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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97화 (197/254)

197화-카테고리 Z(1)

"그래? 내가 1위, 즉 가장 강한 유닛이라고?"

"그렇겠지. 군단 전체가 바로 너니까."

"그럴 줄 알았어."

내 머리는 그 어느때보다 복잡한데, 정작 이브는 이 이야기를 듣고도 히히 웃었다. 그리고 멍청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저러는게 아니라는게 더 문제다.

"뭐가 문제야? 애초에 나는 싸움을 피할 생각이 없었어."

"이 게임 시스템은 아무래도 이 분기점을 시작으로 이브, 너를 낙점하고 최강으로 만들려고 설계된 것 같아."

나는 당당한 이브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회차를 반복해도 이미 설계되어 있는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겠지.

게임은 그동안 참여자는 물론 참여자들이 속한 세력 전체를 거대한 혼돈에 휘말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이브를 포함 모든 이들을 자극하고 경쟁시켜서 최후의 승자를 가리라고 부추기고 있다.

"그 목적, 우리의 진정한 적. 말 못햐나고."

[아직은 그렇다]

"하. 변수가 있다며. 그건 대체 언제 터지는데?"

답답해 미치겠다. 하긴 회차를 반복하는게 사실이라면 그 누구보다 답답한건 관조자겠지.

"아무 상관 없어. 시스템이 어떻든 나는 지금처럼, 계속해서 성장하고 계속해서 먹어치울거야. 그게 내 본질이니까."

"그건 나도 알아."

쓴웃음이 나왔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이브를 설득하여 침략과 침식을 그만두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이브에게 성장과 진화, 탐식과 전쟁은 마치 호흡과도 같다. 본인의 존재 의의인 그것을 막는다는건 이브에게 그냥 얌전히 자살하라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너는 이브와 이 세상 모두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

"역시 균형을 맞추는 수밖에 없잖아."

잠시 밖으로 나온 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떨궜다. 어느 쪽이든 게임의 결말이 파멸이라면, 답은 하나다. 게임을 끝내지 않는 것.

이 게임은 최종장인 상태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위해 필요한 조건은]

"균형. 어느 한쪽도 섣부르게 상대를 공격하지 못할. 내 생각엔 연합과 연맹, 그리고 이브 이렇게 3개 세력이면 될 것 같은데."

나는 예전에, 혹시나 싶어 미리 생각했었던 가설 하나를 다시 끄집어 내었다.

기존의 반연맹세력을 중심으로 군단의 습격을 계기 삼아 뭉친 연합과 기존의 인간 세력인 연맹, 그리고 이브까지 3개의 세력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긴급 호출입니다! 어서 모여주세요!"

하지만 게임 시스템이 괜히 최종장으로 진입했다는게 아니라는 듯 여기저기서 변수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연맹이 전면전을 벌이게 되었다뇨. 카사라스? 그들이 누구죠?"

"그들은 오래 전부터, 이 우주에 세력을 가지고 있던 외계인들입니다."

헌터들을 소집한 연맹의 간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에게 무언가 설명해 주었다. 믿기 힘든 내용이면서, 동시에 믿기 쉬운 내용이기도 했다.

외계 문명의 존재는 분명 놀라운 것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연맹도 지구인인 우리 입장에서는 외계인이었으니까.

"대체 왜 그들이 갑자기 저희를 공격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전한지 채 하루가 되지 않아 전선이 수십개로 늘어났습니다.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

설명하는 간부는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했다. 듣자니 그의 고향 역시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하던데 역시 그것 때문이겠지.

"여러분 모두 이곳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저희 본부에서는 여러분 중 일부를 지금 급히 지원이 필요한 곳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부디 다시 한번 힘을 빌려주십시오."

그는 결국 우리에게 머리까지 숙였다. 그의 안타까운 사연과는 별개로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잠시 적막에 빠졌다.

자원해서 온데다 까라면 까야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전장에 자발적으로 나서는게 쉽지는 않으니까.

"제가 갈게요."

그때 가장 먼저 손을 든 사람은 하늘색 머리칼을 가진 여인, 차지연이었다. 그녀는 이미 각오를 굳힌 듯 보였다.

"괜찮아요?"

"응? 으응..."

나와 이브는 차지연을 따로 찾아갔다. 그녀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혼자 앉아있던 그녀의 눈은 극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날, 내게 힘들다고 토로한 그날보다도 더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혹시 플레이어가 시킨건가요?"

"으어?!"

혹시나 싶어 물어봤더니 화들짝 놀란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정도면 뭐 숨기려 해도 숨길 수도 없는 상태였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정 반대로 억지로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하는 그녀의 심정은 차마 알 수도 없었다.

