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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47화 (147/254)

147화-침략자들(7)

'삶을 포기했나? 모든 희망을 잃었나?'

"젠장...내 머릿속에서 나가라 괴물아. 그냥 죽여..!"

'무엇을 줘야 널 설득할 수 있을까.'

이브는 고의로 군체의식을 통해 의지를 전하며 리암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리암에 대해 조사했던 자료를 뒤졌다.

이 자료의 주된 출처는 의외로 반군연합이 아닌 연맹. 연맹에 심어둔 첩자 연구소장 리하르트와 연구원 피레스가 해당 자료들을 찾아내어 알려 준 것이다.

'리암 크리스토퍼, 42세, 계급은 소장, 행성 리만 출신, 특이점으로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말단 병사로 전공을 세우며 장교가 되었다지.'

"큭..."

'그후 서부전선에서 반군의 아귀로 불렸다더군. 연맹의 병력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하지만 개인적인 성향은 반연맹, 반연합에 가깝다라.'

"참 편향적인 자료로군. 설마하니 내 뒷조사도 연맹을 통해 얻은거냐. 네놈들...설마 연맹이 만들어낸 전투용 생명공학 실험체들인가?!"

이브가 읊어주는 자료의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자신과 싸우던 연맹의 시점에 쏠려 있음을 피악한 리암이 이내 헛다리를 짚으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실 이브가 연맹과 깊은 연관점이 있다는 듯한 뉘앙스의 언행을 반복하니, 어찌보면 타당한 의심이었다.

"닥쳐. 감히 나를, 인간놈들 따위랑 엮지마. 그 누구도 내 위에 있을 수 없어. 미개한 너희들은 더더욱."

"크헉..."

다만 리암의 실험체 발언은 이브에게 매우매우 거슬리는 발언이었다는 것. 순간 발산되는 격렬한 힘의 파동에 짓눌린 리암이 신음했다.

'이야기를 계속하지 사령관.'

그래도 이브는 이제 그 이상 날뛰지 않고 금방 기운을 가라앉혔다. 리암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대충은 '공감'할 수 있었으니까.

한번 진정하면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만큼 변화가 빨랐다.

정작 리암은 그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이브의 표정을 보며 무슨 귀신 본 것 같이 얼굴이 창백해졌다.

'특이사항 중 눈에 띄던 것이 있던데. 부하들에게 평판이 아주 좋더군. 특유의 능력과 더붙어 정치공작이 힘들 정도로 주위사람들이 믿고 따른다고 말이야.'

"..."

리암은 듣지 않으려 애썼지만 눈을 감는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이미 신경과 근육의 통제권을 쥐고 있던 이브는 그의 눈을 강제로 뜨게했다.

'그렇게 부하들을 아낀다면 이건 어때.'

이브는 정보를 토대로, 지금 당장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골랐다.

바닥의 점막이 찢어지고 육벽이 갈라지며 그와 마찬가지로 몸이 조각난 시체들이 촉수에 엮여 우수수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누가 저 고깃덩이들을 사람이라고, 살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눈이 흔들리기 시작한 리암은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지금 엄연히 살아있는 자신의 처지나, 저 고깃덩이들이나 똑같았으니까.

'체크할 심장이 없어도, 폐가 없어도 알 것 같아. 너는 지금 저들이 살아오길 바라지?'

"아...아니야 나는..."

'게다가 다른 이들보다도 유독 이 얼굴에 반응하는군.'

그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던 이브는 촉수를 움직여, 머리와 상반신의 일부만 남은 그것을 그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그는 그것을 피할수도 없었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에이미..."

처참한 시체가 된 그것은 그의 보좌관 에이미. 이브는 숨길 수 없는 그의 반응에서, 에이미가 그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장치임을 확신했다.

그렇다면 남은건 설득하고 협상하는 것 뿐이다.

'네가 원하는 세계는 어떤 세계지? 알고 있겠지만, 모든걸 가질 수 있는 세상은 없어. 이 나조차도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해. 그러니 너도 선택해.'

악마의 속삭임. 그 치명적인 유혹이 자의로는 눈도 감을 수 없는 리암에게, 눈을 감은 차가운 시체가 된 애인의 얼굴과 함께 흘러들었다.

'나와 하나가 되면 그동안 가진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은 포기해라. 하지만 그 대가로 이 여자를 살려서 곁에 두게 해주지. 영원히. 너희는, 너희 둘만의 세계에서 영원히 둘이 사는거야.'

이브는 그동안 습득한 지식을 모조리 써먹었다. 그중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지식은 다름아닌 바로 극한에 몰린 인간심리였다.

신우와 함께 인간이 되어 그들과 함께 싸우면서, 수많은 군단병을 포함한 본체를 움직여 인간들을 죽이면서 습득한 데이터.

동굴에서 시작해 지금 이미 그 사이즈를 하나의 도시급으로 키운 두뇌로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그 지식을 이용해 이브는 리암을 한계에 몰아넣고 선택을 종용했다.

"그럴리가 없어. 가능할리가...에이미는 이미 죽었어."

