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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78화 (178/254)

178화-새로운 질서(3)

마계의 마물들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이후로도 우리들의 삶을 계속해서 위협해온 오래된 원수다. 나는 물론 동생인 강도연 역시 놈들을 죽이고, 짓밟는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차라리 잘 된거야."

"그놈들...우리 엄마를 죽인 개자식들!"

그리고 연맹. 지금 내가 이브와 함께 그들의 일부에 침투해 있지만 그들도 분명한 우리의 원수였다.

무엇보다 서브마인드 중 하나인 오윤아 역시 그들을 알아보고 우리 이상으로 강하게 분노했다.

유닛과 플레이어들이 아직 격변하는 세상과 게임에 적응하지 못한 혼란기에 연맹의 플레이어는 나노슈트 장비를 자신의 유닛들에게 지원하여 플레이어였던 오윤아를 습격, 그녀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결과적으로 그녀를 도우러 온 강도연을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고 그녀는 식물인간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들은 같은 인간이고, 지구의 동맹이야. 정말로 그들과 싸울 수 있어?'

"알면서 뭘 물어? 연맹은 우리의 적이야. 마족과 마찬가지로."

내 질문에 강도연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오윤아는 물어볼 것도 없었다. 물어본 나 역시, 필요하다면 지구연합군과도 싸울 각오를 하고 있었으니 연맹의 군대와 싸우는건 고려할 가치도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선택지가 늘어났어. 그러니 상황을 좀 보자. 우리라는 존재를 그들이 어떻게 이용하려들까.'

이브는 연맹이 주제도 모르고 감히 자신을 이용해 먹으려 한다며 화를 내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비웃었었다.

결국 최종적인 승자는 언제나 살아남는 쪽이기에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한들 끝끝내 살아남는걸로 증명하면 된다고.

나도 그 생각을 본받아 움직일 생각이었다. 위기에 몰린 그들이 우리를 자신들의 찬스권으로 써먹으려 할때마다 착실히 늘어나는 우리의 둥지와 힘은 커질 테니까.

'윤아 네가 비행종들을 이끌고 정보를 수집해와. 우선 그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알아야겠으니.'

나는 정찰부대를 더 넓게 파견해 정보를 모으는 한편 아직까지 연맹 내부에 남아있는 첩자 피레스에게 마계에 파병된 부대의 작전을 알아오라 지시했다.

"그, 그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 왜?'

"아니 그야 당연히...군사기밀을 저 같은 일개 수석 연구원이 어떻게 열람합니까..."

그러나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 온 첩자 피레스는 울먹이면서 발작하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 일리 있어.'

"게다가 작전을 주도하는 사령부는 저희와 소속도 달라서, 소장님 때처럼 접근하는 것도 불가능할겁니다."

문제는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리하르트를 너무 성급하게 데려온 것 같았다. 비슷한 급의 고위직을 감염시키고 데려와도 되는건데. 이건 내 실수였다.

'네가 스스로 생각해봐. 방법이 없나? 그들에게 접근하거나, 정보를 열람할 방법이.'

"그으, 그게..."

피레스는 창백해진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리하르트 이야기를 안해줘서 그런지,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한 리하르트가 헌신짝처럼 버려진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불쌍한 마음에 체내의 감염균들을 움직여 그의 신체를 보다 튼튼히 보강해주었다. 근육의 피로도 없애주고 긴장도 풀어주는 등.

하지만 정신적 압박은 어쩔 수 없는 듯 그는 현기증 증세까지 보였다.

"차, 차라리 파견사령부에 속한 적당한 고위급 인물들의 정보라도 좀 안다면 모를까...저희 가문이든 뭐든 연줄이 있다면 만나보는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힘겹게 머리를 굴리던 그가 겨우겨우 입을 떼었다. 좀 까다로운 조건이긴 했다. 내가 무슨 수로 연맹에서 파병된 이들의 정보를 알아봐 준단 말인가.

'알아봐 줄 수도 있을 것 같고.'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의 제안을 긍정했다. 지금 내 본체가 있는 곳은 어쨌든 그들의 수뇌부고,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군체의식과의 연결을 끊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눈을 뜬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딘가 어색하고 마음에 걸렸다.

"...이브?"

언제나 내 곁에 있던 녀석이, 사라져 있었다.

*

"..."

신우가 의식을 군체의식으로 옮겨 한창 다른 곳을 살피고 있을 때.

이브는 언제나 그랬듯, 의식이 꺼진 그의 육체 옆에 자신의 아바타를 두고 곁을 지키고 있었다.

"뭐야. 또 왜 찾아왔지? 아까 연맹 놈들에게 작전 설명 들을때도 자꾸 흘끔거리더니."

"너, 너무 공격적으로 굴지는 마. 네가 왜 나를 경계하는지는 알겠어."

