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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45화 (145/254)

145화-침략자들(5)

희망을 보기는 했다. 우주함대의 병기와, 현지의 마법이 합심해서 만들어낸 강력한 일격은 그동안 대적하는게 불가능할 것 같았던 적을 떨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전황은 너무나 불리하다.

적들의 진정한 힘은 소수의 강자가 아니었다. 이 세상의 땅과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빼곡한 숫자의 군단.

안에서 지켜보던 리암도, 지팡이를 짚고 서 있던 오스틴도 전방을 보고 탄식했다.

'끝내버려.'

이브의 명령대로 하늘을 빼곡히 채운 수천만 마리의 크고 작은 비행종들이 함선체들과 함께 현장을 습격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하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군단과 달리 인간들은 신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지쳐갔다.

습득한 용종의 데이터에, 하늘을 나는 하늘돛새치의 유전자를 조합해 만든 이 수십미터 크기의 새로운 병종은 마치 하늘을 헤엄치는, 비늘 달린 곰치나 갈치를 닮은 길쭉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땅을 기는 지룡처럼 하늘에서 움직이는 일종의 포대 역할을 맡기기 위해 만들어진 병종으로, 놈들은 입에서 뿜는 광선포로 군단의 화력을 지원하며 함선체들과 함께 인간 함선들의 베리어를 부수고 군단병들을 그 안에 투입시켰다.

"함장님...놈들을 떼어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싸울 준비 해야지. 그래도 방금 전 희망은 봤잖아 에이미. 이 우주 어딘가엔, 우리와 함께 저 괴물들과 싸울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우리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가능해. 인류는 지지 않아."

중얼거린 리암은 큼직한 총기를 챙겼다.

이미 주변은 아비규환이었다. 함께하던 호위함들은 괴물들에 뒤덮인 채 하나 둘 폭발하거나 추락하고 있었고, 당장 촉수를 뻗어 이 사령함에 들러 붙은 적 함선체만 셋이었다.

"부함장. 자폭 타이머 맞추도록."

"동력실 과부하 세팅 완료."

"그럼 이제 가자."

그는 사령함 엔진룸에 고의로 과부하를 걸어놓고 무장한 부하들과 함께 사령실을 벗어났다. 입을 굳게 다문 그들이 향한 곳은 오스틴이 밖에 서 있는 곳이었다.

"징글징글하군 진짜로."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본 그가 질색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어디 한군데 괴물들이 없는 곳이 없었다. 마치 괴물로 된 숲에 있는 것 처럼 빼곡했다. 당장 머리 위에선 촉수를 뻗은 함선체가 함선의 베리어를 완전히 부수기 위해 영거리에서 광선을 쏴대고 있었다.

"그래서. 저놈들은 또 뭐냐."

"방금 전 함선 방어막에 미세한 균열이 났을 때. 그곳으로 침투한 놈들입니다."

리암의 시선이 이번엔 정면, 함수 쪽으로 향했다. 검은 날개가 회심의 일격을 맞고 추락한 그 자리에 새로운 적들이 서 있었다. 부하들 모두 굳은 상태로 총을 겨누었다.

"일단 나는 처음 보는...놈이네. 따로 보고된 바도 없고."

"저희 측 데이터에는 몇번 등장했습니다. 단지 그 양이 극히 적긴 한데, 지금 와서 그게 중요한건 아니죠. 어차피 생긴걸 보니 저희가 단장급으로 분류한 지휘개체인건 맞는 것 같군요."

긴장한 오스틴의 말에 피식 웃은 리암이 총을 장전했다.

붉은 안광을 빛내는 가면 너머로, 가만히 서서 자신들을 보고 있는 또다른 인간형 괴물.

날개도 없고, 찰랑이는 짙은 흑발을 거의 엉치까지 늘어뜨린 그 모습은 지금껏 상세히 알려지진 않은 존재였다.

"저희 적입니다."

심호흡을 끝낸 리암이 가장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쏴!"

"쏴버려라!"

그 뒤를 이어 다른 승무원들도, 오스틴도 마법을 써 적을 공격했다.

'먹힐까?'

리암은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상대는 검붉은 베리어를 이용해 그 모든 공격을 튕겨냈다. 물론 이런 총질은 속임수. 진짜는 혹시 몰라 사수를 남겨 둔, 아직 한발 남은 레일건이 해줄 것이다.

오스틴과 그가 찰나의 순간 눈빛을 주고 받았다.

"지금이다!"

오스틴이 다시 한번 허공에 마력증폭진을 띄워냈다.

쏘아진 레일건의 탄환이 다시 한번 그 증폭진을 통과하며, 마력을 흡수해 한줄기 섬광이 되었다.

그 위력은 현재 군단에서 질량대비 가장 강한 출력을 가진 존재의 베리어도 단숨에 뚫려버릴 위력.

이번에는 조금의 방해도 없이 그들이 정확히 약점으로 추정한 가슴팍을 향해 날아갔다.

'뭐지?'

그러나 이어지는 광경에, 리암은 순간 뇌가 정지해 버렸다.

"반으로 갈라졌소. 탄환이!"

