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80화 (180/254)

180화-새로운 질서(5)

"양산하는 과정은 순조롭군. 아무렴 생산공정의 효율성도 추구했으니까."

"...대체 당신은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

차지연이 공원에서 이브와 싸움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처럼, 전혀 다른 공간인 이곳에서도 그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학자로,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오직 조국을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만을 연구하는데 투자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애송이 시절에서 벗어나 시간이 조금씩 지나며 각종 연구 성과들의 진도가 미진해지자 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지."

리하르트는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강도연의 질문에 히죽이며 대답했다. 현재 머리와 얼굴 절반을 보조뇌와 연결된 촉수에 파묻은 그는 그녀와 대충 이야기 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그 근본적인 물음이 뭔데?"

"진정한 진화에 대해서. 내가 사랑하는 학문을 이용해 아무리 기술과 연구를 갈고 닦아도, 근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종은 한계가 명확해 나 자신을 포함해 내게 실망만 줄 뿐이었다. 그래서 지구의 존재와, 신비로운 힘을 다루는 헌터들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나는 그들이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지. 그럴 타이밍에, 너희를 만나게 되었다."

리하르트에게 피레스의 몸을 침탈하고, 이제 자신의 몸을 강탈한 외계생명체와의 접선은 기회였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조종당하던 시점에서도 이 외계생명체가 가진 초지능에 감탄했으며, 마침내 그 누구도 모르는 군단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는 강한 확신을 가졌다.

"완벽한 존재? 그런건 불가능해. 그 정도는 나도 알아."

"그렇지. 하지만 나에겐 결국 끝없는 진화를 통해 결국 완벽에 수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나의 목표니까."

강도연은 그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리하르트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때는 아니군."

"알아냈어...?"

그런데 그 순간,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 모두 흠칫했다. 연결된 군체의식을 통해, 대량의 정보가 각자의 뇌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에게서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들의 자세한 전력을 알게 되었고, 피레스는 자신의 가문과 인연이 있는 내부관계자 중 하나와 접촉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그들의 움직임을 알아낼 수 있어.'

"초기에 그렸던 기초적인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군."

갑각에 쌓인 집채만한 보조뇌를 가지고 있는 리하르트는 신우가 준 정보를 단숨에 분석하여 계산을 마쳤다. 강도연이 아직도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우린 연맹의 지상군과 먼저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신우는 정보를 얻었으니 당연히 그것을 바탕으로 계획을 정했다. 그 계획의 첫 단계는 다름아닌 생각 이상으로 파괴적인 무력을 보여주는 연맹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지구에 상륙해, 게이트를 넘어 마계에 상륙한 그들은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던 전장에 균열을 내기 충분한 화력을 갖추고 있었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현재 동부에 있을 그들은 앞으로 전진해 온다. 그중 한개 부대가 이 근방으로 올 예정이고.'

"규모가 그리 크진 않군. 게다가 정규군도 아니잖나. 갑작스런 지원군에 균형이 붕괴되어 그렇지, 마족들이 이대로 끝까지 밀릴 것 같지는 않은데."

연맹 내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리하르트는 보다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실제로 지금 지구에 파견된 군대는 정규군이 아니다.

군의 통솔을 받는, 일종의 PMC들이 모집되어 들어온 것 뿐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군단병들의 데뷔전으로 충분하지 않겠나!"

'좋아.'

리하르트가 흥을 내며 적극적으로 건의했다. 그리고 신우도 그것을 허락했다. 갈라져 진격하고 있는 연맹의 군대라면 이곳 마계를 점령하기 위해 새롭게 가다듬고 진화시킨 군단병들을 시험하기 딱 좋은 상대였으니까.

"잠깐. 그럼 기존에 생산된 10만의 병력은 어디다 쓰게?"

'양동작전이야. 도연이 네가 그들을 이끌고 고블린들을 쳐. 연맹의 군대가 원래 공격하려고 했던 놈들을, 굳이 살려둘 필요가 있어? 우린 연맹과 마계의 힘을 동시에 약화시킨다. 서로 싸우느라 바쁜 놈들은 우리에게 신경쓰지 못하고 시간을 끌겠지. 그러면 우리 숫자는 더더욱 불어나고.'

"없지. 알겠어."

의문을 제기한 강도연은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고 납득했다. 행동 방침이 정해진 이상 군단은 망설이지 않는다.

휴면상태에 들어가 있던 모든 군단병들이 안광을 번득이며 활동을 시작했다.

"명령어를 한번 입력하면,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 싸우고 죽이라고 명령을 내려두면, 군단병들은 자신의 몸이 갈가리 찢겨 가루가 될 지경이 되어서야 싸움을 멈출 것이다."

"상관 없어. 어차피 다 죽여버릴 놈들 뿐일테니까."

