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95화 (195/254)

195화-진정한 군단(9)

"책임질 수 있소 라스. 전쟁이라는 말."

"물론. 하지만 내 의견이 지금 이 대회의를 통과한다면, 그것은 곧 모두의 책임이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동족들이 그 이후로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황금색 눈들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작은 계기일 뿐이다.'

화면을 흘끔거린 그는 이미 각오를 단단히 굳힌 참이었다. 어쩌면 오랜 세월 유지해온 종족의 기조를 바꿀 수도 있는 결정.

아니 더 나아가 종족 전체의 명운을 걸 결정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탐구자와 중립자의 위치를 자처해온지 오랜 시간이 지났소. 지금까지 관측된 모든 것은 우리의 손아귀 안에서 통제되고 있다고 믿었지. 인간연맹 마저도.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않소."

그는 적막속에서 동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지금 그가 하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원로들도 입을 다물고 듣기만 했다.

그들은 이미 엄청나게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 양은 인간연맹과도 비교가 불가능했다. 수많은 행성에 대한 데이터,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에 대한 데이터...그러나 그 데이터에 없던 곳이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 원인은 게임이었다.

"우리가 이 우주에 퍼져 있는 이질감을 눈치챈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우리는 실패만 반복했소. 그런데 지금 우리가 어쩌지 못하던 그 비밀이 밝혀지고 있잖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아까도 말했지만, 개입해야 하오. 그 비밀의 장막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 아니오. 그것이 우리의 의무요."

그가 눈을 번득였다. 그러자 시큰둥하게 반문한 원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들이 알아낸 것을 빼앗자는 것인가? 힘으로?"

"자만해선 안 될 것이오."

그는 원로의 말에 슬며시 웃으며 답했다. 모두가 웅성거렸다. 중요한건 나서냐 마냐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힘을 충분하다고 믿고 있는 그들은 이 우주의 다른 미물들에게 자신들이 밀린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라스 그대는 참으로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군. 그러나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니었는데."

"...그럴만하지."

자신을 태어난 순간부터 보아 온 원로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을 뜨게해준건 이 고리타분한 대회의나 다른 동족들이 아니었다. 바로 게임, 자신조차 어쩌지 못하는 규칙으로 얽혀들어 온 이 게임이 바로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였다.

"좋다. 그렇다면 라스 자네의 의견을 의제로 올리겠다. 과연 우리가 조상들과, 우리 스스로가 정한 금제를 깨고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곧 토론과 함께 투표가 이루어졌다. 모든 발언을 마친 라스는 얌전히 자리에 앉아 회의 결과를 지켜보았다.

이 투표 결과에 따라 여기 있는 카르코스들은 물론 억단위를 가뿐히 넘어가는 수많은 동족들의 의사가 자동으로 결정된다.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었지만, 라스는 어째 이 의제가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될 것 같다고 직감했다.

"...우리는 세한샤님의 뜻을 받들어, 먼 조상들 때부터 이 우주를 돌보고 감시하는 임무를 맡아왔지."

"그렇소."

"개인적으로는 이게 맞는건지 잘 모르겠군."

회의가 파했다. 그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날렸던 원로 중 한명이 그를 찾아왔다.

찬성 269표에 반대 68표로 라스가 제안한 적극적 개입론은 투표를 통과했다.

"타나스님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시오? 방법의 차이지, 이는 우리의 사명인 탐구와 감시를 위한 것이오."

"다른 것을 생각한 것 뿐이오."

원로는 길게 자란 거친 수염을 쓰다듬으며, 거칠게 주름진 푸른 피부 사이에서 전구마냥 빛나는 황금색 눈을 감았다.

"장막을 들추는게 우리의 사명...하지만 그 장막을 들추는게 과연 진정한 정의인가? 그 장막 뒤에 무엇이 있는지 두렵지 않은가?"

"이해할 수 없..."

원로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스치는 한가지 생각에 눈을 부릅떴다.

[게임의 목적은, 이미 여러번 말했지만 경쟁을 통해 강한 종족들을 키워내는 것이다]

마치 그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눈앞에 글자가 아른거렸다.

'말장난이다. 그렇다면 그 너머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설마, 우리의 신께선 이미 이 모든걸 알고 있었다던가.'

게임의 진정한 목적. 감히 그들도 엄두내지 못할 이 정체불명 초월적인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강한 유닛들, 혹은 그 유닛이 속한 세력을 키워내는 작용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렸으니 이제 그것을 투사해야 할 곳이 필요한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디에? 대체 게임은 승리자들을 뽑아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날카로운 추리지만 지금 당장은 일단 다른 것부터 생각하는게 현명할 것이다]

다 알고있다는 듯 반응하는 관조자는 그의 의식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물론 그렇게 되었다 해도, 라스는 계속해서 속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우선은 인간연맹과 맺은 협정에 따라, 그들에게 온건한 제안을 건네는게 먼저인듯 싶소."

