나한테 레이나를 넘겨."

이브가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한 태도로 따지자, 나는 기다렸던 대로 내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이브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잠시 말을 잃었다.

"주기는 싫은가?"

"그냥 이해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 뿐이야."

"내가 보기에 이브 너는 인간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들을 쓰는데는 아직 미숙해 보이거든."

내 말에 이브의 눈썹이 움찔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 녀석 이러는게 한두번도 아니고.

"미숙한게 아니라, 효율을 생각한 것 뿐이야. 서브마인드의 장점을 잃어버렸다면 투자해줄 이유가 없어."

"효율이라니. 레이나를 내게 넘기면 이제 네게 남은 군단장은 함대전 전문인 리암 밖에 없어.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우려고?"

나는 살짝 당황해서 되물었다. 지기 싫어서 자존심 세우는 것인가? 그러나 내게는 표정의 틈을 많이 보여주는 이브의 눈이 이번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게 있어."

분명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보이는 이브는 내게 정보를 숨겼다. 많이도 컸다.

[차지연을 노리는거겠지. 최근 카사라스의 기사를 고문하며 그녀의 비밀 하나를 입수하였고, 그걸 이용할 생각인거다]

"...카사라스의 비밀?"

"야이!"

문제는 관조자는 이브의 머릿속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 그의 밀고로, 나는 이브의 꿍꿍이를 알아내었다.

순식간에 자기 비밀이 털린 이브가 분기탱천한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그치만 아무리 화를 내봐야 허공에 주먹을 허우적거리는게 전부일 뿐.

"...그 말이 맞아. 난 차지연을, 아니 가능만 하다면 그녀가 속한 모두를 내 서브마인드로 만들 생각이거든."

"대체 왜 그렇게 그 사람한테 집착하는거야?"

카사라스중 하나가 그녀의 플레이어라는 사실은 의외로 그리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이브의 집착이 더 신기했다. 가만히 보면 단순히 서브마인드로 만들기 위해 접근하는게 아닌 것 같을 정도였다.

"여러모로 신경쓰이는 녀석이라서."

이브는 짧게 답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 놀라 눈이 커졌다. 이브가 그동안 나 이외의 인물들에게 관심을 둔 적이 있던가? 매번 마주치는 레비크 중위의 이름도 기억 안하던 녀석이었다.

"아무튼, 차지연한테는 손대지마. 그녀석은 내거야."

이브는 내게 심지어 '경고'까지 날렸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차지연 그녀가 처한 상황의 안타까움이 어떤지 잘 알고 있기에.

*

"어..."

"왜. 무슨 문제 있어?"

"아, 아닙니다!"

문이 찰칵 열리고, 경계서던 군인은 안에서 나온 사람의 얼굴을 보더니 흠칫하고, 이어지는 차가운 목소리에 말도 못하고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는 붉은 눈...아무리 인간의 모습으로 의태해도 포식자의 본질을 숨기지 못하는 그 차갑고 깊은 눈에 아무리 아름다운 외모라도 전부 다 얼어붙을 정도였다.

그렇게 혼자서 방을 나온 이브는 코웃음을 치곤 그를 지나쳐 어둑한 복도를 가로질렀다.

"저기!"

그러나 이 용감한 군인은 감히 지휘관조차 섣불리 말걸지 못할 이 존재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브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가 자신을 불러 세우는 일도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무슨 일?"

얼굴을 반만 돌리고 노려보는 한쪽 눈에 찔끔한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기껏 짜낸 용기를 마지막까지 짜내 입을 열었다.

"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때 36번가 거리에서 절 구해주신..."

"기억 안나. 너 같은 애들 한두명이 아니라서."

"네. 그렇겠죠."

이브는 늘 그렇듯, 조금의 관심도 감정도 없이 대응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런 이브의 반응이 오히려 좋다는 듯 여유를 조금 찾고 웃기까지 했다.

