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누구나 이면을 갖고 있다(9)
"아직 모든게 초보적이죠. 군대도, 헌터들도. 애초에 이런 전쟁은 처음이니까. 특히 헌터들은 기존의 헌터들과 무투파 헌터들을 잘 융합시킬 전술도 개발되지 못하고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싸울 뿐이니."
"예? 그건 저희도 마찬가진데요."
"...글쎄요. 두분이 보여준 움직임, 한두번 합을 맞춰본게 아니었습니다."
수호자 연합의 현지 총대장 제이슨. 그는 당황한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말하길 명목상의 총대장으로 헌터들을 이끌고 있다지만 실상 지휘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아직 모든 것이 초기다. 인간이 아닌, 마족이라 불리는 괴물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도.그런 괴물들과 화력전과 근접전을 동시에 벌이는 것도.
그리고 이능이 아닌, 체술을 써 싸우는 헌터들이 등장한 것도.
심지어 여러 행성을 세력권으로 두고 있는 연맹마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열심히 배워야지요. 하지만...그 사이 대체 얼마나 더 죽어나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이슨이 내 뒷편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내 시선도 자연스레 그곳을 향했다.
오늘 전투로 죽은 군인들과, 헌터들의 시신이 수습된 곳이다.
오늘 연합군은 결국 이 새로운 타입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포격과 폭격을 통해 적들의 주둔지 중 한곳을 밀어버린 뒤 이 거점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승리했다고 죽은 사람들이 돌아오진 않는다.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군인들이 희생자들에게 경례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분은 어디 가셨습니까? 확인해보니 이제 갓 수호자 연합에 들어 온 소녀, 하지만 보여준 모습은 압도적이었습니다. 몸은 괜찮으신지? 희생자 출신이라 하셨는데."
분위기가 쳐져서 그런지 제이슨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나는 그의 질문에 흠칫했다. 그가 묻는건 전투 종료 직후 홀연히 사라진 이브의 행방, 하지만 지금 이브는 여기 없으니까.
"어...지금 자고 있을걸요? 아마도."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천만다행히도 그는 거기서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전장이지만 모쪼록 편히 쉬십시오. 언제 다시 싸우게 될지 모릅니다."
그와의 만남은 거기서 끝났다. 먼저 방을 나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동안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던, 남들은 보지 못하는 화면에 집중했다.
이브는 그곳에 있었다. 사실상 탈영이지만 그런거 신경쓸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슬슬 돌아오는게 좋지 않을까? 목표로 했던 샌드스위머를 촬영하는건 성공했잖아.'
"좋아."
척박한 바위산. 그곳에 서서 땅을 내려다 보고 있던 이브는 군체의식으로 전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곳은 이곳에서 수십km 이상 떨어진 곳. 이브가 그곳에 간 이유는, 내가 들려준 휴대폰을 들고 우리 목적이던 마계 생물을 표본으로 삼아 전송하기 위해서였다.
"설마 이브도 어플을 쓸 수 있었다니..."
[너희가 특수한 관계라서 가능한 것이다. 단순한 빙의, 강령, 세뇌등이 아닌 말그대로 완전한 하나니까]
"내 영혼은 게임의 것이라며."
[계약상의 소유권과 실소유권의 차이라고 설명하지]
중얼거린 내 말에 반응했는지 글자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 내용들을 보고 어이가 없어 혀를찼다.
당사자의 의견은 전혀 없이 자기들끼리 내 영혼을 갖고 소유하니 마니 하다니.
"아."
"...뭐야."
그런데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놀라 숨을 들이켰다.
이제 막 복귀하려던 이브에게, 거대한 박쥐 날개를 가진 짐승 십수마리가 허공을 가로질러 습격을 감행했다. 날개뿐만 아니라 생김새도 박쥐를 빼닯았다.
그나마 다른점은 혐오스럽게 생긴 대머리 인간의 얼굴을 달고 있다는 것.
