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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83화 (183/254)

183화-새로운 질서(8)

"급히 볼 일이 있다고 해서 말이오."

한때 상당한 규모의 우주세력이었던 반군연합의 대총통,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세상을 파먹는 우주괴물들에 맞서기 위해 새롭게 신설된 다차원연합의 일원인 미하일은 늦은 시각 급히 연락을 받고 이곳에 왔다.

"그렇다고 합니다 각하. 최근 마계에 나타난 카테고리 Z에 대한 일에 대해서라고 합니다."

"이상하군. 조금 지켜보겠다더니?"

미하일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렉스를 향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눈빛에 렉스의 몸이 움찔거렸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전해라."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칼타스는 비슷한 구도로, 렉스의 유닛인 놀들의 왕에게 말하고 있었다.

유닛과 플레이어의 실시간 소통 권능을 이용해 그들은 세상의 간극을 뛰어넘고 소통하는 중이었다.

"상황이 바뀌었다라..."

"당신네들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별 생각 없었소. 말 그대로 단순한 괴물들인줄 알았거든. 오직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그런 괴물들."

"틀리지 않을텐데? 놈들은 상식과 말이 통하지않는 괴물들이오. 오직 살육과 파괴만을 일삼소. 지나간 자리에는 그 어떤 생명도 없이 오직 끔찍한 둥지만 남지."

미하일은 칼타스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상대가 상당히 지능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 지능이 소통과 교류에 쓰이지 않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으니까.

"글쎄. 적어도 내가 본 놈들은 달랐다. 분노, 그것도 아주 강렬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지."

미하일의 말을 듣고 작게 한숨 쉰 칼타스의 뇌리에는 여전히 수정구 너머로 보이는 강도연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녀에 대한 사정을 모르는 그는 당연히 그 분노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 엮인 짙은 원한을 기반으로한 그 분노는, 지금까지 이브가 전략적으로 이용한 분노라는 감정과는 그 궤를 달리하기에 더더욱.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의장? 나로서는, 그놈들이 감정을 가진다 해도 딱히 달라질게 없을 것 같소만."

"당연히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칼타스는 미하일에게 아주 단단히 경고했다. 그 근거는 자신과, 미하일의 근본적인 차이였다.

태생적으로 형상력이라는 미지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존재와 그렇지 못한 존재라는 차이. 안그래도 그런 점들이 신경쓰이던 미하일의 미간이 자연스레 꿈틀거렸다.

"강렬한 감정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곧 스스로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당신은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마력이나 마력과 비슷한 힘을 가진 존재라면 그것이 바로 한계를 넘어 초월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급히 통신을 연결해 이야기 나눈 그 결론은."

"훗날을 대비하여, 연합의 체계를 더 단단히 만드는게 좋겠군. 저 괴물들의 성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모르는 이상."

칼타스는 연합의 강화를 주문했다. 군단의 마계침공이라는 우주 전체로 보면 아주 작은 변수 하나에서 시작한 변화가 여기까지 도달했다.

물론 세상일 대다수가 아주 작은 변수부터 커다란 흐름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지만 연합의 강화, 적어도 이 가능성은 지금 처음으로 태동한 것이었다.

미하일은 입을 달싹였다. 미하일의 결정에 수많은 세상의, 그리고 그 세상들의 주민들을 혼란으로 밀어넣은 게임의 결말마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미하일은 절대 알지 못했다.

"고려해 보겠소."

미하일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전하던 렉스는 속으로 탄식했다. 렉스는 미하일의 야망을 알고 있기에 더욱 놀랐으니까.

권력욕의 화신인 미하일에게 다차원연합도 결국은 자신의 권력을, 훗날 있을 연맹과의 전쟁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연맹이 아닌 괴물들과 맞서야 한다는 칼타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이었다.

"방위사령관. 자네는 그 괴물들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나."

"가, 각하?"

"나는 그놈들이 단순한 괴물들이 아닌 또 하나의 외계인이 되겠다는거면 용납할 수 없거든. 통일전쟁이 2배로 길어진다는 것 아닌가."

이내 통신을 종료한 렉스는 피식거리는 그의 모습에 당황했으나 미하일은 개의치 않고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는 여전히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군벌세력을 모조리 숙청했듯 언젠가는 연맹까지 자신이 집어 삼킬 야망을.

"이제 지하로 가지."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건 칼타스도 마찬가지였다. 훌륭한 통신기 노릇을 해준 놀에게 축객령을 내린 칼타스는 방을 나와 다시 성의 지하로 향했다.

"의장님. 지하로 가신다는건 역시 그분들을."

"굳이 지금 상황에 깨울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지."

집사의 말에 칼타스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들이 향하는 마왕성의 지하.

이곳에 자리한 넓은 시설은 일종의 봉인지였다.

마계 전체에 내려진 저주는 이세계 요정의 힘으로 가볍게 해제되었지만, 봉인 당시 잠든 모든 고위마족들이 깨어난건 아니었다.

