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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56화 (156/254)

156화-대혼돈과 대침공(1)

전쟁은 서로를 극한까지 진화시킨다. 지구의 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일종의 법칙이었다.

우주함대의 개념을 알려 준 반군연합 덕분에 철저히 깨졌던 이브는 한차원 진화하여 우주세력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런 이브의 본격적인 공격에, 이번엔 반대로 그들이 성장했다.

수많은 세상에서 그들이 각자 키워 온 자신들만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그것들이 잘 합쳐지기만 한다면 아직 신생 세력인 이브는 분명 밀릴 것이다.

"그럼 어쩌려고? 우리 계획은 이브의 폭주를 내부에서 막는거 아니었어?"

"그건 계획의 일부에 불과해. 내가 원하는건 균형이지. 그 균형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서 누구든 상대해야하고."

나는 동생의 말에 보다 자세한 답을 말해주었다.

"지금 내가 보내주는 정보를 봐. 이브가 행성 발렌의 주력과, 에덴의 수비에 공을 들이는 사이 비어있는 곳이 생겼어."

행성 라티스. 나는 군체의식을 이용하여 그곳의 정보를 우리끼리 공유했다.

레이나가 가 있는 또다른 공격지 행성 센젤과는 달리 지금 라티스에는 상대적으로 군단의 전력이 떨어진다.

지금 그곳에서, 적들이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족...고위마족이야. 오크!"

강도연이 무언가 알아보고 뿌드득 이를 갈았다.

과거의 악연이다. 나도, 강도연도 우리 어머니도 마물 중 특히 오크를 증오했다.

우리 남매를 지키기 위해 달려든 아버지를 잔혹하게 살해한게 바로 오크 중 하나였으니까.

"물론 오크가 아니더라도 딱히 상관 없었어. 지금부터 우리는 군단이 되어, 라티스의 아군을 공격하려는 적들을 죽인다."

사실 반군연합과 손을 잡은 마계가 우리가 가야 할 라티스에 나타난게, 하필 그 놈들이 오크인게 내 행동에 운이 좋기는 했지만 나는 이제 그딴건 상관 없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이브의 계산에 따르면, 이렇게 시시각각 급변하는 판도에서도 이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려면 가장 효율적인 환경에서 최소 3개의 행성을 전면 둥지화 해야 한다.

군단도 무적이 아니다. 생산기반이 없으면 고등급 유닛을 만들 수 없고 에너지가 없으면 모든 활동이 중단된다.

지금 공세중인 라티스가 실패로 돌아가면 아직 적들을 몰아내고 둥지화 진행 중인 발렌이나 이제 막 전면 둥지화가 끝난 에덴에 적들의 공격이 집중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죽인다. 상대가 그 누구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방식이야. 알아들었지? 윤아, 너도."

"...진짜 무서운 사람이셨네요 오빠분도."

나는 가면을 반쯤 쓴채 고개를 돌렸다.

내 동생 강도연이 아닌 또 다른 내 직속의 서브마인드 오윤아. 개조가 끝난 그녀 역시 우리와 별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곁에 서 있었다.

"죽음으로 균형을 맞춘다니."

"당연하지. 내가 가져야 하는건 두 마리의 토끼니까."

나는 그녀의 얼굴에 내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는 아직 몰라. 지금 내가 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큰 대가가 필요해. 나는 두 마리 토끼의 팔다리를 다 잘라서라도 끝끝내 둘 모두를 가질 것이고, 그걸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설령 수많은 이들이 죽더라도."

움찔한 오윤아의 붉은 눈에 내 얼굴이 비쳐보였다. 이제 한쪽 눈마저 완전히 가면에 덮인 그 모습은 괴물. 괴물이었다.

'너희에게도 강요할거야. 나는 속편하게 동료 수집 따위를 하며 모험이나 즐기려는게 아니야. 죽이고, 파괴하고, 적이 되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룬다. 반드시.'

"아, 알겠어요."

군체의식을 통한 나의 강렬한 의지에 움찔한 오윤아의 얼굴에도 마치 도망치듯 가면이 씌워졌다.

불완전하게나마 하이브마인드가 되는 그 끔찍한 과정에서 내가 절절하게 깨달은 것은, 결국 모든 것을 가지는건 이 세상 그 누구라도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성의 일부도 같이 버렸다. 이제 나는 인간이 아니니 인간의 기준으로 만든 위선 따위는 없다.

모든 것을 걸고 펼치는 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뿐이다.

'청산족을 불러. 핍박 받고 흩어져 겨우 연명하는 그들도, 우리와 하나된다.'

'...네.'

나와 마찬가지로 아직 플레이어의 권능을 쓰는게 가능한 오윤아가 휴대폰을 들어 하사품 기능을 활성화했다.

그녀의 유닛이자 인간종인 청산족. 어딘지 모를 세상에 살고 있던 그들 역시 게임에 휘말렸고 플레이어의 부재에도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이내 무너졌다고 했다.

타 유닛들에게 일족이 몰살당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숨어있는게 약 100명. 나는 그들 모두를 군단의 일부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선택지는 없어. 나는 힘을 줄테니, 내 명령대로 움직여.'

