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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04화 (204/254)

204화-카테고리 Z(8)

'결과적으로 우리는, 나는 지지 않아. 하지만 넌 져버렸네 레이나. 네 증오가 저들의 투지나 단결력보다 약했던 걸까?'

"그, 그럴리가..."

'너도 성장할 때라는거지. 내가 서브마인드를 영입하려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니까.'

후방으로 빠진 레이나는 패닉에 빠져 숨을 몰아쉬었다. 상처는 순식간에 다 나았다. 상위종급에게 투여하는 만능세포는 그 어떤 모습도 갖출 수 있는 세포.

잘려나간 팔을 재생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레이나는 전투 불가 상태였다. 그녀의 뇌리에, 번득이는 투지로 자신을 죽이려던 야만전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다, 다시 기회를 주십시오."

'몸을 완전히 복구해도 너는 그놈들을 이기지 못해. 일단 뒤로 물러나.'

이브는 레이나를 뒤로 물리고 직접 군단을 지휘했다. 사실 지휘랄 것도 없었다. 새롭게 정립한 시스템덕에 군단식 감염체들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 이브에게 사실 이 땅에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은 자신의 뜻대로 감염시켜 조작할 수 있었으니까.

'아쉽겠네? 네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이것도 불가능했을 텐데. 이 땅의 주인, 이 세상의 정령, 이제 그만 약자답게 도태해라.'

이브는 지금도 자신의 확장과 감염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이 땅의 수호신, 이름 없는 세계수를 비웃었다.

세계수의 힘이 조금 부족했던게 패인이었다.

안그래도 없는 힘을 쥐어짜내서 연합군의 전투를 지원했던 세계수는 그탓에 속수무책으로 행성의 주도권을 이브에게 갉아먹혔다.

"아아..."

"너무, 너무 많습니다!"

이브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세계수가 밀리니 연합군은 기껏 레이나라는 거물을 무력화시켰는데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정도의 전쟁에서 중요한건 숫자였으니까.

감염된 동식물 모두가 군단병이 되어 사방에서 몰아닥쳤다. 군단의 주력을 포위해 공격하려던 다른 지방의 연합군도 순식간에 적으로 돌변해 공격해오는 나무들의 공격에 궤멸당했다.

'사실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라서.'

다만 이브는 단숨에 뒤집은 전황을 보고도 시큰둥했다. 감염체들을 동원하는건 결국 지금 미래에 확장에 쓸 이 행성의 자원을 땡겨서 쓰는 것. 그 규모가 거대해 손실률이 상당했고, 효율을 추구하는 이브에겐 이런 행위는 기껏 침식하는 행성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짓이다.

지금 결단을 내린 것도, 행성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지배하는 세계수를 견제하기 위함이었을 뿐이었다.

"모두 뭉쳐! 모여라!"

"세계수가..."

그리고 단점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세계수가 결단을 내렸다. 연합군이 금방이라도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전멸하기 직전.

세계수에서 뿜어진 파동이 반투명한 장막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반경 수백km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칫.'

이브가 혀를찼다. 빠르고 넓은 에너지 파동이지만, 그만큼 약해 일반적인 군단병에게는 타격이 거의 없다.

하지만 감염체 내부의 감염균은 특유의 약한 방어력으로 이정도로도 단숨에 사멸해 버렸고, 이내 우수수 쓰러져갔다.

"세계수가...이곳 이든이 우리에게 진정한 마지막 기회를 준겁니다."

다들 당황하고 있는 사이, 세계수에게서 힘을 받았던 엘덴의 요정 슈리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다른 이들은 처음에 왜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으나.

"큰일났습니다!"

"세계수의 잎이..."

그들은 점차 말라가며 잎까지 떨어지기 시작한 거대한 나무를 보며 절망했다. 이 세상, 이든은 결국 외계에서 찾아 온 바이러스를 떨쳐내지 못하고 마지막 선택을 내린 셈이었다.

"모두 이 행성을 떠날 준비를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수는 자신을 포기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탈출시키길 결정한거니까."

슈리아가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어서 움직여요. 당장!"

그럼에도 충격 받은 이들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자, 그녀가 호통을 쳐 움직이게 만들었다.

동시에 그녀는 사령관, 정확히는 다차원 연합에서 가장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반군연합측 사령관을 호출했다.

"지금 당장 모든 연합의 일원들에게 알리시오."

"무엇을 말입니까?!"

"연합 소속 행성에, 세계수와 같이 행성 전체의 마나를 통제 할 수 있는 수호신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만약 없다면, 나 엘던의 대사제 슈리아의 이름으로 엘던으로 사절을 보내 세계수의 씨앗을 받아가 심으라고."

그녀는 이미 모든 판단을 마쳤다. 다른 이들이 그 판단을 이해하거나, 납득하는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군단의 목적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모두가 함께 사느냐, 아니면 모두가 함께 죽느냐. 선택지는 단 두개 뿐이었다.

