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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79화 (179/254)

179화-새로운 질서(4)

"..."

이브는 차지연을 따라 건물을 나오게 되었다. 신우와 떨어져 본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가 먼저 요구한게 아닌 자의로 곁을 떠난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한 가치가 있어.'

이브가 그런 결단을 내린건 당연히 차지연 때문이었다. 이브는 그녀를 차기 서브마인드로 노리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강력한 필요성을 느껴서 그녀를 서브마인드로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자신과 마찬가지로 휘하에 서브마인드를 부릴 수 있게 된 신우가 차지연을 탐내고 있다는걸 알아차렸고, 그걸 막기 위해 먼저 나선 것 뿐이었다.

차지연은 이브가 그와 직접 만나기 전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치던 인물 중 하나.

이브는 단지 변수를 제거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그래서, 이게 전부야? 그냥 나와서 이 주변을 걷는것."

"구경해보고 싶었던 것 뿐이야. 아무것도 안하고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니까. 넌 안그래?"

"내가?"

차지연의 말에 이브는 코웃음을 쳤다. 이브는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상당수를 이해는 해도 공감하지 못하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 어딘가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브에게 적적함이란 가장 거리가 먼 단어였다.

"봐. 지구랑 별 다를 것도 없네. 하늘에 날아다니는거랑, 신기한 기계들 같은건 영화랑 비슷한 것 같기도."

그녀는 주변을 거닐며 외계 행성의 풍경을 구경했다. 이브는 무관심한 얼굴로 곁을 따라 걸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관심을 끊지는 않았다.

'레이나는 증오, 리암은 절망. 그럼 차지연 이 여자는 무슨 감정을 계기로 군단의 일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 이유는 당연히 차지연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저기..."

그렇게 한명은 거리 구경을, 한명은 그런 상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각종 계산을 시도할 때.

도심 속 유일한 녹색 공간이던 한적한 공원을 거닐던 둘에게 누군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니?"

살짝 놀란 차지연은 다가 온 어린 여자아이를 보고 웃어보였다. 대화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차지연도 번역기를 사용하고 있었고, 아이도 애초에 번역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누군지 알고서 접근했다는 소리였다.

"지구에서 온 헌터들 맞죠? 본 기억이 있어요."

"우리에 대해 알고 있니?"

"어...외계의 괴물들에 맞서 함께 싸울, 먼 우주 너머에서 온 저희의 동족이라고 했어요."

아이는 자신이 아는 바를 곧이곧대로 말했다. 차지연은 난처하게 웃었으나 굳이 부정하진 않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보렴."

차지연은 자신의 손에서 파직거리는 스파크를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당연히 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헌터의 이능에 감탄하고 신기해했다.

그리고선 자신의 부모에게 말해줘야겠다며 달려갔다.

"어리석어. 저 어린애는 잘못된 정보로 연맹의 상층부에 선동당한거야. 그와 말하는걸 들어보니 너도 알고 있을텐데?"

"...그게 맞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이브."

찰나의 만남이 끝나고, 멀어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차갑게 말하는 이브의 말에 차지연이 쓰게 웃었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한다고...이제 내게 그런건 상관없어. 이용당하는건 익숙해. 나는 이제 그저, 저 아이의 미래를 지켜주는 것 만으로 만족하니까."

"지킨다라. 무엇에게서."

"...무엇이든간에. 어쨌든 그것이 지금 나를 움직이고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야. 그러는 이브 너는 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지? 전장에서 싸우는 모두가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사투를 벌여. 넌 누구를 지키기 위해 싸워?"

차지연이 역으로 질문을 날렸다. 상대에 대해서 정보를 필요로 하는건 이브만 그런게 아니었다.

그녀 역시, 이브라는 흥미로운 존재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다. 특히 싸움의 이유에 대해서. 자신은 강제로 이곳에 왔다. 하지만 자원해서 이곳에 온 이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 온것인지 알고 싶었다.

"맞아. 나도 때로는 지키기 위해 싸워."

"역시. 그러면..."

"하지만 너처럼 멍청하게 굴지는 않아."

피식 웃은 이브가 손가락질했다. 뜻밖의 말에 당황한 차지연의 그 손가락을 바라보며 말문이 막혔다.

"다 태우고 쓰러지고 사라지는게 아니야. 더 거세게 타올라서, 역으로 전부 집어삼키는거지. 내게 지킨다는건 그런거야."

"으응..?"

순간 이해하진 못했지만 차지연은 어투와 표정을 통해 이브가 지금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역시 정신이 조금 이상한 아이.'

물론, 이브의 비웃음은 지금의 차지연에겐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했다.

