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대혼돈과 대침공(9)
"...그러고보니 이대로 가면 좀 위험한거 아닌가?"
"뭐가?"
"의심할 수 있지 않나? 정보의 출처를."
나는 슬쩍 주변 눈치를 보며 이브에게 물었다. 지구에 파견된 연맹 사람들은 자기네 세력이 공격당하고 있는 이 상황을 아직 모르고 있는지 다른 일이 한창이었다.
"난 그렇게 생각 안해."
이브는 내 질문을 듣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 양쪽 세력을 다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기 보다는 충분한 근거를 들어 판단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연합 세력만 접촉하고 그놈들과만 싸웠어. 리하르트를 통해 알 수 있었듯, 연맹은 직전까지 우리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그저 적들의 내부를 파먹는 기생충으로나 생각했다고."
이브는 크리스와 이야기 하고 있는 로멜 중령을 보며 슬며시 웃었다.
"인간들의 상식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연맹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고 생각하진 못할껄? 애초에 저들은 우리의 겉모습 외에 뭐 아는게 있기는 한가?"
"모르지."
이브의 말은 현실을 날카롭게 꿰뚫는 말이었다. 그들은 우리에 대해 모른다. 그 수많은, 크고작은 군단병들이 사실은 군체의식을 공유하는 하나의 존재이며 그 하이브마인드가 자기네들 기술을 빼먹으며 급격히 성장해가는 것 역시.
"장담하는데 연맹과 연합이, 즉 우주의 인류가 제대로 손을 잡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거야. 그 사이 우리는 양쪽을 동시에 갉아먹고 덩치를 키우면 끝."
이브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리라 확신했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는 중이었다. 반군연합은 크게 한번 얻어맞은 이제서야 체제를 정비하고 있고, 연맹은 아직도 우리를 모른다.
"난 이렇게 잘 나가는데. 너희 쪽은 어때."
이번에는 이브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의식을 돌려 마계를 살폈다. 지금 내 '병사'들이 싸우고 있는 곳을.
"너무 자만하진 마. 그리고 우리도 계획대로 가고 있어. 착실하게."
"좋아. 그럼 충분하지."
히죽 웃은 이브가 거기서 더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현재 이브가 파견한 함대가 습격하고 있는 개척지, 그곳은 이미 함락 직전이었다.
*
"홀이..."
"이제 우린 끝이야."
분명 끝이란게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너른 우주에 보이는건 검붉은 몸체를 가진 괴물들의 몸뿐.
함선에서 무기를 쏘며 격렬하게 저항하던 승무원들이 절망에 빠졌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던건 홀에서 튀어나올 지원군을 위해서였다.
"함장님...이제 어떻게 합니까?!"
부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함장에게 물었다. 그들의 시선에, 피탄되어 결국 방어막이 깨지고 함선체들의 몸통박치기와 광선포격에 부숴져 내리는 홀의 모습이 보였다.
워프홀이 닫혔으니 만약 지원군이 오고 있었다면 그들은 그대로 터져서 죽었을 것이고, 오지 않았다면 올 길이 막혀버린 셈이었다.
"지, 지원은 충분히 올 수 있다. 계속 싸워! 우리가 뚫리면 지상의 수천만명은 그대로 죽는다고!"
함장은 스스로의 두려움도 무릅쓰고 결사항전을 다짐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건 거의 없다. 계속싸우거나 항복하거나 얼마 못버틸 식량과 무기만 들고 외우주로 도망치거나.
하지만 적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괴물들이니 항복 따위 가능할리 없었다.
"어..."
그때 함장이 전방을 보며 지휘하던 함교 바로 앞. 무언가가 우주공간을 뚫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착지했다.
틈 사이로 번득이는 붉은 안광과, 4개의 팔, 길게 뻗은 채찍같은 꼬리.
경험해본 군인들은 하나같이 기겁하며 두려워하던 존재가, 함선의 방어벽을 부수고 침투한 것이다.
'연맹도 다를게 없네. 역시 끝을 향해 갈수록 독특함은 사라지는건가?'
이브는 방어막 내부에 침투에 성공한 상위종의 몸을 움직여, 함교 내부를 부수고 난동을 부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병사들을 통제하면서도 다소 실망했음을 감추지는 못했다.
'연합이니 연맹이니 비슷비슷해서 잡아먹을만한게 없어.'
신우가 지적했듯 이브 본인도 잘 알고있는 문제 중 하나였다.
우주에 진출할 함선체를 만든 이후 한단계 스텝 업 하며 급격히 강해진 군단은 이제 끝없던 진화의 속도가 더뎌지며 전체적으로 정체상태였다. 함선체보다 거대한 병종은 만들 수 없었고 고착화된 전투법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이번에 이렇게 연맹을 공격하며, 반군연합보다 훨씬 강하다는 인류의 진정한 힘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애초에 반군연합은 연맹에서 떨어져나간 세력. 더 강한것 같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두 종류의 인류에 실망한 이브는 차라리 우주급 세력은 아니더라도 인간을 초월한 형상력을 이용하는 다른 세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우주는 볼것도 없어. 지상을 점령해.'
