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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77화 (177/254)

177화-새로운 질서(2)

연합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압도적으로 짓밟지 못하게 되고, 연맹의 의도를 파악하게 된 이브는 방침을 완전히 정했다.

당분간은 전면적인 전쟁을 줄이고, 힘을 비축하며 틈을 노리겠다는 방침이었다.

'물론 맞고만 있을 생각은 없어. 놈들의 의기양양해져서 여유를 찾지 못하도록 해야지.'

'그건 어떻게 할건데?'

'연합에 속하게 된 놈들의 본진 좌표를 알아내서 역으로 공격할거야.'

이브가 찾아낸 해답은 역시나 공격을 통한 것. 특히 연합군에 새로 속하게 된 그 야만전사들이나 요정들의 세상들은 반군연합의 행성에 비해 함선체에 대한 방어 설비도 덜 할것 아닌가.

연합 구성원들의 본진을 공격하여 그 근간을 뒤흔들겠다는 참 사악한 발상이었다.

"이제 정거장에 내릴 겁니다! 모두 준비를!"

워프 이후 우주를 항해하던 함선이 서서히 멈춰선게 그때였다. 연맹의 군인들이 우리를 데리고 함선의 연결부로 안내했다.

"근데 왜 굳이 여기로 데려온거야?"

모여든 사람들 틈에서 이브가 투덜거렸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사람들과 붙어있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성향 때문이었다.

"그리 깨끗한 의도는 아닐거야."

"...뭐야."

그리고 그 투덜거림에 대답한건 어느새 다가 온 차지연이었다. 이브는 반사적으로 내 앞을 자기 몸으로 가렸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너희도 알지 모르겠지만, 나는 애초에 그들의 행동이 탐탁치 않아서."

나는 버둥거리는 이브의 머리를 꾹 눌러 치운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지연 역시 연맹이 진행중인 활동들이 그들이 말하는 것 처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싸움은 절대 아님을 눈치채고 있었다.

"지금 우리를 굳이 본성에 데려 온 이유가 뭘까.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소리로 밖에 안들려."

"..."

미간을 찌푸린 차지연의 예측은 아마 맞을 것이다. 당장 지구 각국도 연맹의 등장을 정치적으로 써먹으려 애를 썼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그런 예측은, 행성 내부에 진입해서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아 이런, 되도록 자제를 당부했지만 우리 시민들이 외부에서 온 영웅들을 직접 보고 싶었나 봅니다."

도심지를 빼곡하게 채운 인파를 내려다 본 현지 내각의 의원 크리스티안이 히죽이며 입을 열었다.

우주세력 소속의 시민이라 한들 직장을 다니는 등 평범한 일반인들은 결국 지구인들과 다를 것도 없었다.

대체 그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이 시민들에게 우리를 어떤 존재로 설명했는지, 모여든 그들은 무슨 슈퍼스타 보듯이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 이브 넌 당연히 이곳의 좌표를 딸거지?"

'...아니. 불가능해.'

'뭐?'

'무언가가, 이곳의 게이트 좌표를 따려는걸 방해하고있어.'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으나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물론 불가능한건 아니야. 이미 이녀석들도 다른 녀석들과 손잡은게 확실하니까. 하지만 확실히 기분이 별로네.'

게이트는 만능의 마법이 아니었고 분명 헛점들은 존재했다. 이브는 자신의 아바타를 기준삼아 좌표를 계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물론 이브는 굳이 지금 당장 그들의 본성인 이곳의 게이트 좌표를 알아내는데 집착하는 않았다. 아직 할 일들이 다른 곳들에도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곳에서 푹 쉬시면서 자세한 계획과 편제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으시죠. 철저하게 준비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게 목표입니다."

우리를 안내하던 크리스티안은 상당히 높아보이는 건물로 우리를 안내했다. 어쨌든 그들과 협력해 한팀이 되어 싸우기 위해 온거니까, 자세한 협의는 필수였다.

'그런거 지루한데.'

'나도 마찬가지야. 다른데 신경쓸게 많은데.'

사실 아직 경험이 미숙한 나나 인간들의 사정에 일말의 관심도 없는 이브나 시키는대로 움직이는게 편했다.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듣는 사이, 플레이어의 특권인 화면을 통해 다른 곳을 살폈다.

이브가 담당하는 다른 곳들은 내가 볼 필요조차 없으니 내가 보는 곳은 현재 마계에 주둔하여 세력을 늘리고 있는 내 직속의 무리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만큼, 그동안 리하르트가 장담했던 10만의 대병력이 생산을 마치고 둥지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준비는 끝난 것 같네.'

"그렇다. 그동안 나는 군단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병종들의 데이터를 내려받아, 그 설계대로 병종들을 생산하고 조합했다. 하지만 좀 불만스러운 부분들도 있군."

'불만? 그게 뭐지?'

그때 둥지의 최심부에서, 거대한 보조뇌에 자신의 몸을 연결한채 늘어져 있던 리하르트가 눈은 감은 채 입을 움직여 뜻밖의 말을 전했다.

"저장된 수만종의 생물들을 필요에 따라 개조하고 조합한 기존의 병사들은 모두 세밀하고 즉각적인 통제를 받는 하이브마인드 체제에 맞춰져 있다. 즉 지금의 우리가 다루기에는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는 뜻이다."