'물론 지금은 그렇지. 하지만 나는 살릴 수 있어. 그 증거? 증거는 지금 너야. 지금 너는 살아있나? 죽어있나?'

떨리는 목소리로 부정하는 리암에게 이브가 히죽이며 답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지금 리암은 정상적인 상태도 아니었으니까.

"정말, 정말 멀쩡한 상태로 살리는게 가능한가?"

'보여주지.'

거의 넘어왔다 판단한 이브는 촉수들을 움직여 에이미의 시체에 상위종들의 제작에 쓰이는 만능세포를 투여했다.

영양분을 무한정 공급받는 세포들이 엄청난 속도로 분열하고 자라나며 새로운 신체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곧 그녀, 아만다 린은 기존의 육체를 완벽히 복구하고 그 눈을 천천히 떴다. 그녀를 보는 리암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브. 그 사람은...'

'맞아. 결국엔 나로 인해 움직이는, 전과는 분명 다른 존재지. 근데 그게 뭐.'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도연의 말에 이브는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살려놓은 에이미가 과연 기존과 같은 사람인지, 되살아난게 맞는지에 대한 의견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릴 것이다. 그러나 이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비록 그녀의 영혼은 놓쳐버렸지. 하지만 아만다 린은 군단과 하나되어 우리의 영혼을 공유해. 뇌손상에 의해 기억의 일부가 날아갔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기억은 가지고 있어. 자아를 보존하고 있다고. 그거면 충분하지. 대체 뭐가 더 필요해?'

이브는 에이미가 눈물 흘리는 리암의 머리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애초에 인간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한들, 이브의 가치관은 굳건했다.

"마음은 정했나 사령관. 살아 돌아 온 보좌관은 어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이브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에이미는 어느새 피부세포를 변형시켜 기존에 착용하던 제복이나 모자, 스타킹등을 완벽히 재현한 상태. 그녀는 크게 움찔거리며 리암의 앞을 자신의 몸으로 가로막았다.

"저, 저리가 괴물."

그리고선 이브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었다.

그녀는 군단과 하나되었지만 이브는 굳이 서브마인드로 삼을 생각이 없던 그녀의 자아를 건드리지 않았고 진실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연맹에 심은 첩자인 리하르트, 피레스와 비슷한 상태였다.

"아무나 서브마인드가 될 수는 없거든. 맨정신으로 자기 몸이 재구축되는걸 견딜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니까. 너처럼 반쯤 고치거나 하는건 수지타산도 안맞아."

이브는 그녀를 손가락질 하며 눈을 반짝였다.

애초에 군단의 지배자이자 그 자체인 하이브마인드 이브에겐 자신의 내부에 그 몸도 마음도 영혼마저도 완벽히 자신의 편이라 할 수 있는 서브마인드가 아닌 어중간히 걸친 새로운 자아를 자꾸 늘려가는게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괜찮으니 비켜도 돼 에이미."

"사령관님..."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한 리암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작은 등을 비키게 만들었다.

"내게 원하는게 정확히 뭐지?"

"네가 우리 함대의 사령관이 되어 줬으면 하는데."

"...나보고 괴물들과 편을 먹고, 사람들을 죽이란 것이냐?"

"인간답게 유연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 너는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기도 전, 이미 수많은 사람을 죽였어. 네가 죽인 연맹의 군인들은 사람도 아니란 뜻인가?"

그가 어이 없다는 듯 내뱉자 이브는 코웃음을 쳤다. 그 순간 리암도, 에이미도 얼굴이 굳었다. 이브는 때때로 급변하는 인간의 태도를 위선이라고, 이기적이라고 절대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말했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넌 그 여자를 살려서 얻었고, 그 대가로 과거를 버리면 돼. 선? 악? 그런건 유약한 너희들이 만든 허상에 불과해. 살아남기 위한 투쟁. 그것이 생명의 본질이고 모든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는 이브의 눈이 은은히 빛났다. 동시에 리암의 눈은 깊게 가라앉았다.

단 두가지 뿐인 선택지를 강요당하는 그의 마음이 한계에 달했다.

여기서 승낙하면 자신은 괴물의 일원이 되어, 자신이 지키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반대한다면? 그의 눈에 곁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에이미가 보였다. 기껏 다시 살아난 그녀를 잃을 순 없었다.

"특별히, 네게 네 손으로 고향을 파괴하라는 임무는 주지 않을게."

쐐기를 박는 이브의 마지막 제안 하나.

결국 리암은 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여 군단의 일부가 되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겠다고 동의했다.

'고작 이런 말장난 하나로도 흔들리는게 인간의 장점이자, 단점인거 같아.'

"..."

몸을 돌린 이브는 개조가 진행되는 리암을 등지고 몸을 돌렸다.

이브는 리암의 고향 리만도 당연히 공격할 생각이었다. 단지 그에게 맡기지 않을 뿐. 강도연은 점막에 뒤덮이는 그의 몸을 껴안고 엉엉 울고 있는 에이미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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