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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52화 (152/254)

152화-시스템 재정립(2)

"흥미로운 이야기군. 이렇게 갑작스럽게 말인가?"

"킁, 말씀하시길, 양 측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오히려, 기회로 삼아서."

"기회라. 틀린 말은 아니지."

마계 연합의 수장인 전대 마왕 칼타스. 그는 뜬금없이, 그리고 은밀히 자신을 찾아 온 놀의 왕에게서 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보였다.

"그정도로 상황이 안 좋은가?"

"놈들, 괴물, 끔찍한 괴물이라고 했다."

플레이어의 말을 전하러 온 놀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사실 놈은 지금 자기 플레이어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우린 이미 전쟁중이다. 당연히 병력을 뺄 수 없다."

"상관, 없을거라 하셨다. 우리가 원하는 병력, 많지 않다. 고위마족, 혹은 그에 준하는 강자들. 그, 그리고 비는 만큼 우리가 병력지원."

"...그게 사실인가?"

더듬더듬 말하는 놀의 말을 듣고 칼타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에겐 다른 것 보다도 놀의 플레이어가 직접 지원을 하겠다는 말이 끌렸다.

주로 장비를 지원하던, 하지만 본인의 사정으로 그리 충분한 장비를 지원하지 못하던 자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니까.

"젠장! 이미 총통께서도 허락하셨다고 전해! 지금 당장! 지원할 수 있는 물자를 최대한 지원할테니 단신으로 군대를 상대할 수 있는 강자들을 보내라고!"

놀들의 플레이어, 렉스는 칼타스가 보이는 화면을 보며 꽥꽥 소리를 질렀다.

"미친 놈 같군."

"저 말이 사실일까요. 물론 그 괴물들의 기원이 그의 증언으로 발견된 곳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그런 렉스는 지금 의자에 꽁꽁 묶여있었다.

그는 자신과 초반부터 깊은 관계를 맺었던 코볼트들이 종족 단위로 사라지는걸 눈앞에서 목격했다. 난데 없이 등장한 우주괴물들이 함대와 전쟁을 벌이며 행성을 침략하는 것 역시.

플레이어의 사망으로 인한 유닛들의 절멸. 그리고 지금 습격하는 괴물들의 출처가 자신이 원래 알던 곳임이 밝혀져 추궁을 받게 된 렉스는 다급함에 마계와, 유닛의 존재를 자신의 상관인 총통에게 성급히 발설해버렸다.

그런 그를 붙잡아 고문해 어렵지 않게 이 모든 정보를 듣는데 성공한 반군연합의 총통은 렉스가 허공에다 소리지르는걸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었다.

"돼, 됐습니다! 마왕 칼타스가 엄선한 지원군을 보내준다 합니다!"

"증명하지 못했다면 방위사령관 자네는 소리소문 없이 죽었을테지만...어쨌든 운이 좋군. 이게 뭔지 아나?"

총통은 혼자 씨름하다 갑자기 반색하는 렉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단말기에 떠오르는 해당 자료는 모두 보고서들이었다. 그것도 지금 실시간으로 침략 받고 있는 행성들에서 급히 올라온 것들이었다.

"보, 보고서로 보입니다. 각하께 무언가를 요청하는 듯한..."

"보내 온 이는 해당 행성의 책임자들이지만 그 정보의 출처는 다양하지. 자네 같은 지휘관, 군수공장의 사장, 일개 꽃 집 여사장...그들이 내게 무엇을 요청한 줄 아나?"

"설, 설마!"

묶인 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움켜쥔 렉스의 눈이 커졌다.

"설마 이런 일이 터질 줄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 하지만 게임이니 플레이어니 유닛이니...자네 증언이 전부 사실이라면 굉장히 불쾌하군. 그럼 그 게임에 속하지 못한 우리는 네놈들 손에 놀아나라는 것인가?"

"절대 아닙니다 각하!"

"아니, 내게 거짓말을 하고 함대를 파견하게 만든건 네놈이다. 마음에 안들던 놈이 이끌던 함대긴 하지만, 덕분에 그나마 쓸만하던 그 함대는 완전히 박살났고."