땅을 굴러 피한 이브가 눈을 찌푸렸다. 나도 직감했지만, 놈들은 평범한 마계의 짐승들이 아니었다. 유닛은 아니었지만 분명 마족들의 지시를 받는게 분명했다.
"키히...%@&₩!"
"@&₩!"
이브를 둘러싸고 포위한 놈들이 침을 튀기며 알수 없는 말을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서서히 다가오며 발톱을 들이밀었다.
순간 감정을 공유하는 나는 이브의 강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혐오감이었다. 그것도 인간을 상대로한 우월감을 기반으로 한 혐오감과는 달랐다.
혐오라는 말그대로 그냥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뜻.
"키힛..?"
눈을 번득인 이브가 찰나의 순간 검붉은 기운을 두른 검을 풍차처럼 휘둘러, 사방을 베었다.
그리고 사방으로 뿜어진 참격이 놈들의 몸을 갈라버렸다.
"더러워, 더러워 더러워 더러워!"
자신의 하얀 와이셔츠에 살짝 튄 놈들의 체액에 기겁한 이브가 자신의 세포로 이루어진 그 옷을 찢더니 다시 재생시키는 방식으로 흔적을 지웠다.
얼굴도 잔뜩 찌푸린게 여간 싫어하는게 아니었다.
[다행스럽다 생각하나? 이브가 인간보다 저 마물들을 더 싫어하는 것 같아서]
떠오르는 글자들에 뜨끔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사실 지금까지 이브는 좋은 사람들만 만난 편이다. 내 어머니, 백종훈 팀장 등등...
하지만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는게 아니란걸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부디 그런 이들이 이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이 마계라는 곳, 좀 낫다지만 척박하긴 레드리움과 별 다를 것도 없어."
이브는 혹시라도 또 습격당할까 서둘러 몸을 하늘로 띄워올렸다. 동시에 은신 능력을 펼쳐 모습을 지웠다.
'직접 살펴본 결과가 그거야?'
"그래. 투자할 가치 없음. 그게 내 판단이야."
이브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내 질문에 답했다.
이브가 혼자서 움직인건 단순히 표본 삼을 생물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순한 자료와 증언 말고 직접 마계의 토양과 환경을 조사하며, 이 땅을 '새로운 거점'으로 삼아도 될만한지 알아보는 것.
그리고 그 조사결과는 효율상 투자 가치가 없음으로 판명났다.
"먹어치울 수 있는 땅이 많은데 굳이 이런 곳에."
애초에 별 관심도 없어보였다.
지금 이브의 관심은 온통 본대로 쏠려 있었으며, 반군연합의 우주함대에게 밀려난 땅을 수복한 이후에는 그들의 본거지까지 하나하나 공격하여 먹어치울 생각을 품고 있었다.
모르는 이들 입장에선 갑작스레 나타난 우주괴수들의 침공이겠지만 지금 내가 그들까지 신경쓸 수는 없었다.
"어서 와."
머지않아 위장을 푼 이브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
"훌륭한 덩치구나. 우리와 하나 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터."
이곳은 군단의 둥지 한복판. 이브가 직접 촬영한, 지구인들이 샌드스위머라 부르던 거대생물이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 이곳으로 던져졌다.
생김새 자체는 영원이나 도롱뇽과 비슷했다.
기겁한 놈이 몸을 버둥거리는 것 만으로 수십미터 크기의 신목이 부러지고 둥지가 짓눌러 부숴졌다. 길이는 짧지만 데스웜보다도 무거운 놈이었다.
현재 본거지 총괄 및 청소 임무를 맡고 있던 레이나는 작은 성만한 크기를 가진 그 괴물을 제압해야했다.
물론 어려울 것도 없었다. 아무런 개조도 거치지 않은 순수한 생물로는, 저 먼 우주의 함선을 저격할 정도의 위력을 견딜 수 없으니까.
레이나가 시전한 마법이 펼쳐졌다. 거대한 마법진이 놈의 몸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부동진, 그리고 그 위에 증폭진을 겹쳐 쌓는다."
