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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03화 (203/254)

203화-카테고리 Z(7)

살아남는 것이 곧 정의. 생물이라면 당연히 성공해야 할 의무. 이를 악문 파울로가 땅을 박차며, 상위종에게 덤벼들었다.

'놈들이 지독한 악당인줄 알았다. 놈들은 내 동생을, 부족의 전사들을 죽였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놈들이나 우리나 다르지 않았다. 결국 놈들이나 우리나 어떤 이들을 죽여야지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니까.'

달려가는 그의 머릿속에,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전사장 가르의 말이 스쳤다.

'그러니 두려워 마라. 놈들도 결국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일개 벌레에 불과하며, 놈들은 우리의 단결을 부수지 못할테니까.'

"으아아!"

가슴속에 가르의 말을 새긴 그는 기합과 함께 굉음을 내며 땅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그의 몸에서 뿜어진 투기가 푸른 불꽃이 되어 타올랐다.

휘두른 도끼는, 단번에 상위종의 베리어에 틀어박혔다. 금이 가며 쩍쩍 갈라지는 베리어 안에서, 단숨에 휘둘러진 검들을 막아낸 파울로가 땅에 착지했다.

"네놈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대한 군단이 마치 한몸처럼 움직이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물러서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

이를 간 그가 다시 한번 덤벼들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세계수가 소환한 나무정령들 말고도, 연합군은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군단병에도 물러서지 않고 버텼다.

'버티다보면 도달한 지원군이..!'

헛된 희망도 아니었다. 주변 거점이나 요새는 전부 무시하고 이곳으로 직행한 군단을 저격하기 위해 지원병들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여차하면 포위해서 섬멸하려는게 그들의 계획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레이나는 물론 이브가 지휘하는 군단병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면을 뚫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아아악!"

"근접할 방법도, 설령 근접하는데 성공했다 해도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연합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이 전장에서 가장 강할 수도 있는 존재가 마음껏 마법을 난사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었으니까.

"반드시 뚫어야 해. 서둘러!"

"검은 마도사를 떨어트려라!"

바람을 조작해 하늘로 날아오른 요정을 비롯 비행이 가능한 소수병력이 지상에서 닥치는대로 시체를 포함한 유기물을

촉수로 집어 먹어치우던 서플라이의 위에 서 있던 레이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늘을 뒤덮은 비행종들이 공습과 지원을 위해 다른 곳으로 빠진 사이, 그들은 목숨을 걸고 길을 뚫었다.

"크악.."

"버텨!"

하지만 비행종들이 없다고 길을 뚫을 수 있는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위저드 타입 상위종들과 충돌해야 했다.

군단식 마법을 시전하다가도 근접전에 들어가면 지팡이를 창처럼 휘두르는 놈들에게, 한목숨 던져 막아보려던 이들은 허무하게 죽어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놈...!"

이곳 이든의 원주민인 숲의 일족 전사가 검을 뽑아들고 레이나가 자기가 타고 있던 서플라이째로 크게 둘러친 방어막을 마구 두드리며 이를 악물었다.

계속해서 날아드는 미사일이나 레일건 요격도 막아내는 강도의 방어막이, 그정도 힘에 깨질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방어막을 두드렸다. 가족도, 고향도 모두 잃은 존재의 분노였다. 레이나는 그를 향해 손가락 하나를 뻗었다.

손가락 끝에서 쏘아진 마탄이 그의 머리를 펑 하고 터트렸다.

'이번거는 좀 세겠는데.'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브의 경고와 함께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그녀를 덮쳐들었다.

"성, 성공했다?"

거대한 충격이 대기를 울림과 동시에 레이나의 방어막이 유리창 깨지듯 산산히 부숴졌다. 이 기적을 만든건 세계수 앞에 서 있던 슈리아.

슈리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들의 세상에서 사용하던 방법을 사용했고, 세계수는 또 다른 요정족인 그녀에게 자신의 힘을 허락했다.

"대체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한가? 어서 돌격해!"

방어막이 부숴지고, 레이나가 비틀거리는 틈을 타 다른 이들이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전사들은 물론 지켜보던 모두가 순간 숨을 멈췄다.

그동안 한번도 손대지 못했던 군단의 가장 강력한 화력에게 공격을 가할 유일한 기회였으니까.

"죽어라 괴물년아."

레이나를 덮친 요정 전사들이 이를 악물고 그녀의 전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 찰나의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그 몸이 여럿으로 토막날 상황.

"어?"

"이럴수가..."

그러나 탄식한건 레이나가 아니라 역으로 덮쳤던 이들이었다. 레이나가 겉에 두르고 있는 검은 코트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인듯 꿈틀거리더니, 휘둘러진 검들을 단번에 막아내고 역으로 쳐냈다.

동시에 레이나가 지팡이로 휘두르며 시전한 마법이 사방으로 터져나오며 유일한 기회를 날려버린 그들의 몸을 잘게 부수며 육편으로 만들었다.

