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46화 (146/254)

146화-침략자들(6)

"무슨 일이십니까 함장님."

"이리 와서 이것 좀 보게. 이게...뭔지 알겠나?"

지구의 하늘에 떠 있던 연맹의 기함. 그곳의 함장이 급히 연구소장 리하르트를 호출했다.

이브에 의해 감염된 상태로 실시간 감시를 받으며 위장하고 있던 리하르트는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 신세인 피레스를 데리고 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함장을 비롯해 화면 속 중진들까지 자리해 심각한 분위기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직전에 입수한 극비 정보 중 일부지. 그 출처는 반군연합에 잠입시켰던 정보원들이네."

그들은 리하르트에게 자료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 자료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살폈다.

영상자료에는, 우주공간에 갑작스레 워프하여 사방팔방으로 공격을 쏟아내는 거대한 요새의 모습과 지상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괴물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었다.

"흥미롭군요."

"...역시 학자라는 건가? 침착한 반응이로군. 저기서 죽어나가는 이들이 비록 우리의 적이라 한들, 나는 굉장히 놀랐는데."

"단순히 보기만 해서는 저희가 그동안 우주괴수 종으로 분류했던 카테고리의 일부로 보입니다만?"

리하르트는 자료를 살피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애초에 그는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가, 저 먼 우주 너머에서 반군연합과 싸우고 있는 적들과 동류라는걸 모르니까.

'...'

이브는 이 모든걸 보고 순간적으로 계산을 내렸다. 일단은 모른척 하자고.

"글쎄. 내가 아는 우주괴물은 기껏해야 짐승들인데 말이지. 워프하는 대형 요새에, 함선에 맞서는 거대괴수를 부리는 놈들을 우주괴물이라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군."

"상부에서는 어떻게 대응할지 결론이 난 상태입니까?"

"물론이네. 이미 연맹 전체에 이 정보가 공유되었을거야."

리하르트의 말에 함장은 회의실에 떠오른 상관들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아레스도 다른 연맹 세력들을 따라 비상 시국에 걸맞는 대응을 갖추기로 했지요. 그에 따라서 함장, 계획을 서두르세요. 보고된 바에 따르면 아직 저희 측 인원들은 지구의 강자들에 비해 아직 수준 미달. 그러니 그 시간동안은 그곳의 강자들을 섭외해서 써야지요."

화면 속,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노년의 여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함장도 리하르트도 그녀가 말하는 계획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깨고 접근한 지구에서 처음 접하게 된 새로운 타입의 인류. 그들을, 전쟁에 동원하겠다는 것.

"하지만 의원장님. 지구는 아직 마계와의 전쟁이 한창. 그들에게 전력 지원을 요청하려면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할겁니다."

"...지금 용병의 형태로 자원하는 회사들을 모집하고 있어요. 그들이 함대 수준의 병력을 이끌고 지구로 갈겁니다. 함장 당신이 임시 사령관이 되어 그들을 지휘하세요."

함장의 말에 그녀는 다 생각해 뒀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함장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하니 상부가 이렇게 신속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으니까.

"그리 많지 않은 자료지만 우리는 지구인들의 이용이 꼭 필요하다 판단했으니 반드시 성공시키시길. 그럼 이만."

회의는 거기서 끝났다. 화면들이 하나둘 꺼지고, 자리에는 함장과 리하르트만이 남게 되었다.

"함장님? 이 자료들, 제가 가져가서 연구해도 되겠습니까. 지금의 저라면, 뭔가 더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극비 자료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영."

먼저 적막을 깬 리하르트의 말을 듣던 함장은 리하르트와 피레스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둘만 알고 있게."

결국 리하르트는 자료를 얻어내었다. 그리고선 곧장 회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피레스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나왔다.

"소장님..."

"조용히하게. 이브, 넌 듣고 있겠지. 지식을 탐구하는 존재로 참 흥미롭지 않느냐. 알고 싶지 않느냐."

피레스의 입을 막은 그는 살짝 빨라진 목소리로 직접, 이브에게 말을 걸었다.

이브의 진짜 정체를 모르는 그는 지금 자기 몸을 지배하는 이브를 통해 얻은 능력을 이용해 같은 인류를 습격한 외계군단의 정체를 알아볼 실로 당돌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너, 참 건방져.'

그런 그의 태도는 이브도 살짝 당황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먼저 달려든 사람은 없었으니까.

어쨌든 이브는 어디 한번 그가 어디까지 무엇을 할 수있나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자신의 힘을 살짝 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폭력, 감정, 협상, 그리고 기만...점차 인간을 다루는 법에 대해 알아가는군]

이것은 이브가 타 생물을 대하는 태도가 단순한 살육 일변도에서 점차 그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기도 했다.

*

"역시,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나 넓어. 그리고 인간정도 되는 지성체의 마음은 우주와 맞먹는것 같고."

