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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71화 (171/254)

171화-제 3세력(6)

"짧은 시간이지만, 이제 우리는 이곳에서 어머니 나무와 함께 싸운다."

요정들이 시전한 주문은 고향땅의 고유한 주문이었다. 단지 고향에서 시전할 때는, 그들이 가진 마력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출력을 가진 우주함선의 동력까지 끌어온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것.

본인들의 마력에 더해 함선의 동력까지 빌린 주문이 시전되자 허공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목과 비슷하면서 조금 달라.'

신목에 재한 정보를 이미 가지고 있던 이브가 그 균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나무의 일부를 보고 작게 탄식했다.

"믿을 수가 없군. 우주공간에, 저런 거대한 나무라?"

리암의 반응은 조금 더 격정적이었다. km급 함선보다도 큰 규모도 규모지만, 애초에 우주와 푸르른 이파리를 가진 나무라는 이 그림 자체가 상상도 못하던 광경이었다.

"정보는 없나? 저 나무가 대체 뭐지?"

'나도 몰라.'

리암은 상위지휘개체인 이브에게 정보를 요청했으나 이브도 아는게 없는건 마찬가지였다.

분명 적들이 준비해온 강력한 한수인 만큼 그 위력은 안 봐도 뻔하다. 하지만 지금 이브는 군대를 뒤로 물릴 수 없었다. 일단은 지켜야 하는 입장이니까.

'공격해. 정보야 지금 알아내면 그만, 과연 수만에 달하는 적을 상대로 효과적일 수 있을까?'

이브는 먼저 공격명령을 내렸다. 어쨌든 유리하다는 사실은 아직 변하지 않았으니까. 곧 리암의 지휘에 맞춰 넓게 퍼진 함선체들이 일제히 적 함대를 향해 돌진했다.

"그 숫자는 3만..아니 4만 이상..! 정말 상대 가능한겁니까?!"

"몰살하는건 불가능해도, 버티는건 가능하다. 원래 목적은 지상에서 날뛰게 하는것 아닌가!"

압도적인 숫자에 불안해진 사령관이 재차 물었지만 생전 처음 치뤄보는 형태의 전투에 긴장한건 요정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신시대의 전장에서 어느새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두 진형이 단숨에 근접했다.

"포격!"

양측 모두 함대전의 기본을 충실히 이행했다. 형형색색의 광선포가 서로를 향해 쏟아져 내리고, 파직거리는 에너지 방어막이 포격에 맞아 일렁거렸다.

"방어막이...!"

그때 이를 악물었던 함장들이 눈을 휘둥그레떴다. 아무리 함선체들의 화력이 함선만 못하다지만 그 숫자 앞에 의미는 없다. 단순 계산으로 따지면 첫 피격에 방어막이 박살나고 함선이 피격 받아야 하는 위력이었지만, 더욱 밝게 빛나는 방어막이 깨지는 일은 없었다.

인간들의 함대는, 빛나는 방어막을 두른채 서로 뭉쳐 감속 없이 계속해서 앞으로 향했다. 오히려 근접하기 위해 다가오던 함선체들이 화력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거나 터져나갈 뿐이었다.

"이게 우리의 힘이다. 감탄할 시간에 어서 작전을 실행하라!"

"강습 준비! 목표지점 설정!"

"제공권까지 가져와야 한다!"

순간 화색이 된 요정들이 다시 표정을 바꾸고 다그쳤다. 그 다그침에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군단의 함선체들이 어느새 사방을 포위하고 열심히 화력을 퍼붓고 있지만, 한데 뭉친 연합의 함대는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방어막을 강화하는 세계수의 힘을 빌려 행성의 권역까지 진입했다. 그 밑에는, 당연하게도 군단의 둥지가 넓게 깔려 있었다.

"아무래도 놈들은 자기네들의 땅을 되찾는 것 보다도, 아군의 둥지를 제거하는게 먼저라고 판단한 것 같다. 다행히 저 상태로 행성 내부로 들어가는건 불가한가보군."

'재밌네...아주 재밌어.'

함대를 지휘하며 좀처럼 금 하나 가지 않는 방어막을 두들기던 리암이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

분노한 이브는 애써 분노를 감추고, 병력을 움직였다. 우주의 적들은 리암에게 맡기고 지상을 공격하려는 지상군을 막아내야했다.

"요새에 장착한 주포를 이용해 두들기겠다. 아무리 그래도 한점에 화력을 집중하면 분명 틈이 생길 터, 그 사이에 병력을 집어넣어 저 뾰족귀들을 저격하면 저 나무를 되돌려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좋아. 그렇게 해.'

리암이 즉석에서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고, 이브는 결국 그것을 승인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이미 자신들의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혀를 찬 이브는 행성 내부의 병력을 이용하여, 침투하려는 적들을 막아내야 했다.

*

"여기서부터는 순수 실력 싸움이라고! 쏴 버려!"

"강습 루트를 확보해야 한다!"

대규모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보다는 살짝 아래인 대기권 안.

이곳에 진입한 호위함 한척이 미사일과 광선포를 달려드는 동급의 함선체 하나에 퍼부었다.

"좋았어!"

그들은 결국 함선체를 떨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다른 호위함 중엔 그러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뾰족하고 단단한 함선체의 주둥이에 관통당한 뒤, 촉수에 휘감겨 그대로 추락하거나 폭발했다.

