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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61화 (161/254)

161화-대혼돈과 대침공(6)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해도 된다. 그냥 내 간단한 의사만 전달되면 그걸로 족하다.

만약 저 초록색 피부의 동족들에게 원한이 있다면 내가 그 기회를 주겠으니, 나와 함께 싸우자고.

'동의한다면 지금 바로 행동으로 보여. 함께 놈들과 싸우자.'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 이놈들을 따로 구속하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다 예상대로 놈들은 유닛인 산고블린들과 사이가 수평적이거나 돈독하지도 않았다.

퍼져서 초록색 피부의 산고블린들을 사냥하는 우리의 움직임에 맞춰서, 감염된 고블린들 몇이 동조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놈들은 굉장히 단순하다. 흐름이 바뀌기 시작하니 곧바로 우리와 함께 싸우기 시작하는 놈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안그래도 불리한 싸움에 곁에 있던 동족들이 무기를 들어 찌르기 시작하자 무너지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설마 이놈들 모두에게 동력기관을 달아줄건 아니지?'

'당연하지. 하지만, 전공을 세우고 스스로 강해진다면 그걸 못해줄 거 없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도연이 순간 불안하다는 듯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많은 숫자에 전부 동력기관을 달 수는 없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저점이 너무 낮아 투자 가치도 없었다.

그치만 놈들에게도 감정이 있으니 만약 스스로 강해지는데 성공하면 그것을 위해서라도 보상은 줄 생각이었다.

'돌아가자. 꽤 많은 병력을 잃어버린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니까. 그 반응에 맞춰서 움직이자.'

전투가 끝난 직후 나는 병력을 철수시켰다. 이들을 전부 내 밑으로 포섭하는게 성공한다면 우리 덩치는 단숨에 열배 이상으로 커진다.

"이제 이런 식으로 숫자를 계속 늘려가는거야?"

"숫자를 늘리는건 수단에 불과하지만, 일단은 그렇지."

포섭한 레드페이스들은 청산족처렁 산채로 군단병으로 개조되었다. 이미 군단에도 고블린을 베이스로한 소형 군단병이 존재하니 개조 자체는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빠르게 이루어졌다.

"물론 고블린의 뇌를 가졌다고, 굳이 고블린처럼 쓸 이유는 없지만."

물론 그게 한계는 아니었다. 어차피 내게 중요한건 내 지시대로 움직여 줄 두뇌였지 몸이 아니니까.

몸이야 내가 만들어주면 된다. 종족특성인 유전자 데이터조작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불완전한 하이브마인드지만, 어차피 그런건 이브가 다 만들어 둔 기록이 있으니 그걸 가져다 쓰면 그만이다.

좀 어색하더라도 전혀 다른 형태의 몸을 움직이는게 성공하면 마치 이브가 부리는 군단병들을 내가 재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들, 그러니까 지구연합군쪽은 어때. 내가 알기로 그쪽은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함부로 못움직이고 조용하다던데."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움직임 없습니다.'

내 말에 몸을 감추고 따로 파견을 나가 연합군 주둔지를 감시하던 상위종이 보고를 보내왔다.

아직은 계획대로다. 이대로 계속해서 고블린들과 충돌해 놈들의 전력을 갉아먹는다. 아마 놈들의 힘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면 그때는 연합군이 움직일거라 예상했다.

"오빠 혹시...사람들도 포섭할 생각이야? 지구인들을?"

"너도 알겠지만 정말 여러 사람들이 있지. 그중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기 영혼마저 내다 팔 사람들도 있어. 그 영혼, 내가 사겠다는게 이상한건 아니잖아? 그들은 내가 준 힘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나는 그들의 충성을 받아 나의 목적을 이루는거야."

지구는 내가 지켜야 할 또다른 세상이자 나의 고향이다.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은 할 생각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내 동족이지만 마물들에게서, 심지어는 같은 인간들에게서 모든 인간을 지키는건 불가능했다.

"..."

군체의식을 통한 내 눈에 누군가 보이고 있었다.

지금은 평범한 연구소장으로 위장하고 있는 군단의 첩자 리하르트. 부하 피레스와는 달리, 그는 군단의 힘에 적극적이었다.

이브는 도움은 덜하고 욕심만 더럽게 많은 미친놈이라며 통제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관심이 있었다. 만약 정말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그라면 새로운 두뇌가 되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

"극비 자료 말입니까?"

"프로젝트의 관련자들에게만 제공되는 기밀이네."

연맹의 함선, 지금은 일개 숙주에 불과한 리하르트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함장의 부름을 받고 그의 집무실을 찾았다.

"우선 반군연합의 상황부터 알려주지. 결국 그놈들은 그 정체불명의 우주괴물들에게 자기들 행성을 빼앗겼지."