오스틴이 대신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느새 손에 한자루 검을 든 적은, 그 섬광을 반으로 갈라버린 채 검붉은 기운을 불태우고 있었다.

'희망이 있는게 맞겠지?'

검을 빗겨든 적이 한발 앞으로 내딛는 순간 그는 이를 악물었다.

다시 한번 총탄과 마법이 빗발치고 돌진해오는 짙은 흑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달려들기 시작한 괴물들과 인간들의 마지막 싸움이 벌어졌다.

발악하는 자들과 살육하는 자들의 충돌. 그 과정에서 흩날리는 피와 터져나오는 비명은 오직 한쪽만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명까지 싸웠다.

"크흐...너희라면, 순순히...죽겠느냐."

오스틴을 꿰뚫어 죽이고, 이제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억센 손에 피를 흘리던 리암이 주먹으로 가면을 퍽퍽 쳤다.

당연히 주먹이 찢어지고 부러졌지만 그는 신경도 안썼다.

"너도 여기서 죽어라."

동력실의 과부하가 슬슬 터질 시점이라는 것을 직감한 그가 씩 웃었다.

그리고 이어진 대폭발이 모든 것을 휩쓸었다.

km급 대형 함선이 산산히 부숴질 정도의 충격과 뜨거운 화염의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퍼져나갔다.

이곳, 에덴에 마지막 남은 인류가 소멸하는 순간이며, 여럿에게 큰 의미를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제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가려졌다.

퇴화용종들이 레드리움에서 전멸했을 때처럼 이 세상엔 오직 단 하나의 주인만이 남게 되었다.

'...?!'

'넌 죽지 않았어 리암. 이야기를 해볼까.'

그리고 어느 순간, 분명 산산히 부숴지고 타서 죽었어야 할 자신이 의식이 있음을 느낀 리암은 갑자기 의식에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듣고 경악했다.

*

"게임이 어느덧 여러 분기점을 통과했다. 늘, 그랬듯이."

어둑한 공간에서, 숨막힐듯한 적막 속에서 누군가 또각거리는 구두소리를 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게임은 일개 장치에 불과하며 진정한 목적은 따로 있다. 유닛들도, 플레이어도, 부외자들도. 결국은 강해지고 소통하고 덩치를 키우고...진화한다."

대표해서 말하고 있는, 머리에 한쌍의 검은 뿔을 단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모여서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서 있는 모두의 가면 속에서 저마다의 안광이 번득였다.

"서로 싸우고 경쟁하는 것 역시 성장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 게임의 승자를 독차지하는 존재는 끝없는 탐식과 진화를 무기로 삼은 전쟁의 화신 같은 존재였으니까. 두번째로 강해진 이들은 모두 마지막까지 승자와 경쟁하던 이들이었다."

지금 그녀가 하는 이야기. 사실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시 반복되어선 안 된다. 최후의 승자는 지금까지 '진정한 적'은 물론 이 세상마저도 모조리 먹어치우고 파괴했다. 그래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게임도, 희생도 전쟁마저도."

"그렇다 해도 지금 흘러가는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래서야 결과도 동일할 겁니다."

누군가 기계적인 목소리로 반박했다.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입장에선 어차피 결과를 다 알고 있었고, 지금 이 회의도 결국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까.

승자도 패자도 알고 있었고 그 과정도 알고 있었다. 다이나믹하게 반응하는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순간 수많은 시선이 그들 중 하나에게로 향했다. 아무 기색도 내비치지 않고 조용히 서 있는 평범한 사내에게.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 시선들을 알아챈 그녀가 또각거림을 멈추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을 부정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오직 사명감 하나만으로 뭉쳤다. 태초의 룰을 뜯어고치고 개입해서 지금까지 온게 그들이었다.

"나와 같은, 태초의 플레이어들...이번엔 부디 다른 결과가 나오길 바라자. 또 다른 우리가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승리를 이룰 수 있도록."

끝에 가서는 평온하던 그녀의 목소리도 조금 떨렸다.

끝 없는 반복. 하지만 완전히 동일한 미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소함으로는 큰 줄기를 바꿀 수 없다는게 문제일 뿐.

'유닛으로 인해 촉발되는 본격적인 세력전의 시작. 이 대전쟁이 유일한 기회.'

방에 돌아 온 그는 다시 화면을 켰다. 다른 이들과 달리 그에겐 플레이어, 유닛 합쳐서 단 둘뿐이다.

그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쯤은 이제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전에 그들에게 간섭하고 유도하는걸 그만두었다. 여기까지 와선 아무 의미 없었으니까.

'무능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순간 가면 쓴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결국 오매불망, 유닛의 마음가짐에 변수가 될만학 사소한 변화가 찾아오기를. 그리고 그 사소한 변수가 나비효과가 되어 결과를 바꾸기를 바라고 기다릴 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지만, 회차를 반복하면 직전 회차의 존재들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들의 행복을 바래도 그 끝은 늘 폭주와 분노, 슬픔과 파멸이었다.

[연맹에 심어둔 첩자들을 확인해 봐라. 그들이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는 메시지를 입력하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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