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새로운 카테고리(1)
모든 것을 함께한다. 아무래도 이브가 바라는 것은 내가 이해한 것 이상인 것 같았다.
"계산이 필요해?"
"그래."
"이해할게."
희미하게 웃은 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이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단 내 육신을 두고, 연결된 군체의식을 통해 새로운 육신에 깃든다는 것.
지금껏 시도된 적 없는 방법이었다. 하긴 애초에 이브가 동생을 대상으로 굳이 이런 실험을 하려 했다면 내가 뜯어 말렸을 것이다.
"겁이 나는거지? 인간은 그런 부분을 두려워 하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자아에 문제가 생길 것에 대해서. 나는 누구인가, 내 정체성은 나의 육신에 있는가 정신에 있는가 등등...정말 하찮은 의문이고 어리석은 고민이야. 그마저도 개체마다 생각이 다 다르지."
"그야 넌 인간이 아니니까. 하지만 인간심리를 소름돋게 잘 아는구나."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솔직히 거부감이 드는건 사실이다.
이브는 이미 내 육체에 대한 모든 정보를 손에 넣었다. 물론 그것들은 결국 이브가 움직이는 빈껍데기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마음만 먹으면 내 모습을 복제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이브의 성향상 효율이 나오지 않으면 굳이 하지 않겠지만, 감정이 생긴 뒤로 이브는 몇몇에 한해서는 효율을 무시하고 일을 강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 자아에 영향이 있을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브의 눈이 묘하게 휘었다. 분명 이브가 정의한 '자신의 플레이어, 강신우'와, 내가 생각한 '나, 강신우'는 살짝 다르다.
내게는 지금까지 쌓아 온 나로서의 정체성이 제일 중요하지만 이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이 정체성을 방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그대로 새로운 육신으로 옮겨지는 것...알지 모르겠지만, 강도연도 레이나도 인간 중에서도 상당한 정신력을 갖고 있었지. 그렇기에 자신을 잃지 않고 견뎌냈어."
"넌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고."
"맞아."
이브는 즉시 긍정했다. 다만 어째 기분은 이전보다 살짝 다운되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줘. 그러면, 우리는 그곳에서도 함께할 수 있을테니."
안전장치가 있다면 상관 없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지금 우리가 하나가 된다는 크나큰 결실을 맺은 이후에도 왜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가. 바로 힘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힘을 키워서 우리가 범접할 수 없던, 우리를 먼저 선공까지 하는 우주함대를 거느린 거대한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전 우주가 휘말린 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이번에 저쪽으로 넘어가 싸우려는건 경험을 쌓으며 지구에서 활동해야 할 내 실력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
"새로운 몸은 어때? 솔직히 난 마음에 안들지만. 네게 어울리지 않는 약한 몸이야."
'이게 약하다고?'
군체의식을 통해 의식을 옮기는 일은 단숨에,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끝났다.
나는 새로운 육신의 손을 움직여보였다. 내 원래 몸은 지금 멀쩡히 눈을 뜨고 활동하는 이브의 몸 곁에서 간이침대에 누워있었다.
"당연하지. 만능에 중점을 둬서 강점이 없어. 동력기관도 심장에 1개, 팔에 두개. 즉 1급 3형에 불과해."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도 이브가 있었다. 단지 이 이브는 맑고 투병한 붉은 눈에 강도연의 교복을 배껴온 와이셔츠와 치마가 아닌 검은 갑각으로된 갑옷을 두르고 있었으며, 검게 물든 눈에서 붉은 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내가 눈뜬 곳도 주둔지의 임시 막사가 아닌 건조하고 거친 바람이 부는 황야 한복판. 그것도 성채만한 덩치를 가진 거대괴수의 위였다.
'아니. 내가 말한 기준은 기존의 몸이었어.'
"...솔직히 그 몸도 너무 약해. 더, 더 강해질 수 있는데."
투덜거리는 이브는 무시하고, 나는 내 몸을 살폈다.
걱정했던 자아의 혼동? 이질감? 그런건 이브가 자신했듯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상위종의 몸에 들어와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내 의식이 군체의식으로 완전히 흘러들어가 이브가 조종하던 상위종 한 개체의 지휘권을 양도받은 것 뿐이다.
기존의 몸과 아예 지나치게 달라버리면 심리상 거부감도 적었다. 지금 나는 새로운 몸에서 새롭게 태어났다기 보다는 무슨 슈트 같은걸 입고 가상현실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충분해. 내 목적은 단순히 공명식을 수련하는 것 뿐이니까.'
"좋아. 그럼 갈까?"
나는 제대로 선을 그었다. 이브는 딱히 신경쓰지 않는듯 웃으며 손가락으로 저 앞을 가리켰다.
이곳은 아직 치열한 전장이다.
나 같은 놈이 끼어들기에는 버거운, 땅을 울리고 대기를 찢는 거체들이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간의 몸에 적용하는건 내가 그곳에서 알려줄테니, 지금은 우리 둘의 공명에만 집중해. 그것이 공명식의 유일하며 동시에 모든 것이니까."
이브가 검을 빼들고 앞으로 나섰다. 나도 창 대신 검을 들었다.
명백한 괴물의 몸이다. 인간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육체능력이 내게서 폭발했다.
우리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허공을 가로질렀다.
