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35화 (135/254)

135화-빙산의 일각(3)

'약 2세기 전에 연맹의 세력중 하나인 베르니아에서 만들어진, 지금은 퇴역했어야 정상인 6세대 오토스급 호위함.'

강도연의 눈으로 호위함을 살핀 이브는, 비록 여러군데 개량되어 모습이 달라지긴 했어도 단숨에 그 호위함의 자세한 정체를 알아보았다.

감염시켜 연맹에 잠입시킨 연구원 피레스가 제공한 정보에는 역대 함선들에 대한 정보들도 자세하게 있었으니까.

애초에 연맹의 일부였고 지금도 깊게 엮여 있는 반군연합이 그 정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지금 네 뇌로 함선의 설계도를 보내줄게. 수백미터에 달하는 함선이라도 결국 하나의 생물과 같아. 정확히 심장부를 파괴하면, 조금의 균열로도 저 거체를 정지시킬 수 있지.'

"알아. 그리고, 보여."

강도연은 이브가 준 오토스급 호위함의 설계도를 뇌에서 펼쳤다. 그리고 가면 속 눈을 번득이며 그 설계도를 지금 나타난 함선과 겹쳐보았다.

그덕에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함선의 어디에 무엇이 있고 그것이 함선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중에는 함선의 메인동력장치가 존재하는 최심부도 포함되었다. 그곳을 파괴하면 저 거대한 함선은 심장이 파괴당한 짐승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추락하리라.

그녀는 은신을 풀고 날개를 펼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새까맣게 몰려온 군단병들에 의해 뒤덮인 지상만 보고 있었는지 함선의 반응은 살짝 늦었다.

'부숴버려.'

이브의 명령이 떨어졌다.

강도연은 전신의 동력기관을 극한으로 공명시켜 형상력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몸 주위에 둘러쳐진 검붉은 방어막이 더 짙어지고, 단단해지는 순간.

그녀는 등에 난 외갑의 틈으로 엄청난 힘을 뿜어내며 단숨에 음속을 돌파, 속도를 더 끌어올리면서 함선을 향해 돌진했다.

방어하기 위해 함선에서 다급히 쏘아낸 공격들은 애초에 상대의 무인기등을 격추하기 위해 시스템 되어 있었다. 함재기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그녀의 몸에 그 공격들은 채 스치지도 않았다.

분명 꽤 거리가 있었으나, 소리를 찢는 속도로 날아온 강도연은 찰나의 순간 함선에 근접했다.

"으아악!"

"함선 외곽 방어막 소실!"

형상력으로 이루어진 함선의 푸른 에너지 방어막과 강도연의 검붉은 베리어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리고 함선의 방어막은 일대의 구름을 소멸시키는 충격파와 함께 무슨 돌멩이에 부딪힌 유리창마냥 박살나며 깨져버렸다.

애초에 같은 체급을 가진 함대전을 상정하여 설계되고 만들어진 방어막이다. 사방에서 쏟아질 적들의 포격에서 여러 곳을 막기 위해 그 크기와 유지력에 신경쓰느라 순간적인 한점 돌파에 대한 부분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런 미친..."

서둘러 움직이던 군인 하나는 이곳을 향해 단숨에 날아오는 그녀를 보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방어막을 부순 강도연은 날개를 접음과 동시에 몸을 회전시켰다. 스스로를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드릴로 만들어버린 그녀의 몸이 두꺼운 함선 외벽을 대폭발과 함께 날려버리고 조금의 감속도 없이 최심부로 향했다.

재수없게 근처에 있던 이들은 폭발이 닿기도 전에 그 충격파와 이어지는 풍압만으로 몸이 짓이겨져 죽었다.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이런...!"

다른 부하들과 뒤흔들린 지휘통제실에서 바닥을 구른 함장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고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절규했다.

통제실의 시스템이 하나 둘 다운되기 시작했다.

엔진은 가동을 멈추고 통신도 끊겼으며 무장 시스템도 먹통이 되었다. 중심동력이 일격에 상실되었다는 뜻이었다.

"하, 함장님. 동력실 전체가 반파...함선이 추락합니다!"

"동력실의 대폭발로 함선의 몸체가 절반으로 쪼개졌습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바닥을 굴러야 했다.

강도연이 관통한 함선의 중심동력기가 한발 늦게 대폭발을 일으키며 그 거대한 함선의 몸체가 반으로 쪼개져 추락하기 시작했으니까.

"핫라인. 핫라인은 살아있나."

"그, 그렇습니다 함장님. 어서 탈출을..."

"지금 당장 연결하게. 반, 반드시 알려야 해."

뒤집힌 함선에서 추락하면서도 천장에 누운 함장은 본대와 직통으로 연결된 통신기를 붙잡았다.

'어쩌면, 우린 이곳에 잘못 발을 디딘 것일지도 모른다.'

통신기에 대고 현 상황을 보고하는 함장의 눈에 단신으로 함선을 완파하고 푸른 하늘에 고고히 떠 있는 검은 점 하나가 보였다.

점차 지상과 가까워져감을 느끼며 함장은 직감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함선의 함장으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현지인들이 두려워 하는 검은 날개에 대한 공포를.

"철수를...권고합니다."

결국 지면과의 추돌 직전 함장이 내린 마지막 메시지는 대대적인 철수 권고.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위기에 빠진 도시를 구하기 위해 위풍당당히 나타났던 함선은 고철이 되어 땅과 하나가 되었다.

