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41화 (141/254)

141화-침략자들(1)

"완전히 따돌린건가?"

"일단...걸리는 적들은 없습니다."

"답은, 답은 아직도 없나?!"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 앉은 리암이 진이 다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단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습에서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그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도 만 하룻동안 벌어진 전심전력의 추격전의 여파로 녹초가 된지 오래였다.

"그, 그게..."

"왜 그러지? 우리는 그동안 꾸준히 저 외계 벌레들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증거 자료도 첨부했다. 놈들은 재앙이야. 우리와 우주에서 함대전을 벌이는 괴물들이라고! 본성에서 분명 뭔가 답을 했을 것 아니야!"

정작 지쳐서 쉴 틈도 없었던 리암은 우물쭈물하는 보좌관의 태도에 결국 화를 내었다.

그러나 그가 드물게 화를 냈음에도 주변 보좌관들은 침통한 얼굴로 눈을 질끈 감거나 고개를 떨구는 등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체 왜..."

"함장님."

이쯤되니 오히려 부하들의 태도에 당황한 리암이 순간 혼란에 빠졌을 때.

누군가 각오했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이 굳은 얼굴로 앞에 나선 갈색 단발 머리의 여인, 에이미를 보고 흔들렸다.

"에이미. 너는 무슨 일인지 알고 있나?"

"죄송합니다."

결국 에이미는 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평소 그의 신뢰를 받던 그녀가 함장들과 합심해 정보를 누락하고 거짓보고를 올렸다는 사실을 모두 다.

리암은 그 소리를 듣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미의 말대로라면 지금 본성이 미적지근한 대응을 보여주는게 납득된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다고 상투적으로 보고하기만 하다가 갑자기 미친 괴물들이 나타났으니 지원해달라 요청하면 정치적으로 그를 견제하는 총통이 곧바로 병력을 보내줄리가 없었다.

"내 실책이군. 에이미. 젊고 능력있다고 너를 너무 믿었어."

"죄송합니다. 이, 이 잘못은 제가 책임지고 반드...꺄악!"

깊은 한숨을 내쉬는 리암을 본 에이미가 끝내 눈물을 흘리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내 스스로의 머리에 겨누었다.

"아니, 허튼짓 하지마. 지금 네 행동은 그냥 도망치려는거야. 우리 모두를 그냥 두고."

그러나 번개 같이 일어나 그녀를 밀친 리암이 단숨에 권총을 가로챘고, 당황한 주변 보좌관들이 그녀를 제압해 붙잡았다.

"자리에 복귀해 아만다 린 대위. 우선 본성에서 지원이 올때까지 버틴다."

"함장님..."

"아직 기회는 있어."

그녀에게 애써 웃어보인 리암은 분위기를 바꾸었다. 사령함은 워프가 가능했지만 비함과 호위함의 균형비가 깨져 모든 함선을 데리고 워프해서 퇴각할 수 없었다.

보좌관들은 당연히 사령함만이라도 퇴각하든지, 엔진의 무리를 감수해서 왕복 워프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리암이 거절했다.

"이곳을 떠날 순 없다. 현지인들도 현지인들이고 지상에 남은 부대들도 철수시켜야 하고. 무엇보다 저 괴물들을 그냥 두고갈 수 없어. 저놈들이, 만약 우리 세력권까지 닿는다면...최신 자료 첨부해서 본성에 제대로 다시 보내. 절대 무시할 수 없을걸."

"...알겠습니다!"

"이렇게 된거, 어떻게든 이곳에서 끝을 봐야 해."

그는 굳게 결심한 얼굴로 창 밖, 조용히 자전하고 있는 행성을 바라봤다.

이미 도시급 크기를 가진 떠다니는 침략요새가 이 행성 반대편에서 자신들의 행성 중 한곳으로 워프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에 가질 수 있는 희망이었다.

"우선 지상과 연계한다. 놈들은 이제 거리낄 것 없이 움직이겠지. 본성의 지원이 올때까지 단 한명이라도 더 살려야 해."

승조원 모두가 지쳤던 사령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지상의 현지인들과 점령부대에게 사실을 알리고 버틸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퇴각시키는 것이있다.

"그놈들이, 그 거대한 함선과 맞먹는 병종을 생산해 냈다고."

"그렇습니다. 저희 함대는 그 기습에 와해되어 겨우 피신했으니 이제 지상을 지킬 수 없습니다. 어서 피하시길."

"...알겠소."

화면 너머, 리암은 피로해보이는 오스틴의 얼굴을 보고 혀를찼다. 적들은 사람들을 바람잘날 없이 집요하게 괴롭히더니 끝내 조금의 자비도 없이 숨통을 끊으려 하고 있었다.

"확실하오. 당신네들의 눈까지 피했다면, 놈들은 다른 세상에서 힘을 기르다 온 것이오."

