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39화 (139/254)

139화-빙산의 일각(7)

"..."

이곳은 고의로 불을 키지 않은 어둑한 자료실, 함선의 중요 자료들을 모아놓은 일종의 서버실인 그곳에 누군가 자료실 시스템 직접 접속을 시도하고 있었다.

시스템을 조작하며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린 그의 정체는 연구원 피레스.

정말 혐오스럽다는 듯 찡그린 얼굴에 비해 그의 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 있는게 전부라고?'

"흐이이..."

잠잠한가 했더니 다시 한번 뇌리에 목소리가 울렸다. 크게 움찔한 그는 두개골 안이 간질거리는 그 감촉에 기겁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 적어도 이 레티크 호의 모든 정보는 여기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 일단은 그것만이라도 봐.'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린 피레스가 그 목소리에 대답했다. 다행히 목소리는 거기서 끝났다.

그는 이미 목소리에 저항하는걸 포기했다. 자신의 몸을 신경 하나하나 마음대로 조종하는 괴물에게 저항해봤자 얻을 수 있는건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뿐이었으니까.

'대체 정체가 뭐지?!'

그나마 그에게 허락된 자유는 속으로 생각하는 것 뿐이었다.

지금 자신의 몸을 장악한 존재는 분명 예측불가의 괴물이지만, 그래도 생각마저 읽어내는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단지 그 생각을 조금이라도 티내려는 순간 몸 전체가 스스로를 공격한다는게 문제였다.

"이것이 저희가 만든 레티크 호의 워프 장치 설계도입니다."

'전부 기억했어.'

"흐아아..."

'더 자세한 자료는.'

"그, 그건 제 권한으로는 못 봅니다."

함선 설계도를 보여주던 피레스가 고개를 저었다. 라인도 잘 탄 촉망받는 인재지만 어쨌든 하급 연구원에 불과한 그의 권한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럼, 누가 볼 수 있지?'

"그건..."

무심히 울리는 목소리에 그의 눈이 흔들렸다.

이미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자신을 잡아먹은 이 외계의 괴물은, 자신이 발설하는 순간 그 사람마저 잡아먹으려 시도할 것이다.

"여, 연구 소장 리하르트라면."

'그를 찾아가.'

물론 그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새로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소장님. 급히 찾아뵈어도 됩니까?"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단 밤을 보낸 뒤, 피레스는 아침부터 소장 리하르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피레스는 그동안 상관인 리하르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과 비슷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출세한 리하르트는 나이 차이도 그리 나지 않는데다 암만 봐도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였으니까.

"그, 그럼 이따 찾아뵙겠습니다."

단지 지금은 그딴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질투했던 리하르트라도 어떻게든 자신의 이변을 알아채주고 구해주기를 바랄 뿐.

"마침 나도 자네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그러나 리하르트를 찾아갔을 때. 피레스는 평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상태를 보고 절망했다.

이제 소장 리하르트는 자신의 몸을 잡아먹은 괴물에게 다시 한번 잡아먹힐 것이다.

"그건..."

"아, 최근엔 자료를 좀 수집하느라. 그러고보니 자네가 접촉했던 현지인들이 이들 아닌가?"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선 피레스는 그가 보고 있는 홀로그램 화면을 보고 움찔했다.

화면에 나오고 있는건 한쌍의 남녀였다. 마계의 적들과 싸우며 최근 그 주가를 크게 올리고 있는 듀오.

그러나 피레스는 그들을 본 순간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티내지 마.'

그 즉시, 이브는 그의 몸을 강제로 움직여 놀란 기색을 지우게 만들었다.

"그들은 분명 우리가 연맹 내의 패권을 찾아오는데 도움이 되겠지."

'아니요. 절대요.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제발.'

피레스는 지금 그가 보고 있는 남녀가 인간이 아닌 괴물들이라고 필사적으로 외쳤으나 리하르트에게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런데 왜 찾아온건가? 마침 나도 자네에게 볼 일이 있다고 했지?"

"그,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지금 새로운 식민행성 개척으로 가뜩이나 예민한 시기인데 자네가 그렇게 의심스럽게 행동하고 다니면 어떡하나.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면서."

'이런.'

리하르트가 조용히 이야길 꺼낸 그 순간, 무언가를 감지한 이브가 피레스의 몸을 움직였다.

바로 곁에서 쏘아진 테이져건의 탄환이 피레스가 서 있던 자리를 스쳤다.

"제압해!"

리하르트의 명령에 푸른 나노슈트를 입고, 은신 역장을 거둔 두명의 헌병대가 피레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강화 슈트는 인간의 힘을 한계 이상으로 극대화시킨다. 맨몸으로는 절대 상대하지 못한다.

"무슨..."

그러나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경악했다.