"큭...그게 무슨 헛소리냐. 지금 내 몸에 무슨 짓을!"

"폭발에 휘말려 산산히 부숴지고 박살난 몸을 살려준거지."

이브의 군체의식은 유닛이 가진 종족특성, 즉 게임 시스템과 동급의 권능이다. 저 먼 우주에서 실시간으로 통할 수 있는 초월적인 권능.

즉 지금 이브는 지구의 리하르트와, 자기 아바타 눈앞의 리암을 동시에 보고 있을 수 있었다.

"사람말을 하는 괴물! 인두겁을 뒤집어 쓴 끔찍한 파멸의 마귀년!"

"그래? 누군가는 나를 진정한 기적이라고 불렀어. 학문의 극의에 달할 수 있는 진정한 두뇌라고. 그도 너와 같은 사람이지. 연맹의 사람이야."

"네, 네놈들 설마 벌써 연맹까지 손을 뻗친..."

이판사판으로 악다구니를 쓰던 리암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하니 이브가 반군연합보다 강성한 연맹까지 침략했다고 지레짐작 한 탓이었다.

"글쎄. 어떨까."

이브는 그 말에 자세한 답을 하지는 않았다. 연맹에 대한 공격계획 역시 있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은 세력도 넓힐 겸 감히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입힌 반군연합을 척결하는게 제 1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브의 침묵을 오해한 리암은 공포에 질려 눈이 마구 떨렸다.

"왜냐. 대체 왜 나를 살렸지. 그것도 이런 꼴로 말이다. 능욕할 셈인가?"

그때 자신이 느끼고 있는 공포에도 문득 현자타임을 느낀 리암은 주변을 둘러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그의 상태는 처참했다. 꿈틀거리는 점막과 육벽으로 뒤덮인 어둑한 공동 안에서, 조각조각난 몸이 마치 거미줄마냥 펼쳐져 진득히 늘어지는 검은 촉수에 얼기설기 붙어 있었다.

지금 반쯤 타버린 그의 머리에 혈액을 공급하는 것도 자신의 심장이 아닌 군단의 촉수였다. 말 그대로, 억지로 생명을 이어놓은 살아도 산게 아닌 상태였다. 이브는 굳이 그의 몸을 돌려주진 않았다. 아직은 자기 편이 아니었으니까.

"여왕인 네 충실한 장수를 죽여서 화가 났나? 배에 바람구멍 나서 떨어지던 모습이 볼만하더군."

그는 가면을 벗고 사람의 말을하며 자신을 보고 있는 이브의 아바타를 최상위 지휘개체, 즉 괴물무리의 여왕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어찌보면은 반은 맞은 통찰이었다.

"우린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자매라도 되나? 빌어쳐먹을."

그러나 이브의 말과 함께 저 뒤에서 가면을 벗은 강도연이 날개를 꺼낸채 멀쩡한 모습으로 저벅저벅 걸어왔을 때. 그의 눈은 탁하게 가라앉았다.

모든 희망을 잃은, 삶을 포기한 자의 눈이었다.

'설득해보고 싶은데.'

왜일까. 이브는 눈앞에서 모든 의지를 잃어버린 리암을 보며 흥미를 품었다. 과거였다면 분명 쓸모 없다고 쳐냈을 텐데도.

'어째서? 그는 지금 모든 의욕을 잃었어. 네가 레이나를 서브마인드로 만들때 그랬잖아. 인간의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면, 가치가 없다고.'

강도연이 그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브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 인간에게서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장점을 그 정신력과 사고의 유연함이라고 뽑은건 자신이었다.

'내가 만들어 주면 되잖아. 그 절박함, 아니면 행복 등등을. 레이나를 통한 실험으로 인간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이번 실험으로 그 가능성, 내가 통제하는게 가능한지 한번 봐야겠어.'

이브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이러면 굳이 끝까지 말릴 필요가 없어진 강도연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처참한 리암의 모습을 보며, 일말의 동정심을 품은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그가 저런 꼴이 되는데 자신이 일조한 것도 사실이니까.

'이대로 충분한가? 오빠도 사실상 이브의 컨트롤을 포기한 상황에서, 나도 이렇게 시키는대로 움직이는게?'

리암에게 다가가는 이브를 바라보는 강도연의 마음도 무거워졌다.

딱히 특별대우를 바라는건 아니지만 지금 자신의 처지는 레이나와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군단장의 임무에 너무나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레이나에 비교하는게 오히려 잘못일 정도였다.

분명 전투를 반복하며 경험을 쌓고, 강해지고, 이브의 도움을 받아 출력을 계속해서 높여가도 이제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나는 왜 강해지려 한거지?'

더 이상 무력하게 휘둘리는게 싫어서, 당하는게 싫어서. 지키기 위해 힘을 탐했다.

다만 지금 자신의 행동이 그것들에 부합하는지는 아무래도 생각을 깊게 해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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