히죽 웃은 총통이 눈앞에 있던 버튼을 누르자, 렉스가 몸을 덮치는 강력한 전격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각하. 이번에 저희를 습격한 괴물들에 대항하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필요한건 사실입니다."

"그걸 내가 모를 것 같나. 지금 당장 연결해. 감히 우리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요청한 외계인 놈들에게. 듣자니 놈년들은 서로의 목숨을 공유한다지? 아쉬운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기절한 렉스를 두고 방을 나온 총통은 곁에 있던 비서에게 긴급한 회의를 주선할 것을 명령했다.

그렇게 경계를 서는 군인들을 제외하면 혼자 남은 그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어둑한 지하도 아니고 으슥한 비밀시설도 아니었다.

번성한 도심 한복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 총통의 권력을 상징하는 이 건물에 서 있던 그는 이내 피식 웃었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할 놈들이 가득할 것이다. 나부터가 그랬으니까.'

끔찍한 괴물들의 습격? 전인류의 위기? 그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세상이 혼란에 빠지면 오히려 그것을 이용한다. 그것이 다른 세상의 마왕 칼타스와 동류인 그의 신념이었다.

*

"드, 들켰어!"

"당장 피해!"

폐허가 되어버린 도심 한가운데. 어린 아이를 안고 있던 피난민을 구출한 군인 한무리가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거미의 형태를 한 괴물들이, 날카로운 독니를 번득이며 바짝 쫓고 있었다.

"하필 떨어져도 이 근처에 떨어지냐고!"

"쐬버려 칼! 빨리!"

겨우 소총 하나 든 군인들의 아우성에, 저 멀리서 대기하던 저격수가 대구경 탄환을 필사적으로 박아넣었다.

그래도 이정도 위력이면 단번에 갑각을 부수고 내부를 진탕으로 만들 정도는 된다.

그덕에 추격전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유지하며 계속될 수 있었다.

"안 돼. 이대론 벙커까지 못가! 너희들은 계속 달려!"

"부, 분대장님..!"

하지만 아슬아슬한건 그들의 체력도 마찬가지. 그에 반해 괴물들은 자기 동료가 죽든 말든, 총탄이 날아드는 것도 무시하고 그 시체를 무자비하게 짓밟아가며 그들을 쫓았다.

"...대체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이 괴물놈들아!"

피난민과 동료들을 먼저 보낸 분대장이 그들이 가진 화기 중 가장 강한 화력을 가진 묵직한 펄스건을 들고 몸을 돌렸다.

절규하듯 내뱉은 그는 번쩍이는 섬광을 뿜어내는 총을 들고 마구잡이로 쏴버렸다.

그러나 괴물들은 그 섬광에 몸이 터져나가면서도 끝내 그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하..."

이 괴물들이 실상은 그저 명령을 받는 발톱과 이빨에 불과하다는 사정을 모르는 그가 보기엔,이 괴물들은 마치 인류에 대한 강한 원한과 집착을 가진 것 처럼 보였다.

총을 떨어트린 그는 자신을 향해 머리를 들이민 거대한 지룡의 모습에 뒷걸음질 쳤다. 펄스건의 화력도 지룡의 비늘엔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으악!"

그러나 입을 쩍 벌린 지룡이 그의 몸을 한번에 씹어 삼키기 직전.

저 뒤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강한 충격과 함께 지룡의 목을 짓밟았다.

"얼른 뛰어. 빨리!"

2족보행의 탑승물에 탑승한 그의 상관이 탑승물의 양 팔에 장착된 기관포를 쏴 주변 적들을 일소하며 소리쳤다.

게다가 하나만 온 것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탑승물에 탄 여러 명이 부스터까지 쓰며 달려와 기관포와 미사일로 땅과 하늘에서 몰려오는 괴물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역시. 아직은 버틸 수 있어!'

그는 굉음과 폭음이 연달아 터져나오는 현장을 등지고 일단 자리를 벗어났다. 지금 가진게 없는 자신은 아무 도움 안 되니까.

