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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82화 (182/254)

182화-새로운 질서(7)

"물론 저들도 바보가 아니다. 공포란 감정은 분명 쉽게 마모되고 무뎌진다. 그들도 익숙해지거나, 대응법을 찾아내겠지."

'그럼 우리에겐 악재 아닌가?'

"나는 모든 전투에 있어, 애초에 상대의 실책에 기대는건 패착이라 생각한다."

'...맞는 말이네.'

이번 전투, 이렇게 허공에서 내려다 보면 일방적으로 쓸어버리듯 매우 가볍게 끝나버렸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이번에 제압한 이들도 일부일 뿐이고 우리가 준비한 전략과 병력도 이게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압도적인 숫자와 강력한 턱, 기동력을 중심으로 한 군단병 '비틀'은 이정도. 가장 적은 에너지로 양산이 가능한 이들은 앞으로 우리의 전위중 일부를 맡을 것이다. 확실히 원거리 화력에는 살짝 취약하지만 이것도 보완할 수는 있지."

'충분해.'

리하르트가 비틀이라고 이름을 정한 타입의 군단병들은 이번 전투에서 예상 이상의 위력을 보여주며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했다.

나는 군체의식 데이터베이스에 그 설계도를 각인시켰다. 리하르트의 조언대로, 이렇게 군체의식에 각인해두면 군단의 둥지 어디서든 생산이 가능하니까.

"언젠가 우주 어딘가에 뿌리내린 군단에 나 같은 연구자가 합류할지도 모르지. 그런 이가 자신의 상황에 맞게 군단병들을 개조하고 개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거다."

'글쎄. 이브가 과연 용납할까? 차라리 자기가 직접하고 말지.'

그의 열정이 내가 당황할 정도다. 하지만 그가 직접 군단의 운영에 관여할 수 있는건 어디까지나 내가 허가했기 때문.

이브가 다른건 모를까 다른 이에게 자신의 권한을 나누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나 이렇게 마음대로 기술을 빼올 수 있는 외주업체가 있는데.

지금도 구체적인 병종 설계도 제작 및 각인이라던가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을 모방한듯한, 리하르트가 제시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자기 마음대로, 적극적으로 빼가서 적용하고 있다.

...역시 그 대가는 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아무튼 좋아. 이제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물론 이브의 일은 이브의 일. 지금 내게는 집중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일이있었다.

[연맹에게 선제 공격을 가하고, 원래부터 충돌하던 고블린들에게 대량의 군대를 보냈다. 그 다음은 뭘 노리고 있는거지?]

'우리 목적은 이 땅 전체를 먹어치우는거야. 이브가 에덴을 점령할 때 처럼. 그리고 지구와의 연결을 끊는다.'

관조자의 메시지가 정곡을 찔렀다. 사실 지금 구체적으로 세워진 계획은 없다. 우리 사정상 아직 다른 이들의 움직임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우선은 기반을 위해 고블린들을 몰아내서 이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는게 먼저고.'

일단 세운 기본적인 계획은 덩치를 더 키워 지구연합군이든 마계든 우리의 존재를 알려, 3파전 양상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 상태에서 서로 절대 뭉치지 못할 두 세력을 전부 쫓아내고 이 땅의 승자가 되는게 최종 목표였다.

'우리가 이곳에서 승리하는게 이브에게도 큰 도움이 될걸.'

마계의 마족들은 이브와 싸우고 있는 다차원연합군의 일원이었다. 그들을 위기에 몰아넣던가 기반을 아예 없애버린다면 당연히 전력을 약화시키는게 가능했다.

[이브에게 도움이 된다? 이브의 승리를 바라는 것인가?]

'...연맹의 의도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지금 내가 그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지만 그들이 대체 어디까지 욕심을 부릴지는 감이 안왔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새롭게 얻은 힘으로 균형을 깨고 난입한다면 나는 당연히,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그들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계획이 성공하려면 우선 고블린들을 대상으로 건 전쟁에서도 승리해야 하는데?"

그때 리하르트가 끼어들었다. 그 말대로 아직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제 꽤 많이 넓어진 둥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

"연맹! 그 빌어먹을 인간놈들이?! 라고 하신다!"

"그렇다. 게다가 그 중 일부가 그쪽으로 향하고 있지. 방어할 수 있나?"

"불가능, 지원을 보내 달라 하신다!"

"뭐 좋다. 우리 입장에서도 남부 요충지를 잃을 순 없지."

수정구 속 칼타스. 그는 참전한 연맹의 군대에 대해 고블린 왕에게, 정확히는 고블린 왕 뒤에 있는 플레이어에게 연맹의 소식을 전했다.

당연히 고블린들의 플레이어는 기겁해 펄쩍 뛰었다. 대치하고 있는 지구연합군도 있는데 최근에는 외계에서 온 괴물들도 등장했다. 그런데 여기다 지구와 동맹을 맺은 새로운 세력인 연맹까지 등장하니 근본이 약소세력인 이들은 당연히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적절한 지원을 보낼테니 준비나 하고 있도록."

어쨌든 지금의 세력 균형을 지켜야만 했던 칼타스는 그들에게 지원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라고 하신다...대체 무슨?"

"말 그대로다. 괴이하고 기괴한 벌레 무리가 진격하던 연맹의 군대를 습격, 전멸시켰다. 지금 나도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는 중이다."

그러나 채 하루가 가지 않아, 칼타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연락을 돌렸다. 그는 실시간으로 감시하던 연맹의 군대가 정체모를 괴물떼에 휩쓸리는걸 직접 봤었다.