"나, 나는..."

끝내 눈물을 보인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몸을 피해 다른 곳으로 달려가 버렸다.

"그렇게 심한 부담이구나."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른데."

나는 단순히 그녀가 자의가 아닌 행동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이브는 그게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되었든 사람들을 지키며 전장에서 죽기를 바라던 녀석이야. 단순히 타의로 전장을 옮긴다고 저렇게 타격을 받았을리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오히려 자신이 바라던 일과 정 반대의 일이 터져서...저렇게 되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데."

이브는 자신의 능력으로 차지연의 심리 상태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내 얼굴이 굳었다. 지치고 힘들어 하던 그녀의 의지와 반대되는 플레이어의 지시라면, 설마.

"전장에서 살아남으라는 명령을 내렸나? 어째서지?"

"그건 모르지. 곁에서 지켜보다보면 알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의 플레이어가 어떤 존재인지 기억해냈다. 자존심 높고, 냉혹하고, 철저히 자신의 유닛을 장기말로 부리는 존재다.

수호자 연합의 등장으로 지구 내 유닛간의 전쟁이 불가능해지자 거침 없이 용병으로 팔아넘기기 까지 하는.

"네 말대로 일단은 지금 무슨 상황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아."

연맹 사람들이 기겁하는 카사라스라는 그 외계 문명이 정확히 어떤 놈들인지,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갑자기 전쟁을 벌이게 된건지.

그리고...만약 그들이 게임과 관련이 있는지도. 일단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게임 시스템이 놀라서 반응할 정도라면 어째 이정도 사이즈는 되어야 하는 것 같아서.

*

"...솔직히 말하면, 놈들의 기술은 대부분이 저희보다 뛰어납니다."

우리가 급히 차출되어 떠나는 함선 안, 그곳에서 연맹의 간부가 우리에게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며 차지연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지금도 어딘가 혼이 나간 것 같이 멍한 상태로 앉아있었다.

"특히 거슬리는 부분은 전사 계급 이상의 놈들은 모두 특수한 초능력을 쓴다는 것입니다. 어, 여러분들 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지구의 수호자 연합에 추가 지원을 요청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대체 왜 그놈들이 너희를 공격했냐니까?"

"그, 그건 저도 아직은 잘."

이브의 차가운 물음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이런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제대로 된 정보 공유가 안되고 있다. 아니면, 고의로 정보를 막은 것이라거나.

'...상황이 갑자기 바뀌어 버렸지만 이 경우는 충분히 이용할 수 있겠어.'

어쨌든 승승장구하려던 이들이 브레이크를 세게 밟힌 상황인건 똑같았다.

이브는 이 상황을 자신에게 나쁠게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 새로운 전술과 시스템을 탑재하여 연합을 상대로 공세로 전환한 시점이니 연맹이 혼란에 빠진다면 자신에겐 이득이니까.

나 역시 생각이 복잡했다. 분명 관조자는 미래를 뒤틀기 위한 변수가 필요하며 그 변수가 충분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암시를 지속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전쟁 개시와 동시에 시작된 시스템의 변화를 보고 판단하건데, 지금 연맹과 그 카사라스라는 외계문명의 전쟁은 일단 '원래 예정된' 전투일 가능성이 컸다.

"지금 추가로 정보가 하나 들어 왔습니다. 어쩌면 그놈들이 방금 저희가 떠나 온 라쿰과 같은 동맹 행성들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극비 정보가. 지금 전 연맹의 예비 함대까지 발진하고 있습니다. 그곳들을 지키기 위해서요,"

"...그러니까 대체 왜 그놈들이 그곳들을 노리는건지."

레비크 중위가 굳은 얼굴로 우리에게 정보 하나를 더 주었다.

'당연히, 그들중에도 게임에 관련된 이들이 있겠지.'

나는 가장 합리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마치 뿌연 안개가 낀듯, 연맹의 발달한 탐지 기술로도 잡아내지 못한 숨겨진 세상들이 많았다.

그 세상들이 함께 연결된건 전적으로 게임의 역할이었다. 서로 다르게 발달해온 전혀 다른 세상의 결합이 가져 온 힘.

만약 그 외계인들이 탐내는 것이 그것이라면 충분히 동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연맹도 연합도 신시대를 맞아 그런 방식으로 힘을 키우기 시작했으니까.

'...그럼 지구도 위험한 것 아닌가?'

"아."

그때 군체의식으로 중얼거린 이브의 말 한마디에 내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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