몸을 마구 뒤틀던 피레스가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하더니, 그의 옆구리 살을 찢고 나온 검은 무언가가 덤벼들던 헌병의 배를 슈트째로 관통하고 벽에 박아버렸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였다. 등에서 튀어나온 그것들이 헌병의 얼굴, 배, 가슴을 관통해 죽여버렸다.

마치, 거미의 다리와 비슷한 것이었다.

"이, 이게 대체."

"살려주세요 소장님..."

곧바로 팔을 촉수로 변형시킨 피레스가 멍하니 중얼거리더니 그 촉수로 리하르트의 목을 휘감고 앞으로 끌고왔다.

"끄흑...커헉...그, 그만..."

촉수를 통해 피레스의 몸을 지배하던 군단의 세포들 일부가 괴로워 하는 리하르트의 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뒤 남은건 바닥에서 몸을 기괴하게 꺾으며 허우적 거리는 리하르트. 그의 몸엔 이미 목에서 시작한 검은 혈관이 잔뜩 돋아난 상태였다.

'안녕. 연구소장 리하르트.'

동시에 리하르트의 의식에도 낯선 목소리가 강제로 끼어들기 시작했다.

피레스는 그 사이 몸을 원 상태로 복구하고 혹시라도 남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사무실 문을 단단히 잠궜다.

*

"역시 비효율적이야."

"그정도야?"

"한때는 모든 지구인들을 감염시켜 조종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런 계획은 전부 폐기했어. 군체의식과 감염은 사실 그리 어울리지 않아."

내 다리에 부딪히도록 다리를 까딱거리던 이브가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나도 화면을 통해 군단의 일부, 즉 피레스를 볼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 감염시킨 연구소장 리하르트까지. 리하르트는 수호자연합에서도 신경쓰는 나름 중요한 인물이었는데도, 결국 우리에게 당한 것이다.

"그럼 워프 기술은 완벽히 얻을 수 있는건가?"

"조금 더 봐야지. 사실 지금까지 획득한 기술만으로 놈들의 함선을 그대로 복제하는건 가능해.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진화는 그런게 아니니까."

"...그걸 만드려고?"

괜히 주변을 한번 훑어 본 나는 책상 위 종이에 끄적이고 있는 이브의 작품을 바라봤다.

초생물 아니랄까봐 고작 연필하나 쥐어줬는데도 손을 슥슥 움직이면 무슨 사진 같은 것이 프린트하는 것 마냥 그려지고 있다.

그렇게 이브가 그린 것은 군단이 만들 새로운 병종, 아니 시설.

그것은 일종의 침략요새이자 군단이 만드는 최초의 비생물 병기였으며 그 모양새는 하늘에 떠 있는 섬과 비슷했다.

"이건 대륙 하나를 통째로 들어서 만들거야. 생산, 분석, 분해등 말그대로 모든 행동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요새."

"..."

말하는거만 들어보면 초등학생이 찰흙으로 뭐 만들지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단지 그것이 진심이라는게 다를 뿐. 실제로 카페의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보며 쑥덕거리기만 할뿐 딱히 우리 말을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 침략요새를 이용해 공격할 곳은."

"처음엔 주둔전력의 대부분을 파견했다 우리에게 궤멸당한 행성, 리만을 노리려고 했지. 하지만 우리 목적이 예방 전쟁이라면 그런 시골 변방지역보다는 오히려 더 단단하고, 중요한 곳을 노려야 하지 않겠어."

히죽 웃은 이브가 종이의 남은 곳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보에 따르면 그곳은 반군 연합의 주요 행성중 하나인 레뮌.

고도로 발달한 우주세력의 거점 중 한곳이지만 아마 그들은 생전 처음 당하는 기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확률이 컸다.

"물론 이번 침략은 어디까지나 시간벌기용. 레드리움은 물론 이번에 되찾은 곳까지 우리가 완전히 갖게 되었을 때부터 진짜 시작이야."

이브가 히히 웃으며 연필을 내려놓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 없이 커피를 마셨다. 아마 이브는 모르고 있을 확률이 컸다.

지금 이브는 성장중이다. 애초에 성장과 진화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니까.

다만 행성 두개를 먹어치우고 있는 군단으로서 덩치를 키우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 자아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난 여기 정리할테니 이것좀 버려줄래."

"좋아."

이브가 내가 건넨 컵을 들고 카페를 가로질러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비록 줄 서 있는 사람들은 싹다 무시하는 등 괜히 안티들 사이에서 인성 논란이 나오는게 아니었지만...어쨌든 이브는 이제 인간들의 시선을 받는다고 혐오스러워 하거나 살의를 품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제 철저하게 인간들을 이용하겠다고 스스로 정했으니까. 내가 보기엔 이제 딱...초등학생 수준으로 보였다.

[성과를 보는 것 같나? 의도대로 적응한 것 처럼 보이지만 지금 이브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목적이 뚜렷한 연기일 뿐이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글자가 아직도 무력한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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