"너무 기뻐. 늘 이런 순간만을 기다려 왔어. 진정한 군단이. 진정한 우리가 탄생한 순간이야."
에너지를 뿜어내며 내 곁에서 허공을 박찬 이브가 그보다 더 환히 웃을 수 없을 정도로 웃으며 입을 쩍 벌린 지룡을 향해 참격을 뿜어냈다.
인간의 몸일때보다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그녀와의 공명.
뿜어진 참격은, 수십미터의 길이로 튀어나와 지룡의 목을 단숨에 베어내었다.
'지금이라면.'
나도 어딘가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며 검을 들었다. 지금이라면 어쩌면 전에는 들지 못했던 경지에 이를 수도 있으니까.
바로 그 순간, 내 검에서도 이브와 비슷한 크기의 참격이 뿜어졌다.
"좋지? 한계를 벗어나서, 더욱더 진화하여, 인간의 몸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를 손에 넣는 다는것."
'너무나.'
부정할 수 없다. 강해지기 위해 조금이라도 수련해본 사람이라면 그 누가 이 쾌감과 성취를 포기할 수 있을까.
군단병들이 용종들을 죽여나가며 진격하고 남은 자리. 오직 시체들만 가득한 그 자리에 한참을 날뛴 나는 이브와 단둘이 남았다.
이 육신은 지친다는 과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움직이지 못하게 될 정도로 에너지가 떨어지면 둥지에서 보충하면 그만이었다.
"강도연도 봤지? 레이나도. 그들처럼 지금 보다 더 좋은 몸을 줄 수 있어."
이브는 내게 육신을 바꿀 것을 다시 한번 권했다. 물론 그 의도는 순수함 그 자체라는거, 잘 알고 있다.
이브에겐 비효율 그 자체인 인간의 몸을 고집하는 내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지난날 열심히 수련하며 늘려보려던 실력. 나는 그 이상의 경지를 지금 이 순간 단 몇시간만에 이루는데 성공했다.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내 눈앞에 이브는 볼 수 없는 글자가 아른거린 순간. 나는 다시 한번 흥분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정했다. 몸은 시작일 뿐, 한번 유약해지는 순간 서서히 사고와 정신까지 바뀔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어째서?"
내 대답에 놀랐는지 이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는 그 얼굴에 대고 내가 우리의 억제기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는 차마 하지 못했다.
우리가...전 우주를 적으로 돌리는 파괴전차가 되지 않기 위한.
"뭐...좋아. 네 뜻이 그렇다면."
시무룩해진 이브가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는 이브가 순수한 탓에 내게 기회가 있는 셈이었다. 피치못할 상황이 닥치지 않는 이상 이브는 내 말을 들을 것이다.
'일단 돌아가자. 누가 뭐래도 지금 우리가 활동해야 할 곳은 지구야. 맞지?'
"그래."
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내 시야가 암전, 다른 곳에서 눈을 떴다.
"그럼 이번엔 다른걸 하자. 함께."
막사 천장이 보이는 흐릿한 시야에는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똑같이 존재하고 있는 이브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으로는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서로 만나 하나가 된 이후, 내가 어딜가든 무엇을 하든 이브는 언제 어디서나 서로 같지만 다른 모습으로 내 곁에 있을테니까.
"저, 강신우님? 이브..님? 상부의 급한 호출입니다!"
다만 함께 무엇을 할지는 우리 마음대로 정하지 못했다.
"연합군이 다시 한번 거점 점령에 나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번에 향하는 곳은 우리가 에스프아라고 이름 붙인 북쪽 지대."
나와 이브는 물론 이곳에 파견된 모든 수호자 연합 소속 헌터들이 모였다.
총대장 제이슨이 우리에게 새로운 공지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공지를 들은 헌터들이 웅성거렸다.
방금 제이슨이 말한 내용은 기존에 공지된 내용과 너무 달랐으니까.
"하지만 총대장. 분명 여유를 갖고 천천히 진격한다고...무엇보다 연합군 병력손실이 크다고 했잖소?!"
"...그건 맞지만, 연합군 상부가 작전을 수정했습니다."
한 중년 헌터의 말에 그가 침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군은 예비대를 전방으로 빠르게 보충하고, 거점 점령을 위해 진격할겁니다."
"아니 그렇게 앓는 소릴 내던 인간들이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중년 사내는 이어지는 제이슨의 말에도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사실 대부분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그동안 연합군은 이 전쟁을 버거워했다.
전투 의지는 분명 있었지만, 적응기를 거치며 손실이 너무 많이 생겼으니까.
그런데도 무리를 해가면서 진격하겠다면 분명 믿는 구석들이 있다는게 뻔했다.
"소개하겠습니다. 연맹의 일원이자 행성 에레스 출신인, 피레스 연구원."
"모두 반갑습니다 또다른 세상의 동족 여러분. 저는 분명히 여러분과 같은 인류입니다."
그가 소개한 사람은 겉보기엔 평범한 젊은 금발의 사내. 하지만 그 소속은 모두가 움찔할 정도였다.
그동안 하늘에만 떠서 극히 일부의 고위층들만 만남을 가졌던, 우주에서 온 또다른 인류.
"저희 에레스가 여러분을 도와 사악한 이종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인도하겠습니다."
피레스라는 이름으로 소개 받은 연구원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