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카테고리 Z(3)
"아 이런 젠장..."
전장의 한복판. 나는 미간을 찌푸린채 한탄했다. 내 실수였다. 주위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최대한 근접해서 찍으려던게 원인이었다.
나는 반으로 갈려 박살난 휴대폰을 급히 숨길 수밖에 없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사태가 마무리되자 연맹의 군인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방금 전 사진을 찍어 표본삼아 날려버린 염동력 외계인을 끝으로 일단은 전투가 끝났다.
"놈은 대체...갑자기 사라지다니..."
"무서워서 도망이라도 갔나본데 뭐. 다른 곳으로 바로 간다."
묘한 표정으로 서 있던 이브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적극적으로 나서며 재촉했다.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적에 대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함께 있던 군인들은 딱히 갑자기 사라져 버린 적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신경쓸 여력도 없을 것이다. 전투는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다음은 이곳에서 5블록 떨어진 곳,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우리는 서두르는 군인들의 안내에 맞춰서 도로를 가로질렀다.
'휴대폰, 이거 부숴져 버렸는데 대체할 순 있는건가?'
[당연히. 하지만 새로운 휴대폰을 구하려면 지구에 가야 할텐데]
'여기서 쓰는 단말기는 안 되고? 미치겠네.'
이브가 충분한 힘을 갖춘 채 자신의 힘으로 휴대폰 속에서 현실로 기어나온게 언제인데 정작 중요한 몇가지 기능을 쓰려면 계속 휴대폰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게 개그였다.
굳이 억지로 생각해보면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무언가 들고다녀야 한다는 것이니 억울한건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 정도.
"생긴건 비실한 젓가락 같이 생겼으면서...일단 조금 더 주의하는게 좋겠어. 만만한 놈들은 아니야."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야?"
"아직 잘 모르니까."
그 와중에 옆에서 달리던 이브는 첫 전투를 통해 데이터를얻고서는 스스로가 조금 더 힘을 쓸 것을 공언했다. 확실히 대장 같아 보이는 염동력 외계인은 좀 힘들긴 했지.
나는 이번엔 남들은 보지 못하는 나만의 화면을 보았다.
"가능하겠어?"
"당연하지."
화면 속에는 내가 방금 찍어서 날려버린 외계인이, 황량한 군단의 둥지 한가운데 혼자 서서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제아무리 외계문명의 외계인이라도 저항하지 못하는 시스템적 힘을 처음 겪어봤는지, 놈은 허둥거리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러나 아마 자기가 있는 그곳이 어딘지도 모를 것이다. 어딜 둘러봐도 군단의 둥지만 가득했다.
도시와 마을을 비롯한 커다란 성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 거대한 신목이 자라나 일대의 둥지를 컨트롤 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광경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놈의 눈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완전둥지화가 끝난 행성 에덴. 이브는 아바타를 움직여 그곳으로 전송된 놈을 향해 다가갔다.
"안녕."
이브가 씩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자, 놈이 몸을 확 돌렸다. 저 아바타는 지금 가면까지 쓰고 있는, 인간의 몸이 아닌 순수 군단의 육체. 그 거칠고 이질적인 생김새와 인간의 얼굴에서 부조화를 느꼈는지 움찔거렸다.
"좀 싸우는 것 같던데. 허접한 인간들 말고 우리와 한번 싸워볼까."
"...?☆&!"
당연히 이브 혼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습을 드러낸 이브의 아바타 뒤로, 은신을 푼 상위종들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본래 둥지의 방어를 위해 휴면 상태로 대기하던 병력들이었다.
놈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뒷걸음질 쳤다. 혼자서 수십에 달하는 이들을 전부 상대할 순 없을테니까.외계문명 카사라스와 우리 군단이 처음 만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궁금한게 너무 많아. 너희가 누군지, 어떤 이들인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전부 다."
검을 빼든 이브가 안광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뒤에 있던 상위종들 역시 각자 자신의 무기를 들어 놈을 겨누었다.
크게 놀란 놈은 더 격렬하게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혼자였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스스로도 깨달았는지 발악하기 위해서 강력한 염동력을 방출하며 저항했지만 지금 인간의 모습으로 싸우는 우리 둘도 압도하지 못했다면 이브를 중심으로 일제히 쏟아져 들어가는 군단병들을 전부 당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
"대체 네놈들은...!"
그는 참담함 가득 담긴,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토해내었다. 갑작스레 떨어진 낯선 세상. 이곳은 어딜 둘러봐도 괴이하게 생긴 괴물들 뿐이었다.
