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진정한 군단(9)
"미리 설명들 들으셨겠지만 네벌리나들의 전사들은 특이한 힘을 다룹니다. 특히 그 중 몇은..."
'시끄럽게.'
하늘을 가로지르면서도, 우리 팀과 함께 하게 된 연맹의 장교는 입을 쉬지 않았다.
정작 나와 이브, 차지연을 비롯해 대부분의 팀원들은 딴 생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데려다 주는 곳에 가서, 싸우라는 놈들과 싸우라는거 아닌가?'
'그렇지.'
'제공권에 여차하면 우주함대전력도 있는 놈들이 왜 못이기는거야.'
이브는 연맹의 전투력을 비웃었다. 애초에 지금 이 상황을 깊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다.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연맹 내부의 정보를 얻기 위한 탐색이니까.
이브도 이렇게 얻는 경험과 정보가 쓸만하다 인정해서 이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다. 전쟁의 승패같은 것 보다는 우리가 원하는걸 얻어내는게 최우선이었다.
실제로 이브도 그렇고 나도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화면을 보며 다른 곳에 신경을 더 쓰고 있었다.
"좀 긴장되네."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그래야지. 가능하다면."
하지만 그게 아닌 사람들도 분명 있었다. 곁에 있던 차지연은 내내 표정이 굳어 있었으니까.
신경이 쓰이는건 맞았다. 특히나 이브가 관심을 가진 사람이기에 더더욱. 그녀는 분명 유닛으로 게임의 관계자인데, 그걸 뚫어낼 방법이 있다면 너무 사기스러운 것 아닌가?
"크, 큰일 났습니다!"
"그게 무슨...우와악!"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우리가 탑승했던 헬기가 크게 휘청했다.
당황한 내 시선에, 헬기를 스쳐지나가는 보라색 광선이 보였다. 마치 연맹의 함선이 쏘는 광선포처럼.
"저게 얘들이 못이기고 있는 이유인가?"
기울어진 기체덕에 내 품에 파묻힌 이브가 그걸 보고 웃었다.
"긴, 긴급 착륙 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요동치는 헬기가 다시 안정을 되찾는 일은 없었다. 우리와 함께하던 연맹의 장교는 황급히 통신기를 붇들고 무슨 일인지 말하라며 다그쳤다.
"이런 젠장...놈들의 기습적인 공격에 방어선이 뚫린 모양입니다."
그러고 나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전하는 말은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헬기는 포격을 피하느라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그럼 그냥 착륙하라고! 헬기째로 터지고 싶나!"
결국 참다 못한 헌터 중 누군가가 소리쳤고, 장교는 그 의견을 받아들여 헬기의 고도를 낮추게 만들었다.
'뭐 배울게 있다면 좋겠네.'
남들 다 아우성인데 이브만 혼자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브의 생각엔 오직 뭔가 얻을게 있느냐 없느냐일 뿐.
당장 지구에 와서도 헌터들의 이능에 대해 연구하고 흥미를 가지다가 본인이 쓸 수 없는 힘인걸 알고 바로 관심을 끊어버렸었다.
"충돌합니다!"
결국 어디 한군데 문제를 일으킨 헬기가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들리는 폭음과 함께, 우리는 황토색 땅에 그대로 쳐박혔다.
"어차피 다들 멀쩡하잖아?"
이번에도 이브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브는 땅바닥에 옆으로 누운 헬기의 문을 주먹으로 쳐 그대로 날려버리고 훌쩍 몸을 날려 밖으로 나갔다.
"위, 위험...지금 여기 아군의 포격이 이어지는 적진 한복판..."
코피흘리던 장교가 힘겹게 말을 꺼낸게 그때였다. 옆으로 매달려서는 몸을 고정하던 벨트를 풀어내린 내게도 달려오는 것 같은 쿵쿵거리는 진동이 감지되었다.
"...이브?"
진동은 지금 우리가 있는 헬기 바로 앞에서 멈췄다. 지금 이브가 올라타 있는 이 헬기 앞에서.
'배울점, 있나? 군단에 도움이 될만한 점이.'
그 직후, 검을 빼든 이브가 전투를 벌이는 소음이 들려왔다. 나는 최대한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이런."
장교의 말대로 떨어진 위치가 좋지 않았다. 건조한 흙이 깔린 황토색 평야 앞에서 수많은 거인들이 괴성을 지르며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도 전쟁이지. 나는 이제 이런것도 놓치지 않아. 이것도 전부 데이터고, 우리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내가 도우러 달려가기 직전까지 이브는 날폭만 사람 얼굴만한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거인과 단신으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전투가 아니었다. 이브는 판단을 내리기 위해 지금 몸을 움직임과 동시에, 막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뭐 아는게 없는 연맹 놈들이 이런걸 알아보려 했을까? 동맹까지 맺은 주제에 용병으로 부릴 생각만 하지 알아볼 생각은 안하겠지.'