"그게 맞지. 소규모 사절단을 파견해 그들에게 순순히 협조하라 합시다."

그들은 지금까지 별다른 움직임 없이 조용히 관망하여 지내왔으나 한번 방침이 정해지면 즉각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절대 복종하며 절대 거스를 수 없는게 그들 종족 카사라스의 특징이었다. 그덕에 움직임은 일사분란했다.

거대한 함선이 인원들을 태우고 부드럽게 지상을 이륙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달래는 것도 몇가지 가져가면, 인간연맹은 우리를 거스를 수 없을 것이오."

"슈네스. 당부하건데 부디 자만하지 마시오. 이미 장막에 접근해 그 비밀을 파악한 놈들은 분명 과거와 다르오."

라스는 사령함으로 쓰이는 커다란 함선에 탑승하는 자신의 동료에게 신신당부했다. 연맹은 이미 게임을 통해 얻어낸 정보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내 진실의 눈을 떴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즉 그들 카사라스와 협정을 맺을 당시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 차마 게임의 존재를 언급할 수도 믿게 만들 수도 없었던 라스는 이 오만한 동료에게 경고하는게 최선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인간놈들에게 해코지 당할 일은 없소."

동료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트리며 함선에 올랐고, 이내 함선은 워프가 가능한 고도까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니다. 나 스스로가 우리에 대해 잘 안다.차라리 한번 세게 얻어맞는게 앞으로의 일처리에 있어 더 나을 것이다.'

더 단단히 경고할 수 있었던 라스는 굳이 더 나서지 않았다.

지독히 오랜 평화. 그 부작용을 없애려면 자신의 동족에겐 극약처방이 필요하다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인간연맹과 싸우게 된다 해도 이제 압도적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

"막, 막아라!"

"이게 대체...으아악!"

연맹에게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우주 어딘가에서 사절단이 떠나던 그 시점.

정작 연맹 내부는 극도의 혼란과 충돌을 겪고 있었다.

이곳은 연맹에 속한 세력들의 의견을 취합하기 위한 연맹본부가 있는 행성 베른.

그러나 연맹의 최심부가, 그 어디보다도 중요하고 철통 같은 경비를 동반한 이곳이 지금 안과 밖에서 동시에 공격 당한 상태였다.

"이게...이게 무슨 짓이오. 아레스는 연맹을 배신할 셈인가!"

"그게 아니지. 오히려 우리 모두를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오."

정기 회의를 위해 모여든 각 세력의 대표들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사태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작 아레스 측 인물들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의장을 점거한채, 협조할 것을 강요했다.

'대체 뭐지? 저 괴물은!'

"당신이 두려운 모양이오."

선두에 있던 노인이 떨리는 눈으로 아레스 측 대표 옆에 서 있던 거체의 존재를 보았다. 그 눈길을 알아챈 아레스의 대표가 피식거렸다.

검 한자루 들고 단신으로 엄청난 움직임을 보이며 방위군을 궤멸시킨게 이 거한이었다. 곧 전신을 나노슈트로 덮고 있던 그 거한이, 헬멧을 내렸다.

"그래서, 임무는 끝인가?"

"그들이 순순히 협력해준다면. 뭐 인류 전체를 위한 일인데 당연히 동의하겠지만."

얼굴을 드러낸 거구의 정체는 검은 털을 두른 늑대의 얼굴이었다. 다른 이들은 이족보행하는 늑대가 검을 들고 방위군을 제압하며 사람말을 한다는 이 충격적인 광경에 할 말을 잃고 혼돈에 빠져 사색이 되었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이는 우리 인류, 아니 '신'인류 모두의 영광을 위한, 그리고 신연맹 탄생을 위한 일이니 잘 생각하시오."

가슴을 핀 아레스의 대표가 당연하다는 듯 선포했다.

점거당한건 회의장이 있는 이 건물만 그런게 아니었다. 우주에서도, 방위군은 아무것도 못하고 대치만 하고있는 실정이었다.

"요새급 함선 자코프...저게 실존하는 것이었다고?"

방위군 사령관이 화면을 보며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워프해서 쳐들어 온 아레스의 함대는 다름아닌 기존의 기함급과는 비교 불가능한 초거대 함선 자코프 6척으로 이루어진 대형 함대.

여차하는 순간 뿜어지는 화력으로 모든걸 쓸어버릴 수 있는 거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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