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96화 (196/254)

196화-진정한 군단(10)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한 연맹, 아니 아레스는 거침이 없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정보를 얻었다는 이점을 제대로 활용해서 타 세력은 단기간에 따라올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격차를 벌려 놓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 잘들 생각하시오. 새로운 흐름에 편승해서 단결하는게 필요하지."

아레스 측 대표는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 없는 말들로 다른 이들을 설득했다.

목적은 당연히 이전부터 경쟁해오던 연맹 내부의 패권. 자기들 입맛대로 연맹을 통솔해서 움직이려는 것이었다.

"의, 의원님. 큰일났습니다."

"...뭐?"

그러나 그때, 황급히 통신을 받은 수하 중 한명이 사색이 된 얼굴로 통신기를 건넸다.

이 긴급한 통신이 걸려 온 곳은 다름 아닌 우주에서 대치하고 있는 아군 함대의 사령관이었다. 성공적인 작전 수행을 위해 절대 차질이 있어서는 안되는 곳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오 사령관. 설마 우주봉쇄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리는..."

"그게, 문제가 생긴게 맞습니다 의원님. 그것도 상당히 큰 문제가."

그러나 사령관이 전한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지금 함선에 탑승한 채로 화면을 보고 있는 사령관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문질렀다.

"사, 사령관님.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이대로 가면 앞뒤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지금 당장 베른 방위군에 상황 설명하고 함선 선회시키게!"

사령관은 이내 자신의 자의로 함선의 위치를 반대로 바꾸었다. 다른 자코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베른 방위군과 대치하고 있던 모든 자코프들이 전부 위치를 바꾸었다. 그 포신을 반대로 향하게 만들어서.

'방위군이 설마 이 미친 상황에서 우리 뒤통수를 치겠는가. 내가 살다살다 기록에나 등장하는 저 외계인들을 직접 보게 되다니.'

사령관은 식은땀을 닦았다. 물론 이제는 외계인의 범주가 상당히 넓어졌지만 사실 연맹의 인류에게 그동안 외계인 하면 단 하나의 종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전부 다 워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워프해서 이곳으로 다가오는 함대의 모습은 이질적이고 신비로웠다. 사령관은 이 모든 상황을 지상에 보고하며 긴장을 유지한채 그들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카, 카사라스? 그 외계인들이 대체 왜..."

"그걸 우리가 알겠소?"

덕분에 지상에서도 날벼락이 떨어졌다. 기껏 목적 달성 직전에 방해를 받은 아레스 측 인사들도 그렇고, 위협 받던 반대 측 인사들도 좋아하기만 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 그들의 대표단이 지상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뭐 별다른 방법이 있겠소. 120년만에 다시 등장한 이들이오. 일단 이야기는 들어봐야지."

더구나 상대가 이쪽 사정을 봐줄리도 없었다. 결국 두 진영은 극적인 타협을 이루어내고 임시 휴전을 합의했다.

망가진 시설들을 치우고 회담장을 바꾸는 등 갑작스레 찾아 온 외계의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곳인가?"

그리고 그렇게 준비를 마친 직후. 연맹의 대표들이 자리한 새로운 의장 안으로 푸른 피부를 가진 큰 키의 누군가가 동족 몇을 이끌고 안으로 입성했다.

"너무나 급한 방문이라 혼란스럽소. 그쪽은..."

"급한 용무라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카르코스 슈네스. 너희 인간들에게 한가지 사실을 통보하기 위해 찾아왔다."

헛기침을 한 연맹의 의장이 최대한 정중하게 입을 열어 설명을 끝내기도 전에, 대표로 온 슈네스는 능숙한 인간의 언어와 함께 우아하게 손가락을 들어 그 말을 끊었다.

태도는 고압적이고 오만했다. 당연한 것이, 슈네스에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인간들은 별 볼일 없는 미물들이었을 뿐이었으니까.

"통보라니. 지금 120년만에 나타나서 무슨 소릴 하는거요."

"거짓말 말라. 너희들은 이미 알고 있다. '관측 불가능한' 장막 너머의 세상들에 대해서."

"...!"

슈네스는 발끈한 의장의 말에 반박했다. 정작 이 둘의 반응에 가장 놀란 것은 아레스 측 사람들이었다.

지금 슈네스가 말하는 관측 불가능하던 세상이 무엇을 언급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장막이 벗겨지고 법칙이 비틀렸다. 해당 사건은 우리가 조사할 것이니, 너희는 그 세상들에 관여하지 말라."

"...도저히 못들어주겠군. 난 일국의 외무부 장관이오. 근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다니까?!"

슈네스는 연맹의 세력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따위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사정을 모르고 있는 아레스를 제외한 연맹의 세력들은 극렬하게 반박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억울해 죽겠다는 그 반응에 어리둥절해 하는 슈네스를 보며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굴리던 아레스 측 대표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우린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소. 이미 해당 세상의 여러 세력들과 협정을 맺고 동맹을 맺었으며, 그들 역시 우리와 협력하길 바라오."

"...뭐라?"

그윽 말에 황금색으로 번쩍이던 슈네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른건 다 넘어가도, 감히 자신들의 제안을 거절할지는 몰랐으니까. 지금 굉장히 온건하게 의도를 전했다 생각하는 슈네스는 심기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하건데, 감히 우리를 아래로 대하며 통제하려 들지 마시오. 이제 우리 인류는 전과 다르오."

"너희의 조상들이 체결한 협정에 따르라 애송아. 너희는 우리의 권고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느니라!"

강력한 힘이 담긴 슈네스의 호통에 순간 돌풍이 일었다. 평범한 일반인인 현장의 대부분은 그 기세에 짓눌려 얼굴이 창백해지며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 세상이 변했다 이 파란 대머리 외계인아. 너희들의 권능, 고작 그정도인가? 이제 그 얕은 수작이 뭔지 우리도 안다."

