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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59화 (159/254)

159화-대혼돈과 대침공(4)

고블린, 한때는 코볼트나 놀과 같이 마계의 하층민을 구성하던 짐승들.

하지만 살아남은 다른 마물들처럼 그들에게도 한줄기 은총이 내려왔다.

그 기회를 잡은건 초록색 피부를 가져 산고블린이라고 불리던 일족이었다. 그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 급격하게 성장했다.

"감지 마법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음향 탐지기도 마찬가지다."

이제 그들은 약자가 아니었다. 끽끽거리는 특유의 목소리로 소통한 정찰대는 자신들이 배운 마법은 물론 최근 입수하게 된 반군연합의 군사장비를 이용해 접경지인 주변을 정찰했다.

"돌아간다."

지구의 늑대만한 크기를 가진 외눈마계들개에 타고 있던 놈들의 우두머리가 히죽 웃으며 철수를 명령했다.

사실 지속적으로 정찰하긴 하지만 이곳에 특별한게 있을리는 없었다.

그들과 싸우려면 장비를 써야하니 소리 없이 움직이는게 불가능한 적군인 지구연합군은 주둔지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한때 이곳에 살던 동류인 다른 고블린 일족들은 모조리 죽이거나 노예로 끌고가 부리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이곳의 지배자였고 마계연합에서 인정받은 하나의 영주 세력이었다.

"크흠. 그럼 장비 집어넣겠다."

우두머리의 명령에 고블린들이 다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반군연합이 준 배낭 사이즈의 장비를 만지던 고블린은 직전까지 문제 없었던 장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뭐지?"

"무슨 일이냐."

"무언가 있는데, 없다."

놈은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고 우두머리를 바라보았다. 정작 조금 더 똑똑하다는 이유로 대장이 된 우두머리는 모순되는 말을 지껄이는 부하놈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지?"

"감지 마법에 무언가 걸렸다."

그때 마법으로 주변을 정찰하던 마법사도 휘둥그레 뜬 눈으로 급히 우두머리를 돌아보았다.

"...음?"

들개를 몰아 부하놈이 만지던 장비를 향해 이동한 우두머리는, 왜 부하놈이 그런 소리를 했는지 확인하고 굳었다.

분명 탐지기에 표시가 뜨고 있었다. 지금 이자리에 있는 본인들 16개체 말고, 17개의 점이.

"감지 마법은 마력을 탐색하는 마법...여기 마력을 가진 존재가 3명이 아닌 4명이 존재한다."

마법사가 그 혼란에 한마디 얹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 있다는거 아닌가!"

우두머리가 자신의 지팡이를 빼들었다. 놈들에게 귀신 같은 개념은 없다. 하지만 생물체로서 미지의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는 느끼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

씩씩거리며 주변을 돌아보던 우두머리의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다름아닌 자신의 바로 앞에서 서서히 은신을 풀고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다리, 배, 가슴 그리고 검.

다리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그 위로 시선이 올라갔을 때, 우두머리는 빛나는 그 붉은 안광을 보는 순간 휘둘러진 검에 목이 베여 하늘을 날았다.

"적이다!!"

목을 잃은 우두머리의 시체가 쓰러질 때, 경악한 마법사가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고블린들이 반사적으로 은신을 푼 강도연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오크나 트롤처럼 개개인의 무력에 강점이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유닛이 된 그들의 특기는 다름아닌 빠른 번식과 집단전술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100% 발휘하는게 불가능했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네. 그 모습, 진짜 무슨 타천사라도 된것 같아."

한발 늦게 도착한 오윤아가 은신을 푼채 중얼거렸다.

제자리에서 몸을 비튼 강도연은 등을 뚫고 나온 4장의 검은날개와 검을 사용한 단 한번의 일격으로 고블린들은 물론 근처의 땅에 깊고 긴 흔적을 남기면서 모조리 갈아 엎어버렸다.

새로운 세상에 둥지의 뿌리를 내려야 하는 지금 처한 상황은 마치 미궁에서 벗어난 직후의 군단과 비슷하지만 그 이후 몇단계나 성장한 그녀의 힘은, 군단이 처음 미궁에서 나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한번에 몇마리까지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알고있는게 놈들의 전부라면, 수백 이상."

그녀의 힘을 처음 본 오윤아가 헛웃음을 지으며 묻자, 강도연은 나름의 계산 끝에 답을 내놓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단신으로 놈들과 정면 충돌했을 경우만 따진 것이다.

애초에 그녀의 특장점은 크기와 질량에 비해 초월적인 화력과 기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말그대로 단신으로 군대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체이니 원하는대로만 날뛸 수 있다면 영원히 지지않을 수 있다는게 그녀 본인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입막음을 했지만 어쨌든 놈들의 정찰대는 전부 죽었어. 즉, 이변이 생겼음을 알아챘을거야. 대비해야 해."

"대체 너한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거니?"

강도연은 곧장 뒷처리를 지시했다. 오윤아는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친구의 모습에 허탈히 중얼거렸다.

*

"인간놈들은 오늘도 움직임이 없다고."

"그렇다."

"흐, 잘 된거군."

