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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25화 (125/254)

125화-새로운 카테고리(3)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연합군의 주둔지는 출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모든 이들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말그대로 실전, 그것도 온갖 이상한 술수를 부리는 괴물들과의 전쟁이었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니까.

"저길 좀 봐."

간부들의 지휘하에 묵묵히 장비를 점검하던 고참 병사 하나가 함께 있던 신병에게 말을 걸며, 턱짓으로 주둔지 한쪽을 가리켰다.

그들은 아직 출전 준비중이지만 그곳엔 이미 출전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연령대, 군대에 비하면 중구난방인 복장과 무장등.

"헌터들..."

"듣자니 우리가 진격해서 거점을 마련하는 동안, 놈들을 먼저 공격해서 시선을 끈다고 했지."

"그 괴물들에게 먼저 덤벼들다니. 솔직히 상상하기 힘듭니다. 전 못할 것 같습니다."

신병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10여년 전부터 게이트를 통해 지구를 침략하던 마계와 마족들에게 개인적인 복수심을 갖고 군에 자원 입대하여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만, 불과 얼마 전 직접 봤었다. 그렇기에 두려움을 품었다.

총탄세례를 뚫고 진중에 난입해 휘두르던 할버드. 그 일격에 함께 훈련받고 꼭 승리하자 맹세한 전우들이 무슨 짚단마냥 쓰러졌다.

압도적인 무력, 그리고 공포. 평범한 병사가 견디기엔 힘겨운 압박이었다.

"...어렸을 땐 헌터들을 동경했지. 그야 멋지고 특별한 초능력자이자 괴물들과 싸우는 영웅들이라고 생각했거든. 물론 어른이 되어 헌터들도 결국 돈벌 생각 뿐인 평범한 사회의 일원이라는걸 알게 된 이후로는, 거들먹거린다 생각하며 그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고."

굳은 신참의 어깨를 두드린 선임병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피식 웃었다.

"저기 저 사람들 보이냐. 저기 긴 흑발의 여자애. 저 남자랑 같이 가장 먼저 선발대에 서겠다고 자원했다더라."

"그, 그때 봤습니다. 그 괴물을 상대로 싸우던 모습을."

선임병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그는 진중에 난입한 우두귀 우두머리와 싸우던 이브와 신우를 가까운 거리에서 봤었으니까.

허공에 흩날리는 머리칼, 길게 쭉 뻗는 몸, 검에서 뿜어지는 엄청난 위력의 참격까지.

그리고 그 압도적인 실력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둘과는 눈 한번 못마주쳤지만 그의 뇌리에는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평범한 사람도 상태창의, 이능의 도움 없이 수련하여 초인이 될 수 있다잖냐. 그렇게 힘을 얻어서는 괴물들과 싸우는데 앞장서지. 나는 이제 저 헌터들이 함께 싸우는 동료이고 영웅으로 보여."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에 다 티난다 마르코. 나중에 만나면 전화번호라도 물어봐라. 혹시 아냐, 정말 받아줄지."

선임병은 그의 얼굴을 보고 낄낄거렸다. 대답을 하면서도 멍하니 이브를 보고 있던 그는 흠칫해서는 서둘러 손에 들고 있던 장비나 더 열심히 만지기 시작했다.

*

"쯧..."

"신경쓰지 말라고 말하는건 소용 없나."

출발 직전. 나는 이브가 혀를 차는 소리에 멋쩍게 웃었다.

다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항상 옆에 있으며 본인이 워낙 차갑고 적대적으로 굴어서 그렇지 이브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실력이면 실력, 외모면 외모.

전장에서 시선을 끌만한 요소는 모두 갖고 있었으니. 안타깝게도 이브는 그런 시선을 즐기는 관심종자는 아니었다.

"자네들 진짜로 보호구도 필요 없소?!"

"정말 괜찮습니다. 저희가 익힌 무술은 몸이 가벼워야 편해서."

그와중에 맥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랐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일단 대충 둘러댔다. 우리가 시선을 끄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갑옷과 같은 보호구를 껴 입는 다른 헌터들과는 달리, 나도 이브도 그 흔한 방어구 하나 없이 맨몸이라는 것. 심지어 그나마 군복 비스무리한 전투복을 입은 나와는 달리 이브는 이 쌀쌀한 날씨에도 와이셔츠에 치마차림이었다.

이브가 효율도 좋지 않은 방어구를, 입을 이유가 없는데도 입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헌터들은 원래 자기 이능에 따라 싸우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라지만...둘은 무투파로 알고 있는데."

"이제 출발할테니 다들 자리로!"

그때 총대장의 출발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사람들 틈에서 영 기분이 좋지 않은 이브의 손을 잡고 우리가 배정된 차량으로 향했다.

뚜껑이 열린 군용차량이다. 난 이 미친 자동차를 전역하고 또 탈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공중으로 침투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마계 생물 전체를 자기들 수족으로 부리는 마족들이, 아군의 공중 정찰은 아주 작은 드론 하나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부는 놈들이 아군의 무기 쳬계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소. 하긴 연맹과 대적하는 세력이 그쪽을 지원하고 있다니까."

맥스가 곁에 와 앉았다. 나는 작게 혀를 차는 이브의 손을 조금 세게 잡았다.

