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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84화 (184/254)

184화-새로운 질서(9)

[이건, 이건 말도 안돼! 이건!]

"끄아.."

고블린 왕도, 그들의 플레이어도 경악했다.

몰려오는 괴물군단의 최선두. 초대형종의 머리 위에 서서 이곳을 향해 눈을 번득이고 있는 검은 날개.

분명 척살권에 맞아 사망했던 존재가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물론 척살권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충격을 받은건 다르지 않았다.

'전부. 전부 죽인다. 전부.'

반면 강도연은 수십만 고블린들의 살아가는 놈들의 본진을 보며 더욱더 분노를 태웠다. 그동안 그녀의 싸움에는 어딘가 공허함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원수인 마족들과 싸울때와는 달랐다.

그녀는 진심을 담해 적들을 죽였다. 이번에도, 강도연은 디디고 서 있던 초대형종의 머리에서 하늘로 떠 올랐다.

'전군 돌격.'

그 순간 군단병 전체가 점차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땅을 쿵쿵 울리며, 커다랗고 단단한 망치머리를 전방으로 겨눈 초대형종들을 앞세운 군세가 기겁한 고블린들이 허겁지겁 모여든 요새로 내달렸다.

"방어 마법! 방어 마법을!"

기겁한 고블린 마법사들이 모여들어 이곳으로 돌진하는 군세를 막아내기 위해 자신들의 주특기인 집단마법을 시전했다.

요새 전체를 감싸는 푸르른 방어막이 겹겹이 쌓이기 시작했다.

"지원! 지원이 반드시 올거다!"

놈들 중 하나가 절박하게 외쳤다. 지능이 높아지며 상상력도 풍부해지고, 상상력이 풍부해진만큼 다양한 움직임과 행동이 가능했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건 아니었다. 놈들 중 상당수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군단에 대한 소문은 물론 혹시라도 방어진이 깨지면 어떡하지, 요새가 함락하면 어떡하지 하는 지나친 상상들은 곧 걱정이 되었고 그 걱정은 바로 두려움으로 치환되었다.

"바, 방어막이 흔들린다!"

"뭣들하는거냐! 집중해!"

두려움은 겉으로도 들어났다. 그들이 펼친 방어막이 흔들리는 사이, 눈을 번득인 강도연은 밑에서 함께 달리는 군단병들도 쫓아오지 못할 최대 출력으로 요새를 향해 돌진했다.

'부순다.'

그녀의 몸 속은 물론, 외부의 날개 나 가슴, 팔다리 등에 달린 동력기관이 공명하며 거대한 에너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검붉은 불길이 타오르는 날개를 어느 순간 몸에 휘감은 그녀는 이전, 대형 전함들의 베리어를 부술 때처럼 몸을 회전시켰다.

"캬학..."

"끼에엑!"

순간 음속을 돌파한 충격파가 터지며 집단마법으로 시전한 베리어는 단숨에 박살나며, 한발의 포탄이 되어 바닥에 내리꽂은 그녀를 중심으로 땅이 터져나가며 뒤흔들렸다.

묵직한 석재 구조물들도 하늘을 나는데, 자그마한 고블린들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단체로 이 충격에 휘말려 날아가거나, 터져나가는 이들만 수백마리였다.

이미 마계에서도 몇번이나 선보인 그녀만의 오리지널 기술인 이 기술에 제대로 대응한 이들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다.

"요새의 방어가..."

중심부의 탑에서 이 모든걸 지켜보던 고블린 왕은 그녀가 단신으로 부숴버린 요새의 방어에 넋을 잃고 주저앉았다.

홀로 난입한 강도연을 협공해서 잡아낸다는 선택지는 선택이 불가능했다.

충격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주변 고블린들이 다시 자세를 잡는 것보다, 그녀의 뒤를 뒤이어 쫓아온 상위종들이 난입하고 군단의 초대형종들이 무력화되고 무너진 성벽의 잔해를 들이 받고 부숴버리는게 더 빨랐다.

"지원, 제발 지원을!"

"보채지 말라. 지금 보냈으니."

고블린 왕은 수정구에 간절히 매달렸다.

순탄하게 발전해가던 고블린들의 중심도시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빠져버렸다. 난입한 군단병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저항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살육뿐. 특히 유닛인 산고블린들은 단 하나도 남겨두지 말고 죽이라는 명령이었다.

방어선은 단숨에 무너졌고 도저히 강도연을 막을 수 없던 고블린들은 제대로 된 저항이 불가능했다.

[다차원연합에 대해 마탑 상부에 보고할테니, 아니 우리 행성의 좌표를 알려줄테니 제발 구원해달라고 해라!]

"으어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플레이어 역시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해서 도움을 구걸했다.

칼타스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마계 연합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을 다차원연합에 엮어넣는건 그가 바라고 의도한 일이었으니까.

이곳 마계에서는 으름장을 놓는 신적인 존재였던 플레이어들이 일개 세상의 주민이 되어 버린다면 연합의 힘은 커지면서도 마계에서는 칼타스 본인의 입지가 급상승함을 노린 고도의 정치적 술수였다.

"그대들의 저항이 워낙 빈약해 방어가 단숨에 뚫려버렸지만, 그래도 목숨을 구하는데는 충분할 것이다."