"허. 밑에 바글바글한것 좀 봐."

"우리가 못 버티면 저놈들한테는 손도 못대."

전투기 조종간을 잡은 군인이 화면에 보이는 지상의 모습에 기겁하자 곁에 있던 동료가 이를 악물었다.

둥지와, 그 둥지를 지키기 위해 바글바글하게 모여 든 군단병들.

그들은 지금 그 괴물들을 상대하러 가야 한다. 목적은 단 하나, 지상군이 상륙할 틈을 만들어야 한다. 신목을 이용한 방어막덕에 어중간한 포격이 무용지물인 이상 둥지에 타격을 주려면 반드시 병력을 상륙시켜야 했다.

"발진!"

두 사람이 탑승한 전투기가 적정 고도에 이르자 함선에서 뛰쳐나와 지상을 향해 기관포와 포탄을 퍼부었다.

"방금 스친거 봤어?"

"죽어라 괴물들아!!"

지상에서 쏘아지는, 군단에서 중형 포대를 맡고 있는 지룡의 브레스를 피한 전투기가 아슬히 날며 공격을 이어갔다. 곁을 따르던 다른 전투기들은 그대로 격추당해 추락했지만, 이미 극한의 흥분상태인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임무는 길을 뚫는 것이다. 설령 죽더라도 후속 부대를 위해 한마리라도 더 죽여야 했다.

"...아직이야. 아직."

부서지도록 조종간을 잡은 그의 눈에 곁에 붙여 둔 사진 한장이 아른거렸다. 이 끔찍한 괴물들의 습격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가족의 사진이다.

그는 수만마리 비행종이 새까맣게 몰려와 기체를 습격하고 폭발시키는 그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이 찰나의 순간 수백, 아니 수천명이 또 죽었습니다. 그런 죽음이 쌓여서 만들어진 기회입니다. 절대 헛으로 버릴 수 없습니다."

"나도 전사다. 잘 안다 동지. 피와 목숨으로 닦아낸 길이다.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지."

"만약 저 괴물놈들과 말이라도 통한다면 물어나보고 싶습니다. 대체 우리한테 무슨 원수를 졌는데 이러는건지."

가이샨족의 전사장 가르는, 2족 보행 탑승물에 탄 한 중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펑펑 터져가는 불꽃은 모두 사람의 목숨이고 원한이었다.

저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전투를 반드시 승리로 만들어야 했다.

"지금이다!"

그들은 수많은 견제를 뚫고 추락하듯 가까스로 고도를 낮춘 수송기에서 일제히 뛰어내렸다.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착지한 가르를 향해 이를 드러낸 4발 짐승이 단숨에 달려들었다.

"힘을 아껴두십시오. 분명 놈들이 올겁니다."

그러나 그 짐승은 곁에서 기관포를 쏜 중사의 공격에 맞아 쓰러졌고, 가르도 그의 말을 들어 도끼를 늘어뜨린 채 힘을 아꼈다.

곧 화력으로 자리를 지키려는 측과, 끝을 모르는 숫자로 밀어 붙여 방어선을 뚫으려는 측의 끝없는 소모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가르가 상대해야 하는 적은 머지않아 나타났다.

"상위종. 에...워리어 타입? 이라고 부르던가?"

가르는 대규모 군단병들을 이끌고 나타난 상위종을 보고 도끼를 들어올렸다. 상위종 역시 4개의 팔에 뽑아든 검에서 검붉은 빛을 발산하며 가르를 노려보았다.

"대체 너희는 누구냐. 중사가 말했든, 너희 목적은 무엇이냐."

형상력을 잔뜩 머금은 검과 도끼가 충돌하며 충격파를 뿜어냈다. 가르는 능수능란한 검술을 펼치는 상위종의 공격을 받아내며 중얼거렸다.

직접 상대해보는 모든 이들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축척한 모든 데이터를 활용하는 상위종들이 쌓아 온 경험은 노련하다 못해 닳고 닳았고, 시전하는 검술은 그동안 습득한 각 계파나 유파의 장점만을 섞어 빈틈이 없었다.

"하긴 그게 무엇이 중요하리."

가르의 도끼가, 순간 번쩍이는 에너지를 폭발시키더니 상위종의 팔을 검째로 베어버렸다.

"내면에 품은게 오직 살육을 위한 본능뿐인데, 진정한 업을 담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느냐."

휘둘러진 꼬리를 주먹으로 쳐낸 가르가 있는 힘을 다해 도끼를 내리그었다.

뿜어진 붉은색 참격이 상위종의 베리어를 부수고 몸을 갈가리 찢어버리다 못해 그 뒤로도 이어지며 땅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길을 뚫어!"

"전사장님. 나무를 베어 주십시오."

가르는 그 뒤로 병력들의 호위를 받아 수십미터 크기로 자란 신목의 앞에 도달했다. 그는 숨을 들이키고 도끼를 들어올렸다.

이 신목을 베어낸다는게 군단에게, 이브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른다. 그저 중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기에 내지르는 것 뿐이다.

'이 놈들이...'

이브는 당연히 분노했다. 우주 진출 이후 차원이 다르게 강해진 자신이 당연히 짓밟아 죽였어야 했을 하찮은 먹잇감이나 장애물에 불과한 이들이, 사실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대적할 수 있는 강한 존재들임을, 자신이 절대 완벽한 존재는 아님을 상처로 새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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