"이번엔 뭐라도 먹으러 가자."

차지연은 해당 주제의 대화를 빠르게 접고 이브의 입에 무언가를 물려주었다.

*

'그래서 지금 둘이서 디저트를 먹고 있다?'

'아마 조금 더 있다 들어갈 것 같은데.'

'크흠, 딱히 상관은 없어.'

상관은 정말 없다. 단지 좀 놀랐을 뿐이다. 이브가 자발적으로 내 곁을 떠나서, 그것도 타인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라.

그동안 이런 상황의 결말은 늘 논란거리 뿐이었기에 살짝 긴장했지만 차지연이 어찌어찌 잘 통제하는지 아니면 이브가 그만큼 성장한건지 다행히 현지 경찰이 들이닥치는 일은 없었다.

'나도 볼일이 있었으니 상관 없지.'

이왕 이렇게 틈이 난 김에, 나는 마침 해야만 하는 일을 이브가 곁에 없는 지금 해치우기로 결정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연맹의 첩자 피레스에게 줄 정보를 구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해당 정보는 지구로 파견된 이들의 정보.

연맹의 인물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지금의 나는 의외로 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음?"

"안녕하십니까 강신우 헌터님. 그런데 혹시 외부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지."

그러나 내가 준비를 마치고 방문을 열어 복도에 발을 디딘 순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곳 군대의 제복을 입은 여성 한명이 따라 붙었다.

"아냐 라비크 중위입니다."

"왜 찾아오셨죠? 전해들은 것도 없고, 혹시 문제가 있는지."

"아니요. 여러분께 문제가 있는건 절대 아닙니다. 그저 편의를 봐드리라는 명령이 한발 늦게 내려왔기에."

"편의 말입니까?"

나는 예상 밖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어차피 곧 떠나는데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만약 감시용이라면 그럴만하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굳이 사람을 붙여가며 감시할 것 같지도 않았는데.

"제 일행이 둘 있습니다. 그 사람들 지금 밖으로 나간 것 같은데요."

"차지연 헌터님과 이브 헌터님이 계신 지역으로 해당 담당자가 갔습니다."

"...뭐 좋습니다. 잘 부탁드리죠."

무슨 꿍꿍이가 있다. 그건 당연한거지만 그걸 지금 캐낼 수는 없고. 나는 이렇게 된 이상 마침 다가 온 이 사람을 이용해 내가 원하는걸 얻기로 결정했다.

"지구로 간 병력에 대해서 말입니까?"

"관심을 끊을 수가 없더군요. 중위님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남아 싸우고 있는 이들도 생각 나고..."

나는 적절히 연기를 펼쳐보았다. 일단 명분은 분명 그럴듯 했다.

그러니 명단 정도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보기엔 그리 중요한 정보도 아닌 것 같은데.

"흐음. 한번 상부에 요청해 보겠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전쟁의 당사자이니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짭니까?"

그런데 중위는 의외로 손쉽게 내 요구를 들어주었다. 아니 애초에 생각 이상으로 호의적이었다.

'역시 고의적으로 접근해서 호감을 쌓으려는건가?'

그녀의 모습을 보니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춰졌다. 상부의 지령을 받은 연구원 피레스가 맨 처음 우리에게 접근한 이유도 다름아닌 지구인 헌터의 포섭이었으니까.

지금 우리가 공식적으로는 동맹국에 파견 온 인력이니, 완전히 자신들의 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가지 호감 작업을 하고 있는거라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부탁드리죠."

"별 말씀을요."

아냐 라비크 중위는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다. 자신이 제공해준 파병군의 정보가, 그들이 패배하게 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걸.

딱히 미안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서로 속고 속이며 이용해먹는게 지금의 상황이다.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대로 당할 수밖에.

"상부에서 허가가 났습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파병된 함대는 그깟 괴물들은 금방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합니다."

나와 이브를 담당하게 되었다던 아냐 레비크 중위는 그날 저녁 데이터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 그녀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전해준 데이터는 내 예상보다도 상세했다.

참여하게 된 인물들의 구성은 물론 객관적인 전력, 장비의 숫자 등등.

"믿음직스럽군요. 보기만 해도 대단한걸요."

"물론 저희의 전력에 비하면 극히 일부일 뿐이죠."

나는 그녀가 듣고 싶어할 말을 그대로 해주었고, 한껏 펴진 그녀의 가슴이 더 펴졌다. 애초에 이 정보를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원하던걸 한번에 손에 넣었네?"

"덕분에 향후 계획을 짜기 더 편해졌어. 이런건 적극 이용해야지. 그렇지?"

곁에 있던 이브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자, 나도 그에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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