"전원, 조금씩 뒤로 물러난다. 지금 우리 화력으로는 더 큰놈들은 상대 못해."

전우와 시민을 지키기 위해 용감히 자신을 희생하려던 부하를 살려보낸 상사는 주변 이들에게 통신해 조금씩 뒤로 물러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한두번 싸워본게 아니다. 대충 적들이 어떤 유형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괴물들의 습격 이후 그가 속했던 대륙의 사령부는 이미 박살났지만, 그들은 그런 열악한 상황속에서도 침략자들에게서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뒤쪽은 이미 차량 탑승 끝났다 합니다."

"이대로 물러나면 안전지대까지 못 쫓아올 겁니다."

그리고 그 전투 경험들은 그들을 빠른 속도로 베테랑으로 만들어 주었다.

부하들과 함께 서로 합을 맞춰 능숙히 몸을 빼던 그는 곧 퇴각명령을 내렸다.

"어."

그런데 그 순간, 앞서가던 기체 하나가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졌다.외마디 비명과 함께 기체를 뚫고 나온 것은 검붉은 기운이 서린 한자루의 창이었다.

"이런 젠장! 전부 쏴! 상위종이다!"

탑승한 채로 관통당해 쓰러진 시신을 짓밟고 그들을 가로막은건 단 하나의 괴물.

그러나 그 괴물의 힘을 잘 알고 있던 그는 그 즉시 팔을 들어 장착한 기관포를 쏘며 부하들과 함께 모든 화력을 집중해 한점에 퍼부었다.

"이런 미친..."

하지만 그 엄청난 집중포화를 뚫고, 검붉은 섬광 한줄기가 뿜어지며 그들을 덮쳤다.

박살난 탑승물의 파편에 휩쓸려 짓이겨진 몸으로 피를 토한 그는 그대로 넘어져버렸다. 그상태로 부하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져 가는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채 몇십초만에 기갑 소대 하나를 궤멸시킨, 이럴 용도로 만들어져 그 용도대로 이 전쟁을 치명적이고 불합리하게 만들어가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

"개자식들."

그는 소수 부대로는 절대 당해낼 수도 따라갈 수도 없는 이 특별한 괴물을 노려보며 이내 숨이 끊어졌다.

"아아..."

"히익! 놈이 봤어! 우릴 봤다고!"

그리고 상위종을 노려보는게 그만 있는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떨어져 그들과 합류하기 위해 지켜보던 차량은 창을 회수한 상위종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자 그대로 뒤집어졌다.

"이런 씨! 당장 출발해!"

"분대장님!"

상관의 도착으로 살아남았던 그는 분노를 터트리며 기껏 탔던 차에서 다시 내렸다. 이번엔 손에 수류탄 하나든게 전부였다.

날개짓을 하며 허공에 몸을 띄운 상위종이 창날을 그에게 겨누었다.

'정말로 종말의 괴물들인가?'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자신의 숨소리만 들리는 그 순간에, 그는 몆 사람이 떠들던 종말론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분명 문답무용으로 살육만 반복하고 땅에 기괴한 둥지를 까며 사람을 잡아먹는 저 괴물들은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괴물들이라 불러도 손색 없을 정도였다.

'그럼, 저 악마들과 맞서 싸워 줄 천사는 어디 있지?'

기껏 자폭할 각오를 다졌으나 눈을 부릅뜬 그는 창날이 자신의 가슴께에 파고들기 직전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수류탄 손잡이를 놓지 못했다.

죽음, 그 찰나의 순간.

"커헉."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바닥을 구르며, 경미한 상처만 입은채 살아남든데 성공했다.

"나, 나무 뿌리...?"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땅을 부수고 튀어 나온 그것들을 보며 경악했다.

상위종의 창을 휘감아 막아낸 나무뿌리를 타고 올라가며 시선을 위로 향하자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어디선가 나타난, 싱그러운 연두색 머리칼 사이로 튀어나온 뾰족한 귀가 쫑긋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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