그들도 이미 상황을 알고 있다. 오윤아의 말에 의하면 이미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거절했어도 강제로 집행할 생각이었지만 자발적으로 나서는게 더 좋았다.

'좌표를 알았다.'

내가 이브에게 지구의 좌표를 알려줬을 때 처럼, 그들도 하사품으로 전송한 수정구를 이용해 내게 좌표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 좌표를 바탕으로 단숨에 게이트를 열었다. 허공의 일렁거림, 그리고 균열. 그 안에서 수정구를 손에 쥔 굳센 인상의 사내를 필두로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 공포와 경계심이 가득했다. 당연한 것이었으나 지금 하나하나 배려할 시간은 없다.

"시간 없어."

나는 미리 준비한 100개의 둥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부 들어가."

어차피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건 최소한의 능력은 있다는 뜻. 나는 그들을 둥지 안에 밀어넣었다.

'비효율, 명백히 비효율이야.'

"끼어들지 마 이브."

'네가 확고한 상위 서열로 우위에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하극상이나 막을 수 있을 뿐. 네겐 그들을 뜻대로 통제할 방법이 없어. 능력도 사상도 검증되지도 않은 서브마인드를 100개체나 늘려서 어쩌려는거지?'

"통제와 명령의 수단은 하이브마인드가 전부가 아니야. 너는 굳이 필요도 없으니 모르겠지만."

'...좋아. 한번 지켜보겠어.'

아직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은 이브가 툴툴거렸다.

하지만 나는 자신있었다. 무엇보다 청산족은 나와 마찬가지로, 복수하고 싶고 얻고 싶은게 있는 이들이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건 힘. 그 힘을 줄 수 있다면 함께하는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망설일 이유도 없지. 명령대로 잘 움직여서 공적을 세운다면 동력장치를 더 달아줄 수 있다고 말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너도 잘 알지?"

"알겠어요."

청산족의 개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오윤아에게 그들을 위한 당근을 제시했다.

현재의 오윤아도 몸의 내외부에 10개의 동력기관을 달고 있는 고출력 고급 개체다.

그녀는 그 힘이 자신이 익힌 기초적인 주술도 위력을 극대화 하는걸 보며 직접 깨달았다. 그러니다른 이들도 한번 체감하면 분명 그 이상이 탐 날 것이다.

[대다수의 개조가 끝났다]

"그럼 바로 출발하지."

개조가 끝나고, 그들이 둥지를 찢고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내면은 전혀 다르지만 외형은 다른 상위종들과 거의 같다. 괴물의 몸일수록 거부감도 오히려 줄어드니 자아가 혼돈에 빠질 일도 없다.

곧 이브에게 빌린 워프가 가능한 km급 함선체 하나가 이곳으로 다가왔다.

'목적지는 라티스. 워프 한다.'

우리를 태운 함선이 다시 안전 고도까지 급격히 상승. 그대로 거대한 힘을 뿜어내며 목적지를 향해 워프했다.

'내가 막아!'

워프하자마자 우릴 반기는건 요새를 포격하는 수많은 적들의 함선들.

강도연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우주전에 합류했다. 나는 그곳은 그대로 무시하고 함선체를 대기권으로 진입시켰다.

동시에 오윤아를 포함한 내 병력들에게 의식의 일부분을 공유했다.

'지금 보는 저 못생긴 괴물들이 우리 목표다. 윤아 네가 다른 이들이랑 저 회색 피부의 오크들을 맡아.'

'오빠분은요.'

'...난 우두머리를 처치한다.'

병력을 둘로 나눴다. 한쪽은 아군 군단병들을 향해 날뛰고 있는 오크들에게 보내고, 그리고 나는 그놈들을 지휘하는 우두머리를 저격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군단의 일부가 되어 단독으로 인류와 싸우는 첫 순간이었다.

*

"그리 어렵지는 않겠군."

"그, 그렇...소?"

"당신네들은 계속 위기라고 떠들지만 지금 보는 상황은 어떻지? 지상은 우리 덕분에 이제 정리 직전 아닌가."

콧김을 뿜는 오크의 모습에 현장지휘관은 움찔했다. 이세계의 존재들이 언제나 인간친화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큰일났습니다! 지금 우주권에서, 갑자기 워프해온 놈들의 베타급 함선을 놓쳤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때 다급한 통신이 날아들었다.

"굳이 들을 필요도 없겠군."

소스라치게 놀란 오크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구름을 가르고 나타난 거대한 함선. 그곳에서 수많은 군단병들과 함께 한무리의 특수한 적들도 뿜어져 나왔다.

"...상위종!"

"별거 없소."

지휘관은 그것들을 단숨에 알아보았다. 그러나 오크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이미 그들은 몇몇 상위종을 처리한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이놈은 뭐지?"

그러나 놓친게 하나 있었다. 함선체에서 뿜어진 병력은 일반종이나 상위종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가면을 쓴 건장한 체구의 괴물 하나가 검 한자루 들고 그들의 진지 앞에 착지했을 때.

오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린 후 경악한 지휘관은 당장 사격하라며 발작하듯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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