'지휘체계의 차이 때문인가...'

나는 리하르트의 지적을 이해했다. 이브의 군단과 나의 군단은 지휘체계부터가 달랐다. 이제는 더더욱 거대해진 두뇌를 이용, 단신으로 수억마리 군세를 동시에 조종하는 초생물 이브와는 달리 나의 군단은 리하르트라는 서브마인드를 거쳐 명령어로 움직이는 일종의 로봇이나 마찬가지니까.

"내게 시간과 예산을! 아니 에너지를 조금만 더 다오. 내가 직접, 우리의 체계와 이 마계의 환경에 알맞는 새로운 병종을 합성해 내겠다!"

그런 상황에서 리하르트는 나도 놀랄 정도의 열의를 보였다. 그는 아예 자신에게 군단의 권능인 유전자 조작 능력까지 달라고 요청했다.

이브가 알아챈다면 아마 극대노 할지도 몰랐다. 일개 인간출신 서브마인드가 자신의 능력에 정면으로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니까.

'좋아. 어디 한번 해봐.'

물론,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이브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며 나만의 군단을 꾸리는데 지금 이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브가 화내면서 부들대는 모습은 무섭다기 보단 귀엽기도 하고.

'대신 네게 권한을 양도하는건 못해. 그러니 내게 자세한 유전 설계도를 만들어 올려. 그러면 내가 그대로 조합을 진행하고 샘플을 만들어 줄 테니 그대로 양산하면 돼.'

"그렇게 하지!"

허가를 받은 리하르트는 기뻐하며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이 마계란 곳은 확실히 독특한 곳이다.

빙하와 사막이, 늪지대와 고산지대가 경계선을 두고 공존하는 이상한 땅. 확실히 환경부터가 거칠고 변칙적인 이곳에서 활동하기 특화된 군단병들이 있으면 전투력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곳 마계에 특화된, 새롭게 조합하는 군단병들은 어떤 형태로 만들 셈이지?'

"데이터 상 토착 생물인 마수들을 제외하면 가장 거대한 덩치를 가진 적은 트롤이지. 효율을 계산하여, 굳이 덩치를 키우기 보다는 숫자를 늘리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리하르트는 수많은 데이터를 판독하고 동시에 계산하여 아예 하나의 테마를 잡고 그 테마에 맞추어 군단병들을 설계했다.

"각종 곤충을 베이스로 깔고, 기존대로 역할을 나눠 그 역할에 맞는 병종을 정해 양산하겠다."

그는 4발 짐승, 갑각류, 곤충, 날짐승, 비늘을 가진 파충류, 2족 보행 대형 짐승 등 수많은 종류와 타입을 가진 군단병 중 곤충과 갑각류에 집중했다.

기존의 군단병 중 곤충형 군단병들의 장점을 극대화한 새로운 군단병들의 설계도가 하나 둘 내게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만약 리하르트 같은 사람이 이브의 플레이어였다면 어땠을까. 그 시너지 효과는 예상 불가능일 것이다. 세포 단위부터 이브의 성장을 유도하고 설계하여, 최강의 군단으로 만들었을 텐데.

심지어 그는 이브가 자신을 제외하고 이 온 우주를 먹어치운다 해도 오히려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병사들을 뽑아야 하는데 공백이 생겨버렸어. 이제 어쩌게?"

'나도 그게 걱정이었지만, 아무래도 적들의 움직임이 수상해서.'

리하르트와 내가 이야기 나누는 사이, 둥지 근처 바위에 걸터 앉아 있던 강도연이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며 끼어들었다.

동생이 걱정하는 부분은 이제 막 정체를 드러낸 우리가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거기에 공백이 생긴게 아니냐 하는 것.

'지구인들은 그렇다 치고, 분명 고블린들을 통해 놈들의 수뇌부에도 우리 정보가 들어갔을 텐데 우리가 병력을 양산하는 동안 왜 이렇게 조용할까.'

"설마 고의로 우리를 내버려 둔다고? 대체 왜?"

강도연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물론 나도 그들의 생각을 하나하나 전부 아는건 아니지만, 어째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겪은 것 같은 데자부가 들었다.

'이브와 연합군의 공멸을 바라는 연맹처럼, 마족놈들도 우리가 지구인들과 싸우길 바라는 것일지도.'

"웃긴 놈들이네."

내 설명을 들은 강도연이 대놓고 비웃음을 흘렸다.

애초에 우리는 이브의 군단과는 또 다른 성향을 가진 이들이니까. 물론 지구인들의 편도 아니긴 하지만 우리는 일단 마족들에게 원한을 가지고 놈들을 이 땅에서 축출하기 위해 이곳에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어느 정도 견제를 하긴 하겠지만, 놈들을 처리하기 전에 우리가 인간들과 싸울 일은 별로 없을 텐데.

"저기, 변수가 하나 발생한 것 같아요."

그러나 보다 먼곳까지 정찰을 보낸 오윤아가 발견한 그것들을 보았을 때 나는 앞으로의 계획이 조금 바뀔 수도 있다고 직감했다.

'연맹이다.'

헌터들을 차출해간 대가로 제공한 연맹의 지상군이 이 전장에도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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