호위함급 함선체 다섯이, 찰싹 들러붙어 주둥이를 쳐박고 촉수로 휘감은 기함 내부에 병력을 토해내고 있었다.
우주를 완전히 점령했다 판단한 이브는 지상 병력을 가득 태운 km급의 기함 함선체를 움직여 대기권을 뚫고 지상을 향해 돌진시켰다.
딱히 얻을게 없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둥지화나 시도할 생각이었다.
'...저건 설마.'
하지만 그 순간. 아무것도 없던 우주공간 한쪽에서 터지는 강력한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었다. 그 충격에 인간들 역시 당황할 정도였다.
흥미를 잃고 내내 기계적으로 적들을 상대하던 이브는 그 거대한 워프 반응에 활짝 웃었다.
사실 첩자들을 이용해 수집한 연맹에 대한 지식에, 그들이 이런 거대한 워프 반응을 이끌어낼 병기는 없다.
그러나 지금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공간을 왜곡하며 단숨에 모습을 드러낸 그 거대한 함선은 그동안 연맹에서도 이론으로나 구상하고 있던 꿈의 병기이자, 단순하게 계산하면 이 전쟁을 단숨에 끝낼 수 있을만한 결전병기.
'함대급 함선 자코프. 저것이 저들이 가진, 저들만의 대행성 침략요새. 근데 분명 기술부족으로 못만들고 있었다 했는데.'
마치 km급 기함이 여러척 합쳐진 것 같은 거대한 금속의 몸체는 매끈한 몸을 가진 가자미 같던 기존의 함선들과는 달리 몸통을 교차한 4개의 날개와 거대한 추진체를 달고 있었다.
날개 전면부에서, 몸체에서 빛나는 수천개의 점이 모두 지름 십수미터의 광선포.
쏘아진 그 거대한 광선포에 수십체에 달하던 군단의 함선체가 일제히 소멸했다.
'저거다. 저것이 바로, 내가 도달해야 할 다음 목표.'
이브는 자신의 일부인 함선체들이 그 압도적인 화력에 화염방사기 앞의 날벌레마냥 떨어져 내리는데도, 그 거대한 요새형 함선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도달하는게 가능한가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제 그동안 공허하던 눈앞에 기준점이 하나 생겨났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곳을 향해 달려나갈 뿐이었다.
"사령관님. 놈들이 외우주로 물러갑니다. 추격합니까?!"
"...아니. 우리 목적은 개척지 구원이다. 당장 지상에 지원군 투입해."
압도적인 화력으로 괴물들을 일소한 이 요새형 함선의 함장이자, 하나의 군을 이끄는 사령관.
그는 멀어지는 괴물들의 잔당을 보며 지상을 구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추격을 중지시켰다.
"믿기지 않습니다. 그동안 에너지 효율 문제로 개발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 거함이."
"나도 마찬가지네. 대체 어떻게 만드는데 성공한건지."
이 함선으로 부임지를 옮겨온 사령관이 감탄한 부관의 말에 동조했다.
사실 이미 완성 직전이었다. 그리고 급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되어 그의 부대 전체를 투입하겠다. 이게 그가 명령 받은 전부였다.
"괴물놈들이 아무리 많다한들, 그 둥지를 대륙단위로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어쨌든 상부는 아무래도 반군연합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사령관이 그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듯 미간을 찌푸렸다. 꿈의 병기였던 이 함선을 실제로 구현하고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면 이제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없다.
반군연합의 함대도 단숨에 갈아버릴 수 있는데 대체 왜 눈치를 본단 말인가.
"사령관님. 생존한 방위군의 함장이 보고할게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괴물들이 저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연결하게."
그는 자신의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그때 들어 온 보고에 집중했다.
"사령관님! 지금 지상이..!"
그러나 그는 여유롭게 뒷처리를 하는게 불가능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분명 다 죽였는데!"
"어, 어디서 이렇게 기어나오는거야?!"
요새급 거함이 우주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데도, 대기권에 침투한 함선체들을 모조리 격추시켰는데도 인간들은 전쟁을 끝낼 수가 없었다.
"대체..."
식은땀을 흘린 한 병사가 과부하로 더 이상 쏴지지 않는 플라즈마건을 떨어트렸다. 쩍 벌린 입이 그의 목을 물어뜯어 단숨에 절단내었다.
분명 이 앞엔 강 뿐인데, 그 강물 속에서 크고 작은 괴물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요새급 함선은 함선이고, 둥지는 얻어야지. 일단은 인간들을 전부 몰아내고.'
이브는 미친듯한 지상군 물량을 개척지 곳곳에 뿜어내며 둥지화를 진행했다. 그 거대한 함선의 화력이 자기네들 기반이 되는 땅을 향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시도하는 전술이었다.
워프 좌표는 이미 알았으니, 지상에 투입한 지상군에게 게이트 좌표를 따게 시킨 뒤 그곳들에 게이트를 열어젖히고 중대형 군단병들을 무한정 밀어넣는 것.
바닷속이나 땅속 동굴 같이 험지와 오지에 열린 게이트는 하늘에서는 찾을 수 없고 전쟁이 벌어지는 도심지는 폭격할 수도 없으니 인간측은 아예 이 땅 전체를 비우게 만드려는 이브의 노림수에 외통수를 맞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