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60화 (160/254)

160화-대혼란과 대침공(5)

"저기, 오늘 고생하셨습니..."

"신우는 지금 자."

인기척을 낸 뒤 조심스럽게 막사 안으로 들어 온 수호자 연합의 간부 메리. 그녀는 막사 안을 보고 흠칫했다.

분명 방금전까지는 깨어 있던 신우가 죽은 듯 잠들어 있었고, 이 간이 막사 안에는 그 곁에 앉은 이브만 깨어서 남아있었으니까.

'한번 지켜보겠어.'

나는 이 광경을 볼 수 있었지만 굳이 다시 몸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브가 이제는 자기 혼자서도 잘 둘러댈 수 있다고 큰소리 탕탕치며 호언장담했기 때문이었다.

"그, 그럼 강신우씨가 깨어나시면 다시 올게요."

"...지금 날 피하는거지? 마음대로 들어와놓고 나갈때도 멋대로 나가려고."

"히익!"

눈이 흔들리던 메리가 대놓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 행동은 나름 자신의 '인간 연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이브에겐 마치 약자를 대하는 듯 무시하는,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짓이었다.

순간 목소리를 차갑게 바꾼 이브의 한마디에 그녀의 몸이 흠칫거렸다. 이 사회에서 그녀는 분명 우리 상관이지만, 그동안 하도 이브에게 당하거나 뒤치다꺼리를 하는게 많아 보이는 반응이었다.

"그런게 아니에요! 이 이야기는 둘 모두에게 해야 하는 이야기라서, 방금전까지 싸운 사람을 괜히 깨우는건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래요."

"흠, 아닌거 같은데."

팔짱을 낀 이브는 찰나의 순간 감각을 극대화해 그녀의 눈, 심박, 미세한 표정변화등을 캐치해 저것이 거짓말임을 판독했다.

'그냥 놔줘. 나중에 같이 이야기 듣자.'

"쳇..."

나는 이브가 또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기 전에 사전에 통제했다. 이미 이 캠프 내에서 이브의 이미지는 독불장군에 지위고하 막론하고 그 누구든 들이박는 무대뽀로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본인 이미지 관리는 조금도 신경 안쓰니 나라도 챙겨주는 수밖에.

"그럼 가 봐."

"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좋은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

메리는 이브와의 대화가 끝난다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기쁜 것 같았다.

"갔어. 주변에 기척도 없고. 당분간은 조용하겠지."

"좋아. 그럼 나도 지금 넘어가야지."

이브가 내게 말했다. 다만 인간의 몸이 아닌 군단의 몸으로. 이곳은 전장에 세워진 임시 막사도 아니었다.

나도 여기서는 자지 않고, 깨어 활동하고 있었다.

"다른 곳 상황은 네가 보기에 어때. 난 한고비 넘긴 것 같은데."

"네 말이 맞아. 계산대로야."

나도, 이브도 이곳 레드리움이 아닌 다른 곳을 보았다.

이브가 새로이 둥지를 펼친 세곳의 행성 에덴, 바렌, 센젤.

이브의 계획상 그곳들은 반드시 전면 둥지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실제로 한때 푸르른 자연과 마법사를 비롯한 사람들이 살아가던 에덴은 이미 작업이 끝났다.

"열심히 두들겼지만 지구력에서 우리를 따라올 수 있을까? 놈들도 그걸 알았는지 에덴의 공격과 바렌의 수복은 완전히 포기한걸로 보이더라. 남은건 레이나가 있는 곳인데, 그곳도 이미 반이상 먹었거든."

이브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상황을 읊어주었다.

결국 처음으로 이브라는 신생의 존재가 그 존재감을 떨치며 등장함과 동시에 벌어진 기존 세력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뭐 이브가 어느 정도 덩치를 키운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그래왔지만 그 전쟁에서 내가 도운 것은 거의 없다. 마지막에 겨우 한손 걸친 것 정도.

이브는 앞으로도 내 도움 없이 계속해서 진화하고 성장할 것이다.

필요한 샘플의 정보가 있다면 찾아가서 직접 잡아먹고, 상대가 플레이어나 유닛의 도움을 받아 강해지면 자신은 그 상대를 보고, 먹고, 분석해 강해진다.

"그러는 너는. 마계에서, 비록 함대의 지원 없이 3자 구도 비슷하게 흘러간다지만 내 도움 없이 이길 수 있어?"

"그건 모르지. 너로 따지면, 난 이제 막 미궁을 올라가는 중이니까."

여유가 있다는 것인지, 이브가 나를 향해 자신만만한 웃음을 보였다.

"정 힘들다면 나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돼. 함대는 아직 나도 빠듯하지만 지상군 정도면 남아도니까."

"..,내가 실패할 것 같아?"

"내 계산에 따르면, 네가 선택한 길은 불확실성의 안개와 다름 없어. 계산의 영역이 아니란 뜻이야. 위험도는 크고 안정성은 떨어진다고."

기분탓일게 뻔하지만 이브의 콧대가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았다. 가슴도 쭉 피고 어깨도 벌어진게 의도한게 맞는거 같다. 이 녀석...지금 날 놀리고 있다. 점점 귀여워지는군. 물론 이브의 입장에선 아등바등하는 내가 더 귀엽게 보이겠지만.

"어차피 결과는 곧 나와. 그리고 나보다는 너가 더 힘들지 않을까? 전열을 정비한 진정한 연합군을 상대로 넌 혼자서 싸워야 하는데?"

"적들이 강하다면 난 그들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해. 그러니 지지 않아. 내가 지는 날이, 세상이 끝이야."

내가 가볍게 반격해봤지만 이브는 당연하게도, 자신의 패배를 예상에 두지 않았다.