어둑한 밤, 이곳 특유의 푸른 달빛이 대지를 창백하게 물들이고 있을 때. 대규모 병력의 통솔을 맡은 리하르트가 명령어를 입력함과 동시에 얼굴을 가면으로 덮은 강도연이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발생하는 소음은 그저 땅을 박차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소리뿐. 조금의 함성도 울음소리도 없는 침묵의 군단이 조금의 휴식도 어긋남도 없는 엄청난 행군속도로 둥지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말 자신 있나? 저쪽에 대부분의 병력을 집중해서 지금 이쪽엔 상위종 전력의 공백이 상당한데?'

"상위종, 그리고 양산형 군단병. 왜 그런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는지는 이해한다."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듯 휑해진 공간에 홀로 남은 리하르트는 곧바로 다음 일을 시작했다. 야심차게 시작한 또 다른 진화.

그 결과물들이 지금 군단의 더 깊숙한 둥지에서 다시 한번 쏟아져 나왔다.

"형상력이라 불리는 기적의 힘들.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응하는 전력이 필요했겠지. 물론 그들을 부정할 생각은 아니지만, 나는 양산형 군단병들 역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점차 강한 초인들, 특히 처음 맞부딪힌 대형 세력인 마법사들의 등장에 이브와 신우는 형상력을 다루는 대인전 전용 상위종들이나 서브마인드에 점차 더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리하르트는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환경과 용도, 조건에 맞게 특화하여 개량하면 이런 일반적인 군단병들의 전투력도 극대화 할 수 있다."

'...한번 시험해볼 가치는 있지.'

가장 먼저 쏟아져 나온건 덩치 큰 맹수 수준의 딱정벌레를 닮은 것 같은, 검은 갑각을 두른 짐승이었다. 6개의 다리로 말도 안되는 속도로 움직이는 이 새로운 군단병은 용종의 비늘을 기반으로한 갑각을 가지고, 강철도 단숨에 절단하는 거친 턱과 치악력등을 무기로 삼았다.

'계획엔 다른 병종들도 많았어.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생산한건 이녀석들이 전부. 정말 괜찮은건가?'

"본래 시간과 예사..아니 에너지를 더 달라 하여, 제대로 된 군단을 갖추려 했지만 상대가 고작 중화기 보병부대와 기갑부대 약간이라면 상관 없다고 판단했다."

바닥을 가로지르는 군단병들이 물결이 끊임 없이 이어졌다. 기존의 군단병들이 비슷한 계열의 생물체들의 장점을 꽉꽉 눌러담은 일종의 키메라면, 지금 리하르트가 새롭게 개량한 양산형 군단병들은 단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개량된 전투병기.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은 신체구조의 간소화로 인한 에너지 절약, 그로 인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저 우주에서 싸우고 있는 본대라면 모를까, 이 작은 세상 하나 먹어치우는데는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그 결과가 곧 나오겠지. 지금 이거, 이브도 흥미롭게 보고 있으니 되도록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땅을 뒤덮을 정도의 이 숫자는 앞서 출격했던 군단병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동성도 나쁘지 않았다.

조금의 쉴틈 없이 달리던 이 새로운 군단병들은 황량한 황무지를 횡단하고 있는 한무리의 군대와 마주하게 되었다.

*

"저게 뭐지?"

그것을 제일 먼저 발견한건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지상을 관측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철저한 정찰로, 고블린 등 종족 내에 강자들이 없는 편인 이 지역에서 혹시 모를 변수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강자 한명에게 군대가 쓸려나가는 일도 충분히 가능했으니까.

"그림자 아닌가? 구름이라던가."

"하늘에 구름이 없는데?"

그는 동료의 말에 피식 웃으며 지상을 비추는 카메라를 더욱 확대했다. 화면에 검게 물든채 꿈틀거리는 대지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징그러워."

"벌레야? 진짜 가지가지 하는군. 날개 4개달린 매끈한 박쥐들부터 시작해서."

그들은 그 거대한 무리를 보고서 그 괴물들을 단순한 벌레무리로 판단했다. 지금까지 마계의 토착생물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생겼는지 겪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이동중인 본대와 부딪히겠어."

"이런. 괜히 힘뺄 필요 없지."

벌레무리가 수십km 뒷쪽 지상에서 이동중일 본대와 충돌할 생각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소형 핵폭탄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미사일이 발사되기 직전.

"어?"

그는 정면의 창문을 부수고 자신의 몸을 관통한 창을 보았다. 그러나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채 눈치채기 전에, 대폭발을 일으킨 헬기는 아직 어둑하던 일대의 하늘을 밝게 물들이며 가루가 되어버렸다.

초월적인 힘으로 형상력을 머금은 창을 던진 존재가 은신을 거두고 허공에서 스르륵 모습을 드러내었다. 리하르트가 양산형에 집중한다고 상위종을 쓰지 않는건 절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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