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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37화 (137/254)

137화-빙산의 일각(5)

"큭..."

사령관인 리암은 물론 다른 모든 이들이 바닥을 구를 정도의 충격.

허겁지겁 일어난 리암은 지금 이 사령함과 충돌하곤 스쳐가듯 지나가는 그것을 보고 경악했다.

"함...선?"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전체를 감싸는 검붉은 베리어까지 달린 길게 뻗은 몸체, 후면부의 추진체등은 분명 함선과 흡사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튀어나와 흩날리고 있는 용도불명의 촉수들과 꿈틀거리는 갑각은 그의 인지에 부조화를 일으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그 괴이한 거대 생명체는, 사령함을 무시한채 비슷한 체급을 가진 호위함을 향해 돌진. 서로의 베리어를 상쇄시키더니 뾰족한 끝을 호위함에 쳐박고 촉수를 움직여 휘감기 시작했다. 마치 오징어가 먹잇감을 물어뜯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

호위함이 실시간으로 우그러지고 폭발하는 모습이 리암의 눈에 아른거렸다.

"이, 이게 대체...꿈이..."

"정신 차려 에이미. 꿈이 아니야. 지금 당장 일어나! 임무에 복귀해!"

벌떡 일어난 리암이 정신 못차리고 있는 부하들을 다그쳤다.

"함대전이다. 믿을 수 없지만, 우린 지금 놈들과 함대전을 해야 한다. 지금 당장 대형 변경해!"

"하지만 사령관님! 하, 함대전이라기엔..!"

"...우선 거리부터 벌린다."

부하의 외침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은신한 상태로, 소수의 적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그들의 탐지를 피해 고고도 비행을 하다 내리 꽂은 적들의 함선은 수백척이 넘어갔다.

마치 비가 내리듯 내리꽂은 그 거대한 괴물들은 수십척의 함선을 말 그대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지금 사방에서 다급히 울리는 비명 섞인 통신만 들어도 절절히 느껴질 정도였다.

"거리를 벌린 후 화력으로 상대한다. 서둘러!"

가까스로 머리를 굴린 리암은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그가 탑승한 가장 거대한 사령함이 근처 함선들과 함께 어떻게든 몸을 비틀며 자리를 벗어나려 애썼다.

'놈들도 화력이 없는게 아니다. 대체 어떻게, 어디서, 누가.'

그는 이 괴생명체들이 몸체에서 아군과 흡사한 광선포를 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이 기습 한번에 지금 전체 함대 전력 절반이 증발했다. 찡그린 그의 눈에 적들의 함선을 몸체에 무려 세개씩이나 꽂아넣고 추락하는 몇 안되는 기함, 사이세커 호가 보였다.

"사령관님..."

"대형 갖추는 대로 망설이지 말고 모든 화력을 퍼붓도록. 우리의 마지막 기회다. 그게 아니라면 우린 여기서 다 죽는다."

그는 아마 마지막이 될 공격을 지시했다. 큰 타격을 입었지만 지금 여기서 화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적들을 일소하지 않으면 다음엔 무조건 진다는 확신이 있었다.

"흠, 자신들이 강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최선의 수를 두는군요."

"레이나. 나 지금 배고파..."

"알고 있습니다."

레이나가 마법진을 중첩시켜 발현한 방어막으로, 자신에게 쏘아진 반군연합 함대의 포격을 막아내었다.

그러면서 한손으로는 축 늘어진 강도연을 안고 있었다.

강도연은 함대의 포격을 정면에서 버티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버린 상태. 즉 지금 당장 둥지로 복귀해서 양분과 에너지를 충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쯤, 큰 제약이 아니죠."

레이나는 강도연을 데리고 함선 하나에 올라탔다.

동시에 함선에서 솟은 촉수들이 강도연의 몸에 연결되기 시작했다. 촉수를 통해 함선의 에너지와 양분이 그녀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회복하고 계시길. 남은 적들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저희가 처리한다고 했지만 사실 레이나는 직접 나설 생각은 없었다.

이 전장은 오직 군단의 함대가 그 위력을 증명하고 데뷔전을 치루는 장소.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함대가 되어야 했다.

'돌격.'

레이나는 주변에 집결한 군단의 함선체들을 가까스로 빠져나와 바로 옆에 겨우 대열을 갖춘 적 함대를 향해 돌진시켰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 원거리에서 화력을 주고 받는 정석적인 함대전이었다.

인간측도, 군단측도 서로 광선포나 미사일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쏘아내며 상대의 베리어를 깎아내렸다.

'돌진, 계속 돌진.'

한가지 다른 점은 군단은 절대 전선과 대열을 유지할 생각이 없다는 것.

화력을 뿜어내면서도 군단의 함선체들은 오히려 속도를 늘리며 적진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레이나는 자신이 개량한 스타스 학회의 마법으로 전면부 장갑과 베리어를 극대화한 군단 함대의 모습에 히죽 웃었다. 마법의 중심축은 대형종이나 초대형종이 아닌 바로 함선체들.

레이나에겐 그동안 벌였던 전쟁의 무대가 하늘 위로 옮겨졌을 뿐이었다.

"으, 으아아..."

그리고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

나름 합리적으로 대처한다 한들 생전 처음 겪어보는 함대전에, 거대괴수인 상대가 가진 괴기함은 전의를 완전히 꺾어버리는데 충분했다.

두려움에 빠진 인간측은 흔들리고, 군단은 그 두려움을 이용하는 경험이 이미 풍부했다.

물러나야 하느냐 마느냐로 전열이 무너지고 대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리암은 모든 부대를 우주권까지 후퇴시키기로 결정했다.