*

"이것이, 나리아 함의 함장 스콧의 마지막 통신이네."

"..."

"하필이면 해당지역 감시를 해야할 나리아 함이 기동했다가 단 한순간에 완파되는 바람에, 자세한 정보가 없어."

사령관 리암, 그는 우주권에 떠 있는 기함에서 모든 현장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직전까지 갑자기 나타난 괴물들에 대해 활발하게 대처 방안을 논의하던 회의실은 지금 숨막히는 적막만 흐르고 있었다.

솔직히 현재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 것도 리암 혼자가 유일했다.

"지금까지 이곳에 와서 겪은 손실은 호위함 3척, 아군 약 1500명, 각종 장비들과 현지인 피해는 말할 것도 없군."

멍하니 중얼거린 그가 홀로그램을 터치해 끊겨 있는 영상 하나를 열었다.

완파당한 나리아 함이 마지막으로 전송한 그 영상은 허공에 떠 검은 날개 4장을 펼치고 있는 존재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저런 소형의 기체가 오토스급 호위함을 단기로 떨군다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는데. 게다가 마치 노렸다는 듯이 정확히 중앙동력기를 들이박았어. 이건 아마 자네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습니다 함장님. 저 괴생명체들은 분명..."

"진화하고 있잖아."

리암은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현지인들의 증언으로도, 그리고 직접 관측한 바로도 명확했다.

그들의 적은 진화하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르고 엄청나게 최적화된 형태로. 도대체 그 원리를 감히 짐작조차 못할 정도였다.

설마하니 저 괴물들의 일부가 인간을 연기하며 연맹에 접해 있을 것이라고는, 하늘이 뒤집어져도 모를테니까.

"분명 오스틴이라는 현지인 마법사가 그렇게 말했지. 놈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마법을 훔쳐 배울 수 있었다고. 그는 뭐라던가. 아직도 소실된 게이트 관련 기술을 찾지 못했다고 하나?"

"그렇습니다. 고위급 마법사들은 얼추 알고는 있으나 완벽하진 않은데다 극비로 유지되던 기술이기에 만약 관련자들이 다 죽었다면 기술을 온전히 복원하는데 시간이..."

"그럼 놈들은? 놈들은 어떨까. 놈들이 우리의 감시를 피해 수십만에 달하는 개체들을 어디서 어떻게 조달했을까."

리암의 예측이 거의 정답에 근접했다. 문제는 이제 와서 그걸 알아차려봤자 달라지는 점은 없다는 것.

"그럴, 그럴리가 없소! 설령 놈들이 아도스 학회의 모든 것을 가졌다 한들 알 수 있는 좌표는 레드리움 뿐이요. 우리가 이곳을 발견한 것도 극독과 냉기와 열기뿐인 세상들을 거치며 천운이 따른 것이지. 놈들이 당신들처럼 우주를 날아다니며 새로운 땅의 좌표를 얻지 않는한 확실하오. 게다가 그 황폐화된 땅의 용종들을 전부 죽였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따위는 거무튀튀한 죽은 땅 뿐이오."

"그럼, 지금 놈들이 끌고 온 저 수십만이 전부일 확률이 크다?"

"하지만 정말로 놈들이 전부 그곳으로 도망쳤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소."

화면으로 연결된 오스틴은 리암의 말을 펄쩍 뛰며 부정했다.

이미 군단이 주변의 모든 생명을 먹어치우고 둥지를 늘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에, 정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레드리움 그 척박한 땅에서 번성한다는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우, 우리도 돕겠소."

"아니. 그건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지금 가장 거슬리는건 바로 우리가 지휘개체로 분류한 상위종들과 저 검은 날개의 천사. 그녀 뿐이니까. 대신 당신들은 약속한 것들만 잘 준비해 주시죠. 그래야만 본성도 계속해서 물자 지원을 보내올 겁니다."

피식 웃은 리암이 돕겠다는 오스틴의 제안은 거절했다.

어차피 다른 일반적인 군단병들은 함선의 입장에선 땅바닥의 개미에 불과하다.

"놈들의 덩어리가 관측되었으니 더 이상 행성 전체를 감시하는건 의미가 없지. 전 함대에 결집 명령을 내리게. 땅에 바글거리는 놈들을 없애버리다 보면 분명 나타날테니까."

그는 간부들에게 전 함대 소집 명령을 내렸다.

솔직히 몇 마리에 불과한 적들을 상대하는데는 과잉전력이다. 하지만 상대가 단신으로 함선을 무력화하는 미친 괴물인 이상 흩어져서 각개격파 당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했다.

"에이미, 본성에도 상황을 보고하고 여차하면 지원을 달라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저 천사를 떨굴지 논의하지."

자신의 보좌관에게 보고할 것을 지시한 리암은 본격적으로 다른 논의에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접해보는 유형의 적들을 어떻게 손실을 최소화 하여 잡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이미 전 함대가 지정된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마 처음 우리 함선을 저격했던 그 요상한 수단은 없는 것 같으니, 무인기등을 동원해서 놈들의 기동성을 묶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지,"

그는 획득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상대의 특성을 분석하고 나름 적합한 전술등을 새롭게 개발해 내었다.

그러나 그가 한가지 놓치고 있던 것은 지금 그의 전술 대부분은 획득한 정보에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것.

물론 알지도 못하는 미지의 상황까지 전부 고려한다는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군단의 성장과 진화는 예측과 대비의 영역을 넘어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할 지경이었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