"그 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함장의 말에 리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그가 가장 관심을 보이는건 지구의 초인들도, 마계의 마물들도 아니었다.

"새로운 카테고리 Z, 그 이명은 최초의 보고였다는 반군연합 함대의 보고에 따라 붙여진 파멸귀."

"지금까지 알려진 놈들의 둥지는 하나였지만 이제 세개가 되었지. 놈들의 목적이 뭔지 알겠나?"

"번식과 확장 아닙니까? 벌레답게, 괴물답게."

우주괴물들에 중얼거리던 리하르트는 당연하지 않냐며 코웃음을 쳤다. 실제로 어느정도 맞는 말이었다. 확장, 성장, 번식 등등은 이브의 목적이 맞았으니까.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놈들은 단 한명의 생존자도 남기지 않고 사람, 아니 생명들을 죽이고 먹어치우며 자신들의 둥지를 늘려간다 하지. 뭐 그건 지금 자네랑 이야기 하려던건 아니고."

그 괴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몸을 부르르 떨던 함장이 주제를 바꾸었다.

"어쨌든 그 우주괴물들의 등장과 전쟁, 패배는 반군연합에게 큰 변화를 준 것 같더군."

함장이 그에게 자료를 넘겨주었다. 그 자료를 대강 훑어보며, 리하르트의 눈이 점차 빛나기 시작했다.

그가 지구에 온 순간부터 가장 관심을 가지던건 바로 그들의 지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던 초인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반군연합은 결국 그런 존재들과 손을 잡은 것으로 보였다. 마치 지금 지구인들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본인들처럼.

"마계에서 놈들의 물건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지. 처음부터 서로 연결점이 있던 놈들이 서로 제대로 손을 잡은거야. 분명해. 그 원인은 당연히 그 괴물들이겠고. 역겹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식인하는 괴물들과 손을 잡다니."

"식인? 그거야 아주 사소한 문제입니다. 정말 흥미롭군요..."

"아무튼 놈들은 이번 전쟁을 계기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같아. 우리가 뒤쳐져서야 되겠나?"

상부가 함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이 극비자료를 준 이유는 간단했다. 반군연합이 새롭게 만든 시스템을 바탕으로 혹시라도 더 강해지기 전에 본인들도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군인이자, 함대를 이끄는 함장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괴물들과 싸우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 오히려 저희 연맹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으리라 보시는지."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기서 이러고 있지도 않았을걸세."

나가기 직전 던진 리하르트의 질문에 함장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청렴하진 않지만 지휘관의 능력조차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리하르트는 씩 웃으며 그대로 집무실을 나왔다.

"소장님."

"무슨 일이지?"

"지금 모든 헌터들에게 연락이 갔습니다."

함장의 집무실에서 나온 리하르트에게 부하 연구원, 피레스가 다가왔다.

단순히 보고만 하는데도 피레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리하르트는 그 이유를 직감했다.

"...그들에게도 연락이 갔겠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일을 보면 어차피 지금 대화도 다 듣고 있을텐데."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피레스의 몸이 흠칫거렸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피레스는 아니었다.

피레스는 아직도, 이브에게 강제로 감염 당하던 그날의 기억이 선명했다.

'당연히 듣고 있지.'

동시에 그들의 의식에 낯선 존재의 의지가 틀어박혔다. 그러나 리하르트는 기다렸다는 듯 히죽 웃었다.

"들었겠지만, 이 우주는 넓고 괴물들은 너무나 많아. 우리 연맹의 상부가 저 우주 너머의 괴물들을 막기 위해 또 다른 괴물들을 모으고 있지. 자네들은 어쩔텐가."

리하르트는 이브와 신우가 지구의 토착종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신우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금 당장 리하르트를 포섭할지. 아니면 조금 더 두고볼지.

'신경 안써.'

결국 신우는 한번은 더 미루기로 결정했다. 리하르트는 원하는 조건에 딱 부합하는 인재였지만 아직 첩자로 쓸데도 많았으니, 몇 번 실험을 거친 뒤 시도해도 늦지 않으니까.

'다른 이야기는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대신 다른 곳에 시선을 돌렸다. 리하르트는 본인의 의지와는 반대로 미처 자세히 살피지 않았던, 함장이 준 기밀자료를 낱낱이 보여줘야 했다.

"이걸 지금 알아서 의미가 있나? 이건 우주괴물들과 싸우는 다른 이들에게나 중요한 이야기인데."

'의미? 아주 많지.'

리하르트는 자신과 소통하는 의지의 말투가 미묘하게 바뀐것은 인지하지 못했다.

그덕에, 이브는 현재 행성들을 빼앗기고 한발자국 물러난 반군연합이 지금 대체 뭘 하는지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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