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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86화 (186/254)

186화-진정한 군단(1)

'그놈, 우두머리인 그 산양의 해골을 잡는게 아니면 이렇게 싸우는건 의미가 없어.'

군단병들과 함께 싸우던 강도연은 어느새 사라진 아스랄드를 찾았다. 승기는 완전히 잡았지만, 어차피 지금 죽이는건 흙과 마력으로 만든 언데드에 불과하니까.

'...끝난건가?'

하지만 미처 아스랄드를 찾아다니기 전에 해골들이 일제히 한줌 먼지로 변하며 전투가 끝나버렸다.

그나마 살아남은 고블린들도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쳐버린 탓에, 이 지역을 장악한 고블린들의 중심이던 요새는 반파된 채 한나절만에 점령당했다.

"이긴거지?"

가면을 벗은 오윤아가 다가왔다. 강도연은 마찬가지로 가면을 벗었으나, 말 없이 하늘만 보고 있었다.

'일단 그곳에서 철수해. 도망친 고블린들보다 방금 죽인 놈들이 더 많으니, 일단 목적은 달성한 셈이니까.'

곧 그녀가 기다리던 상위개체의 명령이 떨어졌다. 동시에 망부석처럼 굳었던 군단병들도 새로운 명령어를 받고 하나 둘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해골바가지, 살려보냈잖아. 분명 걸림돌이 될거야."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만만한 놈은 절대 아니야."

강도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경험이 없는건 절대 아니었다. 심지어 단신으로 수백미터짜리 함선과 싸운게 그녀였다.

하지만 우주는 넓고 너무나 다양한 적들이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그녀 스스로 판단하건데, 고위 마족 언데드 왕 아스랄드는 손에 꼽을만한 강적이었다.

"...어서 가자. 배고파."

그녀는 초대형종 위에 털썩 내려앉았다. 공복따위 느끼지 않는 만능의 몸이지만, 양분이 떨어지면 몸이 무거워지고 둔해진다.

*

"명령어로 움직이는 군단병은 총 103,467마리의 개체 중 75,364개체가 사망했고 자체 동력으로 움직이는 개체들은 상위종 포함 1,268 개체중 896개체가 생존했다."

'미약하나마 두뇌와 자아를 가진 개체들이 생존율이 높군. 이건 당연한건가?'

"장단점이 모두 있다는 것이지. 이 높은 생존률이 과연 즉각적이고 변칙적인 임기응변의 결과인지, 아니면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인지."

리하르트가 계산한 보고서에는 흥미로운 점들이 있었다. 가령 한창 실험해보고 있는 일부 군단병들의 성장기라던가.

"물론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닐 것 같은데? 목표로 했던 고블린들의 본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적어도 십만마리 이상을 학살하여 놈들의 힘을 빼놓는데는 성공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딱히 새로운 변수는 아니야.'

나는 리하르트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갑자기 나타난 강력한 해골바가지를 맞이하는게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내가 이브를 처음으로 이곳에 불러냈을 때. 그때도 분명 갑자기 나타난 해골이 있었다.

"관측된 힘만이 전부가 아닐텐데, 계획을 바꿀 생각은 없는건가?"

'저항이 있을거라는건 예상했잖아. 그정도면 예상 범주 안이야. 계획은 그대로 간다.'

"좋다. 그럼 앞으로 양산하는 군단병들은 모두 새롭게 설계한 이들에 집중하겠다."

나는 통솔형 서브마인드 리하르트를 시켜 계획을 강행했다. 그리 거창한 계획은 아니었다. 이번에 소모된 군단병들을 보충하여,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는 심플한 계획이었다.

이제 이 지역에서 패권을 가지고 있던 고블린들을 몰아냈으니, 이 일대를 완전히 먹어치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남쪽에 주둔중인 지구인들도 밀어내야 한다."

'어쩔 수 없지. 우리가 나가달라고 정중히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입맛이 썼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한쪽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가 협공당할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어차피 지구인들은 이곳에서 떠나보내야 했으니까.

'계획대로 병력을 파견해. 장비 파괴에 더 중점을 두고서.'

"그렇다면 미리 정한대로, 1번대 비틀과 2번대 쌍두지룡, 4번대 스팅레이로 조합된 군단을 파견하겠다."

리하르트는 단번에 대기하던 수많은 병력을 움직였다. 이브보다 확연히 떨어지는 연산능력과 의식조작 능력으로 이정도의 효율을 낼 수 있는건 순전히 그가 새롭게 설계하고 정립한 시스템 덕분.

마치 컴퓨터를 연상시키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브가 탐을 낼 정도의 그 시스템 덕분에 군단병들은 순식간에 둥지를 빠져나가 땅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지상 돌격대를 뜻하는 1번대의 비틀은 이미 연맹의 용병들을 상대로 그 효율성을 증명했다.

거기에 추가된 지상 포격대를 뜻하는 2번대의 쌍두지룡은 기존에 군단에서 운용하던 지룡의 유전자를 이용한 2톤 트럭 크기의, 머리를 두개로 늘려 화력을 두배로 늘린 포격형 군단병.