"당장!"

"지, 지금 당장 움직여! 철군! 철군 준비! 함대에도 알려라!"

그녀의 기세에 압도된 사령관은 부하들을 닦달했다. 그렇다고 속편하게 차례를 지켜가며 후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결국 이곳을, 고향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건가?"

"그렇지요. 하지만 절망하고 한탄하는 것은 우선 살고 나서 말하십시오. 살고 나서, 복수하면 되는 겁니다. 복수하고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거나."

이 위기 상황에 맞서 수많은 부족들을 이끄는 숲의 일족의 원로는 그녀의 말에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압도적인 폭력 앞에 약자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나마 살아남기라도 하려면 이곳을 떠나는 것 뿐.

현지인들에게는 당연히 가슴 찢어지는 일이었다.

"이제 남은건 시간을 버는 일 뿐이지."

"...그건 문제 없을거다."

연합군이 대놓고 우주로 후퇴할 준비를 하는데, 그걸 이브가 가만히 두고 볼리가 없었다.

비록 함선들의 진입을 막는데는 실패했지만 지상에서 항전하는 이 땅의 마지막 생존자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전 병력을 돌진시켰다.

"그럼 가자. 아까 보니까 싸움질은 잘 하더구나."

"쓸데 없는 소리 말고 뒤나 확실히 봐주쇼!"

슈리아와 파울로가 그들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려오는 군단병들을 향해 맞서 싸웠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여력이 되는 연합의 모든 구성원들이 마지막 힘까지 쏟아부으며 항전했다.

처음에는 분명 서로 다른 세상 서로 다른 의도를 가지고 만난 이들. 심지어 유닛과 유닛 관계로 만나 서로를 적대하던 이들도 있었다.

"버텨! 모두를 위해!"

"여긴 맡기고 위로 올라가쇼."

슈리아는 파울로의 말을 들은 즉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제공권을 잡고 유리한 위치에서 학살을 이어가려는 이브는 비행종 다수를 투입해 하늘을 지배하려 시도했고, 슈리아처럼 바람의 힘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 수많은 요정들과 무장한 전투 헬기등이 세계수와 하늘을 지키기 위해 화력을 뿜어냈다.

"비록 판정패를 당할 지언정, 무력히 당할수는 없다."

허공에서 화살을 쏘던 그녀의 눈에 더 이상 흔들림은 없었다. 오히려 독기가 자리했다. 그건 연합군 전체로 확대해도 마찬가지였다.

극한의 상황에서 결성된 단단한 단결과 믿음이, 사실상 패배한 열세인 상황에서도 터져나오며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기분나빠.'

그덕에 이브는 기껏 승전을 따내고 목적을 이루고도, 그들의 각오를 읽어내곤 진심으로 기분나빠했다.

적당히 쫓아내듯 몰아치면 이 행성을 보디 쉽게 먹을 수 있음에도 단 하나도 살려보내기 싫었다.

그래서 이브가 직접 조작하는 상위종 하나가 창을 빗겨들고 엄청난 속도로 슈리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싸우는 이들에게 빛과 구심점과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전장의 여신.

이제 이브도 지성체에게 심리나 기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압도적 강자로 군림하던 레이나의 패배로 그들에게 여지를 준 이브의 입장에서는 그걸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반드시 찢어 죽여야만 했다.

"너희는, 우리를 결국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 개년이이이!!!'

그러나 슈리아는 쏘아낸 화살로 달려드는 상위종의 가슴을 꿰뚫어 터트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치 이브가 보고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그 속을 벅벅 긁어놓는 말을 내뱉으며 가장 마지막으로 수송선에 탑승해 자리를 벗어나버렸다.

성격 자체는 레이나보다도 더 불같은 이브는 패배해서 도망치는 주제에 마치 자신보고 졌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 모습에 스스로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군단 전체가 들썩이게 만들었다.

"...괜찮은거 맞지?"

"..."

마찬가지로 화면을 통해 이든방어전을 지켜보고 있던 신우는 옆을 흘끔거리더니 어딘가 피폐해 보이는 이브의 모습을 보고 슬쩍 눈치를 봤다.

"그럼. 나는 하찮은 놈들을 상대로 승리했고, 또 하나의 영토를 손에 넣었는걸."

흠칫하며 눈에 생기가 돌아온 이브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감정선이 살짝 뭉게져서 잔뜩 화가 나있는 얼굴 위부분과의, 특히 살의가 넘실거리는 눈과 굉장히 안어울렸다.

"멈추지 않아. 나는 계속해서 전진해."

"군단장 하나가 전투 불능 상태 아닌가?"

"스스로 이겨내지 못한다면 상위종보다 잘난점이 없으니 더 이상 중용할 이유는 없어. 서브마인드의 가장 큰 장점은 설령 패배하더라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니까. 물론...즉시 전력 삼을 수 있는 서브마인드가 추가로 생긴다면 좋겠지."

가까스로 진정한 이브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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