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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29화 (129/254)

129화-새로운 카테고리(7)

"그게 정말인가? 그들이 제안을 그렇게 쉽게...아니 뭐 예상한 것이긴 하지."

"그, 그렇습니다. 다만 대령님, 그들이 제시한 조건은 어쩌실 것인지..."

"어려울게 뭐 있나. 어차피 수호자 연합과의 협력은 단기적인 것이 아닌 앞으로 계속 이어갈 장기적인 것. 우리와 협력은 하겠지만 당분간은 계속 수호자 연합에 속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싸우겠다라. 그리 어려운 조건도 아니지. 역시 아직 어린 놈들이었군."

피레스의 상관, 레모로 대령이라는 작자가 낄낄거렸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대화를, 멀리 떨어져 있는 막사에 있는 우리도 모조리 엿들을 수 있었다.

당사자인 피레스의 육신이 이미 우리 손안에 있었으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을 하려 하면 사전에 그것을 알아챈 이브가 그의 몸을 강제로 움직였다.

그는 지금 자포자기 했는지 시키는대로 잘 대응하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순수한 제안이었네. 우리 같은 헌터들을 포섭하려는 것 뿐이었다니.'

'하지만 그 의도는 순수하지 않잖아.'

전쟁을 당연한 수단으로 여기는 이브는 그들의 의도를 알고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나는 피레스가 실토한 그들의 생각을 들어내고 잠시 역겨움에 빠졌다.

그들은 이미 알려진대로 지구의 헌터들, 정확히는 자신들은 범접할 수 없었던 초인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관심은 단순한 학술적 연구나 문화교류등에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들도 그 힘을 탐냈고, 동시에 그 힘을 이용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 이용처는 당연히 연맹 내 세력 경쟁이었다. 결국 명목상이라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는 사람들을 용병으로 부려 사람들과 싸우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물론 이브는 전혀 신경 안쓰고 있지만, 내가 이브를 볼 면목이 없었다. 인간의 종족특성은 어딜가나 똑같은것 같았다.

"잘 구슬리고 회유해서 남은 기간동안 우리에게 충실한 개로 만들도록. 그걸 위해 필요한 지원은 전부 해주지. 추가로 확보해볼만한 다른 놈들도 잘 알아보고. 많을수록 좋으니까."

"알겠...습니다 대령님."

피레스는 인사하며 안심하라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의 심리가 혼란해지자 이브가 강제로 움직인 것이다.

'앞으로 네가 해야할 일을 알려주지.'

동시에, 이브는 군체의식을 통해 괴로운 듯 머리를 부여잡은 그에게 강제로 명령을 내렸다.

"놈은 걱정하지마. 24시간, 그 어느때에도 내 손아귀에서 주물러질 테니까. 아직은 자아를 살려둬야 해서 아바타 하나를 추가로 조종하는것과 똑같지만, 하나뿐인 첩자라면 이정도 정성은 쏟아야지. 그리고 피레스를 통해 지금 얻을 수 있는 연맹 내부의 정보를 모조리 빼낼거야. 그건 우리 군단의 함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거고."

"그 다음은?"

"참고할만한 자료가 있으니 이제는 그걸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를 손에 넣으면 돼."

이브가 히죽였다. 나는 야망 있던 젊은 연구원 피레스가 아주 살짝 불쌍해졌지만 그냥 무시했다. 이미 우리가 설계한 모든 조건은 갖춰졌다.

마침 이번 전투로 인해 우리는 필요로 하던 전공과, 이름 값을 얻었다. 그것도 좀 많이.

"제이슨한테는 내가 말할테니까, 너는 얌전히 있어."

"뭐 좋아. 인간들 상대하는건 네가 해."

자기가 밀어붙인 계획이 나름 풀려가는게 기분 좋은지 이브는 내 제안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내가 나서겠다 말한게 다른 이유가 있는건 아니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이브의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아니까.

반말은 기본에, 애초에 예의는 차릴 필요도 없다 생각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브가 좀 차갑고 딱딱할지언정 재수없고 버릇없는 사람으로 비치는것은 막고자했다.

"보여? 우리가 원치 않게 처음으로 먹어치우게 된 행성 레드리움. 우린 그곳을 이제 곧 완전히 먹어치울 수 있게 돼. 생산하는 에너지는 행성 한개분. 한번에 양산할 수 있는 병력은 초대형종 기준 십억 이상. 하지만 아직 부족해."

"잘 알지 이브."

"그리고 오늘 밤은 나랑 데이트해. 저곳에서."

이브가 눈을 빛냈다. 저곳이라 말한 곳은 우리의 둥지가 있는 레드리움이 아니었다.

우리가 수복해야 하는, 어쩌면 이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

지금 강도연이 소수 병력을 이끌고 끊임 없는 게릴라를 펼치며 상대를 열받게 만들고 있는 곳이었다.

"기존의 1급 6형 상위종을 개량해 자아에 영향가지 않을 강한 몸을 만들어 뒀어."

내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걸 확인했는지 활짝 웃어보였다.

주도권을 가져간 이후, 이브는 나조차도 알차게 써먹을 생각이었다.