비행 강습대를 뜻하는 4번대의 스팅레이는 깃털 날개 대신 부유장치를 넣고, 가오리를 닮은 생김새에 날카로운 독침과 거미를 닯은 6개의 다리로 적을 꿰뚫어 죽이는 비행종이었다.

'지구연합군엔 수호자 연합 출신의 헌터들이 있을텐데, 양산형들만으로 괜찮을지?'

"정보에 따르면 주둔군은 고작 1만명. 지금 몰려가는 군단병들은 60만 마리가 넘어가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하긴 그렇겠네.'

제아무리 S급 헌터라도 하루 종일 싸울 수는 없다. 애초에 우주에서 증명했듯, 체력과 에너지에 한계가 존재하는 강자의 약점은 바로 압도적인 물량.

리하르트가 알아보고 체계를 잡으며 발전시키기 시작한 군단의 생산력이 터져나오며, 그 물량이 지금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마계의 땅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당분간 쉬고 있어. 그 해골, 분명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테니.'

"오빠는 지금 뭐 하는데?"

'나? 지금 함선에 타는 중.'

잠시 의식을 옮긴 나는 분주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우리는 이동준비가 한참이었다.

이브는 곁에서 차지연과 뭔가 이야기 중이었다. 요즘 며칠 사이에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둘 사이가 나름 가까워진 것 같았다.

"괜찮은거지?"

'전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네 걱정을 먼저 하는게 좋아.'

나는 요추에 촉수를 꽂고 양분을 보충하는 동생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설령 지금 내가 있는 함선이 파괴된다 하더라도 나는 죽지 않으니까.

"...요즘 내 성장이 정체된 것 같아."

'진심이야?'

"경험이 부족해서."

고개를 떨군 강도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살짝 당황한 나는 객관적으로 따져봤다. 우리 남매가 이 게임에 휘말린지 10개월. 그 10달 사이에 강도연은 평범한 여고생에서 지금 어떤 존재가 되었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인데."

'그럼 지금 네가 원하는 것은.'

"더 강해지기 위해서, 나는 더 싸우길 원해.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야."

'...'

강도연은 결심을 굳혔다는 듯 눈에 흔들림이 없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저 애는 분명 나의 친동생이고 가족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인간이 아니니, 인간의 사고방식에 묶인다면 마이너스 요소가 될 것이다.

죽어도 어지간하면 되살리는게 가능하니 괜찮다? 아무리 그래도 친동생을 사지로 내모는데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굳이 걱정 안해도 돼. 나도 현재 무리에서 가장 강한 특수종을 묵힐 생각은 없으니까.'

나는 자신을 동생으로 대할까봐 걱정하는 동생을 안심시켰다. 우리는 이미 선을 넘은지 오래다. 끝을 볼때까지 진화하고 성장하는게 유일한 해답이라고...생각했다.

"그렇다고 너무 함부로 다루는건 별로일걸."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마계를 살피던 내 의식을 되돌린건 이브의 속삭임이었다.

분명 차지연과 함께 있던 이브는 어느새 의자에 기대듯 몸을 걸쳐 둔 내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차지연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만 보였다.

"차지연은 잠깐 볼일이 있다며 갔어. 근데 관측한 생체 리듬을 보면 화장실이야."

'말 그대로야.'

이브의 목소리가 육성과 군체의식을 통해 동시에 들렸다. 저정도로 극단적인 멀티태스킹은 불가능한 나는 못하는 이브의 잔재주 중 하나였다.

'서브마인드의 장점은 우리가...아니 내가 갖지 못한것을 갖고 있는 이들을 군단의 전력으로 부릴 수 있다는 점이지. 특히 분노, 증오, 탐욕, 허무 등등의 강렬한 열망을 바탕으로.'

'그게 내 동생과 무슨 상관인데? 그 애는 초대 서브마인드이긴 하지만, 아직 어린애에 불과해.'

'과연 그럴까.'

이브가 히죽 웃었다. 동생과 관련된 일이기에 나는 섣불리 말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브는 때때로, 인간 출신인 나보다 더 인간에 대해 잘 알기도 했다.

'강도연이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린다는건 곧 서브마인드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니, 신경은 계속 써주는게 좋아.'

'...그럴 일은 없어.'

나는 그제서야 이브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고개를 저었다. 강도연은, 내 동생은 절대 자신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하긴 아직은 먼 이야기긴 해. 하지만 나는 이미 수십년 앞을 내다보고 차기 서브마인드 수급 계획도 다 짜놨다고. 레이나든, 리암이든 결국 언젠가는 변질될게 뻔하거든. 그건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사실이야.'

'그렇게 따지면 나도 변할걸.'

'맞아. 난 상관없지만. 왜냐하면 그 변함이, 분명 우리에게 이득이 될것이기 때문에.'

저 멀리서 차지연이 걸어오는게 보였다. 남들이 보기엔 이상할, 서로 한마디도 없는 눈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할일이 산더미인 상황에서 과제 하나를 더 받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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