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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48화 (148/254)

148화-침략자들(8)

"웬일로 혼자 있네요."

"이브도 진짜 어린애는 아니니까요."

"흠, 불안하긴 한데."

"..."

다가 온 그녀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하긴 내가 옆에 없는 사이 이브가 친 자잘한 사고가 적지는 않았다.

누군가와 시비가 붙거나 충돌하는건 무조건 한번씩 일어나고, 특유의 오만한 말이나 행동이 대중에게 노출되어 논란을 만드는 일도 이젠 익숙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계속해서 딱 붙어다니는건 좋지 않았다. 남들의 시선에도, 그리고 나에게도. 그래서 어느 정도는 떨어져 있는 모습을 계속 노출해야했다.

그리고 어차피 이브는 반군연합의 사령관 리암을 포섭하는데 신경을 기울이느라 자기 몸은 방에 얌전히 앉혀놓은 상태다.

지금 같은 상황엔 나도 이렇게 호텔 복도의 의자에 앉아 약간의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근데 성녀께선 여기 무슨 일이십니까?"

"왜 그렇게 경계하죠?"

"그야..."

나는 천연덕스러운 이자벨의 얼굴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그동안 자신의 방에서 놀고먹으며, 전장에서 복귀할 때마다 나와 이브에게 공명법을 알려달라고 붙잡고 늘어지며 떼를 쓴것이 그녀였다.

어느정도냐면, 그 이브가 학을 떼고 먼저 피해다닐 정도였다.

그러니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게다가 지금은 그녀에게 으르렁거릴 수 있는 카운터인 이브도 옆에 없다. 심지어, 이브는 지금 내 감각을 공유할 수도 없었다.

내가 최근 강하게 주장하여 나와 연결된 군체의식 연결을 내 권한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집착하고, 오직 한길로 저돌적이었던 과거의 이브였다면 내가 연결을 끊는걸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지금의 이브는 다양한 방면의 사고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우주 진출을 성공한 이후 자신의 저력을 확인하곤 굉장히 여유로워졌다.

이제 이브는 딱히 내게 집착하지도 않았다. 잡다 못해 아예 자신과 하나가 되어버린 물고기니까. 그저 관성적으로 나를 신경쓰는 것 뿐이다.

합일이라는 내 마지막 카드를 써버린 대가는 가혹했다.

"오늘은 떼쓰지 않을게요."

"음, 솔직히 못 믿겠습니다. 지난번엔 수련장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숨어있었잖아요."

"실시간으로 그 존재가 지워지고 있는 사람에게 매달릴 정도로 눈치 없지는 않아요."

나는 웃으며 무마하려 했지만 그녀는 전과 달리 웃음기를 싹 지우고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 사람의 관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는 있거든요. 마치, 둘이서 하나 같은...분명 혈연관계도 아닌데."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건지."

"실은 나. 변변찮은 재주가 하나 있는데."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이자벨의 눈이 은은한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꿰뚫리는 것 같은 느낌.

형상력이 움직였음을 감지했지만 그것이 내게 적대적인게 아님을 깨닫고 경계만 끌어올렸다.

"신께서 주신 힘은 실존합니다. 그분께서 내려주신 통찰의 힘은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죠."

"제게서 뭐가 보입니까?"

나는 힘 없이 피식 웃었다. 그녀의 동족들과 마계의 같은 전장에서 여러번 같이 싸워봤다.

여신 라텔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싸우던 성기사들이라던가.

분명 상처를 치유하고 몸을 가볍게 해주며 좀비처럼 싸울 수 있게 만들어주던, 그들이 가진 신성력은 신기한 힘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신의 권능이라기 보다는 결국은 형상력의 한 종류 같았는데.

차라리 수많은 세상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쥐락펴락하는 게임 시스템이 더 신에 가깝지 않나 망상도 해보았다.

"여러가질 볼 수 있죠. 지금 당신이 텅 비어 있다는 것도."

하지만, 썩어도 준치. 이자벨이 내뱉은 그 한마디에는 분명 신적인 권능이 담겨 있었다.

"둘이 함께 붙어있을 때는 보이지 않아요. 이브, 그녀의 존재가 너무나 거대해서 당신은 그저 짓눌려 지워질 뿐. 하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존재감의 차이는 아니었군요."

"대체 뭘 보는거죠."

"당신은 몸, 마음, 영혼은 물론 믿음마저도 그녀에게 빨리고 있잖아요."

이자벨은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발언을 이어갔다. 나는 순간 이브와 의식을 연결할까 고민했다.

그녀가 정말로 우리 정체를 꿰뚫어 본단건가?

"서류상으로는 당신이 얼마 전 전장 한복판에서 이브를 구출했다고 나오죠.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당신네 둘의 관계, 절대 몇 달만에 만들어질 관계가 아닌데요. 제가 감히 이런말 하면 신성모독일 수도 있지만, 당신들의 관계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어진 저와 라텔님보다도 가까워요."