그러나 아레스의 대표는 놀랐을지언정 억눌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의 곁에서 검푸른 마력을 일으켜 슈네스의 호통을 상쇄한 존재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형상력의 새로운 형태에 슈네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던건 고상한척 하는 네놈들도 마찬가지였어. 사령관. 전 함대를 동원해, 저 선민의식 가득한 외계인놈들을 쫓아내시오. 그리고 레테오 장군, 저 외계인을 제압하시오!"

"꽤 신기한 힘이군."

그의 곁에 서 있던 슈트 속에서, 검은 늑대인간이 히죽이더니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터져나온 검푸른 마력을 전신에 두르고, 검을 뽑아 그대로 휘둘렀다. 쏘아진 거대한 참격이 크게 당황한 슈네스를 향해 날아갔다.

황급히 둘러친 방어막에 틀어박힌 참격이 폭발하며 건물의 일부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

"사, 사령관님!"

"예상한 일이다. 전쟁, 전쟁이다! 전 함대 광선포 포격!"

지상에서 슈네스를 공격함과 동시에, 우주에서는 상부의 명령을 받은 요새급 함선 자코프들이 일제히 수많은 포신에서 응집한 화력을 카사라스의 함대를 향해 쏘아내었다.

자코프의 화력은 그들의 힘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전쟁을 상정하고 무장한 것도 아닌데다, 지금은 숫자도 딸렸다.

"저, 적함들이 격침되고 있습니다. 카사라스의 함선들이 저희의 포격으로..."

"우리가 성장한건 사실이니까."

사령관은 반파된채 황급히 물러서는 적 함대를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군인으로서 그는 다른건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단지 신경써야 할 것은 대놓고 선전포고를 때린 지금 이후로 벌어질 외계인들과의 대전쟁이었다.

"긴장 풀지 말고 계속 무장을 유지하라. 이제부터, 무슨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함장은 지상의 상황을 기다렸다. 이 상황에서 한가지 좋은것은, 지금 방위군이 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그들도 등을 돌린 자코프들을 향해 아무 액션이 없었다.

'이미 일은 터졌고, 선택지는 없어졌으니까. 이제 다같이 뭉쳐서 저 블루베리 외계인들과 싸우는 것 뿐이다.'

사령관은 딱히 신경도 안썼다. 다른 연맹의 세력들도 이제 누가 진짜 적인지 강제로 알게 되었으니까.

[챕터 10, 최종전에 진입한다]

그리고 이 순간. 어떤 이들은 갑작스레 떠오른 알림에 크게 당황했다.

"무슨 개소리지? 계속 9에서 멈춰있던게 왜? 우리가 아직 뭘 더 이룬것도 아닌데."

[설정된 특수 조건이 갑작스럽게 달성되었다. 미달자들 중 생존한 이들에 한해 플레이어 전원이 남은 챕터를 건너 뛰고 챕터 10에 진입한다]

지금 우주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터졌는지 그 사정을 모르고 있던 신우는 갑작스런 메시지에 당황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이유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일단은 세상의 흐름이 어느 정도 준비를 갖췄다는 뜻이지. 그동안 플레이어며 유닛들은 자유롭게 경쟁하고 발전해 왔으니, 그 성과를 선보일 기회라는 뜻이다. 물론 크게 다르지는 않을거다]

갑작스러운 급전개에 당황한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조자는 안내를 멈추지 않았다.

[모든 플레이어에게 시스템의 모든 기능을 개방함과 동시에 새로운 임무를 내리겠다]

"...좋아. 그게 뭔데."

[현재 유닛의 순위를 따져서 내리는 임무다. 이건 너에게만 보이며 다른 이들은 여전히 이브의 정체를 모른다]

[유닛명-이브: 현재 순위 1위]

"1위?"

그는 깜짝 놀라 눈을 꿈벅거렸다. 이브는 모든 유닛 중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1위를 달성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은 그 어떤 유닛도 유닛 단위로 여러 행성을 점령하지는 못했으니까.

[가진건 가능성 뿐이었던 일개 세포덩어리를 여기까지 키운 보상일 뿐이다]

"스스로 큰거지 뭐..."

[1위에게 내려지는 임무다. [정복], 말그대로 이 게임에 참여한 모든 유닛을 정복하는 것. 어쩌면 전과 별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잠깐 그런 다른 이들은."

[그 외 유닛에게 내려진 임무는 동일하게 [생존]이다. 정복자에게서, 때로는 다른 세력의 공격에서 살아남는게 목적이다. 당연히 정복자도 생존자도 중립 세력을 잘 이용하는게 필수겠지]

"대체, 대체 너희 진짜 의도가 뭐야?"

신우는 끝내 헛웃음을 터트렸다. 노골적으로 변한 게임의 태도를 보면 헛웃음이 안나올 수가 없었다.

관조자는 화면을 통해 그런 신우를 보며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 한창 흘러가고 있는 게임의 모델과 진행은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이 게임이 처음 만들어졌을때, 희생을 감수하는 불공정하면서도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설계되었고 그 흐름이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도록 계속해서 방향을 바꿔갔으니까.

단지 성공인줄 알았던 그 결과가 오히려 가장 최악이었고 결국 다른 이들이 사라져버린 설계자 대신 리셋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는 것. 그덕에 리셋 외에는 더 이상 한번 설계된 게임의 진행 방향을 수정하는건 불가능했다.

'가장 이상적인건, 모두가 서로의 힘을 온존한채 맞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그게 옳은 것인가?'

가면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대충 보면 거의 다 왔지만 실제로는 아직도 갈 길이 험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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