패배는 곧 죽음. 그러니 승리만이 유일한 정답이라는 정신을 타고난 본성에 새기고 태어난 전투생물답게.

"그렇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한번 해보자. 너는 그곳에서, 나는 저곳에서. 그러면서도 이곳 지구에선 함께."

얼굴을 완전히 가면으로 덮은 나는 그 길로 게이트를 넘어 지구의 집으로, 집에서 마계로 향했다.

이 작업은 그곳에서 쓸 내 몸을 옮겨놓기 위해서였다.

*

"고블린 정찰대?"

'그 숫자가 많아, 정찰대라 부르긴 힘듭니다.'

우리가 마계에 심은 첫 둥지는 너무나 익숙한 환경인 동굴이었다. 그 동굴에 설치된 게이트를 통과한 내게 곧바로 보고가 올라왔다.

"보고 있어. 상당히 많군. 그런데...저 고블린들, 대다수는 유닛이 아니야."

나는 은신하고 적들을 감시하고 있는 상위종의 시선으로 놈들을 살폈다. 그리고 곧바로 특이점을 발견했다.

우리가 상대가 유닛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방법은 스트링의 유무. 대상자의 혼에 한가닥의 외부연결이 보이면 그자는 유닛 혹은 플레이어다.

"그렇다면 쓸 수 있을지도."

운이 좋다. 놈들은 한편인 것 같지만 분명 차이가 있었다.

유닛인 초록색 피부의 산고블린들은 하나같이 좋은 갑옷등으로 무장하고 늑대 같은 외눈짐승을 타고 있었다.

반면 대다수를 차지하는 붉은색 피부의 레드페이스들은 허름한 차림새에 조잡한 무기를 든게 전부였다.

지구에서도 차별과 박탈감이 만연한데 저 단순한 놈들이라면 아예 대놓고 다니지 않을까?

'설마 붉은색 고블린들을?'

"또 다른 군단인 우리는 끊임 없이 몰려오는 무감정한 살육기계는 될 수 없어. 하지만 동기가 필요하고, 복수심 같은 폭발적인 감정은 충분히 이용가능하지. 마치 이브의 서브마인드들 같이."

성공할지 아닐지는 계산하지 못한다. 이브조차 레이나나 리암등 서브마인드들을 이용할때는 '실험'이라는 워딩을 계속해서 사용했다.

그들이 가진 감정의 끝이 대체 어디로 향할지는 계산의 영역이 아니니까. 결국 말을 해봐야 알 것이다.

"지금부터 놈들을 공격한다. 가능한한 초록색 놈들만 공격해."

가면을 쓴 내가 집결한 병력들을 이끌고 동굴 밖으로 나오며 동시에 은신했다.

현장 근처의 상공에서 은신하고 있던 강도연과 일부 병력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전원은 품에 동력기관을 장착한 상위개체. 하늘을 나는 특권으로 빠르게 놈들의 무리에 접근했다.

'놈들의 수는 총 2699마리. 하지만 우리는 전부 엘리트들이야. 설마 지겠어?'

'당연히 안 져.'

강도연이 가장 먼저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은신을 품과 동시에 하늘에서 찍어내리는 검은 날개 4장. 또다른 세상에서는 죽음의 날개라는 이명까지 가진 파괴적인 무력이었다.

"?♤@%?!!"

놈들의 우두머리인듯, 뿔이 달린 투구를 쓴 주제에 몸에는 권총과 각종 장비가 달린 조끼를 걸치고 있던 해괴한 차림새의 고블린이 강도연의 강습을 미리 알아차리고 고개를 쳐들었다.

아무래도 마계연합의 주축 중 하나라는 칭호는 딱지치기로 딴게 아닌 것 같았다.

놈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단숨에 하늘로 쳐들었다.

'마법!'

고블린들의 플레이어는 또 다른 세상의 마법사다. 우두머리는 전수받은 마법을 하늘을 향해 뿜어내었다.

쏘아진 마법은 말그대로 거꾸로치는 뇌전이었다. 뇌격계 마법이 인간에겐 게이트보다 어려운 꿈의 마법이었다는 레이나의 말과 달리 저들이 배운 마법은 번개를 다루기 쉬운 것 같았다.

"케윽?!"

하지만 강도연은 고의로 최소화한 베리어에 금을 내는 번개를 무시한 채, 당황한 우두머리를 향해 날개로 몸을 감싸고 속도를 높였다.

저상태로 몸을 회전하여 거대한 함선마저 관통하던 어마어마한 위력의 공격이 지금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레드페이스들도 여럿 죽었는데요?'

'...희생은 감수해. 움직여.'

km급 반경의 지면 전체가 뒤흔들렸고, 중심부는 무슨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 마냥 크레이터가 파였다.

수천에 달하던 고블린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바닥에 넘어지거나, 죽었다.

특히 강도연이 뛰어든 중심부는 유닛인 산고블린들이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뭉쳐있던 곳이었다.

"캬아악!"

강도연의 뒤를 따라 착지한 우리를 향해 놈들이 적대감을 드러내었다. 물론 이렇게 작은 녀석들 따위가 이를 드러내 봤자지만.

'뿌려.'

나는 내게 마법을 쏘아내던 산고블린 하나를 반으로 베어버리고 다른 이들에게 지시했다.

곧바로 이 현장에 우리의 몸에 탑재되어 있던 검은 가스가 살포되었다.

이 감염균들은 이브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여 적을 심문하거나 조종 할수는 없으니, 오직 단 하나의 명령어만 입력되어 있었다.

'내 말 들리겠지?'

나는 감염시킨 고블린들의 뇌리에 강제로 내 의식을 직접 연결해 일방적으로 때려박았다.

어차피 초등학생만도 못한 지능을 가진 놈들에게 자아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원초적인 감정으로 움직여 줄 충실한 사냥개면 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