"그래도 저는 잊지 않을겁니다. 저 뿐만 아니라 그날 함께 있었던 제 전우들 모두. 이계에서 온 신비로운 미소녀 전사! 이브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란걸."

"..."

얼굴을 반만 돌리고 있는데다 어두워서, 그는 이브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일그러진 얼굴은 금방 펴지고, 오묘한 표정만 남았다.

"위, 위험하니까 너무 멀리 가시진 마십시오!"

그의 외침을 뒤로하고 대꾸도 하지 않은 이브는 천천히 건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어. 멍청한 놈들. 증오하고 혐오해야 할 대상을 찬양하고 좋아하다니.'

이브 본인의 마음도 꽤 묘한 상태였다. 전쟁이 길어지고 여러번의 전투를 치르면서 자연스레 영웅이 생기고 사람들은 그들을 믿고 찬양하며 의지했다.

이브 본인도 그중 하나였다. 본인의 진짜 의지가 어떻든 간에, 이브가 해온 행동들은 사람들을 구하고 적을 단죄하는 영웅의 행보였으니까.

정작 동일한 시간 자신의 병력을 움직여 한개 세상을 집어 삼키고 그곳에 살아가던 수많은 토착종들을 학살한 이브는 그 두가지 행위에 살짝 괴리감을 느꼈다.

지금 이곳 사람들도 자신의 계획에 따르면 언젠가 죽이고 먹어치워야 할 곳이기에 더더욱. 이미 게이트 좌표까지 다 따둔 상태였다.

"이브 너도 잠이 안오니?"

그렇게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반쯤 부숴져 바람이 훤히 통하고 있는 건물 최상층의 한 방.

그곳에, 차지연이 멍하니 밖을 보며 서 있었다.

"그러는 너는?"

"...이제 수면제가 아니면 잠을 잘 못자겠어서."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이제 그녀가 무엇 때문에 그리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고 있는 이브는 소리 없이 코웃음을 쳤다.

'이용당하고, 배신까지 해야 해서 심적 부담이 큰거겠지.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일이니까.'

이제 이브도 인간의 심리에 능통하다. 조금의 단서만 가지고도 그 내면을 알아내고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역시 이해가 안되네.'

단지 공감하는데는 역시나 실패했다. 이브에게 차지연은 쓸데없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미련곰탱이나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 재밌는 소리를 들었어."

"그게 뭐니?"

"나보고 자신의 영웅이래. 영원히 기억하겠대. 자신을 구해줬다며."

움찔한 차지연의 몸을 보고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 이브가 본격적으로 혓바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난 그냥 그가 시킨것만 하고, 나한테 덤비는 놈들이나 죽였을 뿐이니까. 역시 영웅이라는 칭호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수백의 적을 막아내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한 너 같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아니야."

이브는 차지연의 얼굴이 일그러지는걸 보고 즐겼다. 그녀는 괴로운듯 머리를 잡더니 격하게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아니야. 나, 나는 그런게 아니야. 나는..."

"왜 부정해. 모두가 기대하잖아. 네가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잖아. 네가...바라던 일이잖아. 싸우다 죽는것."

슬그머니 차지연의 곁으로 이동한 이브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속삭이며 이미 살얼음판이던 그녀의 멘탈을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완전히 박살내서, 완전히 빛을 잃었을 때. 그때를 노려서 '설득'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차지연의 플레이어, 뭘 노리는지는 대충 알겠지만, 내가 네 뜻대로 둘리가 없지.'

차지연을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그녀의 플레이어에게 큰 엿을 먹여야 한다는 것. 이브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자신도 있었다.

"나도 너를 본받기로 했어. 이제 사고뭉치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제발...그러지 마 이브. 나한테 그런말...하지마."

바닥에 무릎 꿇고 털썩 주저앉은 그녀가 힘겹게 내뱉었다. 어느새 통제를 잃고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닥에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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