칼타스는 초기에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마수의 왕 가르틴을 깨운 이후로는 고의로 자신의 동족이기도한 그들을 깨우지 않았다. 어차피 유닛을 주축으로 삼은 새로운 세력이 마계 대다수를 점거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유닛과 플레이어들을 설득해 마계 연합을 구성한 칼타스는 굳이 충돌만 일으킬 가능성을 생각해 그들을 봉인된 상태로 내버려 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좀 바뀌었다. 지구와의 싸움도 질척하게 끌리는데 연맹이라는 지원군까지 도착했다. 거기다 정체불명의 외계괴물들까지.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어떤 분을 깨우실 생각이신지."

"아스랄드."

그는 봉인지 한쪽에 세워져 있는 뼈로 된 깃발 앞에 가서 섰다. 해골의 왕 아스랄드. 칼타스는 그 이름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무례한 놈이지만, 놈이라면 능히 단신으로 그 괴물군단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손을 튕겨 자신의 마력을 일으켰다. 저주가 풀린 이상 봉인을 깨는건 식은죽 먹기였다.

"...!"

집사가 흠칫했다. 칼타스가 손을 튕긴 직후 땅이 움찔거렸다. 곧, 들썩이던 땅 밑에서 번쩍 튀어나온 것은 새하얀 백골의 손이었다.

"늦장 그만 부리고 일어나라."

칼타스는 꿈틀거리는 그 손을 발로 툭 건드렸다. 그 순간, 펑 하고 터진 땅에서 2m가 넘어가는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의외로군]

소리로 공기를 진동시키는 것이 아닌, 긁는 듯한 음성이 뇌리에 울리며 푸른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거대한 뿔을 단 채, 이렇게 푸른 안광을 빛내는 이 산양의 두개골은 해골임에도 마치 웃는 것 같이 입을 벌렸다.

[늙은이, 당신이 날 깨울 줄이야]

"예의 없는건 여전하구나."

칼타스는 이 거대한 해골이 검은 천으로 몸을 로브처럼 두르는걸 지켜보며 혀를찼다.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계의 위기니, 가서 적들을 처리하라."

[이해는 했다. 하지만 음흉한 속내는 여전하군.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있지만, 결국 다른 이들을 지금까지 깨우지 않은건 꿍꿍이가 있는게 맞지 않는가]

칼타스는 방금 봉인에서 깨어난 아스랄드에게 대강의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게임, 전쟁, 괴물등등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그러나 돌아온건 비웃음이었다.

"시끄럽다."

[마계 연합이니 어쩌니 해도 암. 천것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이방인들이 마음에 들리가 없지. 언젠가는 모두를 깨워, 다시 한번 마계를 되찾으려는 것 아닌가]

"틀리지 않다만, 나는 더 급한 일들부터 처리한다."

[어려울 것 있겠는가]

웃음을 터트린 아스랄드가, 손을 뻗어 자신의 봉인에 매개가 된 깃발을 쑥 잡아 뽑았다. 이것은 깃발이 아니라, 끝에 해골이 달린 지팡이였다.

[나는, 군단이다]

"자만하지 마라 애송아. 너 같은건 발톱의 때만도 못하게 만들 진정한 군단이 지금 우주에서, 이 마계에 뿌리를 내렸다."

팔을 벌려보이며 히죽이는 아스랄드에게 혀를 찬 칼타스는 수정구에 담긴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

이 해골은 그것을 보고 순간 말을 잃었다.

수정구 속 보이는 수천만, 아니 수억 마리의 괴물들의 영상은 연합에서 제공한 자료 중 하나.

그 파괴적인 무력과 숫자는 아스랄드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우물에서 벗어나라 개구리야. 우리를 지켜주던 우물은 박살난지 오래다."

칼타스는 그대로 수정구를 집어넣고, 충격 받은 아스랄드에게 한마디 했다.

[만약 저정도 규모의 적이 이곳에 온거라면, 미친건가? 나 혼자서는 절대 막지 못한다]

"다행스러운점은, 지금 이 마계에 뿌리내린 적들의 규모는 방금 전에 비하면 한줌이라는 것이다."

[하! 그 정도라면야]

움찔했던 아스랄드는 마계에 나타난 적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소리에 안도하고 다시 자신감을 찾았다.

"그래도 방심하지 않는게 좋을거다. 세상이 많이 변했으니까. 예를 들어 플레이어들은 척살권 같은 기상천외하고 불합리한 권능도 휘두른다."

[흐, 대상의 육신에서 혼을 강제로 이탈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라. 웃기는군. 고작 그딴 것에 호들갑을 떨며 권능이라 부르는가]

칼타스의 경고에 걸음을 옮기던 아스랄드는 코웃음을 쳤다.

[수많은 세상에 걸쳐, 최강의 집단을 가리는 싸움이라지. 그렇다면 당연히 그정도는 극복할 줄 알아야지. 그정도도 신경쓰여 나서지 못한다면 그저 패배하고 도태될 뿐인 것을, 그게 대체 왜 불합리하고 무섭다는 것인가]

자신감 충만해하던 아스랄드는 지하실을 벗어나자마자 하늘로 날아올렸다.

칼타스는 차가운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저 건방진 언데드가 이길 것이라고도, 질 것이라고도 확신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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