'우주로 가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가.'

레이나는 함선체들을 움직여 그대로 추격을 지시했다.

단 하나의 생명도 살려두지 말라, 그것이 이브의 명령이었다.

지금까지는 오직 그들만의 공간이었던 우주.

생전 처음 우주 밖으로 나가보는 레이나는 점차 차가워지고 어두워지는 주변 공간에 히죽 웃었다. 자신의 몸은 베리어를 쳐야 했지만 함선체들은 아니었다.

군단의 모든 정수를 우겨 넣어 만들어, 가장 강한 생명체가 된 이 함선체들은 굳이 베리어가 없더라도 극한의 우주공간을 버티면서 인간 함대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

"미친...계속 온다!"

"쏴! 계속 쏴라!"

기함 사이세커, 비록 반군연합의 다른 함선들처럼 노후화되고 여러번 개량을 거쳤지만 어쨌든 수천명의 승조원이 일하는 자체 워프가 가능한 대형 함선이었다라는 정보를, 우리는 최근 사로잡았던 포로의 증언에서 알 수 있었다.

지금 그 함선이 비명과 고함, 총성등으로 가득찼다.

"커흑..."

'그리고 감히 우리 둥지에 벙커버스터 폭격을 가한 함선이기도 하지.'

가면을 쓴 이브가 우릴 향해 총을 쏘던 승무원 하나를 검으로 베어버리곤 중얼거렸다.

지금 이브는 분노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기뻐하고 있었다. 감히 우리에게 문답무용의 뜨거운 폭탄을 선사한 적들을 산채로 찢어죽일 기회가 왔으니까.

'전부 죽여.'

이브의 명령에 우리 뒤로 수많은 중형 군단병들이 통로를 달려나가며 저항하는 인간들을 향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었다.

이렇게 침투하는 병력들은 도마뱀, 4족 보행 육식동물, 거미 등 함선 내부에서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병종들로 엄선했다.

'나쁘지 않은 전략이지?'

'내부 방어가 취약한 그들에겐 이런 우리가 최악의 적이겠지.'

나는 칭찬을 바라는 이브의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적들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전략 중 하나는, 함선체의 내부에 병력을 태워 적 함선 내부에 쏟아낸다는 것.

특히 이런 기함 같이 덩치가 거대한 함선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당장 이 사이세커 호에도 3체의 함선체들이 주둥이를 쳐박고 고정한 뒤 우리 둘을 비롯해 탑승해 있던 병력들을 그 안에 쏟아내었다.

"아악!"

"끝도 없어. 위다! 위쪽 환풍구 안에도...끄윽."

승무원들은 총을 쏘고 중장비에 탑승하여 저항해 보지만 그뿐.

군체의식으로 살펴보면 이렇게 적들의 당황한 고함,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소리만 들렸다.

지상에 비해 함선 내부는 방어가 아예 안 되어 있는 셈이었다.

게다가 전체가 이브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군단병들의 특성상, 한번 눈에 띄면 도주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분명 대비가 철저한 부분도 있을 수밖에 없지.'

이브가 내게 다른 장면을 보여주었다.

무차별하게 학살당하고 있는 다른 곳과는 달리, 철저히 무장을 갖춘 채 오히려 달려드는 군단병들을 하나 둘 쓰러트리며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곳.

내 눈에 그 가운데서 제복을 입고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검은 피부, 흉터, 굳센 인상 등등.

포로를 통해 얻은 증언에 대입하면 저자가 바로 이 사이세커 호의 함장 에이든이었다.

'본래 우리 같은 개체들의 목적은 함선 내부의 동력실이나 무기함을 파괴하는 것이지만, 저 건방진 놈의 목은 반드시 내가 뜯어야겠어.'

즉 이브의 원수라고 말해도 되는 인물이란 뜻이었다. 그는 영문조차 모르겠지만 분노를 태운 이브가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함장님. 어서 탈출을..."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역시나 나타나셨나? 상위종."

에이든은 군단병들을 이끌고 그들 앞에 나타난 우리를 알아보았다. 하긴 지금 그의 눈에 이브는 모를까 나는 영락없는 괴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허세를 부리는 자신만만한 목소리와는 달리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우리에 대한 데이터는 적을테니까.

이브도, 나도 별다른 대응은 하지 않고 검을 들었다.

"뭐냐. 대체 너희 목적이 뭐냐! 단순히 인간을 잡아먹고 죽이는게 목적인가? 번식?! 이 세상을 네놈들 둥지로 덮어버리는 것이 목적이냐!"

눈을 부릅뜬 에이든이 마지막 발악이라는 듯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그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것 처럼 보였다.

'잘 아네. 우리의 목적. 하지만 이제 나는 이 세상에서 멈추지 않아.'

그리고 이브는 그의 말을 듣고 속으로 조롱했다.

[살아남는게 목적이지]

다만 지금의 나는 이브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았다. 이브가 알아채지 못하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군단의 브레이크로써 내 목적은 오직 우리의 안위뿐이다.

"하긴, 네놈들의 목적 따위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너희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 사격해!"

그때 고함친 에이든이 명령을 내리자, 터져나온 총탄과 광선등이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나도, 이브도 서로의 방어막을 공명시켰다.

그리고 군단병들과 함께 땅을 박차며 화망을 뚫고 앞으로 내달렸다.

이브가 검을 치켜들더니 그대로 휘둘렀다.

뿜어진 참격을 막을 수 있는 형상력을, 그들은 갖추지 못했다.

장비도 사람도 함선도 반으로 갈라버리는 참격이 뒷쪽 외벽까지 갈라버리며 폭발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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