물론 이브에겐 나와 함께 활동하는, 동시에 거슬리는 적들도 죽여 없앨 수 있는 참으로 효율적인 '데이트'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버텨야지]

버틴다라. 맞는 말이었다.

"전장을 옮기겠다니?! 이제 우리는 이곳을 안정화시키고 수비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싸우고 싶습니다."

"허. 좀 쉬어도 될 텐데."

피레스를 감염시켜 조종하게 된 다음날.

막사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이른 아침부터 나를 마주하게 된 제이슨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깊게 탄식했다.

그 묘한 눈을 보니, 아마 무슨 오해를 깊게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작 우리는 다른 목적이 분명히 있는데도. 물론 그 오해를, 딱히 먼저 나서서 바로잡을 생각도 없었다.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당연히, 지금까지 보여준 두 사람의 활약이면 충분히 가능하지요."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당장 우리와 함께 싸웠던 사람이니 모를리가 없다.

"혹시 희망하는 곳이 있습니까? 이곳에도 자원해서 왔었죠."

"지금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이번엔 북미로 가겠습니다."

나는 기다렸던 질문에 대한 답을 즉시 내어놓았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본부에 연락해 말해놓겠습니다. 그동안은 편히 쉬시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것도 좋지만, 자기 몸도 소중히 돌보세요."

"감사합니다."

"지창현 지부장이 역시 사람보는 눈이 정확하군요."

나가기 전, 그는 내게 지창현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걸 듣고 살짝 찔리는 마음에 쓰게 웃었다.

"생각보다 쉽게 끝났네? 대체 왜 제이슨 저 인간이 우리에게 저정도의 호감을 갖고 있는거지?"

"그는 우리를 영웅이라 생각해."

"뭐?"

나는 기다리고 있던 이브에게 다가갔다. 내 시선을 통해 상황을 보고, 제이슨의 태도에 의문을 품은 이브는 내 말을 듣고 눈쌀을 찌푸렸다.

"말도 안 돼. 우리 행동은 인간들을 도우려는게 아니야."

그러더니 투덜거렸다. 그야 당연하다. 자기가 주도적으로 짠 자신의 계획이 남들 눈에 예상과 다르게 보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제이슨을 비롯, 다른 사람들 눈엔 우리 행동이 이질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부정할 순 없어 이브. 사람들이 네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까? 넌 그들의 심리를 모르겠지만 네가 무시당해 화가 나서 트롤의 지팡이를 가로막은 것부터 전공을 쌓으려고 적극적으로 싸우던 것, 그리고 또다시 험지로 파견가겠다고 자원하는 것 등등. 사람들은 그것들을 희생 혹은 사명이라고 생각해."

"그럴리가 없어."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맥스가 네게 했던 행동을, 네가 다른 이들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지."

맥스 이야기가 나오자 아주 찰나의 순간, 말을 잃은 이브의 눈이 군체의식과 함께 흔들렸다.

나는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계획에 나쁜건 아니야. 불필요한 충돌도 방지할 수 있고."

"...인정하지."

그리고 명분도 내게 있었다. 이브는 어딘가 불만이 있어보였지만 결국 자기 기분에 따른 땡깡에 불과할 그것을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떠날 준비나 하자. 이대로 북미로 가면 분명 그들을 만날 수 있지. 우리가 목표로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생물, 거대하늘돛새치가 살고 있는 세상의 주민들. 나도 지창현한테 직접들은 극비 정보지만 지금의 우리라면야."

나는 이브를 데리고 막사로 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쌓은 성과를 바탕으로 원하던 곳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우리가 목표로 한 것을 얻게 되면 드디어 염원 하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우주 함대에 대적할 수 있는 병종을 만든다는 염원을.

*

"무슨 기사 보십니까? 이 사람들은 누구죠?"

"아는 사람은 한명인데, 나머지 하나는 누군지 모릅니다."

크리스는 보던 태블릿을 툭 내려놓았다. 다가와서 말을 건 상대는 흥미롭다는 듯 오히려 그 태블릿을 받아들었다.

"서부전선의 영웅들이라. 무투파라면, 그 초능력을 쓰지 않는 이들을 말하는것 아닙니까?"

"그렇죠."

그녀가 눈을 반짝이자 크리스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그녀의 옆에 붙어 호위하며 살펴본 바, 그녀의 성격이 이상하다는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좀 많이.

"한번 붙어보고 싶네요. 여기 기사를 보면, 어쩌면 빠른 시간 안에 가장 강한 무투파에 랭크될지도 모른다고 쓰여 있는데."

"그들은 적이 아닙니다."

"수호자 연합은 당신네와 경쟁상대 아니던가?"

"끙, 일단은 협력상대입니다. 그리고 진정하십쇼. 한명은 아직 견습이고 다른 한명도 아직 초보입니다. 성국 최강이라는 여자가 그런 애송이들이랑 뭘 하시려고."

골이 지끈거린 크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눈에서는 흥미가 가시질 않았다.

어느새 기사에 깊게 빠져든 그녀가 손으로 기사를 넘겨볼 때마다, 치렁치렁한 화사한 금발이 살짝살짝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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