"그래서, 네 판단은 뭔데."
이브와 함께 거인의 공격을 쳐냈다. 이 거인은 내가 난입한게 기분이 나빴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검을 더 높이 치켜들었다.
'이들도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형상력을 사용해. 알아볼 가치는 충분하지.'
히죽 웃은 이브의 검에 크게 베인 거인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능숙하게 대검을 다루던 이 거인도 이런 싸움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알아보는건 좀 나중에 해야겠는데."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파직거리는 거대한 스파크가 허공에 뭉쳐들었다. 그 중심에 있는건 이미 번쩍이는 전격을 몸에 두른 차지연.
그녀가 뻗은 손에서 뿜어진 전격이 달려오던 거인들을 향해 뿌려졌다.
*
"무슨 문제 있나?"
"...왜 왔느냐."
"회의가 소집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왔지."
그는 회의라는 말에 보고 있던 화면에서 눈을 떼었다. 자신의 동료는,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 그 의제인가?"
"그렇다. 인간들에 대해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 처럼 보이는 동료는 순순히 긍정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전우주적 비밀. 심지어 인간세력은 연맹이나 반군들도 아는 그 비밀을, 위대한 그의 종족들 중 아는 것은 이제 오직 그뿐이었다.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다. 감히 주제 모르고 자신의 동족들을 유닛으로 삼은 지구인을 초장에 죽여 없애버리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날 이후, 그의 종족은 지금 우주를 달구고 있는 흐름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건지, 인간놈들이 보이지 않던 장막을 들추고 숨겨져 있던 수많은 세상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우연이겠지. 그들도 바보가 아니다. 사고를 확장하는건 당연해."
"글쎄. 다른 카르코스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는 것 같은데."
그의 말에 동료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동족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카르코스라 불리는 지도층 소수의 혈통에 의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단결한다.
그리고 그 의사결정은 늘 다수의 의견을 따르기에 설득하는데 실패하면 강제적으로 따라야 했다.
[때가 된거라고 생각하진 않나?]
그의 눈앞에 글자가 아른거렸다. 때라는 말에, 유독 그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먼저 갈테니 따라 나오길."
동료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시선은 다시 화면으로 향했다.
남들은 볼 수 없는 화면으로. 화면 속에서는, 지금 싸우고 있는 자신의 유닛이 보였다.
푸른 전격을 전신에 두르고 연보라색 피부의 거인들을 상대로 싸우는 인간 여인의 모습이.
'나는 애초부터, 구조적으로 승리가 불가능했던가?'
하지만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그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활동하면서도 유닛을 거의 잃지 않았지만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결국 게임의 목적은 압도적인 강자가 되어 승리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엄연한 현실이었고, 게임 시스템 자체도 진짜 게임처럼 현실의 벽을 갈아엎을 정도가 아니었다.
[실망할 필요가 없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애초부터 결말이 정해져 있던 쓰레기 같은 시스템이었다."
[변수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왜 굳이 유닛간 승리에 집중하지? 전쟁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맨 처음 다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건 너다]
그는 눈앞에 떠오르는 글자들을 보고 발끈했으나 이내 입을 다물었다. 승리의 방법. 그게 오직 유닛에게만 달려 있던가?
"당장 인간놈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설마하니, 나보고 그놈들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절박하지도 않은 자에게 자비를 주지 않는다]
지금껏 냉정을 잃지 않던 그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사실상 게임은 각 세력들을 경쟁붙이고 만나게 하거나 강해지게 하는등으로 주어진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불이 옮겨 붙은건 게임을 이용해 급격히 몸을 불린 대형 세력들의 충돌이었다.
[종막이다.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오만!"
그는 회의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일어나서 그렇게 발언했다. 수백에 달하는 모두가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하, 하지만 우리는 직전까지 인간들의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무슨 짓을 해도 들추는게 불가능했던 장막이 놈들의 손에 벗겨지고 있소. 그들이 가진 탐욕과 호전성을 생각하면 뒤처질 수 없소."
그는 오랜 시간 단조로운 평화만 누려 온 동족들을 강하게 설득했다. 마침 현재의 카르코스들은 원로들은 줄어들고 그와 같은 다소 젊은 이들이 늘어난 상태.
격렬한 주장에 반응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쩝니까."
"전쟁. 감수해야지. 언제까지 흐름을 관망하기만 할 셈이오."
누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전쟁. 그건 오히려 그가 바라는 일이었다.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한.
그동안 게임의 진행을 지켜보며 영향을 끼친건 그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경우와 상황을 지켜보며, 그 역시 강력한 영향을 받은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