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68화 (168/254)

168화-제 3세력(3)

"숫자가 부족한건 사실이다."

의식을 잃고 둥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강도연의 모습을 본 내 얼굴이 굳었다. 나도 맞아봤지만, 우리에겐 척살권이 정의한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다는걸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건 사실이었다.

"어째서지? 네가 구상한 계획, 지금 순탄히 순항중일턴데."

"그래도 부족한건 사실이니까. 내가 보기에는 병력이 더 필요해."

이브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충분하나면 모를까 의외로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곧, 반군 연합은 새롭게 가다듬은 전력을 이용해 이브를 공격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땅을 반드시 찾아야 하니까. 그리고 그중엔 마계의 마족들도 소수 포함된다.

그러니 이브가 그들과 최소 대등하게 싸운다는 가정하에 놈들의 경계심이 더 높아지기 전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대체 어떻게. 네가 나처럼 대병력을 부리지 못하는건 네 능력부족 때문이라고."

"방법은...찾으면 돼."

인간의 의식으로 천가지 만가지 사고를 동시에 반복하는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했다. 단신으로 수많은 병력을 통솔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문제는 그 방법이 대체 무엇인지, 근본은 평범한 24세 인간 남성에 불과한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쉽지 않을걸. 절대로."

"맞아. 이건 한계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한 일이니까."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머리를 쥐어짰다. 일단 나로는 부족하다. 나보다 더 뛰어나고, 절박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아이디어를 의탁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무언가 갈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계를 뛰어넘기 쉬우니까. 진화에 목마른 사람...나는 그 순간 누군가를 떠올리고 눈을 번쩍 떴다.

"그놈은 연맹에 심어둔 중요한 스파이인걸."

"하나 더 있잖아. 그리고 당장 이틀 뒤면 우리가 연맹에 침투하게 될텐데 뭐."

내 생각을 알아챈 이브가 입을 비죽였으나 나는 착실히 설득했다. 적어도 연맹에 스파이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이제 필요 없었다.

우리는 이제, 수호자 연합이 연맹과 맺은 협정에 따라 자원하여 연맹의 행성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으니까.

"정말로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되었잖아."

이브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지구에서 수호자 연합의 헌터로 활동하던 우리는, 지금 공격 받고 있다는 연맹의 개척지로 파견되게 생겼다.

이브가 요새급 함선 자코프에 밀려나 지상전으로 선회한 바로 그 개척지로. 우리 입장에선 그 모양새가 웃기긴 하다.

*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소장님."

"그렇게 하게."

연맹의 함선 내부. 그날의 일을 끝낸 리하르트는 혼자서 자료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본성에서는 출발 준비 끝났다더군요. 곧 이곳으로 워프하겠죠."

"살다보니 이런 일이..."

그의 곁을 몇 사람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지나쳤다.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멍하니 전방만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그들도 떠난다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

리하르트는 떠나는 이들의 명단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 명단에 올라와있는 두 사람의 이름 역시.

그 두 사람은 괴물이었다. 그것도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괴물. 리하르트는 이미 그들을 모습을 숨기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지구의 토착 생물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장악하고 조종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 상관 없었다. 또 다른 첩자 피레스는 하루하루 말라가며 피폐해지고 있었지만 리하르트는 단지 그 신비로운 힘에 대해 더 연구하고 살펴보지 못한게 아쉬울 뿐이었다.

"..으음?!"

바로 그 순간. 리하르트는 전신에 소름이 돋으며 움찔거렸다. 이제는 익숙한 이 감각, 바로 자신의 몸을 장악한 괴물이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가?'

"지금 내 사무실로 가겠다."

그는 뇌리에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긴장하긴 커녕 씨익 웃었다. 그는 곧 자신의 집무실에 도착하여, 문을 잠갔다.

"소식은 들었다. 지구를 떠나게 되었는데, 우리의 통신을 유지하진 못하겠지?"

'역시 당신은 참 괴상한 인간이야. 하지만 오히려 좋아. 그 욕망, 그 갈망. 이제 단순한 첩자질 말고 제대로 펼쳐보는게 어때.'

리하르트의 말에, 낱낱이 알 수 있는 그의 몸 상태를 체크해 살짝 흥분했다는걸 알아차린 신우가 쓰게 웃었다.

"내 갈망이라? 그게 뭔지 알고, 너희가 무슨 수로 채워준단 말이냐."

'글쎄.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지. 그러니 일단 한번 봐봐. 그러면 네가 얻을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테니까.'

"크헉..."

말이 끝난 직후, 그는 숨을 들이키며 의자에 쓰러지듯 기대 앉았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눈을 까뒤집고 덜덜 떨며 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체내의 나노머신이 경보를 울렸겠지만, 지금 그의 몸 안에는 나노머신을 연기하는 군단의 세포들만 가득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넌 절대 몰랐을걸.'