"그 레드리움이라는..."

"대체 그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번성한건지는 알 수 없지만."

급한 용무가 다 끝났음에도 오스틴은 연락을 끊지 않았다. 리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비록 자신들보다 하위로 분류한 세상이다. 하지만 마법사 오스틴이 보여준 여러 마법들은 반군연합의 사령관 리암에게도 기적과 비슷했기에, 리암은 오스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이 말, 꼭 해야겠소."

리암은 오스틴의 의중을 파악했고 오스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법사의 입에 집중하며 긴장을 끌어올렸다.

"놈들의 비밀 중 하나일 것이오...당신네들이 오기 전 우리와 전쟁을 벌인 놈들이 훔쳐가는 것이, 비단 마법 하나뿐이 아니었지."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레이나라는 평범한 학회 연구마법사가 있었소."

오스틴은 멍하니 중얼거리며 레이나에 대한 이야기를 주르륵 해주었다. 당연히 리암은 학회니 의회니 하는 것들을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해 당황했지만 우선은 참고 다 들었다.

"동족에게 배신당한 그 애가 가졌을 배신감은 감히 짐작할 수 없소. 하지만 도대체 어떤 수작을 부린 것인지, 놈들은 그 애를 자신들의 일부로 만들어버렸소. 거대하고 강대한 힘과 함께. 결국 그 애는 자신의 원망과 분노를 우리를 향해 터트렸지."

"사람을...자신들의 일부로 만든다라."

그리고 리암은 이어지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눈이 커졌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어쨌든 오스틴은 레이나가 군단의 군단장이 되어 자신들과의 전쟁에서 선봉에 섰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뜻은 곧 군단이 사람을 이용한다는 것. 당연한 사실이지만 적들이 단순한 본능으로 움직이는 괴물집단이 아니란 소리였다.

"분명 놈들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소. 가히 지옥의 악마라 부를만 하오."

"지옥의 마귀, 파멸귀."

리암은 현지인들이 증언했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고대의 괴물.

현지의 역사를 모르는 리암이 보기에도 굉장히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사령관도 부디 조심하시길. 악마의 손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오."

오스틴은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화면을 껐다. 사무실에 혼자 남은 그는 모자를 벗고 거칠게 머리를 긁적였다.

*

"도시로 놈들의 병력이 돌진하고 있습니다!"

"함선이 갈 순 없다. 함재기를 최대한 동원해!"

알겠다고 응답한 본성의 지원이 올 때까지, 리암은 최대한 싸우기로 결정한 만큼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전투기 발진!"

본디 함선 호위용인 전투기 편대가 무인기들을 끌고 대기권을 갈라 현장으로 파견되었다.

이게 우주권에서 최대한 모습을 숨기고 지상을 돕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아...큰일났습니다! 전방에 '검은 날개' 출현!"

"제길. 자리를 벗어난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 발각당했다.

그들을 추격하는 적들은 비슷한 규모의 함선체들. 그리고 그 함선체들을 이끄는건 아직은 단신으로 이 km급 사령함과 붙어도 이길거라 판단되는 최흉의 적.

리암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칠 것을 명령했다.

'우리 목적은 싸워주는게 아니다.'

그는 쫓아오는 검은 날개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눈엣가시 같은 함대를 완전히 궤멸시키려는 적들의 의도는 뻔했다.

그러니 지원이 올때까지 최대한 도망다니는게 목적이었다.

"따라잡힙니다!"

문제는 아무런 희생도 피해도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

함대의 뒷꽁무니를 붙잡은 검은 날개가, 함선체에서 뛰어 올라 자체 추진력으로 최후미의 호위함 하나에 올라탔다.

"으아악! 놈이 침입! 함선 내부에 침입했다! 지원바람! 지원..."

"속도 줄이지 마."

다급한 지원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던 리암은 이를 갈며 명령을 내렸다.

침입했다는 무전 이후로 단 1분도 안되어 통신이 끊기더니, 호위함이 대폭발을 일으키며 터져버렸다.

'불합리하다. 사람크기의 소형기체가 함선을 부술 화력을 갖고 있다니. 하지만 오스틴이라면, 현지의 마법사들도 그정도는 할수 있지 않을까'

함선 하나를 단신으로 처리하고 그 폭발에서 멀쩡히 빠져나온 날개를 보며 리암은 무언가를 직감했다.

지금 적들이 보여주는 함선체와 소형기체의 유기적인 대함전술은 리암의 입장에선 불합리함 그 자체였다.

그러니 새로운 대처법이 필요했고, 그는 그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여겼다.

당장 오스틴 같은 현지의 마법사들도 인간을 초월한 힘을 보여주는데, 그런 이들을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그, 그들을 함선에 승선시키실 생각이십니까?"

"우린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니까."

그의 눈은 여전히 함대를 추격하는 검은 날개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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