"계속해서 쏴대는 미사일이나 핵도 번번히 막히고 말이지. 마법이라는거, 너무 사기 아니오. 후..."

"그렇죠. 하지만 지금 저희가 상대할 우두귀들은 마법은 덜 쓰지 않습니까?"

"이젠 어찌 될지 모르오. 우리도 연맹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확실한건 놈들도 계속해서 강해진다는 것이지."

맥스는 치를 떨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적들은 계속 강해진다. 계속해서, 진화한다.

'우스워.'

이브가 비웃는게 군체의식을 통해 들렸다. 사실 진화 그 자체인 이브가 보기엔 오히려 적들의 발전 속도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많은 자원과 기회를 가지고 고작 그정도가 전부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방심하진 말자 이브. 그리고 무엇보다, 그놈들은 유닛들이야. 손을 잡았다 한들 서로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될 수 있을리가 없어. 언젠간 서로의 뒤통수를 쳐야하니까.'

나는 언제나 적들이 유닛과 플레이어임을, 이 게임에 관여하고 있는 이들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브는 방심해도 나는 방심해선 안 되니까.

"출발!"

곧 시동을 걸어두고 있던 차량들이 엔진음을 뿜어내며 주둔지를 떠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에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놈들은 분명 알고 있을 겁니다. 알고도 당하게 만드는게 우리 임무고."

총대장 제이슨이 무전기를 통해 사람들을 독려했다.

지금 움직이는 차량은 십수대를 넘어갔다. 결국 자원자를 받고 선별 과정을 거쳐 선발된 정예 헌터 서른명.

그리고 우리를 보조할 특수부대 100인이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 여기 있는 이들이 전부다. 그 어떤 지원도 없다. 이외의 모든 전력은 지금 거점을 점령할 본대에 붙어 있었으니까.

"반드시...살아 돌아갑니다."

"기분은 알겠지만 이상한 말로 플래그 세우지 말고 말 줄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야 S급 헌터이자 대장인 당신을 믿으니까."

몇몇 헌터들이 오히려 자기가 긴장해서 횡설수설하는 제이슨에게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전환하려 애썼다. 효과는 있는 듯 보였다.

당장 내 주변에서 잔뜩 굳어 있던 사람들도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어쨌든 놈들도 우리를 알고, 우리도 놈들을 알고 있습니다. 숙지한대로만 움직이면 분명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제이슨은 앵무새마냥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근본적으로는 전부 맞는 이야기였다.

지금 이 지역의 주적은 우두귀이고, 놈들의 습성과 전술은 지속된 교전으로 어느정도 파악되었다.

최근 놈들이 이상한 술법을 배워 쓴다는 소리가 있었지만 그정도는 예측 가능한 범위였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외곽을 돌며 시간을 끄는건 충분히 성공할법한 계획이었다.

"...아직도 반응이 없는건 좀 이상한데."

다만 목적지에 차량이 정차하고 정찰 드론을 띄워 주변을 정찰해도, 어째 예상했던 적들의 반응이 전혀 없었다.

"총대장! 본대와의 통신이 끊겼소..!"

다급히 달려온 특수부대 지휘관의 말이 쐐기를 박았다.

놈들이 요상한 수법으로 전파를 교란하는건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조용한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건, 명백히 일이 어딘가 틀어졌다는 것이었다.

"우선, 우선 계획대로 작전을 진행하지요. 그러면 놈들의 진심을 알 수 있을 테고, 이후 판단하기도 쉬울 것이니."

명목상의 총지휘관인 특수부대 대장이 의견을 내었고 제이슨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다시 차량에 탑승했다. 하지만 공격 사거리에 놈들의 본진이 보이는데도 놈들을 반응하지 않았다.

"없어?!"

아니 애초에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찰드론과 확대경을 든 군인들은 물론 헌터들도 자기들 나름의 감각을 키워 주변을 살폈지만, 지금 이 주위에 적들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함정일 가능성은 큽니다. 하지만 기회인 것도 사실이니, 지금 가서 불사르기라도 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지금 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부렸는데. 본대가 위험할 수도 있소!"

여기서 의견이 갈렸다. 빈틈이니 일단 가서 공격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느냐 아니면 지금 즉시 후퇴해야 하느냐로.

"..."

이브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이브의 감각에도 걸리는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무겁고 차가운 기운이 사방에 뿌려져 있어. 의도된 것인지, 자연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만 정말 아무것도 없는건 아니었다. 지금 이브가 느끼는 음습한 형상력, 나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가서 확인이라도 해야겠습니다."

결국 지휘부는 조금 더 알아보기로 판단을 내렸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전투 한번도 없이 복귀하는 건 좀 그랬을테니.

차량에서 내린 우리는 은밀하게 놈들의 주둔지로 향했다. 체구가 큰 우두귀들의 본거지 답게 큼직하고 어설픈 건물들이 빼곡한 마을 같은 곳이었다.

"살필 것도 없다. 전부 부수고 태워버려!"

함께 온 특수부대가 장비를 챙겨주변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다만 이게 놈들에게 타격이 클지는, 장담하기 힘들었다.

나는 멍하니 화염방사기에서 불을 뿜어내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저기! 뭔가 있다!"

그때 전방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이건...'

그순간 이브와 내가 동시에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일한 적이다.'

이곳에 나타난 단 하나의 적. 놈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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