그런 두 사람을 찾아온건 차지연이었다. 그녀는 날선 이브의 목소리에 움찔해서는, 문간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자신의 목적을 말해야 했다.

"이유를 알아?"

인간을 연기하면서도 인간들의 예의범절 따위는 비효율적이라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이브는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맞아. 어, 난 함께 싸운 신우는 물론이고 너에 대해서도 조금 알거든."

차지연은 침착하게 자신을 적대하는 이브를 어르고 달랬다. 물론 이브의 입장에선, 그녀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이브의 신분은 위조된 가짜였으며 진실은 페어를 이룬 그의 곁에 딱 붙어 다닌다는 것 뿐이었으니까.

"네가 신우를 소중히 여기는거 알아. 가로챌 생각도 없고 갈라놓을 생각도 없어."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억도 가족도 다 잃어버린 설정인 이브가 자신을 구출해준 신우에게 의존하고 집착하는 어린애일 뿐이라는 차지연의 추론은 어느정도 맞아들어가는 부분도 있었다.

"그냥 조금...끼고 싶었을 뿐이야."

자신의 진심을 전한 그녀가 씁쓸하게 웃었다. 안그래도 심적으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본인의 의사는 고려되지 않고 외계의 행성으로 파견된데다, 소속인 에볼루션 내에서 그나마 친한 지인들과는 전부 떨어져 버린 그녀에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동앗줄은 이쪽 뿐이었으니까.

"정 방해된다면 미안해. 이제는 아는척 안할게."

"잠깐 기다려."

그리고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그녀를 이브가 붙잡았다. 차지연은 휘둥그레 뜬 눈으로 이브를 돌아보았으나, 이브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벅저벅 걸어서 다가왔다.

"무, 뭘 하려고?"

움찔한 차지연이 뒷걸음질 치다 문에 등이 부딪혔다. 이브는 아랑곳 않고 완전히 근접할 지경까지 접근했다. 마침내 두 사람의 흉부가 맞닿는 수준까지 되었을 때.

차지연의 푸른 눈은 자신을 꿰뚫어보는 핏빛 눈동자에 고정되었다.

"일단 네 말은 진실 같네. 그리고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벗어나고 싶어? 자신을 묶고있는 제약과 구속에서?"

"...무슨 소릴 하는거니?"

순간 소름이 돋은 차지연은 곧바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제 스트링의 의미가 없어진 신우가 아직까지도 플레이어인지 아닌지 모르고 있는 그녀는, 이브가 게임에 대해 알고 있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조금 독특한 애라고 하기는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으니 당황한 그녀는 일단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거짓말. 만약에,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쩔래."

'벗어날 수 있다고?'

입꼬리를 비튼 이브의 말에 그녀는 고민했다. 분명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길이었고 그 대가로 그녀는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이미 신우에게도 말했듯 그녀는 지쳐가고 있었다.

"나는 벗어나지 못해. 넌 모르겠지만, 이건 내 의무와 책임이기도 해."

"하. 이 우주에 절대적인건 없어. 하지만 좋아. 내가 보기에 너는 아직 더 고생해야 해. 더 절박해지고, 간절해졌을 때 진심을 다하지. 다른 애들도 그랬거든."

찰싹 달라붙어 있던 이브가 혀를 차며 몸을 떼었다. 그리고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상한 아이.'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내뱉는 이브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진 차지연은 어쩌지 못하고 가만히 서서 우물쭈물거렸다.

"...그럼 갈게?"

"왜 가? 그에게 볼 일 있어서 온거 아닌가?"

"응??"

이브는 이제 차지연을 밀어내지 않았다. 당황한 차지연은 조금 눈치를 보더니, 드디어 문간을 벗어나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자고 있는거지?"

"맞아. 따라서, 넌 지금 그와 이야기 나눌 수 없어."

이브가 이제 어쩔거냐는 의미로 피식거렸다. 애초에 이브는 지금 신우가 이곳에 신경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놀려먹을 생각으로 방에 들인 것이다.

차지연은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마음을 먹었다는 굳센 표정으로 얼굴을 바꾸었다.

"상관 없지. 그럼 이 기회에 너랑 친해질게."

"응?"

이번엔 이브가 당황했다. 차지연은 이브의 손을 잡아끌었다.

"피곤해서 자는 사람 방해하지 말고 나가자. 얼마 뒤면 전쟁터로 가야해. 기껏 지구가 아닌 새로운 세상에 왔는데 관광이나 여행은 못해도 구경은 해야지."

"???"

순간 주도권을 뺏긴 이브의 몸이 그대로 딸려 나왔다. 하지만 하이브마인드답게 빠르게 계산을 마친 이브는 차기 서브마인드로 탐내고 있는 그녀의 의도에 따라가 보자고 결정했다.

어차피 방에 누워있는 그의 몸은 결국 아바타에 불과하고, 지금 이곳엔 자신들을 적대하는 세력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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