"이해할 수가 없다. 벌레 무리라니? 마계의 벌레들 아닌가?! 맹독땅벌레?"

"아니. 놈들은 내 권능이 닿지 않는. 즉 이 마계에 뿌리를 둔 마수가 아니었다."

당황한 고블린 왕의 모습에 칼타스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마계의 주인, 즉 모든 마계의 생물들은 그의 손아귀 안에 있다. 비록 게임의 권능은 넘을 수 없어 유닛들에 대한 지배권은 잃었지만 토착종들에 대한 영향력은 그대로였다.

"토, 토착종이 아닌 기괴한 벌레들이라면 역시 그놈들 아닌가! 라고 하신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플레이어는 그 벌레들의 정체가 지금 자신과 싸우고 있는 군단이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칼타스는 손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이제 동맹이 된 반군연합에서 얻은 정보등으로 이미 군단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기에, 그 데이터와 확연히 다른 생김새에 혼선이 온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정보가 굉장히 부족하다. 심지어 연합 내부도 마찬가지고.'

칼타스는 군단에 대한 정보가 심각히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며 혀를 찼다.

"으아아악!"

"...뭐지? 왜 그러나?"

그러나 한창 그렇게 심각한 분위기에서. 눈을 부릅뜬 고블린 왕이 괴성을 질렀다.

[뭐야! 대체 저 괴물들은 뭐냔 말이다!]

칼타스는 고블린 왕의 뇌리에 울려퍼지는 절규를 듣지 못했다. 그리고 대체 왜 플레이어가 이렇게 절망에 빠졌는지 사정을 모르는건 고블린 왕도 마찬가지였다.

"놈들이, 놈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족히 몇 만 이상은 되는 대군세가! 라고 하신다!"

"뭐라?"

가까스로 진정한 플레이어가 전하는 소식은, 세력의 외곽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대군세의 소식.

그것도 한창 자신들을 괴롭히던 그 외계 괴물들이 경로의 모든 것을 박살내고 학살하며 진격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대체 너희는 무엇이냐."

마왕성, 이곳은 마계의 중심이며 한때는 마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곳 답게 굉장히 번성하던 곳. 하지만 지금은 마계 연합의 본부로 쓰이고 있는 곳.

그곳의 집무실에서, 자기 상반신만한 수정구를 보고 있는 칼타스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카테고리 Z의 제 1 특수종, 연합에서 부르는 정식 이명은 죽음의 날개."

그는 지금 수정구에 비치는 존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이 조용히, 빠르게 진군하고 있는 대군세의 최선두. 거대한 소의 모습에 망치머리를 가진 초대형종의 머리 위에 서서 날개를 펼치고 있는 가면의 존재를.

동맹을 맺고 정식으로 속하게 된 연합에게서 얻어낸 정보에는 분명 저 날개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적혀있었다.

"대체 왜."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뚫어져라 수정구 속 가면을 노려보았다.

"분노하고 있는거지?"

이해할 수 없어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는 노련하며 경험도 많다. 상대가 강렬한 분노를 품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단지 우주에서 한번 충돌한게 전부인 이들이 왜 갑자기 마계에 나타나서 자신들에게 그 분노를 터트리고 있는지는 감조차 잡지 못했다.

'방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보다 제대로 된 대응책이 필요하다.'

지구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저들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과는 별개로, 칼타스는 심각한 위기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불과 몇백의 숫자로 나타난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에 적들은 몸집을 수십배 이상 불렸다. 얻어낸 정보에도 그들의 경악스러운 확장력과 번식능력을 주의하라고 나와있었다.

'내가 보기에, 미적지근하게 대응해선 절대 안 된다. 연합도 진심으로 저 괴물들을 자기네 땅에서 몰아내고 싶다면 이대로는 안 된다.'

그렇기에 그는 결단을 내렸다. 집무실을 벗어난 그는 아무도 모르는 마왕성 지하를 향했다.

"의장님?"

"마침 잘되었군. 지금 당장 놀들의 왕...크라슈를 불러오게. 그의 플레이어, 아니 정확히는 다차원연합군 수뇌부와 할말이 있으니."

그는 지하실로 향하는 와중에 마주친 하수인에게는 다른 명령을 내렸다. 자신의 생각을 연합군 수뇌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변수. 새로운 선택지가 시작된 이후 굴러가기 시작한 그 누구도 모르는 변수]

"이봐. 혹시 들었나?"

칼타스가 무언가 결심한 시점. 무심히 화면만 보고 있던 그 역시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을 때.

방 안으로 그와 똑같은 흰 가면을 쓴 사내 한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며 벌컥 들어왔다.

"네 말이 옳았더군. 방금 렉스 그놈에게 듣고 오는 길이야. 드디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더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던 변수가."

"어차피 아직은 한줌에 불과한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래도 줄기를 비틀 수 있는 제대로 된 변수란게 중요하지."

사내는 가면이 흔들릴 정도로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괜찮나? 우리에게 좋은 변수가 생겼다는건 어...결국 네 유닛의 패배를 의미하는데."

"웃기는 군. 패배? 유닛, 아니 이브는 절대 지지 않는다. 그냥 압도적으로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대신 얻는걸 얻고 잃는걸 잃을 뿐이야. 하지만 그래, 만약 이 변수가 제대로 굴러간다면 더 이상 우리가 이브의 폭식에 리셋 버튼을 누를 일은 없을지도."

그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 이 상황은 모두가 원하던 상황이었으니까.

신우의 새로운 선택. 그리고 새로운 선택으로 인한 변수. 그 변수의 눈덩이가 아주 사소하게 마계에서 구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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