"갑자기 성녀님과 성녀님의 신이 왜 나오죠?"

"그야 저는 신실한 신도이자 선택 받은 성녀로 라텔님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쳤으니까. 하지만 그런 저마저도, 당신만큼 모든 것을 주진 않았어요. 대체 당신에게 이브 그 여자아이는 무엇이죠. 신이라도 되는건가요? 당신의 모든 것을 주어도 되는 신?"

이자벨의 말이 내 정신을 뒤흔들었다.

만약...만약 이 말을 어제, 아니 몇 시간 전에 들었다면 나는 그냥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브가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반군연합의 사령관 리암을 포섭하는 과정을 보며 알 수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단순히 군단에 사연을 가진 서브마인드 하나가 추가되는 일이 아니었다.

레이나를 포섭할 때부터 기미를 보였던 이브는 이제 인간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이용했다. 다른 종족이라고 못할까?

이브가 점점 완벽해지고 있다. 내 생각과 달리 이브는 한계를 느끼거나 결여된 부분을 보이지도 않았다. 설령 그런 부분이 있다면 진화하고 성장하여 채우고 있다.

이브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 완벽하니까. 그러니까 자기 자신으로, 이 우주를 전부 뒤덮으려 할 것이다.

과거 반군연합의 폭격에 무력히 당했을 때처럼 한계에 부딪히고, 부족한 부분을 체감할 때 다른 이들과의 협력과 상생을 주선해보려던 내 계획은 이브의 끝을 모르는 능력에 결국 잠식당했다.

"신..."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전에도, 지금도 나는 신을 믿지 않았다. 성녀인 이자벨이 신성력을 발휘하지만 그녀의 신은 나의 신이 아니었다.

이브가 신이라.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신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에 가장 가깝게 도달할 수 있는건 이브가 아닐까 싶었다.

한때 자신을 보살펴주는 나를 신으로 여겼던 지하미궁의 작은 생명체는 이제 없다. 오히려 내가 그것을 우러러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관계가. 당신이 원하던 것이었나요?"

이자벨의 말이 멍한 정신을 뚫고 귀에 박혔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당신의 행적만 봐도 짐작할 수 있어요. 당신은 이 세상의 그저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했지만, 모종의 사건들을 겪으며 자그마한 힘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전장을 겪으며 점차 강해지기 시작하죠. 여기까지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성장기. 하지만 그 성장폭이 말도 안 되게 상승하는 시점이 있던데."

"공명법은 원래 그런 힘입니다. 서로 진정으로 믿고 함께한다면 그 위력을 더욱 증폭시키는 합격기라고요."

"그마저도 온전한 당신의 것이 아니잖아요."

"..."

이자벨의 모든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순간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허탈함이 몰려왔다.

길이, 그동안 어떻게든 짜내본 길이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여기까지인가. 이자벨의 말대로 나는 더 이상 이브와 대등히 설 수 없는가.

"결심이 선다면 연락해요."

"...결심이라니요?"

"그 어떤 신도 신도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어요. 진정한 믿음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마저 신에게 위탁하는게 아니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결국 자신의 신도마저 쳐내버린 신에게도 치명적이에요. 그 잘못된 신앙심, 떨칠 수 있게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필요한건 당신의 마음가짐 뿐.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길. 내가 보기에 당신이 그동안 걸어온 길이 이브 그 아이보다 얕다고는 생각 안하니까."

이자벨은 더 이상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내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잠시간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한말은 지금 내가 이브와 맞먹을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사소한 선택이 분기를 가른다. 정답은 없다. 선택은 네 몫이다]

"...이브의 성장을 위해 이미 합일이라는 카드를 써버린 나는 이브를 통제할 방법이 없어. 나는 무력해."

[선택지는 분명 존재한다]

"너, 뭔가 알고 있지."

나는 이제는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는 글자에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관조자의 특성상 직설적으로 절대 말 안한다. 하지만 녀석도 분명 자신의 의사를 전하는 제스처를 취할때가 있었다.

[아직 네게는 힘이 있다. 이브, 즉 유닛은 절대 다루지 못하는 여러 힘들이. 네 혼은 이브의 것이 아니야. 다시 한번 시도할 수 있다. 선택은 네 몫이다]

"..."

이브와 합일하며 한번. 그리고 이브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며 한번.

이미 두번이나 실패한 내게, 다시 한번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브와 나는 지금 하나. 즉 이브는 결국 나와 하나. 즉 이브가 강해진 만큼 나도 강해졌다. 거기에 이브는 다룰 수 없는 플레이어의 권능을 쓸 수 있다면.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협상을 한번 해아겠어. 나 자신을 걸고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나는 오랜만에 열어본 상점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브가 벌어다 준 골드가 풍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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