보고를 받은 놈이 히죽 웃었다. 최하층 계급의 마물에서 이제는 일대의 지배자로 인정 받은 고블린들의 왕.

놈의 이름은 쿠울카로, 스스로 지은 이름이 아닌 하사 받은 이름이었다. 다름아닌 자신과 자신의 동족에게 은총을 내려 준 은인에게서.

"그렇다면 계속 병력을 움직여서, 영역 확장을 이어나가도 되겠군."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화려한 옥좌에 앉아 끽끽거리는 쿠울카의 말에 뇌리에 울리는 목소리도 기특하다는 듯 동조했다.

북미나 유럽 일부 지역처럼 지구연합군과 마물들이 조금도 쉬지 않고 서로 활발하게 전쟁을 벌이는 쪽도 있었지만 어느 한쪽이 밀려버리거나 경계태세만 유지하는 곳도 있었다.

현재 고블린들이 장악한 이 지역이 바로 서로 경계태세만 유지하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어느 한쪽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대치만 하는 이 상황은 쿠울카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시간이었다.

놈은 이 시간동안 주병력을 움직여 일대의 다른 고블린들을 쳐서 복속시키고 덩치를 불려나갔다. 다른 지역에 지원병력을 파견하는 대가로 자원과 기술을 습득하는건 덤이었다.

마치 문명을 키워나가는 게임을 하듯 쿠울카의 플레이어는 현 상황을 철저하게 이용해 자신의 유닛을 수백만 이상의 머릿수를 가진 대세력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왕. 이제 주변에 남는게, 없다."

"게이트. 게이트를 넘어 지구를 직접 공격해도 된다."

최근에 닥친 문제는 이제 주변에는 약탈할 중립 세력이 없다는 것 정도. 트롤정도 되는 강인한 집단이 아닌 이상 애초에 힘 없는 마계의 현지 중립 세력들은 이미 덩치를 불려나가는 유닛들에게 흡수당하거나 합병당한게 대부분이었다.

[흐음, 가만히 있는 놈들을 자극하면 분명 반응을 보일텐데. 괜히 이제와서 전쟁을 벌이는건 그리 끌리지 않아. 하지만, 지구도 분명 마계처럼 여러 세력들이 뭉쳐 만든 곳 아닌가]

가장 똑똑한 고블린이라지만 그래봤자 고블린. 사실상 쿠울카의 뇌대리를 하고 있는 놈의 플레이어는 지구의 특성을 생각해냈다.

[그렇다면 타지역에서 넘어가서 약탈하면 되겠군]

그렇게 마련한 계획은, 약탈을 위한 부대를 다른 지역에서 지구로 보낸다는 것.

지구 각국의 이해관계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플레이어는 바다 건너 다른 대륙이 사소하게 공격 받는걸로는 지금 자신들과 싸우고 있는 적들이 나서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약탈부대를 보내 노예들과 물자를..."

"보고, 큰일 보고!"

그러나 그때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사실 일개 정찰대 하나가 실종되는건 사소하다 볼수도 있지만 일단은 플레이어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곳에서 들려 온 갑작스런 소식이었다.

[인간? 아, 아니 인간이 맞나? 하긴 지구인들중 괴상한 힘을 다루는 놈들이 있었지]

고블린들의 플레이어는 역사 기능을 이용해 자신의 유닛들에게 있었던 일을 확인했다.

정찰대를 습격한 괴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힘 마저도.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지금 우주의 일부를 들쑤시고 있는 군단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하물며 지구에선 이미 옛적에 사망처리된 일개 여고생의 얼굴을 알 수 있을리가.

[하지만 지구연합군이 왜 일개 정찰대를. 다른 놈들인가?!]

플레이어는 일단 지금 대치하고 있는 지구연합군의 가능성은 배제했다. 그 모양새나 풍기는 기운부터가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직감한 탓이었다.

"감히 우리를 공격했으니, 토벌 한다."

쿠울카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툴툴거렸다. 혼자서 머리를 굴리던 플레이어도 이번에는 그 말에 동의했다.

"해당 지역에 다시 한번 정찰. 혹시 모르니 붉은 놈들을 보내."

놈은 부하들에게 명령해 이번에는 부대 단위의 병력으로 정찰을 시도했다.

그 주축은 놈의 동족인 산고블린이 아니었다. 이번엔 전체적으로 붉은 피부를 가져 인간들에게는 레드페이스라고 불리는 사막고블린들이 부대의 주축이 되었다.

원래는 초록색 피부의 산고블린들보다 번성하고 있던 사막고블린들은 초창기부터 본인들이 무시하던 산고블린들에게 정복당해 노예로 떨어진 이들이었다.

쿠울카나 플레이어는 험한 일이나 전장의 선봉에 언제나 이런 노예계급의 고블린들을 먼저 투입했다.

"알겠다. 공격! 출진!"

명령을 받은 부하들이 일제히 밖으로 나가 병력을 집결시켰다.

애초에 군단에 대한 정보는 현재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우주의 인간세력이나 그와 엮인 이들만 알고 있을 뿐.

다소 단순한 쿠울카는 물론 실질적인 두뇌인 플레이어도 이 일을 자신만의 기억에나 남겨두고서는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그리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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