신우가 그의 뇌에 직접 보여주는 광경은 다름 아닌 군단의 모습이었다.

행성 전체를 군단의 둥지로 덮은 모습, 함선들을 부숴나가는 함선체들의 모습, 새까맣게 몰려가 땅을 뒤덮는 군단병들의 모습까지.

'넌 언제나 진화하고 싶어했지. 우리와 진정한 하나가 될 생각이 있나?'

신우는 그를 완전히 포섭하기 위해 천천히 구슬리기 시작했다. 발작이 잦아들고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는데도, 그는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다.

"이 무서운 괴물들."

그러고선 어처구니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당연하다. 나는 그 힘을 거절하지 않아."

미친놈마냥 피식피식 웃던 리하르트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아 제안을 수락했다.

'인류를 배신하는 행위인데도?'

"그게 무슨 상관이지? 단편적인 정보만 전달되었을 때도 나는 너희들이 더욱 거대한 세력이 될거라 예상했다. 직접 겪은 지금은 달라. 너희가 온 우주를 먹어치우고 연맹이고 연합이고 다 죽여없앨게 뻔한데 굳이 패배가 뻔한 쪽에 남아있을 순 없지."

그는 판단이 빨랐다. 신우는 그렇게 되는건 자신이 막을 것이라는 소리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신우는 그를 군단으로 편입하기 전 그 목적을 알려주었다. 자신에게 수많은 병력의 통솔을 맡긴다는 말에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역시 쉽지 않겠지. 태생이 하이브마인드인 존재와는 다르게.'

"완전히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

리하르트는 그 충격스러운 과정에도 단숨에 자신만의 답을 찾아내었다.

"당연히 하나하나를 살아있는 개체 처럼 움직이게 하는건 불가능하지만, 간단한 명령어를 이용해 미리 저장해둔 활동명령을 실행할 수 있다면 움직이는건 가능하지. 마치 자동 로봇처럼."

'내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군. 그럼 어디 한번 해봐.'

신우는 예상 이상으로 깊은 흥미를 보이는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의 이론이 성공한다면, 오직 군단병을 다루기 위한 하이브마인드의 하위 존재가 생겨나는 셈이었다.

리하르트는 그자리에서 함선 탈주를 계획했다. 그는 중요인물 중 하나, 엄중한 호위는 곧 철저한 감시기도 했으니 보통의 방법으로는 탈출하는게 불가능하다.

'이것은 진정한 도약을 위한 순간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되어서.'

그는 태생이 엘리트였다. 살아 온 인생 역시 흠잡을데 없는 엘리트 그 자체였으며 그는 자신의 재능을 연맹과, 자신의 세력을 위해 끊임 없이 사용했다.

하지만 그렇게 연맹의 과학자로 일하며 느꼈던 약간의 부족함. 그 부족함은 이곳 지구에 와서 형상력과 다양한 힘을 가진 존재들과의 만남을 가지며 빠르게 채워졌으나 역시 아직은 부족했다.

그렇기에 이브에 의해 감염되어 군단의 힘을 일부 엿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공허함을 완전히 채울 수 있는 힘을 접하게 되어 크게 흥분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그 기회가 왔다.

"누구...응?"

경계를 서던 경계병은 흠칫한 느낌에 뒤를 돌아봤으나, 그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체내의 감염세포를 피부층으로 올려 강제로 은신한 리하르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경계병을 그대로 지나쳐, 목표로 지정한 곳에 수제로 만든 폭탄을 손쉽게 부착할 수 있었다.

폭발을 일으켜 정신을 빼놓고 그틈에 몸을 피할 작정이었다.

'반대쪽도 설치 끝났다.'

신우는 또 다른 첩자인 피레스를 이용해 다른 쪽에도 폭발물을 설치했다. 의심 받을 여지는 전혀 없다. 이 폭발로 자신의 방도 깔끔히 날아갈 것이고, 그대로 사망 처리 될 테니까.

"격발."

비상탈출구 근처로 온 리하르트는 망설임 없이 격발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이 거대한 함선이 뒤흔들렸다. 사정 없이 울려대는 비상벨과 당황한 사람들의 비명소리 등등.

그 소리를 들으며, 리하르트는 비상탈출구를 강제로 개방했다. 그 아래 펼쳐진건 우주공간이 아닌 새까만 허공과 달빛이 비치는 태평양의 검은 바닷물이다.

'몸을 던져. 그곳에 게이트를 열테니까.'

"흐..으하핫!"

그는 미친 사람처럼 웃더니 결국 수천미터 아래에 보이는 바다를 향해 몸을 날렸다.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자살하려는 사람의 미친짓이라고 했을 것이다.

"어푸.."

안전장치 하나 없이 허공에 뛰어든 그는 눈도 제대로 못뜬채 몸을 힘 없이 펄럭이며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곧 그가 떨어져 내리는 예상 경로에 사람 하나 들어갈만한 작은 공간의 균열이 천천히 발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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