게다가 이 끔찍한 괴물들은 단순한 우주벌레가 아니었다. 자신이 둘러친 강력한 염동장막을 이브가 검붉은 기운이 담긴 참격으로 강타해 쩍쩍 금이 가게 만들자 기겁했다.
연맹군의 전차도 단숨에 쥐어 뜯고 뒤집어 버리는 강력한 염동력 역시 형상력을 둘러친 방어막에는 그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하, 하늘로 가는게 낫겠다.'
그는 단숨에 몸을 띄워올려 하늘로 치솟았다.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상위종 중 절반은 하늘을 날 수 있었고, 그는 빠져나갈 틈도 없이 그대로 땅으로 다시 추락했다.
'이놈들은 대체!'
땅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둘러 싼 괴물들을 보며 경악했다.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카사라스의 그 어떤 지식에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이 괴물들은, 그에게 무기를 겨누며 막상 마무리는 짓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뭐냐, 감히...벌레들 주제에.."
땅도 하늘도 어딜 가도 괴물들 뿐이었고 탈출 따위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진퇴양난에 빠진 그에게 이브가 다가왔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브가 우두머리격의 특별한 존재임을 알아챘다.
'우선 대화부터할까?'
"흐, 얕보지 마라! 나는 명예로운 카사라스의 기사다!"
늘 하던대로 정보를 캐내려던 이브에게, 히죽 웃은 그가 내면의 모든 힘을 끌어올리며 공세를 가했다.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니 자폭해서라도 명예와 긍지를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었다.
"크학.."
하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는 파들거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관통하고 튀어나온 창을 붙잡았다. 평소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어쨌든 싸우다 명예롭게 죽는 것이니까.
그러나 창이 파고듬과 동시에 그 몸 안에 직접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군단의 감염균들이 퍼져가며 하나 둘 신체 기능들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생명체, 이 분야에서 군단을 따라올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더구나 이렇게 큰 부상을 입은 상태로는.
"죽지 못해.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어. 물어볼게 많으니, 조금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네. 인간들도 모르는 모든 것들 다 들어야 하니까."
지금 자기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챘는데도 조금도 저항하지 못하고 무릎 꿇은 그를 향해 이브가 냉소했다. 이 순간까지도 이브가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무엇을 할 생각인지 몰랐던 그는 검은 핏줄이 잔뜩 돋은 얼굴로 이브를 노려 볼 뿐이었다.
"...!!"
끔찍한 비명이 터져나온다. 제아무리 카사라스의 기사라고 해도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그럼에도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최대한의 고통을 수차례나 겹쳐 겪으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리가 없었다.
"확실히 좀 이상하네."
이브는 고문이라는 이 잔혹하고 간단한 방법을 통해 많은 것을 알아내었다. 하지만 동시에 끝내 알아내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철저하게 계급이 나누어져 있는 카사라스의 특성상, 기사인 그는 발설할 수 있는 정보에 제한이 있었다. 이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제약이었다.
'장막이니 비밀이니 탐구니...이놈들, 원래부터 무언가 알고 있던 놈들 같은데.'
이브는 연맹측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대체 왜 그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에 대해서 알아내고 그 이유에 주목했다.
카사라스들은 연맹과 연합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고 있는 신세계들을 통제하고 싶어했다. 자신들조차 모르던 곳이라며, 그 세상들이야말로 자신들이 조사하고 찾아다니던 '장막 너머'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신우가 추측한대로 그들의 등장이 갑작스럽게 중간단계를 스킵하고 최종장에 진입하게 된 게임과 관련이 있다는걸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상관은 없지.'
단지 그런건 지금의 이브에게는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중요한건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기술이나 규모, 강함에 대한 정보.
그들 역시 연맹에 버금가는 만만치 않은 거대 세력임을 알게 된 이브는 살짝 조바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의 확장력이 급변하는 흐름에 비해 좀 뒤쳐지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 다시 탄력이 붙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연맹에 직접 속해서 그들의 전쟁을 보고 있자니 어째 끼어들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직 기존에 계획한 연합 붕괴 계획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지금 다른 곳에 전력을 투입하는건 시기상조다.'
'나도 알아. 그냥 어서 연합을 무너뜨리고, 서로 싸우고 있는 놈들까지 동시에 먹어치우고 싶다고.'
이브는 서브마인드 리암의 말에 투덜거렸다. 리암의 말대로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시선에 이제 레이나가 있는 행성 이든이 보였다.
끝내 지상에 착륙해 차원문인 게이트를 여는데 성공한 군단은 레이나의 의도대로 빠른 속도로 행성을 침식해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