칼타스는 현장에 가까워지고 있는 언데드 왕 아스랄드의 위치를 확인하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놈들은 괴물이다..."

고블린 왕은 탑 아래를 내려다 보며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어진을 단숨에 부수고 도시 내부로 난입한 괴물들은 저항하는 고블린들 역시 학살하고 있었다. 오직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끔찍한 괴물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기계 같은 살육을 반복했다.

게다가 고블린들은 애초에 상성도 좋지 않았다.

개개인의 무력이 약한 대신 집단적인 움직임을 장점으로 삼던 고블린들은 훨씬 많은 숫자를 가지고도 압도적인 힘으로 파고들어 날뛰는 강도연과 오윤아등 상위종들을 막지 못했다.

상위종들에 의해 대응이 늦어지고, 그틈을 다른 군단병들이 휩쓸며 짓밟는 식이었다.

*

"쏴! 쏴라!"

요새의 한구석, 겨우겨우 뭉친 고블린 마법사들이 합동 마법을 쏘아내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기어서 그들에게 달려들던 거대한 거미가 독니를 드러내고 딱딱거리다 쏘아진 불길에 그대로 타죽었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 여기서 사방 어딜 보아도 다양한 괴물들에게 학살당하는 동족들 뿐이었다.

"어, 어서 다른 녀석들과 합류해야한다!"

놈들 중 하나가 두려움 여실한 눈으로 동족들을 잡아끌었다. 놈들이 그렇게 서둘러 이동하려던 그 순간.

"땅이!"

근처의 땅이 뒤흔들렸다. 무언가가 땅 속에서 다가오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우아악!"

곧 땅이 펑 하고 터져나가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덤프에 맞먹는 거대한 몸, 땅을 파는데 쓰이는 억센 두 팔과 근육질의 상체, 뱀처럼 유연하고 길쭉한 하체 등.

마계땅강아지를 베이스로 탄생한 단단하고 두꺼운 머리갑각을 가진 대형 군단병이 놈들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키, 키이..."

고블린들은 본능적으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대형종의 군단병이 다른 괴물들에 비해 어딘가 다르다는걸 깨달았다.

"이놈, 왜 이러지?!"

뒷걸음질 치던 한놈이 흔들리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고블린들이 알아챌 정도로,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군단병은 분노하고 있었다.

이 대형종은 본래 유닛인 산고블린들에게 사냥당해 노예로 부려지던 붉은 피부의 고블린으로, 군단에 합류한 이후 그 어떤 은총도 받지 못한 일개 고블린에서 여기까지 성장한 최초의 존재였다.

동시에 대형종 군단병들 중 유일하게 뇌라는 기관을 가지고 있는 존재기도 했다.

"히이! 온다!"

자신들을 내리치려는 번쩍 쳐들어진 손에, 기겁한 고블린들은 서둘러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나 톤단위의 위력을 가진 억센 공격에 방어막은 깨져버리고 고블린 마법사들은 날카로운 손톱에 무참하게 찢기고 터져나갔다.

분노, 그리고 희열. 싸움을 통해 감정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는 이 존재는 손에 묻은 고블린들의 피에 만족하며 다른 목표물을 향해 움직였다. 한번 느낀 이것을 더, 더 많이 느끼고 싶었다.

"우, 우리가 진다. 놈들이 너무 강하다."

그렇게 지상이 짓밟히고 있는 사이. 탑에 있던 고블린 왕은 지상에서 일방적으로 당하듯 쓸려가는 부하들의 모습에 덜덜 떨었다.

지금은 플레이어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나마 있던 골드도 척살권을 사느라 다 써버렸으니까.

"이대로 간다면...으아악!"

그때, 놈을 향해 허공을 뒤덮었던 비행종 하나가 달려늘었다. 유연한 독침꼬리를 가지고 있는 이 비행종은 단숨에 꼬리를 뻗으며 독침을 내질렀다.

"이건!"

그러나 비행종의 독침이 놈의 몸을 꿰뚫기 전. 날아든 검은 광선이 단숨에 비행종의 몸 절반을 파괴했다.

고블린 왕도, 플레이어도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어느새 이 탑에 내려앉은 아스랄드가 지팡이를 들고 서 있었다.

[신기하긴 하군. 바닥을 기던 하찮은 생물이 번듯한 망토를 두르고 왕관까지 쓰고 있다니]

"히, 히끅..."

고블린 왕은 자신을 직시하는 눈구멍에서 타오르는 푸른 안광에 숨을 들이켰다. 유전자에 새겨진, 강한 마족에 대한 경계심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흥미롭긴 하지만 일단 저리 비켜라. 난 네놈들보다 저놈들에게 관심이 더 많으니]

아스랄드는 자기 다리 사이즈밖에 안오는 고블린 왕을 툭 밀치고는 탑 가장자리로 향했다.

군단병들을 보는 그의 눈이 반짝였다.

[놈들은 특별하다. 겉모습은 전혀 다르지만 그 내면은 똑같다 마치...마치 같은 존재인 것 처럼]

지팡이를 든 그가 하늘에 쳐들고 자신의 마력을 폭발시켰다.

[하지만 몇몇은 다르다. 분명 자신만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뭐 그런건 천천히 알게 되겠지]

곧 이 거대한 요새 상공에 음울한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득한 죽음의 기운을 머금은 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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