기존 지식들을 바탕으로 레이나 스스로 개발한 군단식 마법이 다시 한번 발현했다.
마법진에 겹쳐진 몸이 움직여지질 않으니 당황한 샌드스위머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다중결합마법ㆍ군단식 증폭 공명ㆍ낙뢰진."
하늘에서 마력에 유도된 낙뢰가 내리쳤다. 그리고 그 낙뢰는 마법진을 통과하며 그 위력을 수십, 수백배 이상으로 증폭시키며 동시에 그 성질을 에너지 파동으로 바꾸었다.
직후 터져나온 거대한 충격파. 둥지 전체가 지진이라도 벌어진듯 요동치고, 레이나 본인도 베리어를 둘러쳐야 충격에서 견딜 수 있었다.
'분석 시작해.'
먼지가 채 가시기 전에 지켜보고 있던 이브가 지시를 내렸다.
굳이 빠른 분해를 위해 신체를 조각낼 필요도 없었다. 그 거대한 덩치는 이미 산산히 부숴진 고깃조각이 되어, 둥지의 육벽 안으로 꿈실거리며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청소도 거의 끝나가네."
"그렇습니다."
샌드스위머의 시체가 전부 둥지 안으로 사라졌을 때. 레이나의 뒤에 이브가 육신을 움직여 직접 나타났다.
"네 기분도 좋아보이고."
"군단에 합류해서 은혜를 받은 이후 하루하루가 신세계요 낙원이었습니다. 그 누구라도 즐겁지 아니할 수가 없을 겁니다."
레이나가 활짝 웃었다. 아부도 가식도 아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군단병들을 움직여, 용종들과 계속 싸움만 벌여도 그것이 곧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복수의 대상이었던 마법사들이 사실상 궤멸한 지금도 여전했다.
이제 그녀를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은 복수심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군단에 대한 자부심이자 오만함이 되었다.
"이제 사실상 단 한곳. 마법사들이 부르길 과거 용의 협곡이라 불리는 곳만이 남았습니다. 그곳에 놈들의 우두머리가 있다하더군요."
"여러 일을 겪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지휘도 전투도 하지 않고 앞에 나서지 않는 우두머리는 하나 같이 폐급이었어."
이브는 용종의 우두머리 이야기를 듣고 코웃음을 쳤다.
"네게 또 하나의 선물을 주지 레이나. 아직 부족함이 많은 우리의 가장 강한 화력을 가지고, 놈을 죽여. 그리고 이 세상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
"아아..."
자아가 일부 손상되는 것도 감수했던 레이나의 군체의식 접속률은 강도연이나 신우 이상이었다.
굳이 육성으로 전할 필요도 없이 이브의 계획을 알아차린 그녀가 감격한 얼굴로 감탄했다.
이브가 그녀에게 주려는 것은 앞으로 운용할, 돌격형 초대형종보다도 더 거대한 함선형 군단식 거대생물체의 프로토타입.
물론 미완성인지라 하늘을 날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막대한 에너지를 투입한 그 선물을 받게 되었다.
"감히 우리를 거부하는 놈들을, 모조리 죽이리라."
레이나가 마지막 남은 용종의 본거지로 진격하며 히죽 웃었다.
단일개체로는 가장 큰 에너지를 투입한 거대 생물이 몸을 반만 내놓은 채 긴 흔적을 남기며 땅을 가로질렀다.
그 위에 올라타있던 레이나는 수십가닥 촉수를 이용해 자신의 몸에 연결했다.
어차피 이 프로토타입은 이번에 쓰고 버리며 재활용할 예정이니까, 그녀는 아예 이 거대한 생물체에 깃든 에너지를 자신의 배터리로 쓸 생각이었다.
이전에 거점둥지에서 둥지의 에너지를 모조리 끌어다 우주함선을 저격했던 것 처럼.
다만 그때는 고정포대였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주포대였다.