*

'척살권을 쓸 수 있다면.'

군단에게 척살권은 의미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슈리아가, 멍하니 흩날려 떨어지는 시체들을 보며 탄식했다. 그녀의 플레이어는 지금 척살권이 없는 상태였다.

"계속 가야 합니다."

"하지만 적이 너무 강합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그녀의 곁에서는, 다시 한번 공격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주를 이루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저 검은 마도사를 반드시 이곳에서 떨궈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결국 마음을 먹은 슈리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플레이어는 그녀를 말려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결단을 내렸다.

'우리가 아무리 오래 버틴다 한들, 중심축인 저 괴물을 떨구지 못한다면 방법이 없다. 시간이 끌리면 게이트가 다시 연결되고, 괴물들이 다시금 쏟아져 나온다.'

그녀는 본질을 꿰뚫어 본 셈이다. 결국 양산형 군단병들을 아무리 많이 잡아봐야 의미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곳의 세계수가, 제게 힘을 빌려주고 있습니다."

"이게 다 우리의 힘이 부족한 탓이로다."

곁에 있던 숲의 일족 원로가 그녀를 보며 혀를찼다. 현지인인 그들 입장에선 입맛이 쓴 순간이었다. 자격의 부족으로, 세계수는 그들이 아닌 외계에서 온 또다른 요정을 선택한 것이니까.

"아..."

그녀보다 쟁쟁한 요정들이 많은 고향 엘든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힘.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내면에 흘러드는 거대한 힘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마나를 빌려주고, 군대를 만들어주고, 내게 세례까지 내려주었다. 세계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이제 남은건 우리의 몫.'

슈리아는 단숨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손에 든 화살에서, 섬광탄에 준하는 강렬한 빛이 터져나와 수미터 크기로 자라났다.

활을 든 그녀는 그걸 레이나를 향해 겨누었다. 당연히 레이나도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겨누어진 지팡이에서 뿜어진 마법과 쏘아진 화살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날아들었다.

'할 수 있어.'

폭발과 함께 발생한 충격파가 일대를 뒤흔들 정도였다. 비틀거린 슈리아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의 생명이 걸린 반드시 이겨야 할 전쟁. 그녀의 마나에 반응하더니, 땅이 뒤흔들리며 거대한 나무 뿌리 같은 것들이 수십개 튀어나와 단숨에 레이나와 레이나가 타고 있던 서플라이를 덮쳐들었다.

레이나는 자신이 시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화염마법을 뿜어내어 거대한 화염폭풍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거대한 화염은 바람을 다루는 주술을 특징으로 수련한 숲의 일족들이 불러낸 강력한 바람에 역으로 밀려나 뿌리들을 태워버리는데 실패했다.

"베어버려!"

끝내 레이나가 타고 있던 4번대 부유형 초대형종 서플라이가 쿵 소리를 내며 지상에 추락했다. 슈리아는 끝내 앞길을 가로막던 상위종을 베어낸, 푸른 투기가 번득이는 도끼를 들고 달려가는 파울로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내가, 내, 내가...'

손을 뿌리친 레이나는 덤벼드는 파울로의 모습에 당황했다.

그의 도끼가 방어막을 부수고, 막으려던 코트의 방어까지 깨고 자신의 몸을 길게 베어나갈 때.

흩뿌려지는 자신의 피를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슈리아가 예상치 못하게 파워 업을 진행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길 자신이 있었다.

단결과 협력,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지금까지 직접 보고 겪어왔으니까.

"죽어라. 모두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그녀의 상반신을 어깨부터 배까지 반쯤 베어낸 파울로의 도끼가 이번엔 그녀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지팡이로 막았지만, 지팡이까지 반으로 가른 도끼가 팔까지 잘라내고 휘둘러졌다.

가까스로 목이 베이는 것은 피했지만, 도끼에 일렁이던 투기의 여파로 그녀의 가면이 으깨지고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파울로는 그순간 굳어버렸다. 가면 속에 감추어졌던 붉은 눈이,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에.

'좋아. 거기까지 해. 그래도 우린 지지 않아.'

상위종들이 자신들이 다치고 베이는 건 신경쓰지 않고 달려들어 레이나를 구출한게 그때였다.

이브는 연합군의 저력에 끝내 당해버린 레이나의 패배를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이 끌린 사이, 이미 다음 수를 생각해 뒀으니까.

"나, 나무들이...?!"

군단병들과 한창 싸우던 나무 정령에게, 비슷한 덩치의 무언가가 달려들어 우당탕 바닥을 굴렀다. 그것을 본 이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여러군데 신경써야 했던 세계수가 미처 관할하지 못한 현지의 나무들. 그 나무들도 생명체다.

이브는 나무들에 세계수의 일종이던 군단의 신목을 베이스로 한 감염균을 투입시켜, 썩어 문들어진 군단의 검은 나무정령으로 재탄생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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